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
101 연교
우리는 학칙에 따라 사격술과 호신술을 배운다. 중요한 것은 표적을 괴물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가 아니다. 생물이나 동물, 물건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관념적인 위협으로만 자리한다. 우리의 일은 그것이 존재로 거듭나기 전에 위협을 자르는 것이다. 먼 과거에는 그것을 뱀파이어라고 불렀다. 그러나 현재에 이르러 명칭은 다른 모든 것들이 그렇듯 진화했고, 이제 우리는 그것을 표적이라 부른다. 우리는 총을 든 사냥꾼이다. 우리가 할 일은 총을 장전하고, 과녁을 겨누고, 표적의 가슴에 총탄을 명중하는 것이다. 우리는 살인자가 아니다. 우리가 쏘는 것은 비존재뿐, 죽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는 것은 삶뿐, 허무가 아니다.
잠시 꿈을 꾼 것 같다. 혹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길을 잃었거나.
정신을 차려보니 훈련장이었다. 순서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함께 연습하던 생도들은 모두 기숙사로 돌아가고 없었다.
절벽 앞 훈련장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붐볐다. 정규 수업 시간이 지나도 자발적으로 남아 사격 훈련에 몰두하는 모범생이 꽤 됐다. 드물게도 사람이 없는 것을 보아하니 식사 시간인 것 같았다. 아무리 교육에 열의를 보인다 한들 식사를 거르면서까지 수업에 전념하는 학생은 없었다.
앤서니는 누군가 사격대에 놓고 간 주인 없는 M1 카빈의 총신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보았다. 잘 관리된 매끈한 금속이 손바닥에 닿을 때 그것의 서늘함이 등골을 타고 전신을 쓸어내렸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총기를 들어 표준 사격 자세를 취했다. 개머리판을 어깨에 견착하고 두 발을 어깨 너비로 벌려 과녁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안경알이 조준경에 걸렸지만 개의하지 않았다. 그는 신중을 기해 과녁을 노렸다. 목표는 정중앙이었다.
방아쇠를 당기려던 그의 움직임을 방해한 것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날카로운 울음소리였다. 개가 울부짖고 있었다. 관리인 도스 씨가 기르는 사냥개처럼 들렸다.
소리에 놀란 앤서니는 총구를 아래로 내리고 고개를 들었지만 총을 손에서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그는 M1 카빈을 한 손에 쥔 채로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주저없이 움직였다. 누군가 개를 괴롭히고 있다면 총구를 들이밀어서라도 그를 흠씬 혼내줄 요량이었다.
소리는 교정 뒤편에 위치한 쓰레기장에서 나고 있었다. 퀴퀴한 음식물 쓰레기 냄새를 풍기는 그곳에 다가갈 때 연신 헐떡거리며 숨을 가누는 개의 울음소리가 가냘퍼졌다. 앤서니는 개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한쪽 다리를 끈 채 혀를 낼름거리고 있는 그것의 허리에서 검붉은 피가 뚝뚝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함께 사격 수업을 듣는 제롬 역시 알아보았다. 밝은 금발에 소매를 걷어붙인 교복 셔츠 차림의 그가 개 옆에 허리를 숙이고 앉아 환부를 쥐어짜고 있었다. 검붉은 피가 솟구쳐 오를 때 제롬의 입술이 덩달아 붉어졌고, 그는 개가 뿜어대는 혈액에 입술을 묻으며 혓바닥을 빨갛게 적셨다. 앤서니는 고민하지 않고 곧장 그에게 다가가 그의 노란 뒤통수에 총구를 갖다 붙이고 겨누었다. 철컥, 하고 안전장치를 해제하는 소리가 울릴 때 제롬은 입술을 거두었고 입가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아무렇지 않게 문질렀다. 앤서니가 반은 아연실색한 듯이, 반은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지껄였다.
“괴물 자식.”
“그거 교칙에 어긋나지 않아?”
“입 닥쳐.”
그는, 맹세컨대, 아스팔트 바닥에 당장 그놈의 뇌수와 혈액을 흩뿌려 줄 작정이었다. 그 누구도 그를 나무라지 않을 것을 앤서니는 확신했다. 사냥꾼들의 학교에 정체를 숨기고 잠입한 표적을 동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에는 인권이 없었다. 생명을 존중해야 할 의무도, 가치도 없었으므로 앤서니는 자유로웠다. 제롬이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활짝 웃었다. 그가 앤서니를 올려다볼 때 앤서니는 소맷부리 밑으로 드러난 그의 커다란 문신과 핏자국을 봤다.
“앤서니, 맞지?”
“그래.”
“학교 텃밭에 농약 뿌렸다가 정학 먹은 애.”
“잡초가 자라고 있었어.”
“그러니까.”
