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죠유지] 일상의 한순간

남성 출산 소재 | 부모가 된 사토루와 유우지의 이야기

Adore U by 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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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잎을 닮은 모양새를 띈 오동통한 손. 보드라운 살결이 손끝에 감기는 촉감이 사랑스럽다. 자그마하고 여린 손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져본다. 자신의 손가락 두 마디도 채 되지 않는 작디 작은 손. 아이의 손을 끌어다 제 입가에 가져다 댄다. 통통한 손바닥에 입술을 대고 부부, 하고 소리 내어 간지럽히자 꺄르르 듣기 좋은 웃음소리가 퍼졌다.

비단 외관만 보면 자신을 작게 줄여놓은 듯한 아이지만, 웃는 모습은 제 반려를 꼭 닮았다. 웃을 때면 눈을 질끈 감는 습관도, 호기심이 잔뜩 어려 빛나고 있는 호박빛 눈망울도. 두 사람의 애정 아래에서 태어났음을 알려주듯 양쪽을 고루 닮은 아이다.

“사토루 씨, 치비 깼어?”

“응.”

가볍게 대꾸하며 뒤를 돌자 젖병을 손에 든 유우지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양 손바닥으로 젖병을 흔들어가며 뒤섞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시계를 확인한다. 벌써 다음 수유 텀이 다 되어가는 시간. 둘 다 서투르고 무지해 어쩔 줄 몰라 하던 때를 지나, 이제는 확실히 여유가 생겼다. 젖병을 내려둔 채 아이의 뒷목과 허리춤에 손을 넣어 안아 드는 폼도 능숙해진지 오래다. 아직 경력 6개월의 초짜 부모긴 하지만.

제 쪽으로 오고 있는 유우지를 보고 아이가 신난 듯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유우지는 눈을 한껏 접어가며 미소를 그렸다. 거실에 깔아둔 이불 쪽으로 다가가 몸을 숙여 아이와 가까이한다. 막 깬 탓에 발그레 물든 통통한 볼을 콕콕 찌르자 우웅, 하는 소리가 되돌아온다.

“머리가 엉망이네에.”

아무래도 잠버릇이 나쁜 건 자신을 닮은 모양이다. 유우지는 그리 생각하며 헤집어진 머리를 살살 쓸어가며 정돈해주었다. 아침마다 제 머리를 보고 웃음을 터트려가며 꾹꾹 눌러주기 바쁜 누구처럼. 결 좋고 가느다란 머리칼이 손가락 사이로 감기는 촉감이 좋다.

“착하기도 하지. 깼는데도 안 울고 얌전히 있었어?”

“아부-”

소파에서 비스듬이 뉘여 먹일 요량으로 조심스레 안아 들었다. 자리에 앉아 팔로 각도를 맞춰가며 울지 않고 기다려준 아이를 치켜세워준다. 분명 말을 모르는 아기임에도 자신을 칭찬해준다는 건 아는지, 유우지의 말에 아이는 활짝 웃으며 손을 뻗었다. 그에 유우지는 얼굴을 아이 쪽으로 가까이하며 곰실한 손바닥이 내려앉기를 기다린다. 조그마한 손가락이 유우지의 눈가 상처를 어루만지는 모습을 보며, 사토루는 어렵게 얻은 이 행복을 음미했다.

손가락 스무 개를 모두 삼키고도 유우지는 육체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제령이 아닌 제어일 뿐이므로, 사형은 여전히 무기한 연기 상태. 스쿠나를 없애려면 둘을 분리하는 게 급선무지만 당장의 방안은 없다. 언젠가의 과제라고 생각은 하지만 일단은 괜찮을 것이다. 유우지를 믿으니까.

사형수라는 꼬리표를 떼줄 수 없게 된 건 미안하지만, 자신이 몇 배는 더 성가신 구속구이니 그 정돈 넘어가 줬으면 한다. 바닥에 내려뒀던 젖병을 집어 들어 유우지에게 다가가면서, 사토루는 자신의 왼손을 허공에 넓게 펼쳤다. 네 번째 손가락에 자리 잡은 반짝이는 링. 무엇보다 완벽한 속박이다. 가능하다면 내세에도 얽혀볼 생각이다. 하루라도 빨리 스쿠나를 없애 유우지와 묶여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고 싶은데.

