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회전

네가 죽으면 나는 바로 재혼할 거야

고죠우타

Dusk by 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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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죽으면 나는 바로 재혼할 거야.

 

만약 당신이 신혼 초에 남편과 위와 같은 말을 들었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사람마다 답은 다르겠지만, 일단 내가 가장 먼저 한 생각은 다음과 같다. ‘미친놈인가…?’

그렇다. 내가 바로 저런 말을 들은 장본인이다. 그리고 물론 남편, 고죠 사토루는 미친놈이 맞다.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게 할 소리인가. 자기가 먼저 고백하고, 반쯤 밀어붙이듯 결혼을 진행한 주제에.

결혼 자체가 불만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저놈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불만은 세 시간쯤 논스톱으로 떠들어댈 수 있지만, 어쨌든 나는 이놈이 이런 놈인 줄 잘 알고도 결혼했기 때문이다. 반은 저 녀석이 밀어붙였다 해도, 나머지 반은 분명한 나 자신의 선택과 의지였다.

그러나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저 말은 나를 가끔 심란하게 했다(그렇다, 저 말을 들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따위로 말할 거면 그냥 지금 이혼하자는 말도 해봤는데, 사별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덤으로 내 질문에 기분이 팍 상한 티를 내는 이 녀석에게 하룻밤을 꼬박 시달렸다. 억울할 따름이다.

하기야 언제는 이 녀석이 말을 예쁘게 했던가. 고전에 입학하고서 학교를 꾸준히 다닌 이유가 반 정도는 나 놀리는 게 재밌어서라고 말하는 녀석이다. 이것도 뭔가 나름의 신종 놀림인가 보지. 나는 그렇게 이해를 포기해버렸다. 고죠 사토루라는 인간과 사귀기 시작할 즈음엔 저절로 체득된 습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마지막 일정이었던 임무 보고를 마치고서 복도를 걷다가 창가에 기댄 채, 아마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 커다란 인영을 발견했을 때, 문득 떠오른 기억이 있었다.

 


내가 주술고전을 졸업하기 직전의 일이다. 당시 나는 졸업 후 진로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주술사 일을 계속하고 싶은 의지는 강했지만, 부모님이 그것을 반기지 않았다. 원하는 대로 주술고전에 다니게 해주었으니, 이제는 내가 ‘딸’로서의 본분을 다하라는 이야기였다.

오기가 생겨 더 적극적으로 임무를 받아 수행해 갔다. 그때의 나는 인정이 받고 싶었다. 내가 꼭 여기에 있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렇게 정신적으로 한껏 몰려있을 때, 고죠와 마주쳤다.

“어, 우타히메다.”

복도에 서서 허공을 바라보다 나를 발견한 그가 그렇게 내뱉을 때 나는 속으로 빌었다. 제발 시비 걸지 말고 지나가라.

그와의 말씨름은 의식적이라기보다는 척수 반사에 가까웠지만, 그렇다 해도 상당히 에너지가 드는 일이었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럴 여유가 없었다. 이런 날만큼은 조용히 넘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고죠는,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는 훨씬 더,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는 일이 없었다.

“상태 되게 안 좋아 보이네. 또 주령한테 얻어맞고 왔어?”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간신히 마음속 전자동 스위치를 내렸다. 한 글자 한 글자를 꼭꼭 씹어뱉듯 대답했다.

“그냥 조금 피곤해서 그래. 쉬고 싶으니까 먼저 갈게.”

그대로 지나치려 했다. 그러나 고죠가 이쪽으로 불쑥 몸을 내밀어 진로를 막았기에 실패했다. 그의 어조가 한층 가라앉았다.

“뭐야, 엄청 날 서 있네.”

그 순간 느낀 직감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인간에겐 정말 ‘본능’으로 표현되는 어떤 초감각이 존재함이 분명했다. 고죠가 말하려는 뒷말을 들어서는 안 될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게는 그의 입을 멈출만한 능력이 없었다.

“주술계가 아무리 일손이 부족하대도, 고작 2급 주술사 하나 없다고 안 굴러갈 정도는 아니거든? 그렇게 자기감정 하나 조절 못 할 것 같으면 이참에 주술사 같은 건 때려치우지그래?”

그 순간 나는 내 안의 뭔가가 끊어지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안 그래도 곧 끊어질 것 같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실을 그가 사정없이 난도질한 것이다. 그 실 하나에 지탱해 겨우 서 있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소리에 귀가 먹먹해졌다. 그때는 어쨌든, 그런 기분이었다.

고죠 사토루라는 인간이 아무리 강해도 내 후배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마찬가지로 내 후배라 해서 그가 이 주술계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의 말은 후배로서의 비아냥이 아니라 이 세계의 최강자가 내리는 어떤 선고처럼 다가왔다.

너는 필요 없어.

 

 

그 자리를 어떻게 벗어났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숙사 방문을 닫자마자 펑펑 울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울어도 시간은 멈춰주지 않는다. 저 자식의 말 때문에 임무에서 실수했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임했다. 다행히 별일 없이, 평소처럼 임무를 완수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보조감독이 내게 조심스레 다가와 말했다.

