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인격] 추리 탐정(탐용) X OO(네임리스 드림?)

탐용과 드림

*사망 소재 주의

*죽음, 유혈 묘사 나옴

*탐용이 죽기 전에 떠올리는 소중한 사람이 되어보세요


그는 전쟁터에서 수많은 죽음의 순간을 지났다. 흙과 피가 튀기고, 포탄을 피해 달리며, 내가 밟고 있는 것인지 아군의 시신인지 적군의 시신인지 모르는 곳에서 살아남아봤다.그 상황에서도 그는 아무도 떠올리지 못했다. 그저 살겠다, 살고 싶다, 살아야한다 라는 본능에 이끌려 뛰었을 뿐이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이렇게 아무도 없는 쓸쓸한 곳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됐는데 네 얼굴이 떠오르는 것일까.

이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 누구의 얼굴도 떠올리지 못했어야하는데... 지금은 네 얼굴이 떠오르는 것을 나는 기뻐해야할까 슬퍼해야할까.

나이브 수베다르는 그런 생각을 하며 다리를 절었다. 핏물이 그의 마지막 생명선처럼 바닥에 죽 늘어졌다.


그녀와 만나게 된 건 석달 전이었다.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마주친 그녀. 카페는 고동색 나무로 만든 가구로 장식되어 있었고 천장엔 작은 샹들리에가 달려있었다. 잔잔한 클래식이 어울릴 거 같은 카페엔 한 여성이 서빙을 하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조용한 미소가 어울리는 수평선에 걸린 아침의 해같은 느낌을 주는 따스한 여성이었다. 

나이브는 딱딱하게 고개만 끄덕하고 자리에 가 앉았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심장이 쿵쿵 뛰었다. 책을 읽으며 한 손으론 커피를 마시고 있지만 시선은 책이 아니라 그녀에게로 가있었다. 그녀의 말투, 행동, 손짓 하나 모든 것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지금 감정이 무엇인지 엠마를 통해서 깨닫고 말았다.

사무실에서 엠마와 함께 서류를 정리하는데 그녀가 대뜸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 분하고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그 분이라니 누구."

"아이 참! 우리 탐정 님을 계속 카페로 가게 만들고 있는데 그 사람 말이에요!"

나이브는 그만 입에 물고 있던 파이프 담배를 떨어뜨릴 뻔했다. 황급히 입을 다문 다음 태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탐정 님, 그분 좋아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날카로운 추리력 그리고 결론. 나이브는 처음으로 엠마 앞에서 동요하는 얼굴을 보이고 말았다. 

나이브는 엠마에게 마음을 들킨 뒤로도 매일같이 카페를 찾았다. 적어도 주에 한 번씩은 찾았다. 말은 그저 마음에 드는 카페야, 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얼마 뒤 그 여성이 오르페우스 탐정 사무소로 찾아왔다. 그 여자가 들어왔을 때 나이브씨의 표정을 엠마는 잊지 못했다. 분명 평소와 똑같이 딱딱한 사무적인 얼굴로 대했지만 한순간 그의 눈이 활짝 열리는 것을 똑똑히 보고 만 것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이브와 엠마는 그 여성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거주지와 전화번호까지 알게 되었다.

여성은 요즘 이상한 편지를 받는다며 의뢰를 부탁했다. 

"이상한 편지라뇨?"

"여기......"

여성이 내민 편지엔 글씨체를 특정할 수 없게 신문 조각을 오려붙인 글자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소문자 대문자 구분이 없이 적힌 편지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i LoVe YOu

이런 편지가 한 통이 아니라 수십장이 와있었던 것이었다. 엠마는 기묘한 스토커의 행적에 소름이 쫙 끼쳤다. 엠마가 이정도였는데 나이브의 심정은 어땠을까.

엠마는 슬 나이브의 표정을 살폈다.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그는 평소처럼 탐정의 얼굴로 그녀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의심가는 사람은 없는지. 편지 도착 추정 시간이 있는지. 주로 몇시부터 몇시까지 일을 하냐는 등등... 구체적인 것을 물었다.

그 뒤 여성에게 허락을 받고 나이브가 그녀의 보디가드로서 한동안 카페에 가 앉아있기로 했다.

