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드레

[해리드레] 꺾는 점[完]

리퀘: 오러 해리 × 오러 드레이코, 11살로 회귀 -w. 21.01.31~02.07.

해리포타 by 래챤
62
2
0

해리는 여느 아침날처럼 정신이 깨자마자 발가락과 손가락으로 침대를 두드렸다. 그리고 퍼뜩 일어나 앉아 지팡이를 꺼내기 위해 팔을 살짝 흔들었다. 없었다. 분명 따뜻한 냄새기는 하지만 확실히 그의 플랫이 아니었고, 조금 압박감이 들정도로 무겁게 덮는 그의 취향대로의 이불도 아니었다. 웬걸, 게다가 티셔츠도 아니고 파자마같이 얇은 천자락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됐다.

지팡이, 지팡이부터 찾아야 했다. 해리는 아주 숨을 죽이고 이불을 걷다가 멈췄다. 고르게 쉬는 어린 숨이 들렸다. 가끔 드릉거리며 코고는 소리가 들릴 정도인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심장이 귀에서 뛰어 듣지 못한 것이다.

그는 손가락을 딱 튕겨 불을 켰다.

그리핀도르 기숙사였다.

“야, 뭐야…”

“불 꺼…”

조그만 남학생이 베개를 던졌다. 그러니까, 딱 신입생처럼 작은 소년들이 눈에 들어왔다. 해리는 불을 끄고 도로 누웠다. 피곤했으니까.

그리고 다음날 오러 꿈 꾼 썰을 가열차게 풀었다.

어린 론의 생생한 맞장구와 관심에는 그럴 가치가 있었다.

파트너가 말포이였다는 얘기를 할 때, 론은 경악하지 않고 꿍한 티를 냈다.

“말포이라고?”

“왜? 그러니까 꿈이지. 되게 말도 안되고 웃기지 않아?”

해리가 키득거리며 어깨를 툭 부딪히자 그는 확실히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았다. 해리는 연회장에 들어가자 눈인사를 하는 말포이를 보고 생각을 고쳤다.

저 자식 미친 말포이 같은데.

*

“자네들, 인터뷰를 좀 따야겠네.”

머글 사회에서의 경험으로 언론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에 힘쓰고 있는 킹슬리가 말했다. 말포이는 들어오자마자 노골적으로 장관실 곳곳을 힐끗거리며 이따금 웃기다는듯이 입꼬리를 씰룩였고 해리는 그의 팔꿈치를 꽉 잡았다.

“그걸 왜 굳이 불러서 말씀하십니까?”

“징계받는줄 알았네.”

말포이의 팔을 더욱 세게 잡은 해리는 뻔뻔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킹슬리는 기대조차 않은듯 관자놀이를 빙글빙글 눌렀다.

“그야, 장관으로서 말하지 않으면 귀도 안여는 직원들이 있으니 말일세.”

“싸가지가 없군요.”

“그래, 싸가지가 없어. 부당하게 까라고 명령하는 것도 아닌데 말 좀 들어주면 안되겠나?”

“까겠습니다.”

말포이가 차분하게 열세번째 사직서를 로브 속에서 꺼냈다. 그것을 홱 낚아챈 해리는 곧바로 쫙쫙 찢었다.

“자네들을 보면 졸음이 깬다네. 직속 경호원으로 일할 생각은 없는가?”

“장차 각하께 위험이 될 분자들 머리 따고 다니는 것도 경호일입니까?”

말포이가 순식간에 극존칭으로 혀를 놀렸다.

“죽음을 먹는 자들 머리를 가장 많이 가져온 자네와, 가장 많이 제압한 자네 둘의 이야기를 못써서 돌아버린 기자들은 이젠 내가 막아주기도 힘든 지경이 되었네. 자네들 스토킹이라도 했다가 시신으로 발견될까봐 매일같이 피가 마르고 있단 말일세!”

말포이를 향한 말이다. 해리는 그가 어떻게 오러가 되었는지를 다시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

“…그리하여 보바통에 가게 될 21명의 학생과…”

해리는 도저히 이곳의 흐름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교환학생? 각 학년에서 3명씩?

거기에 말포이가 껴있는 것은 분명 말포이의 입김이 들어갔다는 것일 터다.

최대한 귀를 열며 이런저런 정보를 입력하던 해리에게 꽃편지지로 접은 알록달록한 학이 날아왔다. 해리는 고개를 들고 그 방향을 둘러보다가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고 그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말포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어쩐지 말포이는 꽤나 화나보였다.

‘나중에 봐, 파트너.’

해리는 확신했다. 적당히 유약하면서도 그에게 끝까지 개같이 굴며 물어뜯고, 그의 명예를 깎아내리려고 발악을 하던 어린 말포이가 아니라.

결국 볼드모트의 손아귀에서 살아남고 제 인생을 좆같이 만든 모두를 죽여버리겠다는 일념 하에 7년을 틀어박힌 끝에 제 명예를 되찾은 말포이라고.

