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죠유지] 지옥으로의 초대

즐거운 지옥에서 함께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

Adore U by 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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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은, 고맙지만… 미안.”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돌아온 대답은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런 반응은 상정 외랄까, 오히려 거절의 말을 던진 쪽이 울기 직전인 얼굴이라 좀 놀랐달까. 잔뜩 붉어진 낯을 감추고 싶은지 푹 수그러지는 동그란 머리통. 그와 함께 긴장감에 곰질거리는 손가락을 가만히 바라본다. 누가 보면 차인 쪽인 줄 알겠네.

“나, 선생님이랑 사귈 수 없으니까.”

고죠 사토루. 태어나서 처음 해본 고백을 거절당했다.

 

지옥으로의 초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범상치 않다고는 생각했다. 제 덕에 사형을 겨우 면한 주제에 저주로 죽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거냐고 물어오던 아이. 당장 본인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제 앞에서 다른 이들을 걱정했다. 그건 처음 보는 이형의 괴물에게 거침없이 뛰어들고, 고약한 손가락 따위를 삼키는 것보다도 더 놀라운 일이었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이타적일 수 있을까.

역시 미쳐있다고 생각했다.

싫지 않았다. 외려 흥미가 일고, 재밌겠단 생각이 불쑥 튀어 올랐다. 어차피 미쳐있는 건 이쪽도 매한가지다. 그러니 처음 만난 아이에게 대뜸 지옥을 운운한 거겠지만. 각설탕을 담뿍 쏟아부어 컵의 끝까지 찰랑하게 차오른 커피를 홀짝인다. 텁텁한 끝맛만이 입안에 남는다.

주술계는 지옥이다. 명실상부 최강인 자신에게도 주술계는 마의 소굴이랄까, 지옥이란 단어가 걸맞는 곳이다. 턱도 없는 인력에 늘 손이 부족하고, 이익만을 꾀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썩은 귤들이 범람하는 곳. 유감스럽게도 그런 주술계와 고죠 사토루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다. 자신이 태어남으로 인해 주령들이 강해지고 급이 높아졌으니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모든 시간이 지옥이었던 건 아니다. 동등하게 서 있을 수 있었던 동료이자 유일한 친우가 있었다. 그때도 지긋하긴 매한가지였지만 적어도 지옥은 아니었다. 이제는 어디까지나 과거로만 남게 된 이야기로, 사토루는 단 한 명의 최강이 되었다.

혼자가 되고서 주술계는 끝나지 않을 지옥임을 절감했다. 썩어빠진 주술계를 리셋하기 전까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방식은 확실한 대신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품이 많이 든다. 좀 더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제자들을 육성하며 불길이 잔뜩 범람하는 지옥을 뒹굴고 있던 제게 유우지가 톡 굴러왔다. 임팩트로만 따지면 폭탄급의 등장이었지만, 어쨌거나 사토루에겐 품 안에 들어온 인재였다. 분명히 위험성은 있지만 잘 키우면 어깨를 나란히 할 동료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간만의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래서 잔뜩 부푼 기대가 펑, 하고 터져버렸을 때의 충격은 꽤나 컸다.

스쿠나의 그릇을 두려워한 썩은 귤들의 농간에 어이없게 어린 목숨이 날아갔다. 가슴에 시원하게 뚫린 구멍을 보면서, 사토루는 어쩐지 제 가슴에도 같은 지름의 구멍이 뚫린 듯한 착각이 일었다. 괜히 가슴팍을 문질러봤다. 너른 손바닥에 옷감이 쓸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어쩐지 듣기 싫게 느껴졌다.

고작 만난 지 2주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아이의 죽음에 자신이 허탈함을 느끼고 있단 걸 깨달았을 땐,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수도 없이 본 타인의 죽음.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최강이란 건 더 오래 알고 지낸 이들도 떠나보내야 하는 자리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사토루는 부검실에 앉아 하얀 천이 덮인 아이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치의 보고는 예상대로였다. 스쿠나의 손가락을 삼킨 그릇에 지레 겁을 먹고 처리한 것이다. 계획을 보기 좋게 방해한 상층부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잇새가 다물리고 비틀려 뿌득 소리가 났다. 계획을 방해받은 것만큼 아이의 죽음에 대해 화가 났다. 연유 모를 일이다. 감정적으로 굴어봤자 전혀 득 될 게 없는 세계란 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데.