엠마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이제 그 카페에 가 앉을 이유가 생겼네요! 축하드려요!'

그런데 여성이 나가는 순간 나이브가 커피잔을 꽉 쥐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분노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편지를 준 스토커에게.

엠마는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의뢰인을 상대하던 그 탐정 님이 맞나 혼자 속으로 웃었다.

그뒤론 어떻게 되었나.

나이브는 하루종일 카페에 가 앉아있었다. 범인은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나이브는 매일같이 앉아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보고 뉴스를 봤다.

엠마는 멀리서 나이브와 그 여성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관계가 들킬까봐 카페에서 이야기는 일절 나누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브가 며칠 밤새서 그녀의 곁을 지키다보니 아주 짧게 존 순간이 있었다. 탐정이 조는 걸 발견한 그 여성은 나이브에게 담요를 하나 꺼내 둘러주었다. 10분 뒤 잠에서 깬 탐정은 멍하니 그 담요를 바라보았다.

그의 귓가가 순간 붉어진 것은 추위 탓이 아니리라. 엠마는 그렇게 추리했다.

결국 범인은 3주 뒤 잡혔다. 범인은 무려 카페 매니저였다. 나이브가 아니었으면 그 여성은 그 매니저에게 험한 일까지 당할 뻔했다.

그걸 구해준 것이었다.

매니저가 잘리고 다행히 가게 주인은 따로 있어 가게 주인이 매니저로 들어왔다. 여성의 의뢰는 전부 끝이 났다.

"감사합니다, 탐정 님. 정말 감사해요."

그녀의 미소를 보며 나이브는 짧게 말할 뿐이었다.

"의뢰대로 했을 뿐입니다."

그 뒤 두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나이브가 전처럼 카페를 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성 쪽에서 가끔씩 길거리에서 나이브를 볼 때마다 인사를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간질간질한 인연을 이어가는 것을 엠마는 옆에서 전부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나이브가 사망하기 6시간 전, 엠마는 말했다.

"아무튼! 이대로 있으면 아~무것도 안 되니. 꽃다발를 주든, 편지를 주든. 뭘 하더라도 마음을 고백하시라고요!"

"... 편지는 안 돼."

그녀가 겁낼 게 뻔하니까.

"무슨 소리세요. 오히려 좋죠. 그녀의 나쁜 기억이 소중한 기억으로 바뀌는 거잖아요."

나이브는 커피를 마시다가 흠칫했다.

자신이 그녀에게 그만큼 소중한 기억이 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나이브는 커피잔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를 떠올렸다. 만나고 싶다. 그러나 제 마음이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나이브는 스스로도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가 사망하기 30분 전. 나이브는 홀로 밤거리를 나섰다. 그녀에게 마음을 고백한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는 자켓을 걸치고 추운 길거리를 걸었다.

꽃다발이라. 무슨 꽃을 좋아할까.

곧 봄이다. 봄에 어울리는 꽃을 그녀에게 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 전에 아직 마음을 전하지도 않았는데 꽃을 줘도 되는 걸까? 어느정도 크기가 좋은 것일까?

뭐라고 말을 해야할까?

어떤 말로... 언제 어떻게....

어려웠다. 탐정으로 살아 남의 속내를 파악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쉬웠는데 지금은 제 마음 하나 정리하기 힘들었다. 더더욱이 그녀의 마음은 말이다.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혹시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거 아닐까?

나이브는 자신이 연인 상대로서는 0점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일 밖에 모르고 마음을 하나 표현할지 모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만약에... 제 마음을 제대로 전할 수 있다면........

그 순간 그림자 속에서 누군가가 걸어나왔다. 으슥한 골목길에서 나온 그 남자는 나이브를 노려보았다. 이윽고 총성이 들렸다.

총성의 주인은 나이브가 1년 전에 잡은 연쇄살인마였다. 어떻게 된 것인지 감옥을 탈옥해 그부터 찾은 것이었다. 자신을 잡아넣은 이 명탐정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나이브는 남자의 총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총알이 정확하게 나이브의 배를 꿰뚫은 것이었다. 피가 점점 바닥에 고였다.

