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유메] OO의 사랑법
18.02.21 작업 완료
※세라피(@serapi_ff14)님께 드린 글입니다.
※블리치(BLEACH)의 쿠로사키 이치고와 드림주 유메노 호고샤의 드림물입니다.
※공백미포함 3,530자
※2018.02.21 작업 완료
OO의 사랑법
1.
내가 어둠에 삼켜진대도 너는 언제나 나의 태양.
2.
가끔씩, 아니 자주 나를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저 깊은 해저에 가라앉는 것 마냥 침잠하고. 그러나 그것은 마치 편안한 잠을 자는 것 같기도 해서, 몸을 웅크리곤 그저 이대로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불안함과, 우울함과, 피로함과, 그런 온갖 것들의 부정한 것들에 다치고 아파할 필요 없이 이대로 달콤한 꿈을 꿨으면. 그러다가 등빛의 밝은 햇빛이 나를 간지럽히면 나는 한 마리의 우아한 인어처럼 수면 위로, 태양과 더 가까운 곳으로. 더 나를 비춰줘, 더 나를 어루만져줘, 더 나를 봐줘. 네가 있다면 나는 얼마나 깊은 곳까지 떨어져버렸든지 간에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어.
3.
요즘 들어 태양에게서 하얀색 어둠이 보인다. 목소리도, 눈빛도, 표정도. 전부 태양인데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어둠이다. 나는 저 자가 싫다. 내 태양을 삼켜버릴 것만 같은 살의도 싫다. 내게 자주 본다며 능청스럽게 인사를 하는 것도 싫다. 전부 안다는 것처럼 씩 웃는 모습도 싫다. 무엇보다도, 내 어둠이 그에게 동화되어 버리는 것도, 영향을 받아버리는 것도 전부 싫다. 그는 그것을 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너와 같다고, 같아지고 있다고. 아니, 나는 너와 달라. 나의 태양, 내 이름을 불러줘. 태양이 나를 그렇게 부른다면, 나는 언제까지고 유메노 호고샤. 태양의 해바라기. 절대 지지 않아. 너에게도, 나에게도. 설령 내 어둠이 나를 집어삼키고 먹어버리려 해도, 나의 태양이 있는 한. 내 해바라기는 강하단다.
4.
불길한 기운에 소름이 돋는다. 익숙한 기운에 몸이 떨린다. 이 세계를 위해 강해지고 또 강해지려던 나의 태양. 급히 달려간 곳에서 내가 마주친 것은. 등빛 태양이 아닌 하얀 어둠이 나를 반긴다. 나의 태양을 돌려줘. 흡사 호로와도 같은 기괴한 울음소리가 귀를 가득 메운다. 주변으로 튀는 영압들이 날카로워 아프다. 태양의 절규가 가슴을 후벼 판다. 괴로워하는 태양의 모습에 눈물이 난다. 이성도 없는 상태에서 세뇌당한 것 마냥 강해져야 해, 지켜야 해. 강해져야 해, 지켜야 해. 누가 나의 태양을 이렇게까지 만들었는가. 누가 나의 태양을 이렇게까지 몰아넣었는가. 누가 나의 태양을.
5.
불쾌한 기운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태양을 향한 살기에 싸늘하게 가라앉는다. 낯익은 검은 옷들이 보인다. 무얼 하려는 거야? 아파하잖아, 힘들어하잖아.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들리지 않아? 아니면 들리지 않는 척 하는 거야. 최강의 사신대행이라며 너희들의 일을 떠넘기고, 위협이 될 거 같으니 제거하려는 거야? 누가 나의 태양을. …너희들이구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거구나. 사신들, 아니 악마들. 나는 너희들이 싫어. 너희들이 태양을 지키지 않는다면, 내가 지킬 거야. 절대 지지 않아. 너희들에게도, 나에게도. 설령 내 어둠이 나를 집어삼키고 먹어버리려 해도, 나의 태양이 있는 한. 내 해바라기는 강하단다.
6.