저거 저자식 헛짓거리 못하게 하려고 옆구리에 콱 껴놓고 있었는데, 지금 그게 다 허사가 되게 생겼다. 해리는 덜컹 몸을 조금 일으켰다가 말포이가 험악하게 안광을 쏘아보내며 지팡이를 노골적으로 만지작거리는 모습에 반사적으로 앉았다.

“해리, 막상 말포이가 간다니 아쉬워?”

“집에서 바퀴벌레를 발견했는데 눈앞에서 휙 사라진 기분이야, 지금.”

가만히 귀만 열고있던 딘이 헉, 하고 숨을 들이키더니 켈록거렸다. 론은 으하하 웃음을 터트리고싶은걸 꾹 참으며 허벅지를 때리고 있었다.

“그자식이 너한테 좀 징글맞게 굴긴 했지.”

론이 웃음을 잔뜩 억누른 채로 말했다. 헤르미온느가 곤란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바퀴벌레에 비유하다니…”

애들이 말포이 눈치를 보는 것 같은데. 해리는 허벅지를 톡톡 두드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얘네가 대체 왜?

“나도 가고 싶었는데. 정말 아쉽다.”

헤르미온느가 시무룩하게 머리를 꼬아댔다. 그래서 왜 내가 말포이가 호그와트에서 나가는걸 아쉬워해야하는데? 해리는 물 한 컵을 쭉 마셨다. 아까부터 진득한 시선이 느껴지는 것을 보아하니 그가 퍽 친절하게 알려줄 요량인 것 같았다.

기숙사컵은 확실하게 그리핀도르가 탔는데, 해리는 온정신이 말포이한테 쏠려있어 축하를 하는둥 마는둥하며 끊임없이 말포이에게 시선을 보냈다. 쳐다볼 때는 언제고 이젠 그를 완전히 무시하며 슬리데린 테이블에 완전히 녹아들어 웃고 있었다. 저걸 보니 또 곧 서른줄 말포이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시선을 떼려 살짝 눈을 돌리자 귀신같이 고개를 돌리는 말포이가 곁눈으로 보였다.

“너희 뭐하니?”

슬리데린 테이블을 등진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해리는 당황해서 우선 호박주스를 입에 댔다.

교환학생들은 각 학교에 익숙해지기 위해 방학부터 그곳으로 떠나있기로 결정되었고, 그 말은, 다음따위 없다는 의미였다. 심지어 환송식까지 했다. 해리는 연회가 끝나고 기숙사로 달려올라가 돌아갈 짐을 싸는 대신 교환학생들을 태운 열차로 달려갔다.

열차앞에 도착해서 고래고래 소리 쳐 불러내야하나, 아님 쳐들어가서 객실을 뒤져야 하나 고민하던 도중 호그와트쪽에 가장 가까운 객실의 블라인드가 걷혔다. 해리는 가장 궁금한 것을 대뜸 물었다.

“너 뭐야?”

눈을 살짝 내리깐 말포이가 그를 빤히 내려다보더니 제 이름을 중얼거렸다.

뭐, 어쩌라고. 이제 와서 이름 트자고? 해리는 몰아치는 의문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들은 어느샌가 늘 그러고 있었다.

말포이가 눈썹을 일그러트리더니 지팡이로 유리에 글을 썼다.

‘나중에 봐, 친구

파트너에서 친구로 바뀌었을 뿐인데, 어딘가 격하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대체 내가 뭘 했다고? 말포이가 그 뒤로 천을 휙 당겼기에 해리는 무어라 더 묻지도 못하고 멀뚱멀뚱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친구면 편지 해!”

그말은 아주 당황스럽게 해리의 성대에서 터져나왔다. 말포이는 끝끝내 다시 얼굴을 내보이지 않았다. 해리는 뒤숭숭해서 미적거리다가 열차가 출발해 조금씩 느리게 움직이고, 이내 빠르게 사라지는 꽁무니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젠장, 아무 편지 없이 2년이 지났다.

*

해리는 말포이가 이제 얼쩡거리지 않는 것을 ‘이제는 좀 닥칠 줄 알게 되었네’ 정도로 생각하다, 20대 중반무렵부터 ‘죽은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쩐지 지나치게 바뀌어버린 평범한 일상은 틈조차 나지 않았기에 말포이를 끼워넣기 곤란해서 그 이상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해리는 가끔 혼자 있었다. 정말 가끔. 그리고 혼자 있을 때 곁에 없는 이를 생각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때때로 많은 이들을 그리워했다.

이제는 긴급연락용으로만 사용하는 패트로누스가 벽을 뚫고 들어오자 상념은 모두 사라졌다. 해리는 지팡이를 휙휙 휘둘러 로브를 가져오고 주변을 정리하며 패트로누스가 무언갈 말해주길 기다렸다.

“해리, 네 생일인건 알지만, 아무래도 나와줘야할 것 같아. 오러국 앞으로 이상한 관들이-”

어떤 개같은 범죄자가 그를 위한 선물을 준비한듯 했다. 팔을 다 꺾어다 심문실에 던져둘 것이다.

“갈게.”