‘그냥 위에 있는 놈들, 다 죽여버릴까?’

그저 이 일의 화근을 없애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무심결에 튀어나온 말은 옆에 있던 이지치를 놀라게 했고, 오랜 친구인 쇼코에게 드물게 감정적으로 군다는 지적까지 받게 했다. 그제야 겨우 자각했다. 저답지 않게 굴고 있단 것을.

‘교사 따윈 내 스타일도 아닌데, 그런 내가 왜 고전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지 한 번 물어봐 줘.’

‘왜인가요…?’

‘꿈이 있어서야.’

그날 알게 된 건 자각을 한다고 해서 바로 추스를 수 있는 건 아니란 사실. 감정적인 상태는 계속 이어져, 10년 가까이 알고 지낸 이지치에게 처음으로 제 꿈까지 이야기했다. 곱게 자란 도련님의 철없는 생각처럼 느껴질까 입 밖에 낸 적 없는 꿈이었는데도. 말하면서도 스스로가 이상하단 의식은 있었다. 너무나도 당연히 앞으로 바꿔나갈 미래에 만난 지 겨우 2주인 아이를 끼워 넣은 자신이.

‘우왓! 홀딱 벗고 있잖아!’

분명히 가능했을 미래를 곱씹으며 주먹을 꽉 그러쥐고 있을 때, 누워있던 아이가 몸을 일으켰다. 터져 나오는 웃음은 애써 참지 않았다. 한참을 웃고 난 뒤 아이에게 다가가 어서 오라고 손을 들어 환영했다. 그에 다녀왔다며 손을 맞부딪혀오는 유우지는 함께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안심이 됐다. 자신이 누군가로 인해 안심된다는 감정을 다시 느끼게 될 줄은 몰랐는데.

유우지는 돌아왔다. 제 곁을 떠난 이들 중에 다시금 돌아온 사람은 유우지가 유일했다. 그 사실이 못내 각별히 여겨졌다. 그래서 사토루는 아이를 바로 내비치는 대신 등 뒤로 감추는 쪽을 골랐다. 두 달 동안 유우지를 숨겨두기로 한 것이다. 곧장 복귀시켰다간 상층부가 또 재미없는 일을 꾸밀 게 분명하니까.

미안하지만 유우지는 단시간 내에 강해져야 한다. 청춘을 누리기 위해선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하니까. 아이의 청춘을 짓밟는 건 누구라도 용서할 수 없다. 가능하면 마음껏 구가하게 해주고 싶다.

이유는 명료했다. 그때의 자신도 행복했으므로.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푸른 봄을 만끽할 때 사토루는 즐거웠다. 그러니 누릴 수 있는 건 전부 누리게 해주자고, 막연히 생각했다.

‘최강을 가르쳐줘.’

교편을 잡은 이래로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불과 2주 전까지 주술계와 아무런 연이 없던 아이. 최강이라는 두 음절에 어떤 무게가 실려있는지 알 리 만무하다. 무지에서 비롯된 말이겠지만, 아이의 당참이 싫지 않았다. 올곧게 향해오는 시선도 맘에 들었다.

신체 능력은 인간인가 싶게 월등하지만, 주술사로서의 재능은 제로. 하지만 어떤 잠재력이 내재 되어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아이. 저주의 왕 스쿠나를 품어버린 천 년만의 인재. 흥미가 이는 요소들 뿐이다. 옆에 두고 입맛대로 키워보고 싶어졌다.

유우지가 살아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한 손에 꼽을 만큼 극소수이므로,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자주 들여다보게 되었다. 오전에 고전을 나서기 전에, 임무 사이의 빈틈에, 일이 전부 끝난 밤에. 저도 모르게 홀린 듯이 지하실로 발길을 옮기게 되었다. 유우지의 담임이니까 당연하잖아. 그렇게 넘기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언제나 댁으로 모셔드리겠다고 하던 이지치의 입에서 고전과 댁 중 어디로 갈까요, 하고 물음이 띄워지게 될 정도로 빈도수가 점차 높아졌다.