유우지는 스쿠나를 완벽히 제어하고 있다. 제 안에서 맥도 추리지 못하고 큰소리를 내는 게 보기 좋다며 웃어 보이던 얼굴을 기억한다. 손가락을 전부 삼킨 유우지의 몸에는 녀석의 술식이 새겨졌다. 언젠가 지하실에서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본래 타고난 신체 능력에 술식까지 더해져, 이제는 목숨줄을 쉬이 노릴 수 없는 주술사가 되었다. 그러니 굳이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막겠답시고 위험을 부담하고 싶지 않다. 유우지를 잃게 될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보다, 몸의 주도권을 빼앗은 스쿠나와 싸우는 쪽이 몇 배는 낫다. 애초에 질 생각도 없으니까.

그렇게 유우지가 성인 주술사로 활동한 지도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실력은 이미 특급에 상정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등급은 여전히 1급. 승급 심사에 올라간 지 오래인데도 좀처럼 통과되지 않고 있다. 특급은 주술사의 등급 중에서도 격이 다른 위치니까. 1급 심사 때도 온갖 비언을 늘어놓으며 훼방을 놓던 작자들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상황이다.

판이라도 엎을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제 말에 유우지는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대신 유우지는 올곧은 길을 골랐다. 좀 더 노력하면 인정받을 거라는, 참으로 저다운 우직하고 답답한 길. 그때가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자신의 개혁이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누구보다도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유우지가 가려는 길을 응원하려 한다. 그 답답하리만큼 우직하게 굳은 심지까지 사랑하는 거니까. 이제는 함께 응원할 동료까지 있으니 괜찮을 것이다. 젖병에 고사리처럼 작은 손을 얹은 채 바쁘게 입을 움직이는 아이의 볼을 톡 건드렸다. 이로써 절대적인 유우지의 편이 둘이 되었다.

“치비가 혼자 잡고 싶나 봐.”

“벌써?”

유우지의 말에 아이를 살피자 젖병을 그러쥔 손끝이 하얗게 질려있다. 유우지를 닮아서 힘이 좋은가. 저를 닮아도 매한가지겠지만, 이왕이면 유우지를 닮은 쪽이 좋으니 내키는 대로 생각하기로 한다. 빠는 방법을 몰라 젖병을 목전에 두고도 울음을 터트렸었는데. 쏜살같은 아이의 성장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유우지, 한 번 손 떼봐.”

“그래볼까. 치비 할 수 있지?”

유우지가 조심스레 손을 떼자 아이는 기특하게도 젖병을 지탱한 채 오물대는 입을 멈추지 않았다. 고갯짓으로 탁자를 가리키는 모습에 잽싸게 달려가 휴대폰을 챙긴다. 카메라 어플을 켜 아이의 성장을 직사각형 프레임 속에 담았다. 셔터를 연신 눌러대고도 모자라 동영상으로 움직이는 모습까지 남겨둔다.

처음 젖병을 쥐고 먹은 날.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일이 오늘로 하나 더 늘었다. 앞으로 헤아리기도 어려워질 만큼 기념비적인 날들이 늘어나겠지. 휴대폰 하나로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쉬이 남겨둘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나 처음으로 문명의 발전에 감사를 표하면서, 부지런히 자라고 있는 아이의 성장에 불쑥 아쉬움을 느꼈다.

“치비가 너무 빨리 크는 것 같아서 서운하네.”

“나중에 걸을 땐 울겠네, 사토루 씨.”

“진짜 울 것 같은데. 나 벌써 눈가가 촉촉한걸.”

“에, 거짓말이지. 제발 참아줘….”

유우지의 말에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우는 시늉을 하자 쾌활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손가락 사이를 벌려 시야를 되찾자 보이는 건,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이의 웃는 얼굴. 그 모습에 사토루의 입꼬리도 뒤따르듯 올라간다. 행복하단 말은 이런 때에 쓰는 거겠지.

아빠로서 새로이 바뀐 삶은 새롭고 정신없지만, 모든 걸 상쇄시킬 수 있을 정도로 즐겁다. 마지막으로 당황한 게 언제인지도 가물하던 자신이 연신 허둥대기 바쁜 나날들.

“사토루 씨, 빨래 다 돌아간 거 건조기에 넣어줘.”

“네에, 본부대로.”

유우지의 부탁에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입을 바삐 움직이는 아이의 볼록한 이마에 작은 입맞춤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세탁기를 열자 아이 섬유유연제 특유의 파우더 향이 훅 풍긴다.

빨래를 나눠서 돌리는 게 귀찮아.

유우지의 명료한 말에 아이의 섬유유연제를 함께 쓰고 있는 요즘. 덕분에 분내를 풍기며 출근하는 최강 주술사가 되었다. 쇼코에게 누가 아기인지 모르겠다며 놀림 받고, 뒤돌아 웃음 참는 이지치까지 봐버렸지만 괜찮다. 물론 밀린 서류 작업은 죄다 이지치에게 떠넘길 작정이지만.