수달이 끙끙거리며 그를 빙글빙글 돌더니 휙 사라졌다. 해리는 머리를 한번 가볍게 쓸어넘기고, 입은 로브를 확실하게 탁탁 털은 다음 순간이동했다. 마법부 순간이동 스팟을 따라 4번을 연달아 사용한 그는 또다시 플루를 2번 사용하고 나서야 오러국 옆건물에서 나올 수 있었다. 과연 그 헤르미온느를 당황에 가득 차게한 관은 모두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총 7개의 관에서 가운데 관 위에는 하얀 백합이 올려져 있었다.

시체 냄새가 났다.

“장관님-”

“내가 자네보다 전장에 오래 있었다는걸 가끔 잊는 것 같네, 오러 포터.”

킹슬리가 무미건조하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원 밖으로 바람이 바깥으로 훅 불었다.

“다들 일 안하나? 제네비어, 자네 출장 아니었던가? 마크필드, 자네는 유괴살인건의 총괄이면서 이딴 장난질에 관심을 팔 시간도 있는가? 사건은 해결하고 보고하러 온 것이겠지? 딱 1시간 후에 보고서 확인하러 가겠네.”

킹슬리가 한명을 쿡 찍어 탈탈 털자 킹슬리의 업무지적이 퍽 곤란한 마법사들은 슬슬 사라졌다. 이젠 해리와 헤르미온느, 그냥 구경하려고 남은 마법사… 소리소문없이 나타난 말포이가 있었다. 말포이?

말포이는 거의 혈색이 없는 얼굴로 검정 클로크를 걸치고 이 촌극이 어디까지 가는지 보러왔다는 듯 한쪽 구석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뭐, 그는 적어도 자살하거나 자살당하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미친듯이 수상했다는 것이 있겠다. 해리는 즉시 포박 마법을 날렸고 말포이가 가장 적은 동작으로 휙 갈라 없앴다.

“선물이나 열어. 멍청아. 위험한거 아니니까. 아니면 내가 열어서 안겨줘?”

말포이가 음산하게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그는 가죽장갑을 낀 손으로 사실상 죽은 지팡이를 흔들었다. 오늘 그 지팡이의 쓸모를 알게 되었는데, 단순히 날아오는 마법을 파훼하는 정도는 할 수 있는 듯 했다. 재소자의 지팡이는 내부를 거의 망가뜨려서 돌려주기에 강력한 마법을 썼다가는 폭발했다.

말포이가 어떻게 소리소문없이 들어왔고, 저 성인 남자가 눕기 딱 좋은 관을 7개나 들여왔는지는 머리 뚜껑을 따보면 알게 될 것이다.

해리는 여전히 말포이에게 시선을 둔 채 관뚜껑을 열었다.

“좋아, 포터 군. 계속 말포이만 보고 있게나.”

예전 방식으로 해리를 부른 킹슬리가 졸린 목으로 내뱉었다. 그는 가까스로 토하지 않으며 도로 관을 닫았다.

“공간 확장 마법을 알뜰하게도 썼군.”

“시체 들어있습니까?”

“하나당 다섯 구씩은 들어있는것 같네.”

해리는 ‘마법사 시체 35구’ 가 예언자 일보에 둥둥 떠다니는 끔찍한 예상을 떠올리며 어쨌거나 살인범이 되어 돌아온 말포이가 대충 튕겨내지 못할 저주를 떠올렸다.

“저주는 쓰지 말게. 죽음을 먹는 자 마크가 새겨져 있으니.”

말포이가 10년전이 떠오르는 방식으로 샐쭉 웃었다.

“이제 죽음을 먹는 자도 사람취급해주나 보네. 뭐 늑대인간이나 뱀파이어나, 그런 것도 사람으로 쳐줘?”

“그런건 헤르미온느가 잘아니까 상담받아봐.”

“차와 함께?”

베리타세룸 한방울과 함께지만, 해리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통할 사람이면 죽먹자 머리 35개는 따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리 와, 말포이.”

해리는 대충 손을 까딱이며 말포이에게서 잠시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말포이가 장난스럽게 손목을 붙이며 물었다.

“체포 안해? 미래 오러국장이 방심을 하다니.”

“그러게.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

그래서 안온다고? 해리가 눈썹을 들어올리자 말포이가 흐으음 비음을 냈다.

“변했군, 포터.”

“사담까지 끼면 너무 길어지지 않겠어?”

“못본 새 퍽 친근한 사이가 되었군.” 킹슬리가 어딘가 가늠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해리는 소스라쳐 팔을 벅벅 긁었다.

“소름끼칩니다, 장관님.”

“썩어가는 시체두고 농담따먹기나 하고 있는 너희가 가장 소름끼쳐. 광장에 시체냄새 퍼지기 전에 들어갈 순 없던거니?”

헤르미온느가 날카롭게 말했다. 누구나 100시간째 각성 상태로 야근을 넘어선 무언가를 하다보면 저렇게 된다. 일 대충 엎어놓고 집에서 쉬다 나온 해리는 헛기침을 하며 그새 다가온 말포이의 뒤를 잡았다.

“미스터 말포이, 묵비권 따위 없지만 변호는 할 수 있어. 협조적이니 이것저것 따지지 않도록 할게. 죽음을 먹는 자를 죽인게 면책 사유가 된다는걸 아니 대화는 잘 통할거라고 생각하고.”