‘고전으로 가줘.’

그리고 망설임 없이 고전을 고르게 됐을 때는 마음 한구석에 의아함이 피어올랐다. 물론 아이 혼자 지하실에 두고 있으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이 그 정도로 타인을 걱정하는 인간이었던가. 스스로 던진 질문에 답을 고르지 못한 채로 고전에 다다랐다. 약간은 빠른 걸음으로 지하실에 들어서자 제 구두 굽 소리에 바로 뒤를 돌아보는 아이가 있었다.

‘어서 와, 고죠 선생님!’

제게 쏟아지는 햇살 같은 미소를 보면서, 겨우 아까의 질문에 답을 찾았다.

그저 이 웃는 얼굴을 보고 싶었던 거라고.

 


 

두 달 동안 유우지는 배우며 성장하고, 절망하고, 넘어지기도 했다. 늘 생글하게 웃던 유우지의 눈물을 처음 보게 되었다. 처음 사람을 죽여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 사귄 친구를 잃은 것이다. 나나미에게 상황을 전해 듣고 곧장 찾아간 지하실에서 유우지는 울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울음소리도 삼켜가며 서럽게. 그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사토루는 저도 모르게 아이에게 다가가 옆에 나란히 앉았다. 한참을 기다려준 끝에야 유우지의 말문이 어렵사리 트였다.

‘쥰페이를 구하지 못했어….’

넘어진 아이에게 손을 내밀기보단 일어서는 법을 가르쳐준다. 그동안의 교육 지론이 무색하게 몸이 먼저 움직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유우지를 끌어안고 있었다. 아이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웅얼대며 품 안에서 무너졌다. 선생님처럼 구는 건 이다음에 해도 괜찮겠지. 대신 오늘은 의지할 수 있는 보호자로 있어 주기로 한다. 어깻죽지가 차츰 젖어 들어가는 걸 느끼면서, 사토루는 한 품에 들어오는 등을 가만히 쓸어주기만 했다.

결코 작지 않은 단단한 몸이지만 속은 여리다. 너무 올곧은 아이라 꺾이게 될 순간이 걱정이라고 계속 생각했었다. 지탱이라도 해줄 수 있음에 다행이란 맘을 품으면서도, 어쩐지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졌다. 자신이 타인을 이 정도로 걱정했던 적이 있던가. 와중에 제 옷자락을 느슨하게 잡아 오는 아이가 귀엽게 느껴져 생각을 멈추었다.

‘다 울었어?’

‘…응.’

실컷 울고 난 뒤 축축해진 제 어깨를 보고 화들짝 놀라는 유우지는 귀여웠다. 발갛게 물든 눈가도, 불안정한 호흡의 틈마다 코를 훌쩍이는 모습도 전부. 제자를 이렇게나 귀엽게 여긴 적이 있었던가. 그간의 기억을 되짚어봐도 유우지가 처음이다. 제게 유독 살갑게 구는 아이라 그런 거겠지, 하고 애써 넘겼다.

친구를 잃고 한 뼘 더 성장한 아이는 주력 조작 수행과 대련을 반복하면서 간간이 임무에 나갔다. 어느덧 교류회를 코앞에 두고 유우지의 복귀가 다가오자 어쩐지 심란해짐을 느꼈다. 이제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일도 줄어들겠구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신이 아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동안 유우지를 독점하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던 건가.

그제야 자각했다. 자신이 유우지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어딘가 막혀있던 곳이 뻥 뚫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근래 들어 개운치 않았던 마음이 겨우 후련해졌다. 그랬구나. 유우지를 좋아하게 됐구나. 비상용으로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초콜릿을 하나 꺼내 들었다. 느릿하게 포장을 뜯어 입안으로 밀어 넣으면서 계기를 찾아봐도 딱히 기억나는 건 없다. 혀에 내려앉은 초콜릿이 녹아드는 걸 느끼며, 이와 별반 다르지 않겠지 생각한다.

