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프롤로그

Prologue. 마지막 잎새

타임터너 (Time turner) [해리포터 패러디/말포이루트]

피부로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에 뼛 속 깊숙히 한기가 감돌았다.

그 것은 어쩌면 리아의 발 밑에서 들리는 어떤 악마의 목소리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늘, 여기. 말포이 저택에 아주 특별한 손님이 왔다.”

리아는 두 눈이 가려지고 두 손이 결박된 채 공중으로 2미터쯤 띄어져 방치되어 있었다.

“그래, 드레이코. 네가 알아보는 이 소녀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와 함께 호그와트에 재학중이었지.”

누군가는 그녀의 탐스러운 주홍색 머리카락을 보며 침을 뱉거나 낄낄대며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놀랍게도 이 학생은, 순수혈통이다. 그러나, 동족 배신자 집단 가문의 일원이지. 그대들도 아는 위즐리의 딸이다.”

뱀처럼 쉭쉭 거리는 목소리에 이마에서 식은 땀을 흘릴 법도 했지만 리아는 두려움에 떠는 미동조차 없이 그저 떠있었다.

“윔테일 어서 뭐하나? 이 아이의 눈에 감긴 안대를 풀어주도록. 손님에게 대우가 너무 형편없지 않나? 중요한 손님인데 내가 언제 이렇게 무례하게 모셔오랬지?”

땅딸막한 키의 난쟁이가 콩콩 뛰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리아의 두 팔과 두 손을 묶고 있는 재갈이 휙 소리를 내며 풀리고 이어서 두 눈에 감겨있던 안대와 입을 묶고 있던 재갈도 풀려졌다.

갑작스러운 빛에 눈이 시려야 정상이지만 저택 안이 워낙 어두침침한 탓에 딱히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리아는 감겨있던 두 눈을 떴다. 그 곳에는 새까만 개미처럼 한데 모여 굴을 지은 죽음을 먹는 자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그러므로 리아는 짐작했다. 이들의 수장인 볼드모트는 아마 그녀의 뒷편에서 앉아있을 것이라고.

그녀는 눈동자만 살짝 돌려 주변 한바퀴를 돌렸다. 그러다, 드레이코 말포이를 보았다.

드레이코와 리아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 드레이코는 마치 뭐랄까 숨조차 쉬지않아 딱딱하게 굳은 미라와 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리아는 기숙사는 달랐고, 표면적으로는 누구보다도 서로에게 적대적이었던 그를 바라보았다. 마음 한 켠에 애틋함이 있었다. 아, 뭔가 저 아이와 추억이 많았던 것 같아. 하지만 기억은 나지 않아.

‘그치만 전해야해. 내 의지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어. 저 아이에게 지금 내 주머니 속에 있는 물건을 전달해줘야한다고.’

이 사실조차 볼드모트에게 들켜서는 안됐던 리아는 말포이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스스로에게 오클러먼시를 시전했다.

4학년. 볼드모트 부활의 저지에 실패하고 이 말포이의 저택에 잡혀오기 전까지 매일 밤 수없이도 많이 연습했던 주문이었다. 성인마법사. 그것도 악명을 전세계적으로 떨친 악마를 상대로 마음의 빗장을 단단히 걸어잠그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일테다. 그러나 끝까지 노력하고 싶었다.

“오, 놀랍게도 작은 꼬마 숙녀는 놀라운 마법을 쓸 줄 아는구나. 훌륭하구나 훌륭해. 이토록 단단한 문을 보여주다니. 만약 네가 동족의 배신자 집단의 후손만 아니었다면. 나는 너를 죽음을 먹는 자에 입단시켰을지도 모른다.”

간드러지는 간사한 톤으로 쉭쉭대는 뱀 혓바닥 같은 목소리를 들으며 리아는 감았던 두 눈을 떴다. 그리고 피식하고 그 말을 비웃었다.

“풉.”

마치, 지역의 텃새권을 장악하기 위해 끊임없이 지저귀는 종달새처럼.

 유리구슬처럼 가볍게 흐트러지는 웃음소리에 시끄럽던 주변이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왜 그렇게 웃지?”

볼드모트는 매우 흥미롭다는 듯 눈 앞의 소녀가 낸 소리의 의미를 되물었다. 그러자,

“그걸 왜 묻지?”

리아는 당연하다는 듯이 되물음을 던졌다.

“뭐라?”

