問1

K=Potassium by KP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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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를 기다려 볼 요량으로 소파에 다시 누웠다. 끝물이긴 하지만 아직 방학은 방학이니 강의는 없다. 동기들과 정기적으로 하던 잡다한 스터디도 오늘은 예정이 없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면 될까, 하고 유준은 생각했다. 그 기묘한 공간 안에서의 시간의 흐름과,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의 시간의 흐름은 그리 다르지 않은 듯 보였으니까. 

유준이 구두 보고를 위해 학교에 들어온 것이 오전 열한 시 근처의 일. 그리고, 장발의 남자와 짤막한 대화를 나누고 바깥으로 튕겨나와 정신을 차린 게, 열한 시 삼십 분의 일. 남자와 십 분 정도 대화를 나눴다고 해도 이십 분이 뜨긴 하지만. 고작 이십 분의 오차가 그렇게 대단치는 않을 것 같다. 단순히 제가 이십 분 간 푹 잠들어 있었던 게 아닐까.

삼십 이 분을 인터넷 웹서핑에 소모했다. 아무도 동아리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동아리 활동이 없는 방학의 동아리실이란 언제나 이런 법이다. 

유진 역시 돌아오지 않았다. 대화가 길어진 건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자고 있는 걸까.

동아리실 외에 유진과 연고가 있을 법한 장소를 생각해 본다. 양 교수의 연구실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이 대학의 민속학과 학생이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인문학부 건물이 어떻게 생겼으며 각 층에 어떤 학생들이 드나드는지는 알지 못하는 유준이었다. 물론, 민속학과의 주 강의실이 어디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검도 동아리실에 쓰러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유진은 주기적으로 검도 도장에 다닌다고 들었다. 또다시, 물론, 그가 학창 시절에 검도 동아리에 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는 유준이다.

사십 오 분이 지난 시점에서 유준은 몸을 일으켰다. 푹신하지 않은 소파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그의 무게를 감내한다.

아무래도 여기에 있어 봤자 선배를 만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게다가, 슬슬 배가 고팠다. 일어나서 먹은 거라곤 아침에 마신 우유 한 통이 전부였다. 유통기한이 아슬아슬해 아침 대용으로 전부 마셔버린 녀석이다.

학교를 한 바퀴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에 아는 사람을 대충 하나 붙잡고 점심을 사 먹을 계획까지 세웠다.

유준은 아무도 없는 동아리실을 뒤로 한다. 복도를 지나 중앙 계단으로 1층까지 내려간다. 매콤한 냄새가 언뜻 풍겼다. 동아리실이 위치한 학생복지관은 1층에 구내식당이 있다. 확실히, 한 시면 점심시간이긴 하다. 

방학 중이라 식당에 사람은 별로 없지만, 아는 얼굴이 몇 보였다. 같은 학과의 동기가 멀뚱한 얼굴로 식판을 드는 모습을 보고, 유준은 그에게로 발걸음을 옮긴다.

"오늘 뭐 나와?"

"제육볶음."

"음."

유준은 식판을 들지 않았다. 배식을 위해 터덜터덜 걷는 동기의 뒤를 따라 귀찮게 말을 걸다가, 크게 재미있는 일은 없는 것 같다는 판단에 뒤를 돌아 식당을 나가려고 했지만.

"자연대 쪽에 뭔 일 난 거 같던데."

밥과 반찬을 지나 국그릇까지 받은 동기가 대뜸 말을 걸었다. 식판을 든 채 이야기할 수는 없기에, 두 사람은 텅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유준은 정수기에서 물이나 한 잔 받아왔다.

"뭔 일?"

동기는 깍두기를 하나 집어 아작아작 씹는다.

"과방에서 사람이 쓰러졌다는 것 같기도 하고."

"무슨 과?"

"몰라."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담백한 녀석이다.

"앰뷸런스 불러야 된다고 난리들이더라. 식당 오면서 본 거니까, 슬슬 사이렌이 들릴 때도 됐는데."