해리는 조용히 지팡이로 말포이의 뒷목을 쿡 찔렀다. 말포이는 즐기듯이 양손을 들었다.

“내가 안죽였는데, 뭐, 우선 들여보내줘서 기뻐. 추웠거든.”

헤르미온느는 관을 옮길 사람과 시체의 뇌를 뜯어볼 사람을 불러놓고 이것저것 다다다 말했다. 장관은 비서를 불러 심문실은 됐고 귀빈실로 정중히 모시겠다고 했다. 범죄자대가리 35개를 따왔다고 전 범죄자가 귀빈이 됐다.

웃긴 일이다.

“되게 웃기다. 역시 와보길 잘했다니까. 난 언제나 합당한 치하를 사랑하거든.”

말포이가 겁도 없이 목을 뒤로 젖히며 씩 웃었다. 재수가 없어서 웃지 말라고 눈을 쿡 찌르고 싶었다.

“손 안 더럽히고 범죄자를 몰살하는 방법은 오러국에서 가장 필요한거라, 이제 네 뇌를 열어서라도 방법을 찾을거야.”

“삼류 악당 같은데. 그리고 제 모든 과정을 술술 말하는건 더 삼류 악당 같아. 나라면 둘다 하지 않겠어.”

“늘 네 머리를 열어보고 싶었는데, 잘됐지.”

“나한테 관심많은건 원래 알고 있었으니 더 강조하지 않아도 좋아.”

“닥쳐. 이제 들어가잖아.”

“너 사실 외롭지?” 말포이는 킬킬 웃으며 장관의 집무실로 성큼 들어갔다. 킹슬리도 웃음을 참고 있었고 해리도 참았다. 이 일 끝나면 휴직하리라 다짐하며.

“앉게나.”

“저는 서있겠습니다.”

해리는 말포이 뒤에 바짝 붙어서며 말했고, 킹슬리의 웃음이 흡족한 것으로 바뀌었다. 찻잔을 내려놓은 비서가 미적거리자 그는 손을 휘저어 내보냈다. 방음 마법을 연신 두르고 나자 방에 완벽한 정적이 잦아들었다.

“자랑하러 온건데,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서 영 입을 못떼겠습니다.” 말포이가 능글맞게 입을 놀렸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기죽은 말포이가 그리웠다.

“자랑하러 왔다고?”

“예. 재밌잖습니까? 죽음을 먹는 자로서 문신을 받은 사람이 잔당 목을 다 따오면 참 이야깃거리가 되겠다 싶었죠.”

빙글빙글 웃는 말포이와 달리 마법부 인사들은 표정이 팍 썩어들어갔다. 이젠 톰 리들보다 그 때문에 생겨난 죽음을 먹는 자들이 더 성가셨던 것이다. 그리고 범죄를 저지를 깜냥조차 없는 문신있는 반민간인 35명보다 눈앞의 인간이 위험했다. 그 말포이가 고양이처럼 쭉 기지개를 켰다.

“미스터 말포이. 왜 그랬습니까?”

의자에 푹 기댄 말포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차는 느리게 식어가고 있었다.

“제, 말포이의 명예를 위해서?” 그는 불확실하게 다시 고개를 기울이더니 턱을 쓰다듬었다. “중요한건, 제가 더이상 이렇게 마법부의 눈을 피해서 움직일 일이 없다는 것 아닐까요.”

“지금 그게 가장 문제인 것 같나?” 킹슬리가 낮게 물었다. 대충 지금 나랑 장난치냐는 의미였다.

“솔직히 바로 잡아넣을 줄 알았거든요. 말할 기회가 없을거라 생각했어서 생각이 좀 많아졌습니다. 마법부도 변할 수 있었군요. 포터, 그걸로 꿰뚫든 저주를 날리든 간에 아무튼 찌르지만 마. 불편하다고.”

해리는 어느새 말포이의 목을 딱 짚고 있던 자신의 지팡이를 잠깐 내려다보다가 치웠다. 장관이 드디어 미쳤냐는 듯이 쳐다봤다.

씹었다. 말포이 또한. 그러자 킹슬리는 해리가 처음 듣는 얘기를 꺼냈다.

“마법부 일반직원 4명과 고위직 1명이 사라졌네.” 

“관속에 있을겁니다.”

“그들은 첩자였나?”

“아…” 말포이는 고개를 뒤로 꺾어 손가락을 느리게 툭툭 두드렸는데, 해리가 고개를 조금만 숙이면 눈이 마주칠 수 있었다.

“첩자까진 아니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합니까?”

“뭐?”

