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5人格 - 네임리스 드림

[일라이 드림] 짧은 바지

20200625 백업

LADY by 스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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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라이 클락은 솔직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그동안 그의 인생은 모난 곳 없이 편안하기만 했다. 잦은 기도와 소량의 식사. 시끄러운 동료와 조용한 일상. 긴박한 경기와 여유로운 자신의 연인.


  그렇다. 일라이가 현재 교제 중인 여인은, 꽤 ‘여유로운’ 사람이었다. 첫 만남부터 고양이 같은 미소를 입가에 띠고 자신을 생쥐 바라보듯 하는 눈빛이 소름 끼쳤다. 동시에 한없이 짜릿했다. 일라이는 당황했다. 지금껏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그의 인생에서 드물게 등장하곤 하는, ‘연인’이란 단어는 전부 따스하고 포근하기만 했었다. 이건 뭔가 달랐다.


  모순적이게도 먼저 고백한 건 일라이였다. 그 눈빛이 마음속에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한 번 더 쳐다봐 주었으면 했다. 일종의 신앙 같았다. 죽을 만큼 사치스럽고 매혹적인 기분에 취한 일라이는, 고전적인 방식대로 꽃다발을 챙겼다. 그녀에게 수줍게 건네며 사랑의 말을 전달했다.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몇 번의 크고 작은 만남 끝, 입술이 맞닿은 그 순간.


  일라이가 먼저였는지, 그녀가 먼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둘 다 원했음은 확실했다. 온 신경을 잠식하는 쾌락. 위험하리만치 아찔한, 벼랑 끝에 매달린 것과 유사한 감각. 일라이는 그녀에게 압도당했다. 다리가 풀려 주저앉는 그를, 그녀가 지탱했다.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허리에 손을 얹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버거웠다. 일라이가 그녀를 젠틀하게 밀어냈다.


  “당장은 그만…….”

  “알았어.”

  “감사, 합니다.”

  “얼마나 기다리면 될까?”

  “예?”


  그녀는 정말로 대답을 기다리는 듯했다. 올라간 입꼬리, 사랑스럽고 천진한 눈빛. 일라이는 그것에 홀린 듯 일주일, 이라고 대답했다. 엉겁결에 나온 반응이었다. 질문의 의도를 알긴 알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막연하게 생각했다.






  바로 다음 주에 일라이는 울었다. 좋았지만 부끄러운 경험이었다. 그는 처음이었다. 죄를 저지른 듯한 기분. 그녀의 손이 움직이는 대로 달아올랐고, 애원했으며, 시키는 대로 따랐다. 실에 매달린 인형이 된 기분이었다. 극상의 쾌감이 온몸을 휘감아 덮쳤다.


  그래도 선지자는 여인을 사랑했다. 그녀와 접촉하는 순간 하나하나를 마음에 새겼다. 침대 아닌 곳의 그녀는 알고 보니 굉장히 여리고 예민했다. 자신만만한 태도가 한 겹 벗겨지면 보이는, 물기 가득한 눈동자. 무모해 보였지만 누구보다 생각이 깊었고, 그만큼 쉽게 상처받았다. 쾌락주의자면서 동시에 안전주의자였다.


  보고 있자면 마음 아팠다. 장원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리 깊고 아득한 분위기를 지닌 걸까. 천안마저 꿰뚫어 볼 수 없는 속마음이 야속하기만 했다. 일라이는 캐묻지 않았다. 대신 품에 가득 안아 보듬었다. 난잡한 밤이 지나고 어슴푸레한 새벽빛이 방을 넘보기 시작하면 일라이가 주도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머리카락을 어루만지고 드러난 피부를 쓰다듬으며, 사랑과 관심과 보살핌의 언어를 가르쳤다.


  몸의 대화에 있어서는 그녀가 우위였다. 그러나 일단 일이 끝나고 일라이가 말하기 시작하면 상황은 달라졌다. 일라이의 혀는 설탕으로 만든 꽃잎 같았다. 일단 입을 열면 달콤하고 포근한 말들을 잔뜩 쏟아낼 수 있었다. 외설적인 정복감이 들어차 있던 낯이 따스하고 수줍은 빨강으로 물드는 순간. 일라이는 그것을 보기 위해 살았다.