제 바람막이를 옷걸이에 걸던 유우지가 푸흡 웃음을 터트리고, 리모컨을 우물대던 아이가 물음표 가득한 표정으로 마마를 올려다보는 풍경이 좋았으니까.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다. 습관처럼 뿌렸던 향수 냄새보다 이쪽이 분명 몇 배는 더 좋다. 건조기에 집어넣기 전 축축한 옷감의 향내를 괜히 한 번 맡아본다. 포근하고 안정되는 냄새.

건조기를 돌리고 거실로 돌아오자 유우지가 빈 분유통을 흔들어 보였다. 고새 말끔히 해치운 모양이다. 배가 부른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 덩달아 웃음이 터졌다. 저와 유우지 둘 다 잘 먹는 편이라 누굴 닮은 건지 모르겠다. 이것도 유우지인 걸로 해둘까. 멋대로 정하고 좋을 대로 생각하기로 한다.

“이따 유모차 끌고 산책 다녀올까?”

“좋지. 돌아올 때 감자칩이랑 콜라도 사오자.”

“아, 오늘 치비 재우고 영화 보기로 했지.”

“응. 우리 작년에 극장 가서 본 공포영화 후속편. 졸작이지만 연출은 좋았던 거. 난 재밌었는데.”

엄청 무섭고 시끄러운 영화니까, 치비는 좀 더 크고 보자? 아이를 품에 안아 등을 가볍게 두들겨주며 유우지가 달래듯이 속삭인다. 아이는 안긴 게 마냥 좋은지 유우지의 어깻죽지에 제 볼을 부비며 연신 헤실거리고 있다.

나름 육아에 전념하고 있다고는 생각한다. 허나 일이 많아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한 탓인지, 아니면 마마라는 절대적 존재를 이길 수 없는 건지. 아이는 유독 유우지를 좋아하고 따른다. 아니면 자신을 닮아서일지도.

“그만 웃고 트림해야지!”

방실대는 아이의 모습은 사랑스럽지만, 낮잠에 들기 전 트림은 해야 한다. 유우지가 아이를 품에서 떼어 마주 보고 으름장을 놓자, 큰 소리가 우스웠는지 아이는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뜻밖의 반응에 유우지는 잠깐 멍하게 있다가, 이윽고 같이 웃기 시작했다.

두 사람분의 웃음소리가 거실을 온통 메운다. 고단했던 삶의 보답을 톡톡히 받고 있는 것 같다. 기분 좋은 소음에 집중하며 사토루는 느슨히 미소 지었다.

 


 

“치비 잠들었어?”

“응, 방금 막.”

자칫 힘을 실었다간 아이가 부서지기라도 할까 전전긍긍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런 때가 있었냐는 듯이 포동하게 살이 차올라 마디마디 겹치는 살들이 귀엽기만 하다. 부족하고 투박한 부모 밑에서도 잘 영글고 있는 작은 생명이 기특하다. 며칠 전에는 잇몸 사이로 하얗게 이가 올라온 걸 발견해 한바탕 난리를 벌였다.

‘어떡하지. 입을 안 벌려주는데? 울려볼까?’

‘간지러워서 보여주기 싫은가 봐. 많이들 그런다네. 사토루 씨, 애를 울릴 생각인 거야….’

그전부터 눈에 보이는 건 죄다 입으로 가져가기 바빠 곧 이가 나려나, 하고 막연히 넘겨짚긴 했다. 벌써 올라올 줄은 몰랐지만. 간지러운 모양인지 입술을 뭉개며 합 다물린 입매는 열릴 기미가 없었다. 얼마 전부터 분유 양을 줄이고 이유식을 시작한 참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먹는 걸 좋아하는 아이니 그땐 입을 벌려주겠지 싶어서.

예상은 그대로 들어맞아, 식사 시간이 되고 숟가락을 가까이하자 아이는 야무지게 입을 앙 벌렸다. 작게 올라온 치아가 귀여워 이유식을 먹이는 내내 저도 사토루도 아이 얼굴에 착 달라붙어 구경했다. 마마와 파파가 제게 집중하는 게 좋았는지, 아이는 한 그릇을 싹 비우고도 더 먹고 싶다는 듯이 실리콘 숟가락 끝을 물고 놔주지 않았다. 결국 반 그릇을 더 먹고서야 잠든 아이의 통통한 배를 문지르면서, 유우지는 과분할 만큼 행복한 감정을 만끽했다.