“요새 너무 무리하시는 것 같아요, 임무는 조정해줄 테니까 당분간 쉬는 게 어때요?”

지금 생각해보면 고마운 배려였지만 당시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남들이 보기에도 나는 필요 없구나. 그런 확인 같았다. 그즈음엔 마음을 먹었다.

정말로 오후의 임무가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고, 기숙사로 돌아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래, 끝내자. 우울할 힘마저 잃고 그러고 있으려니 쇼코에게서 연락이 왔다.

[선배, 요새 바쁘신 것 같은데 몸은 괜찮으세요?]

요새 일이 좀 많네. 몸은 괜찮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그런 상투적인 메시지를 적어 보낸 후 팔을 이마에 얹었다.

쇼코에게는 예전에 지나가듯 주술사를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면 앞으로도 학교에서 선배랑 만날 수 있겠네요. 그렇게 말하며 기쁜 듯 웃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이대로 주술사를 그만둔다면 이 귀여운 후배와 만나기도 힘들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작별인사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정했을 땐 이미 새벽이었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말하기가 힘들어질 것 같아, 그대로 전송 버튼을 눌렀다.

쇼코, 사실 나, 주술사 그만두려고 해. 자세한 말은 하지 않고 그 정도 내용만 적어 보냈다. 쇼코는 이미 잠들었을 것이다. 나도 그대로 눈을 감고 잠들려 했다. 그러나, 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금 비져나왔다. 그 날의 새벽은 유독 길었다.

 

 

일은 다음 날 학교에 갔을 때 일어났다. 임무도 없고, 4학년이라 딱히 수업도 없어 혼자 교실에 앉아 보고서나 검토하고 있을 때, 쾅 하는 굉음과 함께 교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내가 무슨 반응을 보이기도 전, 목소리가 날아왔다.

“아니야!!!!!”

그게 아까 문을 여는 소리보다도 더 커서 나는 얼어붙었다. 저 녀석, 문가에 서서 숨을 몰아쉬는 고죠 사토루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나로선 알 길이 없었다.

어쨌든 별로 그를 쳐다보고 싶지는 않았다. 눈두덩이에 부기가 가라앉지 않은 것이 스스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걸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 녀석에게 지적당했다간 정말로 죽이고 싶어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성큼성큼 다가온 고죠는 역시나 내 바람과는 반대로 내 얼굴을 붙들고 들여다보았다. 나는 고민했다. 아, 못 죽일 녀석을 죽이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 풀어야 하지.

“그런 의미로 말한 거 아니야……!”

“아니, 갑자기 뭘…….”

“어이, 고죠!”

“사토루, 일단 진정해.”

뒤쫓아 온 것인지 고죠의 동기 둘이 나타나 그를 내게서 떼어놓았다. 이윽고 이어진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연일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노동으로 사실 내 몸 상태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영양제와 약을 다발로 삼켜가며 버티고 있던 실정이었다.

그것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 평소보다 화장도 공들이고, 누군가 있을 땐 몸의 긴장을 풀지 않았다.

고죠는 그걸 눈치챘던 것 같다.

결국 내게 했던 그 말은 ‘많이 힘들면 잠시 쉬어도 된다’는, 정말 그 녀석답지 않은 말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만두라고 말한 건 뭐냐고 물었더니, ‘무슨 말을 해도 우타히메가 주술사를 그만둘 리 없잖아.’란다. 아니, 그만둘 뻔했거든.

“평소 같았으면 ‘너 때문에라도 절대 안 그만둔다’면서 소리나 질렀을 거면서.”

툴툴대는 그의 말은, 확실히 일리는 있었다. 그렇다고 말의 재수 없음이 희석되는 건 아니지만.

“선배가 좀 이상한 것 같다고 저 녀석이 하도 시끄러워서, 마침 저도 연락해보려던 참이라 문자를 보냈거든요. 그랬더니 아침에 그런 문자가 와 있어서…….”

“쇼코가 교실에 오자마자 아침 인사도 없이 선배한테 무슨 말을 했냐고 사토루한테 따졌거든요. 쇼코의 넘겨짚기가 아닐까 했는데 사토루가 그냥 걱정을 해줬다길래 무슨 말인지 물어보고서, 그게 상대한테 어떤 의미로 들릴지 설명해줬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뛰쳐나가길래 따라왔어요.”

“너희들, 시끄러워…….”

고죠는 아까부터 틱틱거리는 태도였다. 시선은 전혀 이쪽을 향하지 않았다.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완전히 처음 보는 모습이라 꽤 신선했다.

“사토루. 해야 할 말이 있지?”

아이를 어르는 듯한 어조로 게토가 말했다. 고죠는 인상을 팍 구겼다가, 입을 뻐끔거리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련의 감정변화가 제법 흥미로워 나도 모르게 빤히 쳐다보고 있자니, 이제껏 들어본 목소리 중 가장 작은 소리로 고죠가 중얼거렸다.

“미안.”

그걸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었다. 사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기분은 풀려 있었다. 바보.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고죠는 더 바보였다.