어느새 제롬의 입술은 깨끗했다. 마치 피 같은 것은 살면서 한 방울도 입에 대본 적 없는 것 같은 순결한 얼굴이었다. 그가 순진무구하게 총구에 이마를 갖다댐에 따라 앤서니의 눈매가 가늘어졌고, 제롬은 손을 들어 자신과 앤서니를 번갈아 검지로 가리켜 보였다.
“사상은 잡초 같은 거야. 선한 사람도 얼마든지 악의를 품을 수 있지. 나는 이 사회에도 어느 정도 제초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너는?”
“나는 네가 개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 어떠한 전리품도 식량도 획득하지 않는 비효율적 살상이 사냥의 일환이라고 꿋꿋하게 믿으면서 말이야.”
“이건 내 신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 너는 규율을 어겼고, 나는 어긴 사람을 퇴치하는 거지. 허수아비에 날아든 까마귀를 내쫓는 것처럼.”
“다시 말해 현상 유지를 목표한다는 거고. 너희는 모두 각기 다른 배경에서 왔지만, 총을 든 이상 모두가 하나같이 기득권이야. 너희는 그걸 부정하고 싶겠지. 이것은 살인이 아니기 때문에 살인의 특권이라는 표현 역시 너희에게 해당되지 않는다고 우기면서 말이야.”
“논리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거야? 너답지 않은데, 제롬.”
“시간을 벌어보려는 거야. 난 죽고 싶지 않은 게 아니거든.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최적의 타이밍을 궁리하는 거지.”
“네가 생각하는 최적의 타이밍은 언젠데?”
“모르겠어.”
“…….”
“아마 지금?”
제롬이 팔을 뻗었다. 앤서니가 피하고자 몸을 돌릴 때 제롬의 또 다른 손이 그의 왼쪽에서 튀어나와 옆구리를 붙들었고, 한순간에 몸이 부딪혀 나뒹굴면서 앤서니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앤서니는 어느새 자신의 위에 올라탄 제롬을 향해 총을 겨누고자 했지만, 제롬이 한 발 빨랐다. 그는 어느새 앤서니의 총을 거머쥐고 개머리판을 돌려 앤서니에게로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네 말이 맞아.”
제롬이 파안대소하며 말했다. 어느새 떠오른 달을 등지고 역광에 시꺼매진 그의 얼굴이 앤서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한 말은 다 개소리야.”
총성이 울렸다. 제롬이 방아쇠를 당겼고, 궤적을 그리며 날아든 탄환은 그대로 앤서니의 살갗을 옥죄며 그의 갈비뼈 사이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숨통이 죄며 살을 베어오는 격통에 앤서니가 어깨를 뒤틀며 신음했다. 제롬이 고개를 숙였다. 그의 입술이 옆구리에 닿을 때, 앤서니가 그가 하려는 양을 알아채고 몸부림쳤다.
“놔, 이 미친 자식아……!”
제롬의 송곳니가 앤서니의 환부를 뚫었다. 이가 깊숙이 박혀 그의 입술이 앤서니의 맨 밑 갈비뼈에 충돌했다. 제롬이 그의 옆구리에 입술을 묻고 피를 흡입하자, 혈액이 잇새로 스미면서 그의 목구멍 너머로 빨려들어가는 감각이 소름 끼치도록 생동했다. 앤서니가 그의 머리통을 붙잡고 밀어냈다. 제롬은 꿈쩍하지 않았다. 피가 새어나갈 때마다 달빛 아래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 까무러치며 숨을 헐떡였다.
앤서니는 안경알 너머로 자신과 제롬 주위를 돌며 낑낑거리고 있는 도스 씨의 개를 봤다. 개는 꼼짝 없이 당하는 앤서니를 알면서도 제롬에게 섣불리 다가가지 못 하고 신음하며 눈치만 살폈다.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옆구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그것이 자신의 처지와 별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앤서니는 손을 뻗었다. 제롬의 옆에 놓인 엽총을 향해 손을 더듬거릴 때 제롬의 손이 그 위로 얹어져 손아귀를 붙잡았고, 손가락 사이사이로 깍지가 끼어 들어왔다. 앤서니가 씨발거리며 욕지꺼리를 내뱉을 때 그의 옆구리에 입술을 묻은 제롬이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환부에 숨이 섞여 시원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앤서니가 한숨 같은 신음을 토해냈다.
“너…… 내가 죽일 거야.”
“…….”
“어떻게든 찾아내서 죽일 거라고. 씨발, 가만 안 둘 거야…….”
제롬이 고개를 들었다. 언뜻 마주 본 그의 얼굴 절반이 앤서니의 피로 흥건히 붉었다. 제롬은 혀를 내어 턱을 타고 흐르는 피를 훔쳤고, 앤서니는 형형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제롬이 제 얼굴을 가볍게 쓸어 쥐며 일어섰다.