있는 대로 힘을 끌어올려. 절망을 삼켜. 내 어둠을 태양을 지키기 위한 힘으로 바꿔. 필요하다면 나를 놓아버려. 모든 날개를 펼쳐. 발악의 춤을 춰. 분노를 토해. 태양이 겪은 아픔과 괴로움 모두 저들도 느끼게 해. 이기적인 저들이 뼈저리게 후회하게 만들어. 온갖 저주를 쏟아내. 뼛속 깊은 곳까지 새겨놔. 누가 이 사태를 만들었는지 확실히 깨닫게 해. 너희들이원흉이야너희들만아니었으면이치고는평범했어변하지않았을거야
7.
딸깍-…
8.
싸늘한 공기에, 차가운 바람에, 바스락거리는 모래알에 문득 잠에서 깬다. 새카만 하늘과 새하얀 땅. 웽웽 울리는 머리에 인상을 찌푸린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기억을 되짚어보지만, 노이즈가 낀 장면들에 더더욱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내가 뚜렷하게 기억하는 것은, 나의 태양이 아파했고, 검은 옷의 악마들은 그를 해치려했고, 나는 그런 나의 태양을 지키려했을 뿐이다. …그래, 나의 태양은? 불길한 기분이 들어 허둥지둥 주위를 둘러본다. 손끝에 지나치게 뜨거운 무엇인가가 걸린다.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곤히 잠들어있는 나의 태양이 보인다. 안심도 잠시, 눈에 뱀의 꼬리처럼 보이는 무엇인가가, 아니, 내 다리였던 것이 걸린다. 지나치게 낮은 내 체온이 걸린다. 내 얼굴을 더듬어보고, 몸을 쓰다듬어보고, 내 영압을 느껴보고, 그리고서 알아챈다. 아, 나는.
9.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내 몸이 마치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어색하다. 얼굴에 붙은 가면조각이 낯설다. 모래를 쓰는 다리의 감각이 이상하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이랴. 나의 태양은 여전히 내 곁에, 안전하게 내 곁에 있다. 나비는 종말을 고했고, 뱀은 새로운 시작을 고한다.
10.
내가 곧 어둠이어도 너는 언제나 나의 태양.
11.
달라진 내 모습이 이젠 익숙해진 것 같다. 생각보다 호로의 삶이라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이곳은 조용하고, 뭣보다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존재들도 없다. 내 태양도 내 곁에, 이곳에 있다. 호로들의 삶은 꽤나 전쟁터 같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나는 평화롭다. 당장 저 멀리에서 호로들끼리 싸우는 모습이 보이고 잡아먹히고 잡아먹는 소리, 살점이 뜯겨지는 소리, 그걸 씹는 소리가 메아리치며 끔찍하게 울려 퍼지지만 나는 평화롭다. 여럿 호로들을 잡아먹고 힘을 키운 것처럼 보이는 호로들도 내 앞에서는 얌전하다. 모든 호로가 내 주변에서는 눈치를 보며 슬슬 기고, 내게서 흘러나오는 영압을 주워 먹는다. 약육강식이 상식이며 절대불변의 원리인 이곳에서 나는, 강한가 보다. 갑자기 씁쓸해진다. 내 어둠이 그렇게 컸구나 싶어서.
12.
안 돼, 아이야. 그를 탐내는 아이는 용서할 수 없어. 분수를 알아야지. 잡호로의 피가 사방으로 튄다. 꼬리가 더러워졌잖아, 별 것도 아닌 게. 모래에 꼬리를 슥 문질러 대충 청소한다. 넝마가 된 호로의 시체가 쿵, 하고 떨어진다. 저의 영압에 눌려 벌벌 떨고 있는 주변 호로들에게 말한다. 마치 인자한 어머니처럼 웃으면서. 보았니, 나의 아이들아. 너희들끼리 잡아먹든 무얼 하든 상관없어. 하지만 이 인간은 안 돼. 이 자는 나의 것이야. 이걸 안 지키면 아까 그 놈처럼 내 손에 죽을 줄 알렴. 가끔씩 말을 안 들어먹는 멍청한 아이가 있어서 이 어미는 슬퍼요. 이것만 지킨다면 언제든지 너희들의 어미가 되어주마. 내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나를 이길 정도로 강해지렴. 물론 그 전에 죽겠지만? 아이야, 약한 건 죄란다. 그저 잡아먹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지.