“딱 봐도 모르겠어. 지금 비웃는거야. 그 쪽 제안.”

그 말에 사방에서 끼이익- 소리를 내며 의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주인의 말을 무시하고 비웃는 어린 마법사에게 분노한 죽음을 먹는 자들이 하나 둘 씩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감히, 새파랗게 어린 년이!”

누구보다도 볼드모트에게 충직한 수하, 벨라트릭스 레스트랭은  이 어린 마법사의 만행을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듯.

천장을 뚫는 괴성을 지르며 리아의 머리채를 억쎄게 잡아쥐어 강제로 그녀의 고개를 들어올렸다.

리아는 각오했다는 듯이 표정 하나 일그러지지 않았다.

되려 그렇게 자신을 들어올린 벨라트릭스의 얼굴에 침을 퉷하고 뱉었다.

“손 놔. 이 살인마야. 너 따위가 잡으라고 어머니께서 아침부터 내 머리를 땋아주신게 아니거든. ”

핏발이 가득 선 두 검붉은 눈동자를 똑같이 잔잔하게 응시하며, 리아는 한단어 한단어를 못 밖듯이 이야기했다.

자리에 있는 수 많은 죽음을 먹는 자들이 한가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리아 조차도 잊은 사실이 한가지 있었다.

바로, 리아의 육체 속에 있는 본체는 다른 사람이며.

그 다른 사람은 영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녀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었다. (가상으로 실제 역사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끔찍하고 잔인한 고문을 받고도 억척스럽게 두 눈 하나 깜빡안한 여성이 그녀의 선조였다.

배짱 하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것이다.

리아의 고함소리에 드레이코 말포이는 그 상황을 말리고 싶었는 듯 입가를 씰룩거리고 고개를 저으려하며 안달복달했다. 일그러진 갈색 눈동자와 정확히 마주치자 리아는 그만 볼 수 있도록 싱긋 입꼬리를 올렸다.

혹시라도 환하게 웃으면 주변의 죽음을 먹는 자들이 눈치라도 챌까 아주 살짝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마법은 이루어졌다.

소년은 알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소녀의 저 미소는 서로 만이 아는 표식이라는 것을. 수업시간마다 서로에게 무언가를 비밀스럽게 전달해줄 때의 장난스런 표정이었다.

소년은 불현듯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바짓주머니에 두 손을 넣었다.

동그란 무언가가 잡히고 그는 그 손을 그대로 바지에서 빼지 못한 채 굳었다.

손에 잡히는 물체를 타고, 무언가 기운이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소년은 불현듯 그 것이 소녀의 기억이라는 것을 눈치챘고 얼른 물체에서 손을 땠다. 이 곳은 제 주인이 관장하는 영역이라는 것을 잊지 않은 탓이다.

드레이코는 주문에 약했고, 오클러먼시를 할 줄 알았으나 리아 위즐리처럼은 하지 못했다. 너무 중요한 것이었다. 이 곳에서 읽을 내용들이 아니었고 그 것을 들켰을 때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리아도 그 것을 알았는듯 전언을 소년의 머릿속에 남겨두었다.

‘움직이지마.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너는 네 본분을 지켜.’

소년은 그 ‘본분’이라는 것이 이중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소년의 심장을 움켜간 영리한 종달새는 위기에 처한 순간에도 그를 배려해주었다.


리아는 그제서야 시선을 드레이코에게서 돌렸다. 너무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볼드모트도 눈치를 챌 것이다. 이 순간 조차도 그녀는 고등마법인 오클러먼시를 쉴새없이 행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혹여나 저 아이에게 무언가를 전달했다는 자그마한 사실마저 들켜서는 안됐다.

그리고 드레이코의 옆에서 경악스러워하며 동공이 커진 나시사와 루시우스가 차례대로 보였다.

모멸을 당한 벨라트릭스는 왼손으로는 여전히 리아의 머리채를 잡은 채로 다른 한 손으로 분노로 부들부들 떨으며 요술지팡이를 집으려고 들었다.

“벨라트릭스. 앉아라. 그 손님은 나의 것이다.”

의외로 성난 황소처럼 날뛰는 벨라트릭스를 막은 것은 볼드모트였다.

“인정하마. 패기가 대단하군. 지금껏 수많은 자들이 이 저택을 거쳐갔지만 다들 살려달라고 빌기만 할 뿐 재미가 없었지.”

볼드모트는 미끄러지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수려하게 가는 손으로 하얀 지팡이를 들었다.

