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5人格 - 네임리스 드림

[범무구 & 사필안 드림] 첫사랑의 결말 中

20200626 백업 | 3편 중 2편

LADY by 스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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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안과 무구, 소녀는 하루가 무섭게 쑥쑥 자라났다. 살은 많이 붙지 않았지만, 골격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한결 성숙해졌다.

 

  무구의 변화는 겉으로도 확 드러났다. 매일의 수련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얄팍하던 몸에 최소한의 근육이 붙자 빗자루를 휘두르는 폼이 제법 야무져졌다. 거기다가 원래부터 준수한 편이었던 외모가 급격히 발전해서, 그를 보려 기웃거리는 여인들이 있을 정도였다. 천한 신분이라 하더라도 외모가 그것을 상쇄했으니. 물론 무구는 항상 단호하게 전부 쫓아냈으니 딱히 의미는 없었다. 무구의 낯이 풀어지는 건 필안과 그녀를 보는 순간뿐이었다.

 

  무구가 수련할 때 필안은 학문에 정진했다. 누군가가 쓰다 버린 책, 떨이로 파는 필기도구 따위도 마다하지 않고 전부 모아 공부를 시작했다. 평소엔 욕심이 없지만 지식을 대할 때는 누구보다 게걸스러운 필안이었다. 그는 밤새 고대 유학자들의 지식을 받아들이며 생각의 부피를 키워 갔다. 하루하루 넓어지는 사고 때문인지, 아니면 바르고 곧은 품행 때문인지, 언젠가부터 필안에게는 귀공자 같은 품위가 흘러나왔다.

 

  소녀도 최선을 다해 살고 있었다. 낮에는 열심히 일하다가도 밤이면 무구와 필안을 번갈아 찾아가며 뭐든 함께 배우려 애를 썼다. 타고난 몸의 기운이 약한 것만 빼면 그녀는 완벽한 우등생이었다. 그녀의 재능은, 가끔 필안과 무구가 그녀의 신분을 안타까워할 만큼 경이로웠다. 이제 소녀는 위험천만한 저잣거리에서 몸을 지킬 수 있었다. 상황에 따라 뭐든 옆에 놓인 것을 집어 들고 날뛸 수도 있었다. 높으신 분에게 조롱 섞인 질문을 받더라도 착실히 대답하는 것이 가능하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나이. 강인하고 지혜로운 성인으로 성장하는 길에 접어든 것이다.

 

  그럼에도 무구와 필안에게는 근심이 많았다. 다름 아닌 소녀의 성장 때문이었다.

 

  이 나이쯤 되면 여성과 남성의 몸에는 차이가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몇 음 낮아진 채로 자리를 잡은 무구와 필안의 목소리가 대표적인 증거였다.

 

  아니나 다를까, 소녀에게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제아무리 헐렁한 옷을 입는다고 해도 점점 확연해지는 몸의 곡선은 어쩔 수 없었다. 운명은 소녀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을 장려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릴 적 그대로인 맑은 음성에 한창 꽃피기 시작하는 미모라니. 거무칙칙한 먼지투성이 일상 속에서, 그녀의 빛나는 태는 확연히 눈에 띄었다.

 

  의형제는 애써 그것을 무시했다. 예쁘구나, 칭찬 한마디 건네는 대신, 이를 악물며 붉어진 고개를 돌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 머리카락 끝에 입을 맞추고 말캉한 말들을 속삭이고 싶었지만, 인내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소녀가 여인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순응하는 순간, 다른 이들도 그것을 알아차릴까 두려웠다. 썩어빠진 집안의 높으신 분들이 그녀를 채갈 것만 같았다.

 

  그들의 불안이 현실이 되고 있음을 알아차린 순간은, 예전부터 자주 보고 살았던 방물장수 할아버지가 셋을 불렀을 때였다.

 

  “아그들아, 예 좀 와 봐라.”

  “무슨 일이세요?”

  “박 씨 댁 아가씨께 이것 좀 전하고 오라고……. 아이고, 이제 보니 필안이 많이 컸네. 무구도 제법 다부져졌고.”

 

  두 소년은 각자 다른 반응을 보였다.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펴는 필안에 이어, 무구는 뺨을 긁적이며 뒤늦게 허리를 굽혔다.

 

  “근데, 얘는 어째 아직도 비쩍 말랐네? 얼굴은 죽 떠먹은 자리처럼 허여멀겋고.”

 

  노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그녀에게 나비 모양 머리 장식을 대어 보았다. 그녀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섰지만 조금 늦은 것 같았다. 장사꾼의 눈은 노련한 법이다.

 

  “아유, 여 봐라. 곱네, 고와. 솔직하게 말해 봐라, 아그들아. 요 꼬맹이 말이다.”

  “사내아이입니다.”

  “어려서부터 같이 지냈는걸요?”

  “묻지도 않았는데 곧장 대답하고. 니들 뭐 잘못 먹었냐.”

  “아니에요.”

  “아무튼, 내가 말이다, 장사한 지 30년째다. 딱 보면 사람을 알 수 있어요. 아무리 머슴아처럼 입혀놔도 얘는 틀림없는 계집애다.”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넌 사내아이가 아니더냐, (   )?”


  필안과 무구가 번갈아 변호하고, 당사자까지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니 할아버지는 혀만 쯧 찼다.

 

  “아무튼, 이거 잘 전해라. 알겠지?”

  “네.”

 

  노인은 가기 전에 선물이라며 그녀의 손에 머리 장식을 쥐여 주었다. 역시 알아차린 게 분명했다. 매화 모양의, 특이하게 생긴 장신구였다. 이걸 건네준 의도는 뻔하지. 그것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시선이 의미심장해서, 필안은 먹먹한 가슴에 손을 올렸다. 마른침만 꿀꺽 넘어갔다. 무구가 그 풍경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여자’로서 살고 싶으냐.”