“알았어, 다시 생각해볼게.”

“다시 생각해보는 건 뭐야. 그만둘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네 말이 아니어도, 부모님이 계속 그만두길 원하셨거든.”

“아, 그러니까 사토루는 안 그래도 선배가 고민하고 있을 때 그만두라고 말해버렸다는 거죠?”

“입 다물어, 스구루.”

“시끄러워, 쓰레기. 뭘 잘했다고.”

“싸우지 마……. 아무튼, 최근에 피곤해서 판단력이 흐려져 있던 건 맞는 것 같으니까. 차분하게 다시 생각해볼게. 그러니까 너희는 이제 교실로 돌아가.”

“아.”

셋이 함께 소리를 냈다. 4학년은 수업이 거의 없어 나는 교실에 혼자 앉아있었지만 셋은 한창 수업이 많은 1학년이었다. 마침 종이 울렸다. 서둘러 일어선 두 사람을 따라 교실을 나서려던 고죠가, 문을 닫기 직전, 내게 말했다.

“우타히메가 아무리 약해도, 없으면 곤란하니까.”

그리고 대답도 듣지 않고 성큼성큼 가버렸다. 나는 멍하니 그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이 상황에 와서도 약하다는 말은 빼놓지 않고 하는 얄미운 녀석. 그래도, 결국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건네주었다.

 

결코 그 녀석의 말만으로 마음을 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 날 나는 누구의 인정을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만을 생각하고, 내가 갈 길을 택했다.

그 과정에서 꽤 많은 일이 있었고, 본인에게 말해줄 생각은 없지만 그때마다 고죠가 남긴 말이 내게 힘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이때부터 그를 좋아했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결혼하기까지 훨씬 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뭐, 이것이 첫 발자국이었던 것 같기는 하다.

이후로도 그 녀석은 자주 미운 말을 쏟아냈지만, 이날의 일을 생각하면 그럭저럭 넘길 만했다. 솔직하지 못한 녀석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넘기다 보니 저 날의 일을 떠올릴 것도 없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떠올리고 나니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말이든 그의 말엔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담겨있다는 걸.

 


 

“아, 다음 부인은 술 안 마시는 사람으로 만나야지. 맨날 이렇게 마셔대는 걸 보면 금방 만나겠네―.”

그렇게 말하며 그는 착실히 내가 마신 맥주캔을 씻어서 찌그러뜨려 분리수거함에 담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그 광경을 바라보던 나는 저 말의 의미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다가, 그냥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진짜 할 거야?”

“응?”

“재혼.”

내 말이 갑작스러웠는지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말없이 이쪽을 바라보다가, 캔을 마저 정리하고, 손을 닦고, 앞치마를 벗고서는 이쪽으로 척척 걸어왔다. 세상이 붕 뜨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나를 쇼파에 넘어뜨린 커다란 몸이 내 시야를 한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진짜 할 수도 있지.”

“흐응.”

“우타히메는 나를 엄청 좋아하니까, 내가 재혼하는 게 싫으면 일찍 죽으면 안 돼.”

오, 이것은 또 새로운 관점이다. 게다가 대단한 자신감이다. 술기운이 올라서일까, 나는 딴지를 거는 대신 장난스럽게 다시 물었다.

“네가 먼저 죽으면 나도 재혼해도 돼?”

“응.”

의외의 대답.

“그게 싫어서 난 무조건 우타히메보다 오래 살 거야. 나이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이쪽이 가능성이 높지~ 그러니까 분발해, 우타히메.”

음, 이건 평범한 고죠 사토루다.

“예예, 분부 받들겠습니다.”

“……그 말투 뭔가 열 받는데.”

그렇게 말한 그가 나를 끌어안더니 그대로 몸을 뒤집었다. 그의 가슴팍에 머리를 얹자 두근두근하는 심장 박동이 들렸다.

“그거 알아? 오늘이 마침 나랑 우타히메 생일 딱 중간이다.”

“그런 것도 세고 있어?”

“애들이 말하는 걸 들어서 궁금해서 계산해봤지. 요새 애들은 재밌다니까.”

그런 걸 들었다고 그걸 계산해서 기억하고 내게 말하는 너도 요새 애들이랑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은데. 입을 떼기도 전에 나를 안는 힘이 강해졌다.

“죽을 거면 7월 14일로 해. 뭔가 운명적이잖아. 다른 날은 안 돼.”

“이렇게 붙들고 있으면 죽고 싶어도 못 죽겠는데.”

“응. 죽지 말라는 뜻이야.”

순간 숨이 멈췄다. 내가 그의 언어를 조금씩 이해해가듯, 그도 나의 언어로 말하는 법을 배워가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손을 뻗어 그의 사락거리는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었다.

“노력해볼게. 사토루.”

아직도 입에 붙지 않은 그의 이름을 한 글자씩 내뱉고서, 몸을 조금 일으켜 입을 맞췄다. 아아, 정말. 기념일 삼기에 나쁘지 않은 날이었다.


2022년 고죠우타 중간생일 기념 합작 참여(@0714gou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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