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회전

카페 탐방

고죠우타

Dusk by 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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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시점


우연히 발견한 예쁜 카페가 있다. 번화가에서는 조금 떨어진 외곽에 위치하는데, 아치형 입구에 한껏 피어있는 장미꽃부터 눈길을 꾸는 곳이었다. 입구까지 돌다리로 연결된 정원은 계절감이 있으면서도 깔끔한 것이, 잘 관리되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홀린 듯이 들어가니 실내도 운치 있게 잘 꾸며져 있었다. 시험 삼아 시켜본 커피도 맛있었는데, 사실 메뉴판을 보며 인상적이었던 것은 디저트 종류가 무척 많다는 것이었다. 집에서 후기를 검색해보니 대부분이 평이 좋았다.

외진 곳에 있는 것치고 사람이 많은 것도 이해가 갔다. 그리고 아무리 사람이 많아봤자 도심에 있는 카페보다야 훨씬 나았다. 우리 집에서 자전거로 가기 딱 좋은 거리라 나는 금방 그 카페의 단골이 되었다.

 

주말 아침, 나는 눈을 뜨자마자 그 카페로 향했다. 얼마 전에 SNS 공지로 브런치 세트 메뉴가 새로 생겼다고 하기에 먹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해가 잘 드는 통창 앞에 자리를 잡고 카운터에서 고민 없이 브런치 세트를 시켰다. 꽤 이른 시각이라 음식은 금방 나왔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맛이었다. 노릇하게 구운 식빵과 계란 프라이, 베이컨과 소시지에 샐러드까지 알뜰하게 먹어치운 나는 함께 나온 커피를 홀짝이며 가져온 책을 읽고 있었다. 그즈음엔 슬슬 사람도 많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거야 카페니까 사람은 들어올 것이고, 그들이 커플이라는 것도 별다른 특이사항은 아니다. 그럼에도 눈길을 끄는 것은 그들의 외형 때문이었다.

일단 둘 다 키가 훌쩍 컸다. 남자 쪽은 190cm도 넘지 않을까 싶을 정도. 머리는 전부가 희었는데, 숱을 보나 윤기를 보나 나이 때문에 희어진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실내에서도 벗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눈이 가려진 상태로도 상당한 미남이라는 인상이었다.

함께 들어온 여자 쪽도 키가 크고 선이 곧아 눈길을 끌었다. 얼굴엔 단아한 분위기가 맴돌았는데,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흉터가 눈에 띄었다. 거기까지 관찰하고 나서야 나는 그들이 중년의 나이임을 깨달았다. 40대…… 어쩌면 50대려나.

그렇다면 더더욱 이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꼭 붙어 팔짱을 끼고 있는 저들의 자세가.

“나는 브런치 세트면 될 것 같은데, 너는?”

그렇게 묻는 목소리가 마치 종소리 같아 나는 다시금 놀랐다. 짧은 문장에도 선율이 담긴 듯 아름다우면서도 우아했다. 그에 대꾸하는 남자의 목소리도 역시나 좋아 어디 공연하는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으음, 오늘은 일단 수플레로!”

“그래, 그래.”

그 대꾸에는 어딘지 어린아이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사람 특유의 기색이 어려 있었다. 그러니까 아마도, 그저 나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귀여워하고 있는 것 같다. 저 거구의 남성을.

문득 얼마 전 SNS에서 떠돌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중년의 나이에 유독 다정해 보이는 관계는 대개 불륜 관계라고 했던가.

주문을 마친 그들이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나 말고도 몇 사람이나 그들을 바라보았지만, 그들은 그런 시선에 익숙한 듯 별로 거리낌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앉은 자리가 하필이면 내 앞이었다. 거리는 조금 있었지만, 고개를 조금만 들어도 둘의 옆 모습이 훤히 보였다.

이러니 예의가 아님을 알아도 자꾸만 그쪽으로 쏠리는 관심을 스스로 막을 도리가 없었다.

 

 

마주 보고 앉은 두 사람의 손은 앉는 그 순간부터 겹쳐 있었다. 테이블 위로 커다란 남자의 손이 여자의 손등이며 손가락을 계속 만지작거리는데, 여자 쪽도 익숙한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종업원이 음료와 디저트를 가지고 근처까지 왔을 때 여자가 자연스럽게 손을 뺐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게 부끄럽다는 자각은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런 곳까지 오지 않는 게 좋을 텐데. 아, 하긴 여긴 도심보단 사람이 적으니까.

머그잔에 담긴 커피 한 잔과 내가 먹은 것과 같은 브런치 플래터, 남자가 먹겠다고 했던 수플레 팬케이크. 그리고 하나 더. 생크림과 초콜릿 칩이 산더미처럼 올라간 이름 모를 음료.

저 나이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단 걸 즐기는구나 하는 감상도 잠시, 수플레와 음료가 둘 다 남자 앞에 놓인 것을 보고 나는 눈을 의심했다. 남자는 척 봐도 신난다는 듯이 수플레를 크게 잘라 한입에 넣은 후 생크림 속에 파묻히다시피 한 빨대를 입에 물었다. 저 정도 양이면 생크림 추가를 한 것일 텐데. 분명 수플레 팬케이크에도 생크림이 곁들여서 나올 텐데…….

“아침부터 잘도 그런 게 들어가네…….”

“한 입 줄까?”

