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회전

잠꼬대

고죠우타

Dusk by 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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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실에 별난 풍경이 펼쳐져 있다.

딱히 우타히메가 있는 것이 별나다는 것은 아니다. 여긴 교토교이고 우타히메는 이곳의 직원이니 직원실에 그가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할 것이다.

다만 그 우타히메가 이런 시각에 소파에 누워 자고 있는 모습은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소파 앞 낮은 책상 위에는 반쯤 비워진 커피잔이 놓여있다. 평소엔 커피보다 차를 선호하는 편이니 필시 잠을 깨기 위한 용도이다. 그걸 반도 채 마시지 못한 채 수마에 져버린 모양이었다.

직원실 칠판에 적힌 우타히메의 일정에 흘끗 시선을 던졌다.

 

[ 이오리 우타히메 | 카메오카, 오전 3시~ ]

 

시간 조건을 맞춰야 하는 주령은 이래서 성가시다. 지금 시각은 오후 4시. 아마 임무를 마친 후 성실히 오전 수업을 진행하고 오후 실습 참관까지 마치고서 보고서를 쓰기 위해 커피 한 잔으로 뇌를 깨우려다 장렬히 전사한 모양이다. 아니, 죽진 않았지만.

신발을 신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자려는 마음은 전혀 없었음을 알 수 있었다. 잠깐 소파 등받이에 기댔다가 그대로 상반신이 쓰러지고, 안락함을 찾는 몸이 본능에 따라 다리를 올려 지금의 자세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자 인기척을 느끼기는 하는 건지 우타히메가 몸을 뒤척이며 반대로 돌아누웠다. 미간은 잔뜩 찌푸려져 있고, 목에서 나오는 소리는 칭얼거리는 듯한 것이었다.

귀엽다.

고죠는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우타히메의 자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 아니었지만, 혈중알코올농도 0%의 상태로 잠든 것을 보는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학생 때.

‘도서관에서 잠들어 있었지.’

그 얼굴을 맞은 편에 앉아 질리도록 구경했었다. 기분 좋은 옛 기억을 더듬으며 스마트폰을 들었다. 예전에 찍어둔 얼굴과 나란히 감상할 요량으로 적당한 각도를 찾아 소파 안쪽에 숨은 우타히메의 얼굴을 향해 허리를 숙였을 때였다.

“으응……, 거기, 안 돼…….”

뚝, 하고, 고죠의 움직임이 멈췄다. 꿈이라도 꾸는 건지 잠꼬대처럼 중얼거리는 그 말이 도저히 예사롭게 들리지 않아서였다.

“우타히메?”

이름을 불러보는 고죠의 목소리는 금세 사라질 것처럼 작고, 조금 떨리기까지 했다. 아니, 설마 그럴 리가 없지. 순간 엄한 상상을 해버린 자신을 책망하며 심호흡을 하고 있을 때였다.

“코헤이…… 그거, 안… 들어가…….”

좋아, 확정. 지금 당장 깨워서 무슨 꿈을 꾸는지 알아내야겠다. 상대가 누구인지도.

“우타히메. 얼른 일어나. 자, 빨리!”

어깨를 붙잡고 흔드는, 다소 거친 방식으로 우타히메를 일으켜 깨웠다. 자다가 갑자기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경험을 한 우타히메는 눈을 뜨고도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해 멍하니 이 재난의 진원지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고죠는 우타히메가 정신 차릴 때까지 기다려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우타히메, 방금 무슨 꿈 꿨어?”

“……고죠? 너 왜 여기 있어?”

몽롱함이 가시지 않은 눈을 찌푸리며 우타히메가 물었다. 고죠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 약간의 인내심을 발휘했다.

“출장. 우타히메, 방금 무슨 꿈 꿨냐고.”

“꿈?”

“아까까지 중얼중얼하던데, 설마 까먹은 건 아니지?”

기억력 위험한 거 아니야? 평소의 태도를 가장하며 놀리듯 말했지만 차마 다 숨기지 못한 초조함이 묻어있었다. 왠지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은 그 분위기에 우타히메는 눈동자를 도륵도륵 굴려보았지만, 꿈을 꾸었다는 감각만 어렴풋이 남은 채로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내가 뭐라고 했는데……?”