유준은 문득 돌아오지 않는 선배의 얼굴을 떠올린다. 자연대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삶을 살아온 것 같긴 하지만, 또 혹시 모르는 일이다. 허공의 그 남자가 좌표를 혼동해 동아리실로 보낼 것을 자연대의 과방으로 보냈는지도.

동기의 앞에 물컵을 밀어두곤 식당을 나섰다. 자연대 건물은 학생회관을 나와 바로 앞에 있는 도로를 주욱 따라가면 나온다. 도로를 가운데에 두고 양 옆에 선 도서관과 공대 건물을 지난다. 자연대 건물의 입구로 드나드는 학생들의 얼굴이 보였을 즈음에, 등 뒤에서 먹먹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적당히 얼굴을 아는 후배가 우왕좌왕하며 입구에서 황급히 걸어나오고 있었다. 한때 민속학 동아리에 적을 두었다가, 동아리 활동을 위한 시간이 도저히 나지 않아 탈퇴한 친구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잠시 알아보지 못했지만, 특유의 동그란 눈동자가 눈에 띄어 알아챘다. 유준은 적당한 말로 그녀를 불러세운다.

"무슨 일 있어?"

"아, 안녕하세요, 선배, 그게..."

사이렌 소리는 점점 이쪽을 향해 다가온다. 명확하게도 음량이 커지고 있다. 후배는 큰 축에 속하는 눈동자를 불안하게 이쪽저쪽으로 굴리다가 겨우 말을 이었다.

"저, 저희 과방에, 그, 사람이, 쓰러져 있대서."

"누구? 아는 사람이야?"

"아, 음. 아마도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아 같은 과 사람이라는 것 같지만 자신과는 친분이 없는 사람이라는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그녀가 분명 생명과였던가. 유준은 물론 생명과의 과방이 몇 층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같은 과 사람이라니. 그럼 일단 선배가 생판 남의 과방에 누워있다는 소리는 아니라는 건데...

새파란 허공에서 만났던 그의 말을 떠올린다.

이 주변의 동향이 좋지가 않다. 가면을 쓴 남자를 만나지 말도록 해라.

만일, 교수님이 몸을 숨기신 이유가 그것과 관련이 있다면.

좋지 않은 동향과 관련이 있다면.

너희 과방이 몇 층이지? 하고 물은 것 같았다. 후배는 삼 층 가장 안쪽 방이에요, 라고 대답한 것 같았다. 유준은 그녀에게 짧은 감사 인사를 건네곤 자연대 건물 안으로 뛰어든다. 지척까지 다가온 사이렌이 시끄럽게 왱왱 울렸다.

계단을 따라 삼 층으로 올라간다. 오른쪽으로 꺾어진 복도에서 웅성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과방을 달리 찾을 필요도 없었던 모양이다.

오른쪽으로 휘어진 복도가 끝나는 지점에 사람이 넷 모여있었다. 세 사람은 선 듯 앉은 듯 애매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나머지 한 사람은, 바닥에 옆으로 길게 누운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쓰러진 이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단어가 애매한 자세의 세 사람에게서 튀어나왔다.

셋 중 하나가 유준의 기척을 눈치채고 이쪽을 돌아본다. 평범한 인상의 중키 남자. 나이는 알 수 없지만, 앳된 티는 나지 않으니 적어도 신입생은 아닐 거다. 두꺼운 안경 뒤의 안색이 파리하니 영 좋지가 않다.

"무슨 일이에요?"

"과, 과방에 사람이이."

그제야 나머지 두 사람도 이쪽을 흘긋 쳐다본다. 단어 그대로, 쳐다보기만 했다. 다들 공황 상태에 빠져 제대로 된 현실 인식이 되지 않는지, 유준의 얼굴만 확인하곤 도로 쓰러진 누군가에게로 시선을 돌리고 마는 것이다.

이쪽에 등을 보이고 쓰러진 남자의 체크 셔츠는 군데군데가 누렇게 변색되어 있다. 땀에 절은 흔적이다. 늦여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오후의 기온은 높다. 한동안 세탁하질 않은 건가. 유준은 멍하니 생각하다가, 눈동자를 굴려 근처의 이들을 살핀다.

