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인격] 로널드 X OO(네임리스 드림?)
로널드와 유사
*이런 거 처음 써봐서 뭐라고 지칭해야할지 모르겠음
*드림이라고 해야할까.
*상대 여성에 대한 설정은 아무것도 없지만 글을 쓰느라 뭔가 묘사가 이러쿵 저러쿵 나옴
*중요한 건 그냥 로날드가 처음 느껴보는 사랑의 감정에 어쩔 줄 몰라하는 게 보고 싶었다.
골드 로즈 극장의 배우 대기실. 연극의 남자 배우들이 보여 독한 담배 연기를 들이마쉬고 있었다. 그 중 누구보다 눈에 띄는 붉은 옷을 두른 남성, 로날드. 이 극단의 남자주인공이자 에이스. 그의 주변에 동료 남배우들이 둘러앉아 가십거리를 이야기했다. 그 중 그에게 지독한 열등감을 품은 사내가 벌게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로날드, 너 그러다가 된통 당한다."
로날드는 시가 담배를 빨아드렸다가 비웃듯 연기를 내뿜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한 때는 폐병을 앓고 지금은 담배 연기를 들이마쉰 자치고는 목소리가 과할 정도로 감미로웠다. 아폴론 신이 그에게 건강을 앗아갔지만 목소리를 줬다고 해도 믿을만 했다. 그의 비웃음에 사내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말했다.
"후원자 이 여자, 저 여자 꼬득이는 건 그만하라고. 그러다가 너 된통 당할 수 있어. 어? 네 말로가 칼에 찔린 채 변사채로 발견될 수도 있다고!"
취객들의 웃음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로날드는 목소리를 바닥까지 끌면서 웃었다. 사내의 말이 걱정이 아니라 그저 부러워서 꺼낸 말인 걸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로날드는 저주같은 말을 칭찬으로 받아드렸다.
"충고 잘 받아드리겠어. 근데 난 한 거 없어. 이 로날드의 외모가 워낙 출중한 거 어떡해?"
"아하하, 이 녀석 자신감 봐! 그런 대~단하신 로널드 님은, 이러다가 불타는 사랑에 빠지면 어떡할 건가? 응?"
다른 동료 배우의 장난같은 소리에 로널드는 미간을 살짝 구겼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가장 잘 나가는 에이스 배우한테 갑자기 사랑? 이 시기에 스캔들을 일으키라고?
로널드가 채 대답을 하기도 전에 취한 자들의 대화는 겉잡을 수 없이 흘러갔다. 갑자기 배우와 사랑에 대한, 각자의 욕정에 가득찼던 순간들을 꺼냈다. 그때 한 배우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자고로 예술가는 사랑을 하고 나서 한층 연기가 물 오르는 거야. 블랙 호크 극단의 제레미를 떠올려봐."
로날드는 그 이야기를 대충 흘려들었다. 요약하자면 그 배우가 연인과의 시련을 겪고 나서 최고의 배우로 올라섰다는 거다. 로날드는 눈썹꼬리를 활처럼 휘었다. 제레미와 후원자 귀족 부인 목록을 두고 싸운 적이 있어서 이름을 들어보았다. 로날드 기억 속에 남은 배우면 거슬리단 소리도 됐다. 그렇다면 더더욱 사랑에 빠질 수 없다. 그런 거에 빠지지 않고로 에이스 배우로 살아남는 것. 그것이야말로 일류 배우가 아니겠는가. 사사로운 감정에 휩쓸리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다. 로날드가 담배를 잿덜이에 거칠게 비벼껐다. 그리곤 포부를 꺼냈다.
"이 로날드가 사랑에 빠지면 그 여성에게 심장이라도 빼서 주리다."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의 맛깔난 여기에 모두들 그가 사랑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그랬어야만 했다.
그 날의 대화가 로날드는 지금 이 순간 머나먼 이야기로 느껴졌다. 넥타이를 두른 목이 조이고 손에선 자꾸만 식은땀이 흐른다. 연습실에 드리운 노을빛이 신이 깔아둔 황금색 이불 같았고 그 빛을 받는 여인은 여신처럼 아름다우리웠다.
이게 아니었다.
이럴려고 한 게 아니었다. 로날드는 볼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닦고 싶었지만 손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여인의 뒤에는 책상, 앞에는 로널드. 로널드는 양팔로 여인을 자신의 품 안에 가두고 있어 다른 걸 한 틈이 없었다.
그녀가 도망갈까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다.
저 갈색 눈동자가 호박처럼 빛이 나도, 흑색의 머리칼이 밤하늘처럼 아름다워도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빼앗아가면 안 되는 일이었다.
"하... 내가 이런......."