남자는 나이브의 꼴을 보고 비웃었다. 이 잘난 탐정을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린 것이 좋았다. 그리고 확인 사살을 위해 총구에 머리를 겨누려고 했다. 그때 나이브의 손이 그 남자의 발목을 잡았다.

총알이 배와 내장을 꿰뚫었음에도 그는 날렵하게 몸을 날렸다. 엄청난 힘이었다. 도저히 총을 맞은 사람의 속도와 힘이 아니었다. 오랜 훈련과 고통으로 단련된 그의 몸은 피를 흘리면서도 남자를 제압했다.

팔을 꺾어 총을 뺏은 뒤 그의 위에 올라타 머리에 총구를 겨눴다. 그가 거친 호흡을 삼키며 말했다.

"다시 감옥으로 가게 됐군."

그가 피로 얼룩진 손으로 남자의 다리에 총을 쐈다. 남자는 비명을 지르다가 기절했다. 

남자가 움직이지 않게 나이브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자켓을 벗어 남자의 손과 팔을 꽁꽁 묶었다. 그러곤 옆에 있는 공중 전화기로 걸어갔다.

'젠장......'

나이브가 속으로 욕설을 뱉었다. 상황이 끝나자 눈 앞이 흐려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떻게든 고통을 참고 의지로 일어나 남자를 제압했지만 상황이 끝나자 배에서부터 끔찍한 고통이 올라왔다. 오장육부가 뒤틀리며 심장에서 폭탄이 터지는 거 같았다. 기절할 것은 고통에 그는 배를 감싸쥐고 힘겹게, 아주 힘겹게 한 발 한 발 내딛어 수화기에 손을 올렸다.

차가워진 손이 덜덜 떨며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여기는.... 오르페우스 거리...!"

그때 그가 입에서 피를 토했다. 양이 심상치 않았다. 토해져나온 피는 순식간에 전화기의 다이얼을 적셨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너머에서 경찰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이브는 피가 묻은 손을 보다가 황급히 마저 이곳의 위치와 상황을 올렸다. 곧 경찰이 출동한다고 했다. 나이브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심장이 뛰는 속도가, 몸이 얼어붙는 속도가 정상이 나이다. 그는 직감했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때, 이 시간이... 자신이 늘 두려워했고 피하려고 했던 죽음의 시간이라는 것을. 

'왜 하필.......'

그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그녀의 얼굴이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이 그녀의 목소리 듣기였다. 나이브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나이브는 우스웠다. 죽음에 가까워져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그녀의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더 듣는 것이라니. 그는 스스로를 비웃었지만... 죽음 앞에서 그는 마음 속에서 간절히 원하는 상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몸이 비명을 지르는 거 같았다. 그녀가 보고 싶다. 목소리를 제발. 듣고 싶다.

수신음이 갔다. 부디 이 수신음이 가는 동안 자신의 숨이 멎질 않길 원했다. 한 번이라도. 한 번만 더. 수신음이 끊기며 자신의 심장 소리도 끊기지 않길 빌고 또 빌었다.

달칵 하는 소리가 났다.

"여보.... 세요?"

이 밤에 전화를 걸다니, 상대는 누굴까? 하는 목소리였다.  입에서 또 다시 피가 토해져나왔다.

나이브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온몸의 피가 몸에서 빠져나가는 거 같았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지금 죽는다. 죽음의 공포가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다. 

아직 그 놈의 비밀을 밝히지도 못했는데. 잡지 못했는데.

엠마하고 약속한 공연도 보러가지 못했는데.

그녀에게 아직...... 내 마음도......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 허무하게 사라져만 간다.

그런데 그때 들린 그녀의 목소리.

"여보세요? 누구세요...?"

걱정과 공포가 가득한 목소리. 나이브는 갑자기 몸이 가벼워졌다. 이상할 정도로 온몸의 고통이 사라지며 그저 또렷한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신이 구원해준 것처럼, 마치 내일을 살아갈 자처럼 몸이 펴졌다. 그는 찬찬히 다정하고, 점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합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 안녕히 주무세요."

"... 탐정 님?"

그는 수화기를 걸고 바닥에 주르륵 주저앉았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에 든 생각.

섬광처럼 자신을 이끈 유언.

그녀에게 걱정끼치고 싶지 않다, 라는 생각과 함께 그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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