“…….”

“고죠?”

“내 입으로 말해?”

“……못 말할 말이라도 했어?”

“……코헤이가 누구야.”

그렇게 묻는 목소리가 떨릴 것 같은 것을 최대한 눌러냈다. 이쯤 말하면 알아들을 것 같았는데, 우타히메는 여전히 눈을 굴리며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사람 속도 모르고, 태평한 그 반응에 고죠는 울컥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입이 멋대로 나불거리고 있었다.

“거긴 안 된다느니, 안 들어간다느니 하던데, 약한 와중에 언제 남자를 만나고 다녔대? 성실하기도 해라.”

말을 하면 할수록 듣는 사람보다 자신이 더 비참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정당성도 없는 배신감이 그를 멈추지 못하게 했다.

“아무리 그래도 직장에서 그런 꿈이나 꾸고, 욕구불만이야? 그렇게 외로우면 내가…….”

순간 우타히메가 고개를 탁 들었다. 쓰레기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자각은 있었다. 화내려나.

“생각났다!”

“……뭐가?”

“무슨 꿈이었는지! 내가 소파에 앉아서……”

“잠깐잠깐잠깐.”

이 여자 진심인가? 지금 여기서 그걸 설명하겠다고? 아무리 내가 지를 좋아하는 줄 모른대도,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지, 물어보면 아무한테나 그런 얘기도 해버리는 거야?!

고죠가 머릿속으로 소리를 지르건 말건 우타히메는 멈추지 않았다.

“축구 경기를 보고 있었는데.”

“축구…… 축구?”

“전반 내내 힘을 못 쓰다가 후반에 드디어 기회가 왔나 했더니, 코헤이가 바보같이 골문 바로 앞에서 이상한 방향으로 공을 차잖아!”

생각하니 화가 난다는 듯 우타히메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고죠는 그런 우타히메를 잠시 바라보다 조용히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검색어를 입력했다.

[산프○체 히로○마 코헤이]

첫 페이지에 뜨는 인물이 있었다. 시○즈 코헤이, 후쿠오카현 무나카타시 출신의 프로 축구 선수.

우타히메가 좋아하는 축구팀인 산프○체 히로○마 소속의.

“근데 아까 뭐라고 했어? 자는 사람을 탈탈 털어대니까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

다행이다. 한 마디라도 기억했으면 최강이라는 칭호가 무색하게 스스로 이 자리에서 생을 마감할 뻔했다.

“욕구불만이 어쩌고 했던 거 같…….”

“아니? 그런 적 없는데? 모함인데? 이런 데서 자고 있어도 되겠냐고 했어. 우타히메 약한데 넋 놓고 있다 습격이라도 받으면 어쩌려고.”

“고전, 그것도 직원실 안에서 날 습격할 사람은 너 정도밖에 없거든…….”

아무렇게나 둘러댄 말에 제법 통찰력 있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까까지의 불쾌함은 어디로 갔는지,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우타히메는 졸음이 어느 정도 가신 건지 식어버린 커피를 단숨에 들이켜고선 맛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빈말로도 예쁘다고 해주기 힘든 얼굴이었지만, 그것도 나름 귀여워 보이는 게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고작 잠꼬대 몇 마디로 초조해하고, 고작 이런 얼굴에 설렌다. 지금의 관계에 안주하기엔 이미, 제 생각보다도 더, 멀리 왔는지도 모른다. 대뜸 말을 던졌다.

“우타히메, 이따 나랑 저녁 먹자.”

“뭐래, 오늘은 들어가서 일찍 잘 거야.”

“잠은 아까 잤잖아. 비싼 거 쏠게.”

“갑자기 왜 이래, 됐다니까. 너 오늘 좀 이상한 거 아냐?”

글쎄, 시○즈 코헤이 씨가 골은 못 넣어도 이상한 스위치는 넣은 모양이지. 그렇게 말할 수는 없으니 고죠는 그냥 일방적으로 외쳤다.

“나 기다릴게! 좀 이따 봐!”

“야!”

이렇게 말하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을 기다려줄 것을 안다. 등 뒤로 울려 퍼지는 우타히메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죠는 신나는 발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나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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