어쩌면 즐거운 지옥이 되겠다고 웃어 보였던 그날부터 서서히, 서서히.

 


 

“얏호, 유우지-”

오전의 임무는 두 건. 송사리들을 가볍게 퇴치하고 잠깐 들른 고전에서 유우지를 마주쳤다. 음료 마시길 좋아하는 아이니까 자판기 쪽에 있지 않으려나 했던 생각이 맞아 들었다. 경쾌한 제 부름에 움찔하는 뒷모습이 귀엽다. 그야 놀랄 법도 하다. 아침에 고백을 걷어찬 사람이 기분 좋게 자신을 부르고 있으니.

“이제 임무 가는 길? 오늘은 한 건밖에 없지?”

“어? 응….”

팽글팽글 어지럽게 돌아가던 눈동자가 제 물음에 딱 멈춘다. 어떻게 알았냐는 눈치다. 선생님답지 않게 굴고 있단 자각은 있지만, 일단은 명색이 담임인데. 겨우 셋인 제자들의 임무 스케줄 정돈 당연히 파악하고 있다. 물론 귀찮아서 넘기는 날도 있지만.

“이따 임무 끝나면 바로 고전으로 돌아올 거지?”

“아마도…?”

“나도 오후에 일이 있으니까, 끝나고 유우지 방으로 갈게.”

“에? 내 방?”

“응. 그러니까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그리 말하며 머리에 톡, 손을 얹자 기다렸단 듯이 아이의 볼에 홍조가 피어오른다. 뒤늦게 달아오른 얼굴이 느껴졌는지, 숨겨볼 요량으로 고개를 푹 숙여도 이미 들킨 지 오래다. 아아, 역시. 예상대로의 반응에 사토루의 입꼬리가 보기 좋게 올라갔다.

사토루가 감정을 자각한 후,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 하나 더 있다.

실은 유우지도 자신을 꽤나 좋아한다는 것. 당연히 존경 이상의 감정으로.

 

임무 세 건을 연달아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다 넘어가는 시간. 늘 그렇지만 주령을 퇴치하는 시간보다 이동시간이 더 소모된다. 운전은 이지치가 했다지만 장시간 차에 앉아있으면 뻐근하긴 이쪽도 매한가지다. 사토루는 목을 가볍게 돌려가며 기숙사 방문을 두들겼다. 유우지가 문단속을 철저히 할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타인의 공간에 들어가기 전 배려라고 할까.

타박타박, 맨발이 바닥에 달라붙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슬리퍼는 자주 까먹는 타입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으면 손잡이가 돌려지고 달칵 문이 열렸다. 이윽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유우지가 보여 저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접었다. 불투명한 안대 너머로 아이는 모를 웃음을 흘린다.

“선생님 뭐라도 마실래?”

“음, 괜찮아.”

쭈뼛거리는 유우지를 뒤로 한 채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고 보니 기숙사에 입주했던 날 이후로 첫 방문이다. 일전 신어본 적이 있는 손님용 슬리퍼에 발을 꿴다. 의외로 깔끔한 구석이 있는 유우지 답게 말끔히 정돈되어 있는 방이다.

아니면 자신이 올 것을 대비해 정리해둔 거려나. 사토루는 별반 달라지지 않은 방을 넓게 훑었다. 유우지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붙였던 침대 옆 벽면 제니퍼 로렌스 포스터도 그대로다. 저건 나중에 꼭 떼버리겠다고 속으로 다짐한다.

“선생님, 할 말이 뭐야?”

시답잖은 생각을 이어나가고 있자, 침대 끄트머리에 내려앉은 유우지가 조심스럽게 의문을 띄워온다. 이곳에 온 목적을 반추해주는 아이의 말에 실없는 탄성을 내뱉었다. 맞다. 이야기를 하러 온 거였지. 침대 쪽으로 여유로이 걸어가 아이의 앞에 선다. 잔뜩 일렁이는 호박빛 눈방울의 동요가 사랑스럽다.

역시 자신을 봐주는 이 눈동자가 좋다. 계속해서 마주 보고 싶어진다.

