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결말

디트베리

I'd be lost, 난 아마 길을 잃어버렸을 거야.
without you, 당신이 없었다면.

잠은 여전히 오지 않았다. 미션이 떨어진 후로 며칠째 쭉 그랬다. 눈을 감으면 당장이라도 그를 탈취당할 것만 같은 불안감은 바로 곁에서 가느다랗게 이어지는 호흡을 숨죽이고 귀기울여 들을 때만 겨우 가라앉았다. 그래서 조던은 창백한 어깨 위로 부서지는 새벽 빛을 하나하나 헤아리면서 당신에게 선물할 마지막을 상상했다. 후회하면 안돼. 레일리는 그렇게 말했지만, 조던은 정작 스스로의 후회는 조금도 염두하지 않았다. 근심하는 것은 오로지 당신의 후회 뿐이다. 당신이 나 때문에 망설이기로, 기꺼이 휩쓸리기로, 완전히 내어맡기기로 결정했던 순간을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고 반성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준비하는 게 충만한 삶 뿐이어서는 안 된다. 나에겐 당신에게 완결된 죽음을 가져다 줄 의무도 있다. 마침내 눈 감는 순간에 당신이 느낄 감정이 오로지 너무 짧은 찰나에 대한 아쉬움일 수 있게끔.

그러므로 사랑을 깨달은 바로 그 밤에 살해를 모색한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살짝 덮은 뒷목을 엄지로 쓸면서 어루만진다. 할 수만 있다면 바라기는 가장 깨끗하고 훼손되지 않는 방식으로 보내주고 싶다. 레일리는 본인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여럿에게 깊이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고, 작별인사할 기회조차 허락받지 못한 레베카에게는 적어도 온전한 아버지를 돌려받을 권리가 있지 않나. 어쨌거나 본부는 조던을 살인의 스페셜리스트로 키워냈다. 호텔의 담을 넘어 도주하면서 가드 하나의 턱과 정수리를 대칭으로 붙들고 그대로 돌려버렸을 때, 조던은 경추가 부러져 즉사한 그의 죽음을 손바닥을 채 거두기도 전에 피부 너머로 이미 느낄 수 있었다. 같은 방식이라면, 그는 핏방울 하나 헛되게 흘릴 일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다. 자신이 정말 그 정도로 냉정할 수 있을까?

조던은 스스로를 맹신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칼도 같은 이유로 탈락했다. 망설일 경우의 리스크가 큰데다가, 직접적인 감각을 감당할 자신이 감히 없었다. 뒷목을 쓰다듬던 손길이 두 줄기의 굵은 목 근육 사이 움푹 패이는 지점을 따라 파고들듯 느리고 둥글게 문지른다. 뒤통수를 감싸고 있는 두개골의 바로 밑, 눌러도 어떤 단단한 것으로도 막히지 않은 좁은 틈. 총구를 여기에 붙이고 발포하면 탄환은 높은 확률로 두개골과 이어지는 가느다란 목뼈 연결부 몇 개만 부수면서 아무 저항 없이 뇌까지 이른다. 그렇다. 결국 총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얼마나 제가 망설이다 당기건, 방아쇠는 늘 같은 힘으로 탄환을 때려줄 테니까. 그대로 뒷목을 감싼 채 그를 당겨 안으면서 창백한 식은땀이 밴 이마 위로 맹세처럼 입 맞췄다. 무엇을 감수해서라도 반드시 당신이 필요한 죽음을 주겠다.

부쩍 컨디션이 나빠진 레일리는 쉽게 깨지 않고 가볍게 뒤척이기만 했다. 조던은 그대로 몸을 웅크리며 가슴팍에 귓가를 댔다. 맞닿은 살을 타고 울리는 심장 박동이 견고한 응답처럼 돌아와 비로소 선잠에 들 수 있었다.


레일리. 충분히 봤으니 우리 차로 돌아갈까요?
좀 쉬고, 당신에게 또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려주고. 같이 형편 없이 부르다가.
그러면, … 좋을 것 같아.

그 노래가 좋겠어. 듣다가 잠들었던 … 자네가 차 안에서 틀어줬던 그 노래.

수족관은 역시 조금 무리였을지 모르겠다. 한계 이상의 부담을 진 몸이 어떻게 서서히 무너지는지 미처 가늠을 못해 지나친 욕심을 부렸다. 제한시간 직전에 수족관을 떠나 차로 돌아가 끝을 맞이하는 건 계획했던 바이긴 했다. 아무것도 모를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 사이에서 소란을 일으킬 작정은 조금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정말로 타인의 시선만 염려했다면, 애초에 집 밖을 떠나 외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기적인 고집을 부렸다. 정말 괜찮겠는지 시선으로 묻던 레일리의 두려움과 걱정까지 감수해 가면서. 보여줄 수 있을 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물 그림자에 잠겨서 당신을 오래 그리워했던 자리를. 당신은 딸의 은인이자 엄격하면서도 친절한 선배였지만, 그런 이유들로 다 설명할 수 없이 기우는 마음을 처음 알아차렸을 때 나는 그저 두려워져서 멀리 도망쳤다. 눈에서 멀어지면 정리될 마음일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마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와 인력이 우리 사이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내 노력과 무관하게 나의 생각은 자주 당신에게 속절 없이 돌아갔다. 당신은 여전히 더 고귀한 가치에 스스로를 투신해 몰아붙이고 있을까?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기꺼이 놓아주면서도 지켜온 신념을 위해 자신의 몸이 상하는 것도 개의치 않으면서? 그 주저 없음을 동경하고 사랑한 주제에 동시에 바라기도 했다. 당신이 가끔은 망설이기도 하면 좋겠다. 어쩌다 백에 한번은 나 때문에, 내 생각이 나서 죽음이 기껍지 않고 두려웠으면 좋겠다. 내 이름이 당신의 살아야 할 여러 이유 가운데 한 가닥이라도 된다면 좋겠다. 푸른 시선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 조던은 여기로 왔다. 이 자리에 앉아서 그런 소원들을 빌었다.