“그래.”
“…….”
“기다릴게.”
제롬이 흘러내린 소매를 걷어 왼손의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는 시간을 가늠하는 것 같았다. 포식을 마친 그는 상쾌해 보였고, 달을 등진 그의 그림자가 바람에 일렁이며 꿈틀거렸다. 앤서니는 제롬이 한눈 팔린 틈을 타 안간힘을 다해 총에게 손을 뻗었다. 그가 마침내 엽총을 손에 쥐고 그를 향해 겨눌 때 제롬이 뺨에 번진 핏자국을 엄지로 긁어내렸다.
“난 올해로 101살이야, 앤서니.”
제롬이 무상하게 읊조렸다. 그 말을 하는 제롬의 얼굴은 어딘가 지루해 보였다.
“총 따위로 죽을 수 있다면 이미 백번은 더 죽었을 거야.”
멀리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식사를 마친 학생들이 슬슬 훈련장으로 돌아오는 듯했다. 앤서니는 조준경 너머 번뜩이는 제롬을 골똘히 노려보았고, 제롬은 거칠게 깎인 절벽 밑의 숲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절벽을 통해서 가려고?”
“…….”
“꿈 깨. 저 아래에 길은 없어. 넌 평생 숲을 헤매게 될 거야.”
“길이야 뭐…….”
만들면 되는 거고. 조준경 속 제롬의 모습이 사라졌다. 앤서니는 총을 내려, 방금 전까지 제롬이 있었던 자리로 엉금엉금 기어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제롬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의 몸이 튀어나온 돌부리에 부딪히고, 나무에 부딪히고, 바닥에 추락하며 살점이 갈가리 찢기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형체를 잃고 으깨진 제롬의 형태가 들판 한가운데 검붉은 점으로 남았다.
앤서니는 제롬의 죽음을 봤다. 그의 뼈가 살갗을 찢고 기형적으로 뒤틀려 튀어나오는 모습을. 사방팔방 산개된 살점과 뼛조각, 핏방울이 아방가르드한 형태를 그리며 그의 죽음을 하나의 원으로 완성했다.
이내 벌떡 일어난 제롬이 머리를 털었다. 달빛 아래 그의 금발이 바람에 부드럽게 휘날렸다. 제롬이 고개를 들었고, 앤서니는 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가 환하게 웃고 있을 것임을 확신했다.
제롬이 멀어졌다. 그는 절뚝거리지도 않았다. 태어나서 한 번도 다친 적 없는 사람처럼 태연하고 유유자적하게 그는 숲을 걸어들어갔다.
곧이어 학생들이 앤서니를 발견했다. 한손에 총을 쥔 채 희게 질려 옆구리에서 피를 뿜고 있는 그를 그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앤서니는 뒤를 돌았고,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도스 씨의 개를 마주 보았다. 피는 어느새 멎어 있었다.
“구급차 불러, 씹새끼들아…….”
앤서니가 중얼거렸다. 그제야 혼비백산하여 교사를 부르기 위해 교정 안으로 뛰쳐들어가는 뒷모습들을 보며 앤서니는 바닥에 고꾸라졌다. 어느새 다가온 개가 앤서니의 환부를 핥았고, 앤서니는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그는 제롬이 했던 말들을 생각했다. 제롬은 앤서니가 몸담은 사회의 규율이 비겁한 현상 유지의 일환이라고 지적했다. 총을 든 사람은 누구나 살인의 특권을 쥔 기득권층이라고도 했다. 앤서니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제롬이 한 가지 사실을 놓치고 있다고도 생각했다. 총구는 양방향으로 나 있어서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쏘는 사람도 살해하게 되어 있었다. 앤서니를 비롯한 이 사회의 구성원들은 일백 번도 더 넘게 죽으면서 살겁을 저질렀다. 앤서니는 이미 죽어 있었다. 제롬이 도달하지 못 한 죽음을 정복하고 있었다. 이미 죽음을 맞이한 자만이 죽음을 제공할 힘을 거머쥐고 있었다. 앤서니는 제롬이 가까운 시일 내에 돌아올 수 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는 죽음 없는 삶을 견디지 못 했다. 영속하는 삶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그리고 앤서니는, 제롬이 원하는 바를 순순히 내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제롬을 가능한 한 오래 살려둘 작정이었다. 마침내 그가 아무 의미도 없는 개죽음을 맞이하는 날 그의 눈구멍을 들여다보며 비웃어줄 생각이었다. 이것이 네가 그토록 원하던 구원이라고. 그러나 너는 존재하지 않으니 천국에도 지옥에도 들어가지 못 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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