로널드는 원망하는 건지 애원하는 건지 자신조차 구분 안가는 말을 뱉었다. 자신과 한 걸음만 더 있으면 키스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데도 여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그 눈빛이 로널드를 오히려 갈망하게 만들었다. 로날드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시선을 피하고 싶은데 도저히 여인의 얼굴에서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다.
처음엔 자신에게 넘어오지 이 여성이 괘씸했다. 그래서 가지고 놀려는 것이었다. 강제로 무대 초대권도 주고 멀리서 무대 위에서 손키스도 날려주었다. 그녀는 '로날드'를 좋아하긴 했다. 오로지 자신의 연기만. 그 이상 그 이하의 그것도 없었다. 자신에게 어떠한 감정도 품이 않은 팬. 그것이 그를 짜증나게 만들었다. 짜증이 어느새 오기가 되어 그녀를 있는 힘껏 유혹했을 뿐이다. 그렇게 알아가고, 알아가고, 알아갈수록.
이건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어째서 이제는 무대 위에서 자신에게 열망의 눈을 품지 않은 이 여인에게 시선이 가는가?
왜... 키스씬 연습을 하려면 상대 여배우 얼굴이 그녀 얼굴로 보이고... 일부러 그녀의 집 앞까지 이 로널드가 찾아가게 만드는가? 그야 무대가 끝나도 자신을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보고 싶어서 찾아간 것이다. 바보같이. 평소라면 다른 배우들과 술을 마시거나 귀부인들에게 접대를 해야할 시간에 잘 대해봤자 아무런 의미 없는 그녀를 찾아가고 있던 것이었다.
결국 로날드는 그 여인을 자신의 연습실로 초대했다. 어떻게든 이곳에서 그녀를 평소 귀부인을 대했던 말투로 꼬득여보려고. 그럴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구경한 뒤 그냥 떠나려고 했다. 다음에 언제 만날까, 멋있었다, 여기에 오게 돼서 영광이다 그런 말 한 마디도 없이! 이 로널드의 초청에 아무 말 없이!
그게 짜증나서, 짜증이 오기가 돼서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지금 도망칠 길을 막았다. 그렇게 두 사람의 거리는 연인이 아닌 남녀가 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갑작스레 당긴 탓에 책상 위에 있는 대본은 바닥에 흩어지고 잉크병은 바닥을 검게 적시고 있었다.
로날드는 숨을 들이쉰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제비꽃이 생각나는 체향에 취해 머리가 어질어질 했다. 다리가 자꾸만 그녀의 쪽으로 다가가려고 하고, 손은 손가락을 움켜쥐어 책상에 흩어진 그녀의 머리칼을 잡으려고 했다.
'이건 아니야......'
시야가 흔들렸다. 그 순간 깨달은 것이었다. 오기가 집착으로 변해버렸다. 지금 맥박에서 뛰고 있는 이것이 자신의 심장 고동인가? 귓가에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가 자신의 것인가?
지금... 저 고동색 눈동자에 비치는 저 애원하는 얼굴의 사내가 내 얼굴인 것인가?
이건 틀렸다. 이래서는 안 된다.
벌게진 얼굴이 분명 추할 것이다. 노을빛이 아니었다면 변명할 수도 없었다. 로날드는 고개를 돌려서 자신의 표정을 숨기고 싶었다. 그런데 그랬다가 이 비둘기 같은 여인이 달아날 거 같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 아, 다음 연극 연습인가요?"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로날드의 귀를 후벼판다.
"네?"
멍청한 대답을 하고 말았다. 이런 얼빠진 목소리라니. 로날드는 서둘러 미소를 지었다.
"아, 놀라게 해서 미안하네요. 맞아요. 상대역 연습을 도와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가버리면 어떡합니까?"
괜찮은 연기, 괜찮은 대사다. 그래, 이 둔하고 나한테 관심없고 아무 생각 없는 여성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었다.
"그러면 저는 뭘 하면 되죠?"
"... 네?"
"이 다음 장면은 뭐냐고 묻고 있어요."
"아......."
쿵, 쿵, 쿵, 쿵 하고 심장 소리가 들린다. 너무 가깝다. 그녀의 입모양, 속눈썹 길이, 숨소리 패턴까지 다 느껴졌다. 움직이는 입모양이 새가 지저귀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속눈썹이 눈이 소복하게 싸일 것처럼 길다. 하얀 뺨이... 쓸어주고 입을 맞춰주고 싶을 만큼 곱다.
배우는 관찰은 기본이다. 남을 관찰하고 다니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은 자신에게 가혹하기 그지 없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어떠한 긴장도 하고 있지 않았다. 로널드는 헛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렇게 잘난 척 해놓곤, 사랑같은 건 우습게 여겼던 게 지금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로널드는 웃음 소리를 흘리며 아무런 말을 뱉었다.
"... 이 다음은 키스씬이에요."