“들어봐, 포터. 너희들은 아마 볼드모트의 인정, 뭐 그런걸 받은 어둠의 마법사에게나 표식을 내려줬을거라 생각했겠지만, 생각보다 효용이 많단 말이지. 그건 자리를 잘못 나가서도 받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거든. 표식을 받은 민간인이 어떻게 행동할까? 어둠의 마법사로 낙인찍힐까 두려워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가끔 일 하나 비틀어달라 요구하고 묻어주는 정도면 꽤나 수지에 맞단 말이야. 그런게 차곡차곡 쌓여서 큰 사건이 하나 벌어지는걸 알아도 머리카락 하나 뽑아주는건 일도 아니거든. 오히려 피해자가 된다고. 당장 돌아가면 고위직 팔이나 다 까봐. 접선했던 죽음을 먹는 자가 이미 죽었다고 안심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난… 바퀴벌레를 죽이는 방법을 사용한거지. 개미던가? 아무튼 집단생활을 해도 멍청하게 하는 것들을 몰살시킨건데- 왜, 그렇게 봐?”

해리는 어느새 말포이에게 눈을 맞추며 경청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7년동안 이걸 준비한거야?”

“아, 이 말하는걸 까먹었네.” 말포이는 씨익 웃더니 손바닥을 팔랑거렸다. “서프라이즈~”

“이거 완전 미친 자식 아냐?”

*

해리는 속된 말로 개빡쳐있었다. 말포이 이 염병할 새끼는 나중에 보자고 하더니 완전히 연락을 끊어버렸고 심지어 1년을 연장해 트리위저드 시합시기에 돌아왔다. 그사이 덤스트랭 교장이 바뀌었다. 교장 암살 시도 2번만에 성공했는데 더 성공률이 오르지 않길 바랐다.

말포이는 덤스트랭 남학생들 사이에 완전히 녹아든 모습으로 호그와트에 돌아왔다. 그는 광낸 가죽 부츠를 툭툭 걷어차며 눈을 굴리다 해리와 눈이 마주치자 만족스럽게 웃고는 정면으로 고개를 딱 고정했다. 저렇게 재수없는 금발이 영국을 넘어 전세계 어느곳에든 있다니 끔찍했다.

“또 말포이 쳐다보니?” 헤르미온느가 심드렁하게 물었다. 론은 그녀 옆에 딱 붙어 최대한 깔끔하게 포크질을 하다가 끼익 소리를 냈다.

“바퀴벌레가 돌아왔잖아.”

그순간 말포이가 그를 딱 돌아보았고, 해리는 말한 것이 있어 슬쩍 눈을 굴렸다가 자신이 피했다는 것을 깨닫고 도로 눈을 치떴다. 말포이는 눈이 가늘어지게 웃더니 고개를 뒤쪽으로 까딱했다. 해리는 호박죽을 휘적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말포이께서 담소를 허락해주시니 참 황공하기도 해라. 한대쯤은 맞아주지 않을까 가늠하며 치킨을 한입 베어물었다.

해리는 무디를 힐긋 보고는 말포이가 사라진 복도를 보며 고민했다. 그리핀도르 탑은 반대방향이었다. 우선 기숙사를 들러 투명망토라도 가져와야하나 고민하며 슬리데린 휘장이 달린 옆을 지나가는데, 손목에 밧줄같은 것이 휙 감겼다. 해리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확 당겼고, 그 안에 있는 누군가는 가까스로 버틴듯 발만 살짝 나와있었다. 말포이인가. 해리는 수많은 시선을 견디며 최대한 휘장을 적게 걷어 들어갔다.

“누가 오러 아니랄까봐, 하나하나 귀찮게 하네.”

이제보니 키높이 부츠에 깔창을 덧댄게 분명한 말포이는 그의 양뺨에 살짝 입을 맞추더니 인사했다.

“안녕.”

해리는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손가락을 튕겨 불을 켰다.

“너 뭐야?”

“2년동안 창의성은 하나도 자라지 않았네.”

“됐고, 내 편지는 왜 무시했는데? 이 상황에 협력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잠깐, 잠깐. 우리 질문 하나씩 교환할까? 그게 더 효율적이겠어.”

“그럼 답해.”

해리가 째려보자 말포이는 등을 좁은 벽에 툭 기댔다.

“안왔어. 안가고 안왔다고. 덤스트랭의 기억 수정 마법은 사람한테만 하는게 아니더라고.”

굉장히 그럴듯해서 김이 확 식었다. 덤스트랭은 확실히 그런 곳이 맞았다.

“자, 포터 몇살?”

“26…8? 어린 시절을 반복한 시간도 나이를 또 치는게 맞나?”

“대체 그걸 누가 판단하겠어? 설마 덤블도어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물어본건 아니겠지?”

“안했지. 너 질문 두 개했다. 나이는 왜 물어봐? 넌 아냐?”

“너 목소리 커. 좀 이쪽으로 와.”

해리는 반사적으로 등에 닿는 휘장에서 떨어졌고 그대로 말포이가 그의 셔츠를 당겼다. 원래 이곳은 그런 장소였다. 호그와트 1층 복도에는 휘장과 그림이 많이 달려 있고 수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학생들은 잠시 숨을 좁고 어두운 공간을 필요로 했다. 지금 말포이가 하려 하는 행위를 위해서. 해리는 가까스로 벽을 짚고 팔에 힘을 주었다. 코끝이 닿는 거리에서 둘다 눈을 피하지 않았으므로 한동안 서로의 숨만 섞였다.

“넌 26살이야.” 말포이는 혀도 뾰족했다. “우리 28살에 사귀거든.”