쓰러진 남자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는 단발머리 여자와, 불안한 기색으로 문이 열린 과방 안을 자꾸만 흘끔이는 스포츠 머리의 남자. 오른손으로 입을 가린 채다. 남은 왼손으로는 열쇠를 들고 있다. 모양새로 보아 차 열쇠로는 보이지 않는다. 과방의 열쇠이려나.

문득 기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며칠은 씻지 않은 사람 특유의 쉰내다.

두꺼운 안경을 쓴 남자가 돌연 흐느꼈다.

말의 형태를 지닌 흐느낌이다.

"사람이이, 며칠 동안......"

며칠 동안 저 안에 있었어요.

"......예?"

남자는 아무 것도 쥐지 않은 두 손을 몇 번 쥐락펴락했다. 땀으로 푹 젖은 발간 손바닥이 유준의 눈에도 보였다.

"지, 지난 주에, 마지막으로 과방을 썼는데. 그리고 문 잠그고 나왔는데. 오늘, 다시 오니까, 사람이......"

오늘은 월요일이다. 지난 주라는 게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며칠 동안, 이라는 어휘를 꺼내는 걸 보니 아무래도 지난 주 금요일 이전을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유준은 빠르게 추론한다.

"잠깐, 좀 진정하고…… 사람이 갇혔었다는 거예요?"

쓰러진 남자를 향해 한 걸음 내딛는다. 파리한 얼굴의 안경남을 걱정하는 척 어깨를 터치하다가, 가볍게 밀어낸다. 안경은 몸의 무게중심을 잃은 듯이 비틀거리다가 물러났다.

"119는 불렀죠?"

더러운 감이 있는 체크셔츠의 등 뒤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가까이서 보니 더더욱 더럽다. 변색에, 보풀에, 유준이었다면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의류 수거함에 넣었을 수준이다. 옆으로 누운 어깨 너머로 축 늘어진 두 팔이 보였다. 한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다. 쓸모를 알기 어려운 오브제, 라는 첫인상을 떠올리던 차에, 바로 옆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단발머리가 입을 열었다.

"부, 불렀어요. 이 사이렌, 앰뷸런스 소리 아니에요?"

"그런 거 같더라고요. 그보다."

유준은 오브제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두 원형 목판 사이에 철봉을 다섯 개 정도 끼워넣은 모양새다. 조잡한 퀄리티의 실린더라고 할까. 봉 사이사이가 텅 빈 것이 원통형 새장을 닮은 것도 같다. 다만, 그 안에 들어있는 건 새가 아니다.

둥근 구형의 물체. 액체는 아니고, 기체도 물론 아니고, 일단은 고체 같은, 구형의 물체. 그 표면에 군데군데 솟은 돌기들. 갯수는 언뜻 보아도 열 개는 넘어 보이고, 길이는 이쑤시개보다 조금 더 긴 정도다. 촉수를 길게 뻗은 바이러스를 모형화한다면 이런 모습이 될까. 여러 갈래의 촉수는 봉과 봉 사이의 틈새로 기어나와 있다. 꼭, 실린더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듯이.

목판과 봉은 어딘가 얼룩덜룩하다.

오브제를 꼭 잡고 있는 손의 손가락도 검댕을 바른 듯 부분부분이 검고 번들번들하다.

그러니까.

손때를 너무 많이 타서, 오브제의 도장이 벗겨지고 녹이 슬었다, 라는 결론이다.

등골이 한순간 오싹해진다.

"사람이 이 안에 있었다고요?"

"네, 네."

쓰러진 남자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옆에 서 있던 스포츠머리는 뒤로 몇 걸음을 물러났다. 동시에 무언가 반짝였다. 그의 손에서 흔들리던 열쇠다. 유준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는 새삼스럽게 열쇠를 손아귀로 거둔다.

"…사람을 과방 안에 가둔 거야?"

"아니에요!"

이건 기겁한 얼굴의 스포츠머리의 반박.

