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밤이었습니다"

나를 두고 떠난 그대들에게.

모든 것이 숨죽이고 기다리는 밤입니다. 그대들의 행보가 묻혀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저조차도 그날의 기억이 희미합니다. 그대들이 한 말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대들의 표정은 선명하여, 제 영혼과 함께 살아남았습니다. 땅에 묻히지 않은 유일한 것입니다.

그대들은 떠났지만, 이 세상은 여전합니다. 그대들의 눈을 대신하여 태양이 불타오르고, 그대들의 피를 머금은 대지는 황금빛으로 생명을 탄생시킵니다. 그대들의 부재는 이 세계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습니다. 믿어지나요? 인간들을 위한 그대들의 행동이 멈추어도, 이 세계는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 누구 하나 변하지 않고, 모두가 그대로입니다. 그대들만이 변화한 요소입니다.

그대들이 밟은 땅은 눈부신 황금빛 낙원이고, 제가 밟은 이 땅 역시 비슷한 빛을 내고 있습니다. 그대들이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낙원과도 같은 장소입니다. 그 무엇도 눈물 흘리지 않고, 그 무엇도 신음하지 않는 땅이지요. 다시 없을 공간이지만 곧 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평화가 지나가면 소란스러운 것들이 침범할 것입니다. 그대들을 품은 이 땅을 감히 밟으려 들겠지요. 하여 저는 결심했습니다. 그대들은 지키지 못했으나 그대들의 의지는 이어갈 것입니다.

어젯밤, 비극이 내려와 속삭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운명이라 칭했고, 비극을 읊어주었습니다. 허나 저에게 그 문장은 별의 속삭임과도 같아, 그 무엇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고대의 전지전능한 존재들은 예견하였을까요. 만일 그들이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면, 그들은 무척 잔혹한 존재였음이 분명합니다. 어찌하여 이 흐름을 따른 것일까요. 이 시대의 방랑자로선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이해하지 못할 비극을 멀리하고자 합니다. 그대들이 떠날 때와 같이 어리석은 행동임은 압니다. 그대들은 언제나 운명에 순응할 것을 말했지만, 저는 그를 이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찌하여 운명을 품어야 하나요? 어찌하여 이 모든 것을 방관해야 하나요?

저는 여즉 그대들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대들이 저에게 심어준 것들은 모두 스러졌습니다. 빛은 어둠이 되었고, 희망은 절망이 되었습니다. 그대들을 위한 물건과 장소도 모두 사라졌기에, 이제 와 그 뜻을 이해하기는 요원할 듯합니다. 허나 제 뜻은 분명합니다. 그대들의 것과는 다를지도 모르지만, 그대들이라면 저의 뜻을 존중해주겠지요. 그날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땅은 그대들을 품었지만, 저는 뱉어내었습니다. 그대들은 떠났고, 저는 남았습니다. 저는 그대들의 곁에 갈 자격이 없는 듯합니다. 흐름을 거스른 존재가 낙원에 가지 못함은 순리이겠지요.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행동조차 운명이라는 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저는 계속해 나아가려 합니다. 언젠간 흐름이 흐트러져 이치가 뒤바뀐다면, 저 또한 그대들의 곁에 갈 수 있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빛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불타오르는 눈이 천공을 집어삼키고, 그대들이 묻힌 땅이 박동합니다. 숨죽인 생명이 깨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요, 기나긴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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