*

말포이가 오러가 됐다.

그것도 특채로.

해리는 커피를 마시며 동의 서류에 서명을 했다. 한명 안한다고 막힐 서류도 아니었다. 마피아를 마피아로 잡겠다니 마법부 참 잘 돌아간다. 해리는 서류를 직접 들고 지하로 내려갔다. 말포이가 포터가 온다면 죽음을 먹는 자를 뿌리뽑는 방법을 알려주겠노라 했다는 말이 쪽지로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독방에 머무르고 있는 말포이는 책을 읽으며 제 요청을 들어줄 때까지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닥치는 것으로 제 요구를 따내는 지경에 오다니. 해리는 불안하게 오러 제2팀장과 함께 서있는 한 마녀에게 시선을 두었다.

“소속이?”

“위즌가모트 서기 담당입니다. 올해 37년째가 되죠.”

“그렇군요. 왜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들어가시죠.”

“저, 앞으로 14분 39초 뒤에 재판이…”

“마법 깃펜이 한번쯤은 알아서 하겠죠.”

해리는 문을 벌컥 열고 말포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는 읽던 단락을 꼭꼭 끝까지 읽고 나서야 책갈피를 끼워 덮었다. 그리고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해리는 씹고 뚱하게 문에 기댔다.

“알려준다며?”

“앞에 잘 잡고 있으라 그래.”

해리는 불길한 기색을 느끼며 지팡이를 쥐었다. 눈치빠르게 알아챈 말포이가 씩 웃었다. 그는 보란듯이 제 팔뚝에 두손가락을 꾹 누르며 매혹적인 언어를 읊조렸다. 팀장이 흠칫하더니 비명을 지르며 제 팔을 감싸고 뒷걸음질쳤다. 말포이가 모종의 방식으로 그를 고문하고 있었고 왼쪽 팔뚝을 이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확실히 수상했다.

해리가 지팡이로 기절 마법을 어디로 날려야할지 아주 잠시 고민하는 동안, 서기는 재빠르게 머리를 올려묶은 핀을 꺼내 오러 팀장의 경추에 내다 꽂았다. 팀장은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했다.

말포이가 신나게 깔깔 웃어댔다.

“대체 뭐하느라 망설인거야, 포터?” 해리는 그 말을 흘리며 뚜벅뚜벅 걸어가 손목을 잡아챘다.

“거기 끌고 나갈 수 있죠? 전문이잖아.”

말포이는 목 졸린 소리를 냈다. 소매를 뜯듯이 걷어 올리자, 흐려져 사라져야 했을 어둠의 표식이 해리가 본 것중 가장 선명하게 자리잡혀있었다.

“설명해, 말포이.”

언제 잡았는지 말포이는 멱살이 잡힌 채 의자 등받이에 밀려나있었다. 상관없었다.

“저 여자, 근육덩어리 옮기는게 썩 힘든 모양인데.” 해리는 몸을 돌리며 지팡이를 휘둘러 내다버렸다. 말포이가 휘파람을 휙 불었다.

“동료 아니었어?”

친구는 아니고?”

“아쉽게도 오러 친구는 없어서 이렇게 번거롭게 찾았지.”

“오러국에만 없다?”

말포이가 눈을 반쯤 가늘게 뜨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삼키는 침이 목울대 너머 손마디에 거의 닿았다.

“오러 포터, 무섭냐?”

말포이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법을 잊었다. 해리는 잘 잠긴 셔츠를 꽉 잡은 손을 그대로 꾹 밀었다. 때로는, 아니 사실 대부분의 상황에서 말보다 행동이 많은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이봐, 여기서 내가 내빼버리면 체면이 너무 안살잖아. 그거 하나로 사는 사람한테 잔인하기도 하지. 나는 그냥,” 말포이는 목이 졸린 상태에서 말하는게 숨이 찬지 턱을 들었다. 희끗한 선이 턱을 가르고 있었고 그가 손을 뻗어 해리의 안경대를 탁 튕겼다. “장난이나 치는 거야.”

끅, 하고 숨이 넘어갈듯한 소리가 들리자마자 해리는 손아귀 힘을 풀었다. 단추 두어개가 투둑 떨어지며 말포이가 곧바로 마구 기침을 했다. 그의 갈라진 목으로 실실 웃는 소리가 샜다.

“1:0이야, 포터.”

“진짜 회 쳐버리기 전에 장난 좀 그만두지?”

“바를 살도- 아 알겠어. 한번에 끝내자고.”

말포이가 구겨진 깃을 손으로 탁탁 털며 협조하겠다는 듯이 굴었다. 그는 사뿐하게 걸어가 도로 의자에 앉았고 해리는 계속 비어있었던 맞은 편에 앉았다.

“이름, 나이 다 건너 뛰고. 동기는 마지막에. 대체 어떻게 했냐?”

“수단? 목적?”

“목적을 말해.”

해리는 곧은 눈으로 말포이를 빤히 보았다. 말포이는 소매를 만지작거리며 답했다.

“굳이 따지자면 수단 자체를 못쓰게 만드는게 목적이지. 나는 그저, 표식을 가진 것들을 다 까발리고 싶을 뿐이야.”

