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책이라는 이름의 전차

A streetcar named desperation

보존용 by Bulbf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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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립지?

아니.

그럼 걍 여기저 쳐자다 감기나 걸려라.

…졸립지?

벌서 다앗번재다, 르거.

닥쳐, 맥주통… 아니다. 쭉 짜면 맥주 대신 잘 익은 사과주 한 통은 나오겠구만. 솔직하게 말해. 졸려, 안 졸려?

닌 안 치햇냐. 드가 안댜냐.

내가 마실 술을 그 쪽이 다 쳐마셨잖아, 네미랄. 댁이 남긴 거 갖고는 간에 기별도 안 가.

욧 안 섯거는 말더 몬하냐, 입 더러븐 앳구 샛갸.

그래, 썅. 어쩔래? 꼽냐? 그래서, 졸립냐고.

…엉.

…있어봐, 주정뱅아. 내가 특별히 친절을 발휘해서 방까지 데려다 주지.

꺼려 먼 쳐아, 피료업서. 나 혼댜 갈 스 잇서.

아이고. 예, 그러시겠죠, 영감님. 닥치고 있어봐, 내가 어깨 빌려줄 테니까.

말을 마치자 마자 데모맨은 만지작거리던 술병을 내려놨음. 그리고 영차, 하고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인나서 메딕한테 다가갔음. 고개를 옆으로 하고 엎드려있던 메딕은 게슴츠레 눈을 뜨고 데모를 쳐다봤음. 평소에는 소름끼치도록 차갑게 빛나던 파란 눈이 약한 것 마냥 흐리멍덩하게 풀려있었음. 그러니까, 못봐주겠다고. 이렇게 보니까 차라리 평소때 날카로운 눈이 더 마음에 드는 것 같기도 함. 잠깐, 내가 메딕 눈을 들여다보고 싶다고? 씨발, 호모가 옮았나. 어쨌든 눈자위 언저리도 발그스레하니 물들어서는 살짝 부어있고. 사실 진짜로 데모 몰래 울어서 그렇게 된 건지, 꽐라가 되도록 퍼마셔서 그 꼬락서니가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정말 울었더라도, 그런 개인적인 감정은 굳이 데모 자신이 신경 쓸 일은 아님. 어차피 오늘 밤 이전까진 이렇다 할 관계는 없었으니까. 고작해야 첫 미션때나 데모가 술 퍼마시고 좋다고 앵긴 것 정도인가. 팀 메이트긴 해도. 메딕 뒤에 얌전하게 접혀서 걸려있는 코트나, 진작에 식탁 저 쪽에 널부러져있는 안경이나 넥타이 같은 건 어떻게 해야하나, 하고 고민했지만, 뭐 메딕을 침대에 눕혀놓은 다음에 생각해도 될 일 같았음. 나중에 갖다주지 뭐. 자기도 술을 먹긴 했지만 옆에 상태가 더 개판인 인간이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아직도 숙취 때문에 약간 골치가 아파서 신경이 서 있나. 데모의 상태는, 적어도 엎어져 있는 메딕에 비하면 놀랍도록 정상에 가까웠음. 만약에 다른 클래스들이 지금 데모의 이 모습을 봤다면 뒤로 놀라 자빠질 정도로. 아마도 변장한 스파이가 아닐까 하고 스파이 체크라도 하지 않을까… 좌우간 메딕한테 손을 내밀었음. 메딕은 멍뎅한 눈으로 잠시 데모의 손을 말끄러미 바라봤지만, 곧 얌전히 그 손을 맞잡았음. 어우, 썅. 뭘 쳐먹었길래 이렇게 무거워. 투덜투덜대면서 데모가 자기 어깨에 메딕의 팔을 두르자, 메딕은 데모의 어깨에다 고개를 턱, 걸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음.

록갓네, 긋대랑…

똑같네, 그때랑? 뭔 소리야. 하고 말하려다가, 데모는 퍼뜩 메딕이 아까 전 이야기를 꺼냈다는 걸 깨달았음. 그러니까 첫 번째 미션때. 그 때는 메딕이 데모 손을 잡아서 일으켜줬었지. 갑자기 그 때 이야기는 또 왜 꺼내는지 모르겠음. 기분 싱숭생숭해지게. 그러고 보니 그 때부터 메딕이 묘하게 신경이 쓰였었는데, 아직 도 도대체 뭣 때문에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음. 나중에 물어볼까, 하다가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닌 것 같기도 함. 어차피 지금은 기절하기 일보직전인 메딕부터 어떻게 해야 하니까.