  그런 일상의 풍경에 너무 익숙해진 탓에, 그녀의 짓궂은 취향을 한동안 잊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호수 마을에서 경기를 진행한 일라이는 약간의 곤란을 겪었다. 발을 헛디뎌 물웅덩이에 빠진 것이다. 보기보다 깊었던 웅덩이는 일라이의 긴 로브를 반이나 적시고도 남았다. 물이 뚝뚝 떨어졌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 일라이였다. 옷이야 옷장에 더 있으니까.


  그가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는데, 하필 그날은 대청소 일정이 잡혀 있었다. 옷장의 옷들은 전부 깨끗하게 세탁되어 빨랫줄에 걸려 있었다. 덜 마른 로브도 상관없었던 일라이가 덜 마른 로브 한 벌을 거두어 입으려 했지만, 감기를 염려한 에밀리가 필사적으로 말렸다.


  하는 수 없이 일라이는 나이브에게 바지를 빌렸다. 선지자와 용병. 직업 자체의 분위기는 정반대였으나 둘은 묘하게 친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자와,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을 생매장할 수 있는 자라. 일라이는 가끔 자신과 나이브의 친분에 대해 고민했다. 하여튼 당장 옷을 빌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괜찮은 기분이었다.


  나이브의 체구가 은근히 작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직접 옷을 빌리니 더욱 체감되었다. 신축성 있는 잠옷 바지인데도 일라이에게는 아슬아슬하게 꼈다. 오늘 나갈 일이 더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아래만 허전하게 입고 있자니 뭔가 언밸런스해서, 일라이는 로브를 풀었다. 치렁치렁한 로브 대신 얇은 티셔츠와 잠옷 바지 차림이라. 낯설었다.


  “일라이.”


  이불 속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놀란 일라이가 의자에서 굴러떨어졌다. 그녀가 꼬물꼬물 기어 나오더니 일라이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아, (   ) 씨, 어쩐 일로……?”

  “경기 끝나면 네 방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했었잖아. 어제.”


  그제야 어젯밤, 일이 끝난 후 그녀의 속삭임을 기억해 낸 일라이였다. 멋쩍은 얼굴로 바닥에 앉아 웃던 일라이에게 그녀가 다가왔다. 검지로 허벅지를 훑자 얇은 천 아래의 근육이 잔뜩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일라이, 많이 컸네. 짧은 바지라.”

  “어린 애처럼 다루는 건 싫다니까요.”

  “내 앞에선 항상 어리게 굴잖아.”


  그녀는 지도를 쥔 모험가 그 자체였다. 어느 부분을 건드려야 그 금욕적인 뺨에 홍조가 떠오르는지 정도는 꿰뚫고 있었다. 단순히 쓰다듬던 손길이 의미심장해진다.


  “그러면서 맨날 다정하게 대하고. 가르치려 들고.”

  “그런 나를 싫어하나요?”

  “아니. 그 반대지.”


  얇은 천은 몸의 실루엣을 더욱 확고히 만들어 주었다. 무엇이 튀어나오든 부풀어 오르든 팽팽해지든, 알아채기 쉬워졌다는 이야기이다. 옷깃을 슬쩍 들추는 손. 그래도, 하고 그녀가 대화를 이었다.


  “일라이에게 보살핌받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가르치는 역할은 나한테 더 어울리는 것 같아.”


  그러면서 씨익 웃었다. 일라이는 터질 것처럼 요동치는 심장을 느꼈다. 자신이 반하고 만 그 미소였다. 바르게 뻗은 손가락이 굽혀진다. 의도가 확실한 움직임. 묵직한 열기가 온몸에 흘렀다. 고매한 선지자의 입에서 환희에 찬 소리가 튀어나온다. 감은 눈.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 죄악과 유사한 감각.


  젖은 손을 대충 닦은 그녀가 일라이를 의자 삼아 앉았다. 항상 로브로 감싸여 있었지만, 오늘만은 새하얗게 드러난 허벅지가 그녀를 안정적으로 받쳐 주었다. 일라이는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얘 좀 봐.”

  “이런 거 좋아하잖아요. 나는 다 보이는데.”

  “또, 또. 허락 없이 사람 마음 꿰뚫어 보는 거 그만하랬지. 혼난다?”

  “꾸지람, 기꺼이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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