“죽일 필요까지 있었나?”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는 일이라면 너부터가 살아있지 못할텐데.

“왜 없지?” 말포이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해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왜?”

눈을 피하고 싶었다. 동시에 죽어도 피하고 싶지 않았다.

“죽음은 너무 간단하지. 살아서 죄를 지워야 해. 그리고 죽어 마땅한 죄는 누가 정하는데?”

“그걸 정하려고 법이 있고 재판이 있는거지. 재판 좋지. 그런데 죄인을 모르는데 재판을 어떻게 하지?”

말포이가 탁자를 탁탁 두드리기 시작했다.

“오클러먼시가 있으니 죄목을 찾지도 못하고, 증거가 없어서 안돼, 피해가 부정확하고 인과관계가 모호해서 안돼,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이 감싸니까 안돼. 옳은 재판은 세상에 없어, 포터.”

“틀어박히더니 완전히 돌아버렸군, 말포이. 궤변투성이인건 여전하고.”

“그래서 나에게 살인죄를 씌울건가?”

해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굴러가지 않을게 뻔했다. 사람은 마법으로 죄를 감추지만 시체는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니까. 무고한 사람이 있어도 대형 범죄자 하나라도 껴있으면 감형이 되고 그게 쌓이고 마법부가 아예 묻어버릴 가능성이 컸다.

이 시대에 문신을 가진 이만을 골라죽인 사람이 있다는 것이 새어나가면 영웅 취급이나 받을게 뻔했다.

이자식을 대체 어떻게 팍 꺾어놔야 하지?

해리는 오히려 기가 꺾이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건 전적으로 망할 말포이가 미친 일을 저질러놨기 때문이었다.

시신은 모두 왼쪽 가슴, 심장 아래부터 오른어깻죽지로 올라가는 사선으로 잘려있었고 멀쩡한건 뇌와 심장과 왼팔밖에 없었다. 전부 다.

그리고 똑똑하게도 제 손으로 죽인 사람은 셋밖에 되지 않았으며 뇌를 다 뜯어본 마법부의 전문가의 말로는 말포이는 밑바닥 죽음을 먹는 자들이 서로를 죽이도록 해서 실리만 취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마법으로 기억을 죄다 주물러놔서 어떤 식으로 현혹했는지는 해독하기 어려우며 기억의 끝은 모두 말포이에게 다른 시체를 갖다바치는 장면이라고 했다.

“마법 사회에는 심리 상담이 절실하다니까.” 헤르미온느가 헬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말포이가 자진납세하지 않았더라면 알지도 못할 수도 있었다는게 가장 절망스러워. 그리고 걔가 모든 세상이 자기를 경멸할 때 틀어박혀서 이럴…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때까지 아무도 말릴 사람이 없었다는 고통스러운 사실까지 말이야..”

“너 또 멀리뛰기한다. 걔가 너보고 도와달랬어? 간접적으로라도? 그리고 그럴 사이야? 네가 알고 내버려두기라도 했어? 미온느, 내가 이 말을 몇 번이나 해야할까. 우리는 그놈을 도울 수 있는 범위에서 도왔고 걔도 그걸 알아. 그렇게 머리 나쁜 자식은 아니잖아. 기껏 자유를 얻어놓고서는ㅡ뭐, 완전하진 않지만ㅡ또다시 진창에 빠지는 선택을 하다니. 어지간히 구제불능인거지.”

“덕담 고맙다, 포터.” 말포이가 그의 옆자리에 풀썩 앉으며 아주 잘 들리도록 말했다. 헤르미온느와 해리는 마법부로 들어가는 전화부스에서 500m 떨어진 낡아빠진 지하 펍에서 마음 편히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헤르미온느 옆에서 곯아떨어진 론은 고심 끝에 인원수에서 제외했다.

“구제불능을 위한 작고 낡아서 천장이 무너질 것만 같은 펍에서 우리 구원자들께서는 속히 꺼져주셨으면 하는데. 너희 팬클럽이 몰려오면 여기는 분명 대박을 터뜨릴거고 주인장의 안주맛은 영영 못보게 될거란 말이야.”

말포이는 거품이 꺼져가는 론의 새로운 잔이 마치 자신이 시킨 것이나 주인장이 잘못 가져다 준 것처럼 끌어다 마셨다.

“아, 나는 무시하고 계속해. 공짜 맥주만 마시고 갈테니. 그런데 나는 상담같은거 안받아. 사람인줄 알았던 개자식이 내 배를 쑤신 이후로는.”

말포이는 이미 제법 취해 있었다. 헤르미온느가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고 해리는 말포이의 말을 해석하느라 1시간같은 1분을 썼다.

“신고했어?”

“죽였지. 뭘 물어?”

말포이는 처음이라는 말을 작게 중얼거리더니 잔을 쾅 내려놓으며 벌떡 일어났다.

“취했군. 제정신이 아니야…”

해리는 말포이의 손목을 덥썩 잡아 앉혔다. 그가 뭐하냐고 말하기 전에 먼저 말을 시작했다.