로날드의 얼굴엔 도발적인 미소가 담겨있었다. 몸을 그녀 쪽으로 조심히 기울이며 긴 흑색의 머리칼을 쓸었다. 로날드의 굵은 손가락에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한올한올 잡혔다.
"어때요, 나랑 할 수 있겠어요?"
여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허락인지 거절인지 알 수 없는 저 평온한 표정으로 그저 자신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도저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면 알고 싶어도 그녀에 대해선 아무것도 추측을 못하겠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그는 문득 아폴론 신을 떠올렸다.
가끔씩 그와 함께 거론되면 아폴린 신. 미, 지능, 재능 모든 것을 갖췄지만 사랑 앞에선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던 미의 신이. 어쩐지 로널드와 겹쳐서 느껴졌다. 로널드는 고개를 틀었다. 충동적으로 끓어오르는 열정을 참지 못하고 만약에 마음을 갖지 못한다면 그녀의 체온이라도 갖고 싶었다.
이렇게 된 거 이 거지같은 감정은 끝내버리자. 이런 감정에 이런 여자에게 휘둘리는 건 그만해버리자.
로날드는 그따위 생각을 하며 그녀의 작은 얼굴을 부여잡고 입술을 맞췄다.
갑작스럽게 맞춘 입술은 처음은 거칠었다. 작은 입술을 집어삼키고 탐이하는 과정이었다. 숨을 참고 입술을 혀로 적시고 천천히 그녀의 입을 로널드는 늘 상대방에게 맞추는 키스를 하곤 했다. 그마저도 이렇게 진하고 농염한 키스를 스스로의 의지로 해보는 건 처음이었다. 어떻게 보면 로널드의 모든 애정행각은 오로지 일을 위해서 였던 것이라 말해도 좋았다. 키스씬을 위해, 동료 배우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모든 것이 투자였으며 일을 위한 발돋음이었다. 그러니 키스라는 행위 자체에 깊은 의미를 둬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몸이 뜨거워지고 여유가 없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자꾸만 몸은 그녀와 조금이라도 더 닿으려고 밀착했다. 그녀의 어깨에 두른 손은 척추 선을 느끼며 아래로 내려갔다.
로널드가 책상에 걸터앉았다. 그녀의 가는 다리를 오랜 연습으로 다져진 단단한 허벅지 위에 기대게 했다. 이래야만 쉽게 키스를 할 수 있다.
로널드에겐 한참이었던 거 같은 시간이었다. 뭉근하게 떨어지려던 입술은 아쉽다는듯 한 번 더 그녀에게 작게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눈을 천천히 떠보며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붉었다.
어디까지 해도 될까? 원래 사랑이란 건 이런걸까? 대본이 없으니 어디부터 어디까지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로널드는 왼 팔은 가녀린 허리를 단단하게 감싸고 오른손은 매끄러운 머리칼을 쓸며 다시 한 번 입을 맞췄다. 이번엔 좀 전보다 부드러웠다. 그녀의 허락이 떨어진 거 같으니 이번에야말로 연인처럼 입술을 맞추고 싶었다.
따뜻한 숨결을 들이쉬고 입 안에서 느껴지는 향을 음미하며 아주 오랫동안 입을 맞추고 싶었다. 로널드가 가늘게 눈을 뜨며 노을빛 때문인지 주홍빛으로 물든 그녀의 얼굴이 보이고 그 너머엔 지듯 불타오르는 해가 보였다.세상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곳에서 맞추는 입술의 감촉은 강렬할 정도로 선명했다.
허리를 쓰다듬는 손가락이 부드럽게 어루만지듯 하다가 강하게 손바닥으로 당겼다. 동시에 두 사람은 숨을 참았다. 애틋하게 입 맞추는 소리가 전장에서 돌아온 오랜 연인을 맞이하는 자들의 것 같았다. 그녀가 이내 로널드의 목덜미에 팔을 둘렀다.
그는 사랑에 관련된 대사는 수없이 많이 읊어보았다. 유치한 대사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모든 대사들이 파도처럼 휩쓸려 머릿속을 덮치는 거 같았다. 어떠한 대사라도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표현하기 어려웠다. 심장에서 퍼지는 피는 폭발하듯 온몸을 맴돌았고 머릿속은 망치가 두들기는 것만 같았다. 온몸의 감각이 상대방을 느끼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고 지금 이 순간 손과 입술을 그대를 사랑하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코끝까지 닿은 그녀의 체향에 로널드는 눈을 감았다. 이게 사랑이라는 걸 알았다.
만약에 이 다음씬이 있다면, 그 다음이 있더라면 커튼이 내려가질 않길 빌었다. 내려간다면 두 사람은 이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떨어져야했고 방금 전 장면은 없었다는 것처럼 굴테니까.
더 쓰고 싶은데... 체력이 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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