언젠가 아이가 제 눈을 보고 예쁘다고 칭찬해준 적이 있지만, 실은 유우지의 눈이 몇 배는 더 예쁘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계속 이 짙은 호박빛에 사로잡혀 있다. 가림막 없이 시선을 얽히고 싶다는 정념에 사로잡힌다. 틈새로 검지 손가락을 밀어 넣어 안대를 끌어 내렸다. 이로써 둘 다 가리는 것 하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오늘이야말로 유우지의 경계막을 깨트려볼 작정이다.

“우리 사귈까?”

“에?”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아침에 인사처럼 건넸던 고백을 다시금 돌려주자 놀란 기색이 역력하다. 하기야 아침에 차인 사람이 다시 고백할 거라곤 생각 못 했겠지. 미안하지만 지지부진한 건 딱 질색이라 더 기다려줄 마음은 없다. 사실 미안하지도 않다고 말하면 얄궂다고 토라질까.

유우지는 스쿠나의 손가락을 삼킴으로써 공진을 일으켜 주령들이 날뛰게 만들었다. 마치 지척의 누구처럼. 그러니 업보를 청산하듯이,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주령을 퇴치해야 하는 입장인 건 저와 마찬가지다. 기나긴 길의 동행자로 적격이니 이만 굽히고 넘어와 줬으면 하는데. 원하는 걸 앞에 두고 보고만 있는 건 제 성미에 맞지 않는다.

“…아까도 말했지만, 미안….”

대답과 함께 내리까는 시선은 한없이 불안정하다. 오전에 제 고백을 거절할 때도 그랬다. 태연하게 내뱉는 말과 달리 일절 마주치지 않는 눈. 평소엔 마주 보고 얘기하는 걸 좋아하면서. 참으로 알기 쉬운 타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우지, 날 좋아하잖아.”

틈을 파고들어 콕 찌르자 어떻게 알았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떠온다. 약간의 물기가 어려 평소보다도 더 반짝이는 호박빛. 코앞의 광경이 못 견디게 귀여워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설마 모르고 있었을 거라 생각한 걸까. 그간 티를 잔뜩 내왔다는 자각도 없는 듯하다. 역시 귀엽고 서투르며 어여쁘다. 그래서 더 이상 여유 부릴 수 없게 됐다. 아이가 잘근거리고 있는 입술을 삼키고 맛보고 싶어진 지 오래니까.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자각하고 있다.

“내 착각이야? 그럼 싫다고 말해줘 유우지. 사귀기 싫다고.”

“…….”

“그럼 나도 깨끗이 단념할 테니까.”

물론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좀 더 명확한 한 방이 필요했다. 몰아붙이는 모양새가 된 건 유감이지만, 기다리는 건 이제 무리니 봐줬으면 한다. 울기 직전의 얼굴이 된 유우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손만 꼼지락대고 있다.

역시 거짓말이 서투른 아이다. 지금도 제 고백을 거절하고 있는 주제에 싫다던가 하는 말은 일절 없다. 매몰차게 굴진 못할망정, 차는 쪽이 더 아프다는 듯이 굴고 있다. 바보 같고 사랑스러운 유우지. 거절할 땐 모질게 굴어야 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못된 어른이 물고 늘어지니까. 손끝을 괴롭히던 유우지는 기어코 작게 피어오른 핏방울을 보고 나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나는… 손가락을 다 먹고 나면 죽어야 할 몸이잖아.”

“유우지.”

“그런 내가 살아있는 동안 행복하겠다고 선생님이랑 사귀는 건.”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닐까?

그리 말하며 유우지는 조심스럽게 사토루와 시선을 맞췄다. 잔뜩 요동치는 눈빛에 걱정과 불안이 가득 서려 있다. 예상과 전혀 벗어나지 않는 대답에 사토루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나네. 유우지가 좋지 않은 머리로 대체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는 걸까- 했는데.”

제 말에 째릿, 하고 세모눈을 떠오는 모습에 분위기와 맞지 않게 웃음이 났다. 사토루는 몸을 수그리고 앉아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부슬한 머리칼을 매만져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손가락 사이사이를 파고드는 감촉이 좋다고 생각하면서. 결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유우지의 것이면 뭐든 좋다는 감상이다.