"아, 아니라고 했잖아요. 분명히, 아무도 없는 거 확인하고, 잠궜는데…… 그렇지?"

이건 파리한 낯짝의 두꺼운 안경이 단발머리에게 동의를 구하는 모습. 단발은 여전히 꿇어앉은 채 안경을 흘긋 올려다보다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주억였다. 그 모습을 살피던 유준은 단발에게 불쑥 묻는다.

"이 사람, 아는 사람이에요? 생명과 사람이라고 하던데."

"네, 동기… 인 것 같은데."

말에 어쩐지 확신이 없다, 라고 생각하던 차에, 뒤에서 서 있던 안경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정확히는, 끼어들려고 했다. 복도에 꿇어앉은 유준과 단발머리를 향해 한 걸음 내딛었으니 그건 분명하다. 하지만 타이밍을 어째 잘못 잡았던 모양이다. 그와 동시에 복도가 훅 소란스러워지고 말았으니까.

구급대원들이 들것으로 추측되는 기구를 들고 계단을 올라왔다. 스포츠머리가 이쪽이라며 한쪽 팔을 들어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쓰러진 학생은 곧장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최초 발견자인 세 사람은 어물어물하며 자리를 떴다. 유준은 그들을 따라갈까 하다가, 인상착의만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돌아섰다.

멀어지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와 구경꾼들의 억측이 난무하는 대화 소리로 어지럽다 못해 난잡해진 자연대 건물 현관 앞에서 유준은 아까의 후배를 마주쳤다. 마스크를 쓴 얼굴이 역시 눈에 띈다. 한 손을 들어 시선을 끄니 후배는 둥그런 눈동자를 이쪽으로 향했다.

"어, 선배!"

"아직도 여기 있어?"

뒤이어 수업 없어? 라는 물음을 꺼내려다가, 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새삼스럽게도 지금은 방학이다. 간만에 학교를 돌아다니고 있으니 방학이라는 자각이 옅어지는 모양이다. 후배는 커다란 눈동자를 한 바퀴 빙글 굴리다 유준에게로 다가온다.

"그러는 선배는. 진짜 과방 보고 오신 거예요?"

"궁금하잖아."

"선배도 참, 이런 거 좋아하시나 봐요."

"이런 거?"

"평소에는 보기 힘든 사건 같은 거. 저번에 뭐야, 도플갱어 소문 돌 때도 엄청 캐묻고 다녔잖아요, 선배."

그렇긴 했다. 결국 진짜 도플갱어는 아니었고, 단순히 사이비 소동이었지만. 유준은 애매한 미소를 쓱 지어보기나 한다.

"그러는 너도 결과가 궁금해서, 여기서 이렇게 어영부영 하고 있는 거 아니야?"

후배는 정곡을 찔린 얼굴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린다.

"그건 그렇지만… 그래서, 어때요?"

"어떻냐니?"

"쓰러진 사람 말예요. 몸이 안 좋아서 쓰러진 거예요?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그게, 잘 모르겠어."

"엥?"

"과방에서 스터디하던 애들이 마지막으로 문을 잠그고 나갔는데, 오늘 다시 와서 과방 문을 열어보니까 안에 사람이 있었대."

"네에? 그러니까, 잠긴 문을 열어보니까 안에 사람이 있었다는 거예요?"

"걔네 말만 듣자면 그래. 너희 과방, 안에서는 문을 못 잠궈?"

"네. 보통 다 그렇지 않나요?"

그야 그렇지. 과방 문 잠궈두고 안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게 대학생들이니.

대화를 나누며 슬슬 자리를 옮겼다. 자연대 바로 근처에 세워진 교양관. 교양관의 2층에는 학생 라운지인지 식당인지 정체를 알기 힘든 공간이 있다. 방학인지라 라운지 안의 가게는 전부 닫은 모양이었지만, 기다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은 학생은 드문드문 보인다.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 각자의 할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근처 편의점에서 사 온 간식을 먹으면서 수다를 떨거나, 책을 펴 두고 펜을 이리저리 움직이거나.