눈부시게 빛나는 아이의 성장을 직관할 수 있는 건 부모의 특권이다. 제 부모에겐 쥐어지지 않았던, 어쩌면 그들이 놨을지 모를 권리를 손아귀에 쥘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이 이런 기쁨을 누려도 되는 걸까. 막연한 불안이 사고를 스쳤다.

병원에서 퇴원해 아이를 데리고 집에 처음 온 날도 그랬다. 처음 셋이 들어선 현관, 기다림 속에 몇 달을 비워둔 아기 침대가 채워지던 순간. 사소한 것 하나에도 벅차오르는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문득 이 순간을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새롭기만 할 나날들의 첫 발자국을 영상 프레임 속에 한 컷 한 컷, 전부.

하지만 유우지는 휴대폰을 찾아드는 대신 품 안의 아이를 멀거니 내려다보았다. 휴대폰을 찾아가며 찰나를 놓칠 바에야 두 눈에 담아두는 편이 좋을 거란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옆에서 정신없이 찰칵거리기 바쁜 누구 씨 덕분이기도 했다.

신생아는 종일 잔다는 말마따나, 아이는 깨어있는 시간보다 꿈나라로 떠나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그런 아이와 함께 보내는 첫 새벽, 유우지는 모두가 잠든 사이에서 오도카니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사토루는 만류했지만, 적어도 3개월은 모유 수유를 하고 싶다고 고집을 부린 건 이쪽이었다. 부모로써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주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은 쪽잠을 잘 수 있는 타입이 아니다.

잦은 수유 텀은 전부 맞춰야겠고, 한 번 잠들었다간 일어나지 못할 것 같고. 한참을 이어진 고민의 귀결점은 밤샘이었다. 유우지는 몰려오는 졸음을 뿌리치면서,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가족들을 시야에 담았다. 아이는 곤히 숙면하고 있고, 제 옆에서만 깊게 잠들 수 있는 사토루는 새근히 숨을 내쉬고 있다.

평온한 밤을 누리고 있는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서, 유우지는 조용히 눈가에 맺힌 물기를 닦아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싶은 상념에서 비롯된 눈물이었다. 제 조부에게 아이를 안겨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늘 구기기 일쑤였던 미간을 풀어 당신 딴엔 최고로 상냥한 미소를 내비쳤을 것이다.

이뤄질 수 없는 풍경을 그리면서 유우지는 연신 눈언저리를 부빗거렸다. 아이가 조금만 더 크고 나면 다 함께 할아버지를 뵈러 가자. 기쁨과 행복과 그리움이 뒤엉킨 세 가족의 첫날 밤은 그렇게 저물었다. 밤샘 수유는 컨디션을 걱정한 사토루에게 엄금되어 이틀 만에 막을 내렸다.

유우지의 고집을 한풀 꺾어 낮에는 모유, 밤에는 분유를 먹이는 혼합 수유로 타협했다. 밤중 수유는 사토루 담당. 자신은 짧게 자는 습관이 오래 들어 괜찮다고 했다. 출산 직후인 유우지의 안정이 최우선임을 강조하면서.

“이리 와.”

잠든 아이를 방에 뉘이고 나오니 소파에 앉아있던 사토루가 양팔을 벌리며 자신을 부른다. 아이가 깨지 않도록 살그머니 문을 닫고 사뿐히 걸어간다. 아이는 잠귀가 어두운 편이긴 하지만 잠든 직후는 언제 깰지 몰라 조심하는 편이다. 옆에 나란히 앉자 계속 벌리고 있던 팔이 제 몸에 휘감긴다. 꼭 포박이라도 당한 모양새라고 속으로 키득거리며 마주 안았다.

“오늘도 고생했어, 유우지.”

“으응. 사토루 씨도.”

단조롭게 반복되는 매일에도 사토루는 언제나 제게 고생했다고 안아주며 등을 두들겨준다. 넓은 품과 익숙한 리듬감이 좋아 유우지는 이 순간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안정된 가정을 만들어준, 혼자 남았던 제게 다시금 가족이라는 형태를 꾸려준 사람. 오늘도 무사히 지나간 평온한 하루에 안도감을 느낀다.

이 세계에 몸담고 알게 된 건 무탈한 하루의 진귀함이다. 별일 없는 일상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사랑하는 이가 옆에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사토루와 자신은 소중한 사람을 몇이고 떠나보냈으니까.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손 틈새로 너무나 많은 것들을 흘려보냈다. 그렇기에 더더욱 지금에 감사하고 순간에 전념한다. 유한한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해 행복하려 애쓰고 있다.