 

  어느 고된 하루가 끝나고 무구가 그녀에게 물었다. 질문의 요지를 파악한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지금 이 나라에서, 낮은 신분의 여인으로 사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건 압니다. 특히나 저처럼 글을 익혀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다면, 더욱더 그렇겠죠.”

 

  필안이 그녀의 말을 조용히 경청했다. 그녀는 간혹 글에 대한 업무나, 관직에 대한 욕심을 은연중 드러내곤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평생 성별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것은 물론, 태생적 신분마저 완전히 뒤바꿔야 했다. 꼭 관직을 위한 수단이 아니더라도, 이 썩어빠진 나라의 치안이나 사상 등을 생각했을 때, 남성의 신분은 이점이 많았다.

 

  “그럼에도……. 사람이라는 게 참 간사하지요. 내게 어울리는 배필이 있을지도 몰라, 가정이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도 종종 들곤 합니다.”

 

  무구의 눈빛이 흔들렸다. 항상 말없이 지내서, 저런 생각을 하는 줄은 몰랐는데.

 

  하기는 그럴지도 몰랐다. 마음 맞는 사람과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의 결실을 보는 것. 인간이 살아가는 것은 비슷하기 마련이다. 그치, 그녀도 인간인데. 생각해보지 않았을 리가. 죽을 때까지 성별과 욕망을 고스란히 숨기고 살아야 한다니, 세상에 그토록 가혹한 형벌이 있을까.

 

  필안은 눈을 감아 버렸다. 철모르는 어린아이가 울며 끌려가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아 일방적으로 만든, 이기적이고 일차적인 보호막. 이제 그것이 낡아 부스러질 때가 왔나 보다. 지금의 그녀는 아이가 아니었다. 몸을 지키는 법도 알았다. 언젠가는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다년간 숨겼던 비밀과 욕망을 드러낼 권리가, 그녀에게도 있었다. 그 인생을 사는 건 그녀이므로, 선택은 그녀의 몫. 사내들의 낯을 휘 둘러보던 그녀가 잔잔하게 말을 이었다.

 

  “아직 밝힐 생각은 없답니다. 천한 신분으로서 살아야 한다면, 맞지 않더라도 사내의 껍데기가 더 안전하리란 건 잘 아니까요.”

  “아직, 이 아니라면.”

  “신분을……. 매입하거나, 그 외에도 여러 방법이 있겠지요.”


  떨리는 듯 침착한 목소리로 범죄 행위를 입에 올리는 그녀를 보며, 무구는 피식 웃어 버렸다. 사실 형제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충분한 돈을 모은다면, 못해도 평민 신분 정도는 살 수 있다. 평민 여인도 위험할까, 그렇다면 귀족이 되자. 운이 따라준다면, 몰락한 귀족으로 탈바꿈할지도 모르지. 손은 조금 더러워지겠지만.

 

  “그래, 몇 년 후에 그러자꾸나.”

  “형님이랑 누이랑, 다 같이 한집에서 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왕이면 가족 관계로 엮인 신분을 사는 게 낫겠군요.”

 

  선을 긋듯 조금은 단호한 말에 약간의 섭섭함을 느낀 필안이었다. 아해야, 내가 네게 느끼는 것은.

 

  희미한 호롱불이 꺼질 때까지, 셋은 그들이 이룰 미래에 대해 이불 위에서 한참을 대화했다.

 

 

 

 

  다음 날, 필안과 무구에게 업무가 주어졌다. 마을에 내려가서 납세 여부를 조사하기. 머리가 굵어진 형제에게는 예전보다 고차원적인 업무들이 내려오곤 했다. 누런 종이에 의미 없는 숫자들을 써 내려가며 무구는 쩍쩍 하품했다. 이런 일을 즐기는 필안의 성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참 신기하기만 했다.

 

  “형님.”

  “끝났느냐?”

  “그런 것 같습니다. 다 채워졌더군요. 형님의 목록은 어떻습니까?”

  “나도 완료했다. 어서 돌아가자꾸나. 기다리겠어.”

  “예, 형님.”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사람. 형제는 미리 일을 끝낸 지 오래일 그녀를 생각하며 힘을 내어 걸었다. 그들이 일하는 관청은 마을과 꽤 거리가 있는 편이었다. 이러니 서민들의 생활에 신경을 쓰겠는가. 몸이 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거늘. 무구가 속으로 한탄했다. 거처에 가까워질수록 거슬리는 소음이 귀를 괴롭혀왔다.

 

  “......소란스럽구만.”

  “오늘따라 심하네요. 흉악무도한 관리가 난동을 피우는 걸까요?”

  “소리만 들어선 그런 듯싶다. 분명 터무니없는 일로 배상을 받아내러 왔겠지.”

 

  문지방 너머에 발을 디디는 순간, 그들은 그 예상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울음 섞인 욕설. 이어지는 상대의 폭언. 강한 파열음과 함께 울리는, 억눌린 비명. 필안은 눈을 감아 버리고 싶었다.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문 너머의 상황, 그 잔혹하며 지극히 현실적인 풍경이, 형제에게 곧장 달려들었다.

 

 

 

  사랑이 왜 이리 아픈가요, 이게 맞는가요, 나만 이런가요?

  하얀 손 한 번을 못 잡고서, 이리 보낼 순 없는데.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험한 길 위에 어찌하다 오르셨소?

  기다리던 봄이 오고 있는데, 이리 나를 떠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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