두 사람은 라운지 가장 안쪽 테이블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 마주보고 앉는다. 편의점에서 뭐라도 사 올까, 하는 유준의 물음에 후배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점심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단다.

"그럼, 스터디하던 애들이 처음 발견한 거네요?"

"맞아. 과방 앞에서 아주 혼비백산이던데. 혹시 누군지 알아?"

얼굴을 마주했던 세 사람의 인상착의를 간단하게 읊는다. 단발머리의 여자애. 스포츠머리의 남자애. 두꺼운 안경을 쓴 또 다른 남자애. 후배는 두 손을 모으고 잠시 생각하다가, 누군지 대충 짐작이 간다는 얼굴로 박수를 한 번 쳤다.

생각났다. 대화를 나누다가 무언가 떠오르면 박수를 짧게 한 번 치는 게 이 애의 버릇이었다.

"아, 알아요 알아요. 예진이랑, 안경 쓴 애가 아마도 진우. 그리고 머리 짧게 깎은 분이 강민 선배."

과방에서 스터디를 했으니 당연한 말이지만 전부 같은 생명과라고 한다. 단발머리 예진과 두꺼운 안경의 진우가 후배와 동기고, 스포츠머리의 강민이 그보다 한 학번 높다.

"쓰러진 사람은 누군지 모른다고 했나?"

"네. 저, 학과 사무실에 일이 있어서 잠깐 들렀던 건데. 과방 앞에 누가 쓰러져 있는 것만 보고 놀라서 뛰어나왔거든요..."

"그런데 쓰러진 게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어떻게 알아?"

"과방 앞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경재야, 경재야 하는 걸 들었어요. 이름만 알아요. 음, 학과 생활은 거의 안 하는데, 동아리는 열심이라고 하던 선배일걸요."

"동아리?"

"퍼즐 동아리라고 했던 거 같아요."

"퍼즐? 뭔가, 레트로하네. 이런 시대에."

"레트로해요?"

"직접 손으로 맞추는 퍼즐 이야기 하는 거 아니야?"

그러자 후배는 고개를 한 번 갸웃했다. 커다란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려 오른쪽 위를 빤히 응시하다가, 다시 유준에게로 향한다.

"그게, 퍼즐이라고 하면 여러 종류가 있잖아요. 조각난 그림을 맞추는 직소 퍼즐도 있고, 그림이 아닌 입체를 맞추는 큐브도 있고, 또, 넓게 보면 스도쿠나 십자말풀이도 퍼즐이라고 하죠?"

그런가? 유준은 퍼즐에는 조예가 없다. 어렸을 때에 부모님이 사 주신 직소 퍼즐을 맞춰 본 경험은 있지만, 머리가 큰 후에 스스로 퍼즐을 찾아 맞춘 경험은 아무래도 없다.

"아는 애가 퍼즐 동아리에 있어서 아는데, 그 동아리에서 주로 다루는 퍼즐은 우리가 흔히 아는 직소 퍼즐이 아니라, 캐스트 퍼즐이라고 하더라고요."

"캐스트 퍼즐?"

"지혜의 고리라고 아세요? 그런 류의 퍼즐을 캐스트 퍼즐이라고 한대요. 음, 그러니까, 서로 얽히고 설킨 입체 퍼즐 조각을 풀어내는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류의 퍼즐이요."

지혜의 고리?

문득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클립을 닮아 배배 꼬인 두 개의 철제 고리가 또 다시 서로에게 배배 꼬여 있는, 흔하디 흔한 지혜의 고리의 이미지.

그리고 뒤따라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건, 쓰러진 남자, 퍼즐 동아리의 남자가 손에 쥐고 있었던, 새장을 닮은 오브제.

새장 안에 갇혀 있던 바이러스.

나가고 싶다는 듯이 수많은 촉수를 새장 밖으로 내밀고 있던...

퍼즐 동아리 부원 경재는 그걸 수도 없이 만졌다.

오브제의 도장이 벗겨질 때까지, 수도 없이 만졌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지혜의 고리, 즉 캐스트 퍼즐이고. 그는 그것을 어떻게 해서든 풀고 싶었기 때문에.