그런데 대충 자세 잡고 나서 끙차, 하고 들어올렸는데, 술 취한 성인 남성 이잖아? 예부터 물에 빠져 죽기 일보 직전인 사람이랑 꽐라돼서 길바닥에 퍼져서 곯아떨어질락말락한 인간은 엔간한 각오 없이는 손도 대지 않는 게 상책이잖아. 있는대로 힘이 다 풀려서 자기 몸무게조차 지탱을 하지 못하니까, 멀쩡한 사람 들어올리는 것보다 두 배는 더 힘들어지는 거임. …알고 있음 뭐, 할 수 없고. 이상 레스주의 교양 강좌였습니다. 하루에 한 개씩 쓸모없는 지식, 랄랄라. 좌우간 메딕은 또 키도 큰 데다 떡대도 있잖아. 워낙 딴 클래스가 허우대가 좋아서 잊기 쉬울 뿐이지… 허리를 펴자마자 주체할 수 없는 무지막지한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데모가 어우, 쌰… 하고 욕지거리를 내뱉었음. 억지로 잡고 있다간 자기나 메딕 팔 관절 어느 한 쪽이 나갈 게 분명함. 견디지 못하고 팔을 놓치니까 메딕은 그대로 비실비실 식당 바닥에 무너졌음. 그러고 또 좋다고 히죽히죽 웃음.

흐힣히히히이… 음냐.

아오 씨발, 그 목소리로 그렇게 웃지 마라, 좀. 소름 끼친다, 소름 끼쳐. 귀신도 뒤도 안 돌아 보고 내빼겠네. 안 그래도 한밤중이구만… 도대체 뭘 쳐먹고 살았길래 그렇게 무거워? 게르만 돼지 잡놈들은 무슨 세시 세끼 맥주랑 소세지만 쳐먹어서 살이 디룩디룩 쪘던데, 댁도 비슷한 축이야? 엉?

닷쳐바, 스컷들랑드 앳구넘아. 니넨 그름 허구한날 사가주만 처마셔서 골수가지 푹 삭아잇냐.

집어치워. 아, 그냥, 미안하다. 미안해. 내가 성질머리를 죽여야지.

투덜거리면서 어떻게든 메딕이, 아마도 오늘 아침에는 빤딱빤딱하게 빨아서 깨끗이 다림질까지 마쳤을 자켓과 셔츠와 양복 바지로, 식당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깔끔하게 걸레질하게 놔 둘 생각은 없었으니까. 본성은 친절한 주정뱅이, 신사의 나라에서 온 데모맨이니깐… 지금은 주정뱅이와 거두는 사람의 처지가 평소랑 다르긴 했어도. 어쨌던간에. 메딕을 일으켜 세우는 건 고사하고 도로 식탁 의자에 앉혀놓는 것 조차 힘들 것 같았음. 그래서 어떻게든 일어나 앉혀보기라도 하려고 노력하면서 데모는 생각을 함. 어떻게 이 고주망태를 옮겨야 하나, 하고.

공주님 안기? 돌았냐, 시커먼 사내새끼를? …아니, 뭐 사실 시커먼 쪽은 내 쪽이고, 메딕은 굳이 말하자 면 햇볕 한 번 본 적 없는 중증 환자마냥 우라지게 허여멀겋… 미친, 이게 아니라! 어쨌든 메딕 체구를 생각하면 도저히 무리임. 현실적으로도. 진짜 할 양이면 아무래도 엔지한테 건슬링어 두 짝 좀 빌려달라고 해야 할 것 같음. 팔을 자른다는 소리는 아니고, 팔 두 개로는 도저히 무리일 것 같아서 하는 소리임. 어깨동무 해서 옮기는 것도 무리고. 그렇다면…

고심하다 데모는 메딕한테 등을 돌리고 퍼질러 앉았음. 메딕이, 우선 늘어진 사지부터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일단 알딸딸한 눈을 어떻게든 똑바로 뜨려고 노력하면서 데모 등짝을 유심히 쳐다봤음. 생각보다 넓네… 하고 혼자 마음속에서 품평을 하고 있는데, 데모가 말했음.

업혀.

…앙?

업히라고. 씨발, 내 팔자가 어떻게 꼬였길래 이제껏 잘 빠진 미녀 하나 못 업어본 등짝에 술쳐먹은 영감태기를… 댁은 진짜 운 좋은 줄 알아.

…어펴?

아오, 술을 그냥 귓구녕으로 쳐마셨냐? 맘 바뀌기 전에 빨랑 업히라고.

…그러다 니 후댱 따에면 어떠칼라거. 흐키킿…

얼씨구. 농담할 정신머리는 남아있는 모양이네. 꼭지가 쳐돌아서 바닥에 퍼질러 앉아있으면서 아가리 나불댈 기운은 있냐? 헛소리 집어치우고 후딱 업혀라. 슬슬 인내심 바닥날 것 같으니까.

…히히. 거럼, 뭐. 거럴가.

그럴까, 가 아니고 그래야지, 맥주통 새꺄. 이제보니 순 도망다닐 때만 잽싸고… 아, 됐다. 빌어먹을.

투덜 투덜투덜투덜. 데모가 투덜거리거나 말거나 메딕은 헤쭉헤쭉 웃으면서 천천히 데모의 목에다 팔을 둘렀음.