“사토루 씨, 고마워.”

“갑자기? 또 혼자 무슨 생각을 한 걸까나.”

곱씹다 보니 마음이 벅차올라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다. 안정된 행복의 형태를 제게 안겨준 사내가 마냥 고마워서. 품에 폭 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리자, 사토루는 의아하다는 듯이 웃으며 제 앞머리를 정리해주었다. 이마에 내려앉아 조심스레 머리칼을 쓸어올리는 손길이 다정하다. 깨지기라도 할 새라 소중히 만져주는, 투박한 손의 여린 움직임. 단숨에 의중을 꿰뚫는 예리함과 대비되는 상냥함이다. 오롯이 자신만이 아는 모습.

불쑥 찾아온 아이 덕에 식도 올리지 않고, 조용한 집에서 반지를 나눠 끼며 앞으로를 약속했던 날. 그날부로 이 다정함은 평생 제 것이 되었다. 하지만 좀 더 갖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이 전부를 제게 주면 좋겠다. 이미 그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좀 더 바라게 된다. 사토루와 함께하면서 저조차도 몰랐던 독점욕과 소유욕을 알아차리게 됐다.

그런 자신을 감당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자, 외려 더한 무게로 짓눌러오는 사람. 이 무게가 기쁜 자신은 아마 동류일 것이다. 우리는 여러모로 닮았으니까. 아까 아이가 제게 얼굴을 부볐던 것처럼 사토루의 가슴팍에 뺨을 문댄다.

한참을 말없이 끌어안고 있으려니 재차 알려주지 않을 거냐며 귓가에 속닥거려온다. 사근한 목소리와 숨결이 간지러워 웃음이 터졌다. 아직도 간지러운 듯한 귓가를 문질거리면서, 유우지는 한참을 뜸 들인 후에야 겨우 운을 떼었다.

“나한테 가족을 만들어 준 게 고마워서.”

줄곧 생각해왔지만 막상 말하기엔 낯간지러워 입 밖으로 내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품에 안겨있어 마주 보지 않아도 되니 지금이면 괜찮겠지. 괜한 멋쩍음이 몰려와 사내의 품에 더 파고들었다.

“그쪽이었나…. 하지만 틀렸네.”

“에?”

“내가 유우지한테 만들어 준 게 아니야.”

우리가 같이 만든 거지. 다정한 속삭임에 문득 어떤 날의 대화가 떠올랐다.

언젠가 사토루가 말한 적이 있었다. 가족애라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태어난 순간부터 차기 당주로 낙점되어 엄하게 큰 탓에 따뜻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집안의 분위기도 그리 살갑지 않아 부모에게 어리광 피워본 기억도 없다고.

그날 사토루의 말을 듣고 제멋대로 다짐한 게 있었다. 이 사람의 온기가 되어주자고. 자신은 할아버지가 서툴게나마 사랑을 담뿍 담아 키워주셨으니, 받은 만큼 고스란히 이 사람에게 되돌려주자고. 막연히 다짐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가. 자신도 이 사람에게 가족을 만들어준 건가. 그때의 다짐을 지켰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귀여운 치비를 낳아준 건 유우지니까, 내가 받은 게 더 크네.”

“그건 그렇네.”

듣고 보니 사내의 말대로다. 어렵사리 열 달을 품어 낳은 건 자신이니까. 아이가 세상의 빛을 처음 본 날, 제 아랫배에 새겨진 훈장을 잠자코 어루만진다. 맨살을 맞부딪힐 때 사토루는 이곳에 입 맞추는 걸 유독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좀 더 받고 싶은데, 영화는 내일 볼까?”

“아니, 오늘 볼 거야. 주인공이 사는지 죽는지 궁금하고.”

“아, 내가 찾아봤는데 산대. 대신 주인공 절친이 죽어. 엄청난 반전이지?”

“엄청난 스포일러잖아….”

“이제 궁금한 건 끝? 자, 그럼 방으로 들어가 볼까.”

몇 년을 함께 해도 변함없는 사람이다. 애초에 이럴 요량으로 결말까지 찾아놓고 기다린 건가 싶다. 예나 지금이나 무거운 자신을 가뿐히 안아 드는 사내의 목에 팔을 두르면서, 유우지는 맥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앞으로의 몇 년도 그대로일지 지켜보잔 생각을 하면서.

 

이렇게 오늘도 아무 날도 아닌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 간다.

사랑하는 이들의 온기로 가득 찬, 일상의 한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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