“됐거든.”

“하긴, 당뇨가 걱정될 나이이긴 하지.”

“너도 얼마 차이 안 나거든!”

투닥거리면서도 손은 자연스럽게 포크와 나이프를 드는 것이 이런 대화가 익숙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들이 식사에 열중하는 사이, 뒤쪽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봤는데…….”

“이상한 관계 아니야? 왜, 그런 거…….”

“선글라스 안 벗는 거 보면 뭔가 찔리는 게 있는 거지…….”

“맛있으니까 여기 또 오자네. 세상에 뻔뻔해라…….”

역시 사람 생각하는 건 다 비슷한 모양이었다. 나의 예정은 지금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지만, 저들이 신경 쓰여 결국 커피 한 잔을 더 시키고 말았다.

 

식사를 마친 후, 남자가 테이블 아래에 있던 여자의 손을 굳이 다시 끌어와 감쌌다. 몸을 앞으로 내밀어 둘의 거리가 제법 가까웠다. 서로 밀담처럼 속삭이며 대화하다가, 여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무어라 하다가 둘이 함께 웃거나 하고 있었다.

문득 여자가 휴대전화를 들었다. 전화가 온 모양이었다. 몸을 살짝 이쪽으로 돌려받은 탓에 말소리가 여기까지 닿았다.

“여보세요? 아, 응. 엄마 잠깐 나와 있어. 금방 들어갈 거야. 응? 아, 아니…… 왜?”

그러는 사이 남자는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여자의 손바닥을 손톱으로 긁어댔다. 여자도 이건 참지 못했는지 그의 손을 탁 쳐냈다. 하긴, 자식한테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는데 불륜 상대한테 저런 짓을 당하면…….

그러고 보니 자식이 있구나. 자식이 있을 만한 나이대이기는 했지만, 그 존재를 확인하고 나니 더더욱 이상한 기분이었다.

남자 앞에서도 당당하게 전화를 받는 것을 보면 그들이 모종의 합의 하에 만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럼에도 남자 쪽은 여자가 전화를 받는 지금을 제외하면 (선글라스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긴 하지만) 시종일관 즐거워 보였다.

여자 쪽도 그렇다. 나이에 걸맞은 기품이 단정한 얼굴과 몸가짐을 한 부인이, 가정을 두고 다른 남자와 함께하며 보여주는 표정이 가끔 소녀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행복해 보였다.

그것이 누군가의 슬픔을 담보로 만들어진 유리알 같은 행복이라 해도, 인간이라면 그것을 추구하고 마는 것일까. 그런 답지도 않은 상념이 들었다.

“애들이야? 무슨 일 있대?”

어느새 전화를 끊은 여자를 향한 남자의 말에 주변에서 옅은 탄식이 들렸다. 나도 마찬가지의 심정이었다. 떳떳하게 볼 수도 없는 남의 집 자식 사정은 궁금해서 어쩌려고. 게다가 전화 받을 때 분명 불쾌한 표정까지 짓지 않았던가.

“딱히 그런 건 아닌데.”

“그러면 왜 금방 들어간다고 했어?”

신경 쓰는 게 그쪽이었나. 이제는 나올 한숨마저 없었다. 주변도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억지로 시선을 책 쪽으로 돌렸다. 계속 바라보고 있다가는 알지도 못하는 가정의 있는지 없는지도 사실 알 수 없는 불행을 계속 생각하게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는 정말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할 즈음, 눈앞의 커플도 일어나려는지 슬슬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문 쪽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엄마!!!”

그곳에 엄마인 사람이 한 명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은 단번에 한 쪽으로 모였다. 그 외침에 노기가 서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 여길 어떻게 알고 왔어!?”

역시나 시선이 쏠린 쪽의 여자가 다급하게 남자의 손을 떼어내고 일어섰다. 저런, 조금만 일찍 나갔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하지만 또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 아니었겠는가. 그것이 내 눈앞에서 일어난 것이 솔직히 흥미진진하다고 하면 벌 받겠지만.

엄마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는 소년 역시 키가 훤칠했다. 한눈에 봐도 엄청난 미남이었다. 게다가 특이한 점이 머리카락이 하얗다는 것인데…… 어라? 머리카락이 하얘?

“왜 나 빼고 아빠랑만 데이트해!?”

아빠랑 데이트. 아빠랑 데이트……. 나 외의 모든 사람이 그 말의 의미를 한 번에 받아들이지 못하고 되뇌었을 것이 분명했다. 가게가 순식간에 조용해진 것이다.

“그냥 네 아빠가 오랜만에 옆 동네에서 커피라도 한잔하자길래 잠깐 나온 거야. 곧 들어가려고 했어.”

“나도 데려갔어야지!”

“아들~ 어제 새벽까지 게임 하다 늦게 잔 거 모를 줄 알아?”

남자의 말에 드디어 완벽하게 이해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사이 좋은 부부셨군요. 수상한 관계로 의심하여 정말 죄송합니다.

아들의 투정은 함께 점심을 먹고 집에 들어가자는 말로 사그라들었다. 사실 아빠는 필요 없다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거기까지는 역시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세 사람이 카페 문을 나서자 동시에 사람들이 얹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내 것도 물론 섞여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사람들은 모두 한 마음임이 틀림없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도 늘 행복하세요.


쿠키님의 이 썰이 좋아서 쓴 글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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