“살아있는 동안 행복하고 싶은 건, 인간의 당연한 욕망이야. 유우지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느끼는 마음이지. 물론 거기에 나도 포함되고.”

“…….”

“나도 행복하고 싶어. 그 행복은 유우지가 있어야 가능한 거야. 주술사는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살아있는 동안 더 누려야 해. 내가 유우지보다 먼저 죽을지도 모를 일이야.”

“선생님!”

“내가 죽는단 소리 하니까 듣기 싫어?”

“싫어! 당연하잖아.”

“근데 유우지는 왜 계속 죽는 얘기만 해?”

당장이라도 쏘아붙일 듯하던 기세가 보기 좋게 꺾였다. 유우지는 말문이 막힌 듯 한참을 입만 벙긋거렸다. 분명 사토루와 첫 대면 때, 자신은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주술계에 몸을 담은 후로 점차 제 안에서 ‘이타도리 유우지’보다 ‘스쿠나의 그릇’이란 존재감이 커졌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제게 있어 죽는다는 생각이 당연해졌음을 깨닫는다. 좀 더 많은 이들을 구하고, 여럿에게 둘러싸여 죽겠다는 본분에만 충실해 있었다.

“…하지만…….”

“유우지.”

제 이름을 불러오는 음성은 단호하면서도 어딘가 다정한 구석이 묻어났다. 사내의 이 다정함이 못 견디게 좋았다. 성격이 좋지 않다고 스스로 입에 담는 주제에 실은 누구보다도 상냥하다. 스쿠나의 그릇으로만 불리는 이 세계에서 이타도리 유우지로 있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준 사람이다.

“살고 싶다고 생각해주면 안 돼?”

“…….”

“유우지가 죽는 것만이 정답이 아냐. 살고 싶다고 해줘. 같이 방법을 찾자.”

“선생님….”

“유우지 덕에 겨우, 겨우 지옥이 즐거워진 거야.”

“…….”

“너까지 내 곁에서 떠나지 말아줘.”

내 지옥에서 함께 해줘, 유우지.

사토루는 그리 말하며 아이의 손을 끌어다 제 뺨에 내려놓았다. 결 좋은 피부가 손바닥에 감기는 촉감에 유우지는 작게 등을 떨었다.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 모두에게 숨겨온 약한 구석을 제게만 비쳐오는데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이 사내에게 유일한 존재라는 걸 자각함과 동시에 이루 말할 길 없는 충족감과 자만심이 차오른다.

좋다. 좋아한다. 참을 수 없이 좋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입이 조금이라도 열리면 계속해서 같은 말만 뇌까릴 것만 같았다. 하릴없이 샘솟는 이 마음을 누를 수 있는 방법 따위 모른다.

설령 있더라도 알고 싶지 않다. 가능하면 평생 모르고 싶어졌다. 이 사람이 떠나지 말아 달라고 하니까. 같이 수렁에 빠져들자고 하니까. 앞다투어 내고 싶은 말이 차고 넘쳐 입을 열기가 어렵다. 그중 사내가 가장 듣기 좋아할 법한 걸 골라 전해주고 싶은데.

말을 전하기까지의 찰나, 어느 것 하나라도 먼저 건네주고 싶어 고개를 숙여 사내의 이마와 제 이마를 맞부딪힌다. 겹친 피부 사이로 달뜨게 오른 열을 먼저 넘긴다.

 

사토루가 지옥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없어졌다.

그 길을 직접 봉쇄한 건 사토루다. 두 번 다시 열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즐겁게 만들어줄 수는 있다. 유우지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지옥 속에서 함께 웃자.

 

“…아까 대답, 다시 해도 돼?”

 

제 말에 새파란 바다를 머금은 눈이 가늘게 휘어진다. 사실 먼저 좋아하게 된 건 이쪽이라는 말은 나중의 기쁨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우선은 제 품에 안겨든 기다란 몸을 꼭 끌어안아 주는 것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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