13.
내게 온기가 있었던가. 내게 심장이 있었던가. 하늘이 파랗고 내가 보는 모든 것에 색깔이 있었던가. 이젠 모르겠다. 이게 중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흐릿한 기억이 나를 불쾌하게 하니, 굳이 떠올릴 필요 없이 그냥 잊어버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뭔가를 해야 했던 것도 같은데 그것도 잊어버리고 멍하니 지내면서. 하얀색 어둠이 말했었지, 너도 어둠이 될 거라고. 아니, 틀렸어. 나는 처음부터 어둠이었어. 언제는 아니었던가. 그러다가 너를 보면 다시 상기되고 말아. 잊고 싶고 잊기 위해 애쓰던 기억들이 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조금은 괴로워. 하지만 태양이니까. 나는 해바라기고, 너는 태양이니까. 이정도 쯤이야. 아무렇지도 않아, 상관없어. 그러니 너는 일어나기만 하면 되는 거야. 나는 여기에 있으니까, 얼른 일어나서 더 나를 비춰줘, 더 나를 어루만져줘, 더 나를 봐줘. 네가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다시 물 위로 올라와야 하더라도 기꺼이 올라올 수 있어.
14.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 시간감각은 없어진지 오래인데도, 태양은 아직도 잠들어있다. 많이 힘들었던 걸까. 곤히 잠든 네 위에 팔을 겹치고, 그 위에 눕는다. 나에게는 없는 두근두근 심장소리가 기분 좋다. 나에게는 없는 따뜻한 온기가 기분 좋다. 새근새근 숨소리를 들으며, 올라왔다 내려갔다 하는 가슴팍의 움직임을 느끼며 가만히 눈을 감는다. …있잖아, 태양아. 호로는 마음이 사라지고, 그 공허함에 대해 갈증을 느껴. 소중했던 사람들에게 집착을 느끼기도 하지. 그렇지만 나는 잘 모르겠어. 내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그렇게 한참 고민을 하고 있는데, 팔 밑에 벤 무엇인가가 움찔. 미간이 한층 더 구겨지는가 싶더니, 에쿠.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나의 태양. 걱정하지 마, 태양아. 너를 아프게 하는 것들은 이제 없어. 이제 네 곁에는 나뿐인걸. …뭘 그렇게 놀라? 아, 내 모습이 이상해? 그래, 그렇지. 너는 사신이니까 나도 베어버릴거야?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네. 내 마지막을 나의 태양이!
15.
…하지만 태양아, 정말 그럴 거야? 너를 꼭 끌어안고, 너를 올려보고, 너의 갈색 눈동자와 눈을 맞춘다. 정말 그럴 거야? 못하지? 못하잖아, 그렇지? 나니까. 나니까 못하는 거잖아. 혼란스러워 할 이유가 뭐가 있어? 내가 누군지 너는 이미 알고 있잖아. 자, 그러니까 입을 열고, 내 이름을 불러. 내 이름이 뭐라고? 나의 태양, 내 이름을 불러줘. 태양이 나를 그렇게 부른다면, 나는 언제까지고 유메노 호고샤. 태양의 해바라기. 그래, 나는 유메노 호고샤야. 네가 사랑하는 해바라기, 너를 사랑하는 해바라기. 자, 어서. 내 인내심은 그리 강하지 않단다.
16.
…나의 태양아, 날 실망시켜서는 안 될 거야. 태양이 나를 버린다면, 나는 언제까지고 유메노 호고샤일 수는 없어. 이것이 집착이야? 아니, 이건 사랑이야. 나의 사랑법, 해바라기가 태양을 사랑하는 방식. 어쩔 수 없어. 해바라기는 태양이 없으면 안 되는 걸?
17.
내가 무엇이든지 너는, …언제나 나의 태양.
18.
…이어야 하잖아?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