소원은 이루어졌다. 이제 조던은 레일리의 망설이는 얼굴을 안다.

부축해서 차로 갔다. 왔던 때처럼 조수석에 당신을 앉히고 운전석으로 돌아간다. 오로지 노래를 틀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다음 행선지는 스스로도 장담할 수 없었다. 당신 없이 나는 길을 잃고 말 테니까. 손을 붙들고 복도를 걸어오면서부터 흥얼거리던 노랫말은 이제 부러 크게 튼 노래의 볼륨 사이에 전부 파묻혔다. 늘 서늘했던 것과 달리 달아오르기라도 하는지 점점 더워지기 시작하는 손을 다만 기어 위로 맞잡았다. 하고 싶은 말은 무수하기도 했고 하나도 없기도 했다. 아무리 떠들어도 결국 다 못 전해서 아쉬울 것을 알았기에 오히려 조용하게 침묵했다. 거칠게 굳기 시작한 손등만 문지르면서 간간히 노랫말 사이로 시선만 맞췄다. 여러 마음이 뒤엉킨 눈을 하고서 입술을 달싹이면서도 쉽사리 떼지 않는 건 레일리도 마찬가지였다. 조던은 이 순간을 준비하고 상상하면서 어쩌면 마지막에는 레일리가 자신에게 레베카를 부탁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너무 다정해서 조던이 행여나 뒤따라올 걸 염려해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부탁으로 책임을 지울지도 모른다고. 아예 근거 없는 의심은 아니었을 것이다. 눈이 마주쳤을 때 조던은 레일리도 비슷한 상상을 해봤다는 걸 어쩐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레일리는 결국 말하지 않는다. 따라올 생각 말고 레베카를 지켜달라고 부탁하지 않는다. 삶을 낭비하지 말고 자신을 금방 잊으라고 충고하지 않는다. 이 정도 사랑으로 충분했으니 오래 매이지 말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행복하라고 권하지 않는다.

아. 그 침묵이 당신 나름의 욕심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이보다 더 벅찰 수가 없다.

노래가 절정으로 치닫고, 화자가 더 이상 자신의 길 잃음을 가정형으로 말하지 않을 때 조던은 몸을 구푸리면서 잡은 손을 당겨 그를 깊이 끌어안았다. 운전석과 조수석에서 비스듬히 기울인 몸이 빈틈 없이 맞닿고 어깨 위로 희미해진 호흡이 밭게 쏟아졌다. 챙겨왔던 두 정의 권총 중에 하나를 꺼내서 끌어안은 등 뒤에서 슬라이더를 당겨 장전한다. 노래의 볼륨이 컸지만 가까웠으니 걸쇠가 걸리는 소리를, 혹은 등 뒤에서 장전하는 기척을 느꼈을 법도 한데, 당신은 미동도 없이 이미 평안한 것처럼 그대로 기대 안겨 있다. 조던은 총구를 정확히 간밤에 손끝으로 더듬어 본 곳에 맞추어 댔다. 가벼운 간지러움을 느끼며 레일리가 흠칫 움츠러들면 관자놀이에 달래는 것처럼 부드럽게 입술을 문질렀다.

“레일리.”

이게 마지막으로 부르는 이름이라니. 나는 이 세 음절에 세상도 전부 담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제 아무 걱정도 말아요.”

나 조금도 후회하지 않으니까. 살갗에 문지르며 고백하는 그 순간, 조던은 동시에 레일리도 후회하지 않으리란 어떤 견고한 확신에 달한다. 아, 할 수 있겠다. 깨달음과 동시에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이 수천번 반복했던 바로 그 방식으로 움직였다. 바로 맞붙은 귀 옆에서 지나는 굉음. 맞붙은 몸에 고스란히 전해지는 충격, 창에 비치는 반대편에 벌겋게 번지는 풍경. 왼쪽 얼굴과 어깨에 엉망으로 후두둑 뜨끈하게 쏟아진 온기, 가쁜 숨 사이로 밀려오는 피 냄새, 죽음의 냄새…….

그가 갔다.

비로소, 완전히.

조던은 비로소 스스로에게 말해주었다.

잘했어,

이제 울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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