과방 안에 홀로 갇힌 상태로......?

며칠에 걸쳐 퍼즐을 풀어내려고 시도했다......?

유준은 자연스레 떠오른 생각을 후배에게 이야기한다. 쓰러진 그가 들고 있던 실린더 형태의 퍼즐과, 퍼즐의 상태로 미루어 보아 예상되는 결론. 겨우 몇 문장으로 정리될 정도로 간단한 이야기였지만, 유준의 말을 들은 후배는 단숨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건 이상하잖아요. 잠긴 과방 문을 열고 들어가서, 어떻게 다시 잠근 다음에, 그 안에 틀어박혀서 퍼즐을 풀었다니요. 그것도 며칠 동안? 응? 어라. 며칠 동안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애초에 그 안에 혼자 며칠이나 있는 쪽이 훨씬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아니... 며칠 동안 있었던 것 같아. 그 경재라는 사람, 며칠은 세탁을 않은 옷을 입고 있었으니까. 땀에 절은 쉰 냄새가 났어."

지금은 여름의 끝물. 하지만 햇빛은 여전히 강렬하고 한낮의 온도는 30도에 육박한다. 그런 환경에서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면 충분히 냄새가 날 법도 하다.

"과방엔 에어컨이 있는데요?"

"......그래?"

"네. 으음, 그래도요. 아무도 없는 과방에서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으면 분명 중앙제어시스템에서 탐지가 되었을 테니까. 오늘보다 훨씬 이전에 경비원 분이 과방 문을 여셨을 것 같긴 하지만요."

"경비원이? 마스터키가 따로 있나?"

"아뇨, 마스터키는 없는데, 과방 열쇠를 경비실에 보관해두거든요. 마지막으로 과방 문단속한 사람이 경비실에 맡겨두는 시스템. 과방 열쇠도 아마 그거 하나밖에 없을걸요?"

"잠깐만......"

머릿속에서 회로가 차근차근 이어지는 감각이 들었다. 후배의 이야기를 듣는 사이, 무의식 차원에서 단서를 하나하나 조립한다. 논리적 귀결이 되도록 짜맞춘다. 그러한 능력이 유준에게는 있었다.

마스터키는 없다. 문단속을 마치면 과방의 유일한 열쇠를 경비실에 맡겨둔다. 스터디가 문단속을 마치고 열쇠를 경비실에 맡긴 게 지난 주 금요일이라고 해 보자.

스터디원들은 지난 주 금요일에 문단속을 마치고 파했다. 그리고 주말이 지난 오늘, 월요일에 다시 학교에 모여 과방으로 향했다. 그들이 처음으로 과방의 문을 열었다는 건, 경비실에서 열쇠를 가져왔다는 의미다. 그리고 과방의 문을 연 그들은 놀란다. 안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으니까.

왜 놀랐을까?

왜냐하면, 그들은 경비실에서 특별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그들은 특별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까?

왜냐하면, 과방 열쇠는 주말 내내 경비실에 있었기 때문이다.

즉, 과방 열쇠는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경비실 밖으로 반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경재라는 퍼즐 동아리의 부원은 어느 순간 과방 안에 나타난다. 그리고 퍼즐을 풀어내려 애쓴다. 복장으로 미루어 보아, 며칠은 있었을 거다. 에어컨도 틀지 않은 채로.

"저기,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네, 물어보세요."

"과방에 출입구는 복도로 난 문 하나밖에 없는 거지?"

"......네. 그러니까 스터디 사람들이 그렇게 놀랐겠죠."

"창문으로 나갈 수도 없고?"

"어어, 창문이 있긴 한데, 소파에 화이트 보드에, 잡동사니로 엄청 가려져서요.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만한 공간이 아니에요. 과방이 삼 층이기도 하고요..."

정말로 그럴까?

정말로 드나들 수 없는 방일까.

과방은 주말 간 정말로 밀실이었을까......

유준은 텅 빈 테이블 위로 시선을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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