어쨌든 한결 편 한 자세로 메딕을 업으니 그제서야 좀 업을 만 하다는 느낌이 들었음. 끝내주게 아름다운 곡선을 자랑하는, 미끈하게 잘 빠진 메딕의 종아리가 비실비실 허리에 와닿는 걸 느끼면서 힘들게 몸을 일으켰음. 독일이라 하면 남자는 자고로 종아리를 잘 가꿔야 한다는 훈훈한 전통이 살아있는 나라니까… 아니, 약 파는 게 아니구 진짜임 ´_` 혹시 들어봤니 종아리 전용 패드라고…험험, 본론으로 돌아가자.

툭, 하고 메딕이 데모 뒷통수에다 힘없이 고개를 기댔음. 잔뜩 취해서 따땃미지근한 열기를 품은 숨결이 은근하게 목덜미를 한 차례 간지럽히고 나서 귓바퀴에 와 닿으니, 데모로서는 참 짭짭미지근한 노릇이었음. 병마개를 갓 딴 술병마냥 희미한 사과주 향내도 풍김. 진짜 쭉 짜면 사과주가 한 통은 나올 지도 몰라, 하고 진저리를 칠 정도였음. 이상하다, 맨날 퍼마시는 내 입내는 구리구리한데 왜 이 새끼 입냄새는… 안 쳐먹던 걸 갑자기 쳐먹어서 이러나? 아니면 호모새끼라서 그런가. 하고 조용히 속으로 투덜거리다 저도 모르게 호모라는 단어에 흠칫했음. 이러니 저러니 욕질은 해 댔어도 사실 은근히 호모새끼니, 게이새끼니 하는 욕은 자제를 하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임. 메딕 상처받을까봐. 팀청이 여러분, 누누히 강조하지만 데모는 신사의 나라 영국 에서 온 친근한 술주정뱅이입니다.

따땃미지근하다고 하니까, 아주 제집 안방인 마냥 편하게 기대고 앉아서 음냐음냐 거리고 있는 메딕의 체온도 신경쓰임. 취해서 그런가, 따끈따끈한 열기가 등짝을 통해서 생생하게 전해져 오는 거였음. 주변이 온통 황 무지라 밤만 되면 추운데, 이렇게 의사양반을 등에 업고 있으려니까, 마치 한겨울에 후끈한 보온병을 껴안고 침대에 폭 파묻혀 있는 느낌이었음. 아, 좀 더 비슷한 상황을 연출하려면 보온병을 깔고 누워야 하나? 거기다 덤으로 가슴과 등짝의 경계를 뛰어넘어서 메딕 심장 뛰는 소리까지 전해지고 있었음. 하도 가까이에서, 크게 뛰어대서 그런지 마치 자기 심장 박동처럼 느껴질 정도임. 뭐 그건 차라리 낫다고 해야하나. 규칙적인 심장 박동이 오히려 안정을 가져다주고 있었으니. 그건 그렇고 알콜빨인지 심장 뛰는 소리 하나는 겁나게 크네. 하고 데모는 생각했음. 심장 뛰는 게 메딕 덕분에 홧홧하게 뎁혀진 귓바퀴까지 타고 올라왔을 정도였으니까. 좌우간 끙끙대면서 기숙사가 있는 쪽으로 접어들려고 하는데, 갑자기 귓가에서 잠꼬대하는 것 마냥 웅얼대는 소리가 들렸음. 그 소리에 데모는 소스라치게 놀랐음. 진작에 메딕이 곯아떨어진 줄 알았거든.

…거기 말고…

썅!… 아, 깜짝야. 뭐야, 깨 있었냐?

…의무실.

…아, 의무실. 좋아, 좋아.

…이히히.

씹… 후우, 제발 귓구녕 간지럽게 쳐웃지 말라고. 댁 목소리 로 그렇게 웃으면 진짜 미친년 웃음소리 같다니까. 엉?

…다시 곯아떨어졌는지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음. 이를 갈면서 데모는 돌아서서 의무실로 향하기 시작했음. 기숙사랑 의무실이 그닥 멀지는 않음. 그런데 오늘은 주정뱅이 하나가 업혀있는 탓인지 유난히 길게 느껴졌음. 그러니까 의무실로 향하는 길이. 데모도 흑형인데다 용병질까지 하던 남자임. 메딕 무게는 무겁다고 느껴질 정도는 아녔음. 만날 지 건강 챙긴답시고 밥을 잘 먹고 다니지 않아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음. 솔저가 토끼밥이니 뭐니 하면서 까대는 걸 들은 적이 있거든. 그러니까 메딕이 별로 많이 먹고 살지는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음. 그렇다면 왜 자꾸 등짝에 업힌 메딕이 신경쓰이나 묻는다면, 그것도 대답하기 곤란함.

어쩌면 메딕이 외출하기 전에 의무실 열쇠를 닫아걸어뒀을 지도 모른 다는 생각도 해 봤음. 하지만 막상 의무실 앞에 도착해서 문을 밀어보니 의외로 부드럽게 열어젖혀졌음. 하도 간단하게 열려가지고, 혹시 무슨 보안용이랍시고 살덩이 괴물이라던지 인간 지네같은 게 튀어나오지는 않을까, 데모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경계하면서 안으로 들어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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