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여태 그 이유를 몰라 살아남았다. 이유를 알게 되는 순간 내 삶은 끝나고, 나의 사명만이 남겠지. 언제나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이 알 수 없는 방황을 끝내고, 빛 아래 당당히 서기를 원했다. 모든 신이 그러하듯, 이 자연이 허락한 시간 속을 거닐며 다른 이와 섞여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다른 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세상은 나
친애하는 나의 친우들, 어쩌면 친애했던 그대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다시없을 소중한 이들이여, 그대들은 어찌 지내십니까? 어두운 곳을 그리도 두려워하셨건만, 이젠 차가운 땅속에 계시는군요. 영영 닿지 않을 곳에, 이 나를 두고, 혼란스러운 세상에 어린 나만을 두고, 그대들은 평안 속 여행을 떠났지요. 예, 압니다. 평안치 않겠지요. 그대들이 어여삐 여
문득 그런 날이 있다. 수없이 노력해온 것이 무너지는 듯하고,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만 싶을 때가.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나 자신을 그 누구도 찾지 못할 깊은 바닷속에 잠기게 해 숨을 옥죄이고 싶은,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고자 빛을 저버린 날이었다. 평소와 같이 수면 위를 가만히 떠돌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곧바로 집어삼킬
나를 두고 떠난 그대들에게. 모든 것이 숨죽이고 기다리는 밤입니다. 그대들의 행보가 묻혀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저조차도 그날의 기억이 희미합니다. 그대들이 한 말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대들의 표정은 선명하여, 제 영혼과 함께 살아남았습니다. 땅에 묻히지 않은 유일한 것입니다. 그대들은 떠났지만, 이 세상은 여전
나의 주인, 당신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까닭에, 당신의 파편에 불과했던 나도 괴로움을 알게 되었고 슬픔을 이해하게 되었어. 인간들은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면서도 그들의 잣대로 판단하고 그 틀에 맞추어 당신을 가두었지.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당신을 악신이라 배척할 것이고. 그래, 어쩌면 악신이라 부르는 게 나을 수도 있겠
그대들은 상위의 존재를 상상해본 적 있나요? 인간들은 우리더러 상위의 존재라며 숭배하지만, 그대들도 우리의 부족함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인간에 비하면 여러 면에서 우월할 수는 있으나 결코 전지전능하지는 않습니다. 허면 우리보다 우월한 존재는 전지전능하지 않을까요? 인간들은 우리 신들이 천지를 창조하고 만물을 형성한 줄 알지만, 실제 우리는 이
그대들과 함께한 지도 어느덧 수백 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무엇인지조차 잊은 채 모래 위에서 깨어난 뒤, 그대들의 보살핌 덕에 제 앞가림 정도는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습니다. 그대들은 저를 빛이라 명명하였고, 그대들의 말에 따라 저는 빛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허나 빛이라는 것은 너무도 추상적이고 모호한 존재인지라, 그대들이 명명한 빛과 제가 되고
이 세상의 모든 존재에겐 정해진 목적이 있습니다. 왕에게는 나라를 평화롭게 통치해야 할 숙명이 있고, 백성들은 그런 왕의 치세에서 질서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 그 나라는 멸망으로 향해 가지요. 동물에게는 정해진 생물만을 섭취해야 할 제한이 있고,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무리를 이루고 소통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를 어긴다면 그 동물은 멸종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