그리고는 지팡이를 서서히 원형으로 휘감았다.
보이지 않는 투명의 동아줄이 천천히 볼드모트를 향해 각도를 틀었다. 더불어 동아줄에 매달려있던 리아의 몸도 점점 볼드모트에게 쏠려갔다.

아, 이제 죽을 시간이 머지 않았구나라고 짐작했다.

사실 그녀는 이 작은 연회장으로 이끌여오기 전 지하감옥에 끌려온 몇명의 마법부 직원들을 보면서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성연아가 어린 시절에 보았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애니메이션. 그 작품에서는 우연히 부모님과 ‘신의 세계'에 발을 들여 갇히게 된 주인공 ’치히로‘가, 마녀 유바바와 노예 계약을 맺고 자신의 이름 ’치히로(자아)‘를 잃는 대신 ’센'이 되어 신의 세계에서 탈출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일대기가 담겨져있다.

리아는 센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센이 되어 하쿠에게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그녀는 그 순간 자신의 모든 기억을 하나의 물체에 담았다. 정확히는, ‘로렐리아 몰리 위즐리’로서가 아닌, 영혼 ‘성연아’의 이름 세 글자에 담겨있는 기억을 담았다.

이제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유일한 ‘타임터너’에 말이다.

성연아, 이름의 모든 것을 봉인하고 있는 타임터너를 그녀가 이 세계에서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보낼 결심을 하고.

리아는 ‘성연아'로서의 모든 기억을 오블리비아테를 스스로에게 적용해 지워버렸다.

“그래. 위즐리. 어린 마녀여. 너의 계획이 훌륭했다는 것은 인정하겠다. 그 것은 자칫 조금만 더 완벽했다면 이 볼드모트경의 부활을 저지할 만큼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니 사실대로 고해. 바티 크라우치 2세의 정체를 어떻게 알게된 것이지?”

리아의 눈이 볼드모트와 직각으로 마주하자마자, 볼드모트는 참아왔던 의문거리를 던졌다. 리아는 드디어 마지막 계획을 실행할 때가 왔음을 짐작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혀 밑에 숨겨놓았던 알약을 깨물어 삼켰다.

“••• 꿀꺽.”

그저 아무말 없이 목을 넘기는 것으로 생각했던 볼드모트는 대답을 들을 수 없자, 리아가 이미 예상한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답변을 얻어내려 시도했다.

“끝내 말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크루...!”

“큽! 쿨럭•••!”

볼드모트의 주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꽉 다물려져있던 리아의 입가에서 울컥하며 핏덩어리가 흘러나왔다.

“••••!!!”

“내가••• 그대로 저주에 당할 줄 알았지? 크윽, 억, 푸웩!”

핏덩어리는 이제 강물이 되어 막을 수도 없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은 모두 하나 둘 일어서있던 자리에서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탁자 위가 모두 검붉은 혈액으로 흥건해졌기 때문이다.

“너••에게 말•••할. 헉, 허억. 정보••• 따위는! 헉. 없어! 엿이나 처먹어!”

리아가 삼킨 알약은 마법세계에서 통용되는 것중 가장 강한 독약으로, 어떠한 회복주문으로도 환자의 상태를 나아지게 할 수 없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오블리비아테는 확률적으로 크루시오 저주에 의해 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러면 뒤이어 볼드모트는 다시 깨어진 틈으로 복구된 정신에 레질리먼시를 사용해 접속을 시도할 것이고. 영락없이 모든 계획을 들킬 것이었다.

리아는 볼드모트에게 그 어떤 흔적과 기억도 넘기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내가 처절하게 죽을지언정 모두를 위험하게 만들 수 없었다.

그녀는 영락없는 그리핀도르였고,

볼드모트는 또 그렇게 한 명의 그리핀도르에게당했다.

기억이 끊어지기 직전에 헐떡거리는 숨을 간신히 잡으며 마지막으로 리아는 드레이코를 바라봤다. 드레이코는 핏기 하나 없는 새하얀 얼굴과 영혼없는 동공을 한 채 입을 굳게 다물며 그저 리아를 지긋이 응시하고 있었다. 모든 기억은 날라갔지만 리아는 그가 처절하게 울부짖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안심이 되었다. 그녀의 마지막 계획은 성공할 것이다.  수면 아래로 몸이 이끌어지는 것을 느끼며 리아는 거부할 수 없는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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