“난 스무살에 처음으로 한명을 죽인 적이 있는데,” 그말은 처음으로 아주 차분하게, 생각보다 더 편안하게 나왔다. “망할 놈이 지니를 가지고 인질극을 벌이더라고. 그대로 눈이 돌아서 쥐어팼는데 숨을 안쉬더라. 그걸 깨닫고 보니 지니는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나한테 지팡이를 겨누고는 있는데 아무것도 안했고. 그리고 헤어지자 해서… 나 이 얘기 아무한테도 안했는데.”

“나도.”

해리는 반쯤 뜬 눈으로 말포이를 힐끗 보고 탁자에 팔꿈치를 올리고 머리를 기댔다.

“내가 너무 힘이 세서, 기절 마법도 안 통할 것 같았대. 절대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살인 저주로 내가 사람을 죽이지 못하게 막아도 다시 일어나서 그사람을 때려죽이고 자기 앞에 설 것 같았대.”

내가 무서운가. 해리는 술에 취해 침울하게 웅얼거렸다. 말포이가 고민하듯 큰 맥주잔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여기서 맥주잔으로 네 머리를 후려치면 충분히 증명이 되나?”

“그리고 이제 사람을 죽지 않을 정도로만 팰 수 있다는 것도 같이.”

“꼭 그 뒤로 때려본 적 없는 것처럼 말하는데.”

“이제 주먹은 안 써.”

“이제야 마법사다워졌군.”

“네 배를 찌른 사람은 마법사가 아니고?”

“지팡이를 빼앗겨서 우리 가문에서 보존 중인 지팡이를 가져가려고 하다가 실패했지.”

“왜 빼앗겼는지 알만 하네.”

“멍청한 새끼지. 내가 그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다가 여차하면 살인 저주를 날릴 준비가 되어있다는걸 몰랐으니까.”

해리는 고개를 크게 기울이며 그를 돌아보았다.

“지금도 있어?”

“아니.” 말포이가 빠르게 거짓말했다.

“너 그거 들켜서 압수되면 또 저택 수색… 수색에서 안 걸렸군. 꼭 10년 전같네. 헤르미온느, 들었지.”

“위치를 모르는데 다시 수색한다고 찾아지겠어?”

“적어도 여기에 한 개는 있고.”

해리는 말포이의 로브를 확 당겼다.

“로브 벗어, 말포이. 확인할거야.”

“나 안에 아무것도 안 입었는데.”

“뭐?”

“상체, 이거 벗으면 완전 나체라고.”

해리가 로브를 잡은 손을 경기하며 떼자 말포이가 씨익 웃더니 속삭였다.

“거짓말은 안했다, 포터.”

그는 작은 폭발음과 함께 사라졌다. 맙소사, 머글 펍 한가운데에서 담대하게 순간이동을 쓴 것이다!

다행히도 주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거나하게 취해있고 또 어두웠기에 이상을 눈치챈 사람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헤르미온느가 술이 깬다면 이곳에 더이상 오지 않는게 좋겠다고 말할 것이 뻔했다. 해리는 쌍으로 잠든 친구들을 툭툭 건드리며 혼자 술을 마셨다. 둘의 주량을 합친 것보다 해리가 멀쩡하게 마시는 술이 더 많았다.

이 모든 행동을 술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는 의미였다.

*

계속해서 무릎이 부딪힐 정도로 말포이는 그를 몰아붙이며 키스했고 해리는 남와 입을 섞은 것이 너무 오래되어 잠깐 이성을 놨었다. 해리는 한손으로 귀와 뒷머리를 콱 뒤로 잡아당기며 다른 손으로 가슴팍을 밀어냈다.

“뭐야, 내가 추행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포이는 중얼거리더니 해리의 표정을 보고 손등으로 제 입술을 눌렀다. “그러고보니 지금은 10대지. 역시 짜증나.”

“나한테는 추행 맞거든, 말포이.”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목에서 울렁였다.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네.”

“뭐가 문제야, 자기야. 어차피 성인이 될 때까지는 볼드모트를 죽일 방법이 없었다며.” 말포이가 춤을 추듯 해리의 팔을 잡아올리며 허리에 손을 얹었다. 코 끝이 닿았다. “즐겨.”

해리는 그에 대해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슬슬 다가오려는 입술을 콱 깨문 뒤 그의 여유를 끊어냈다.

“네가 한 모든게 변수인데, 똑같은 운명일거라는 증거가 있어?”

말포이는 그의 말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처럼 무시하고 샐쭉 웃었다.

“나랑 키스하긴 했었지, 그때도.”

“완전히 취했고 안경을 잃어버린 채로, 말이지.”

“나랑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딱 돌아서 입을 맞춘게 누구더라?”

해리는 분통이 터져 이를 갈았다. 말포이는 피가 비치는 입술을 끌어올려 웃었다.

“뭐, 이쯤하면 반쯤은 풀렸어. 네가 멍청하게 구는게 하루이틀도 아니니.”

혼자 화냈다가 알 수 없는 시점에서 풀고 깐족거리는게 틀림없는 말포이긴 했다.

“나이 더 먹었다더니 나잇값은 안들었냐?”

“난 완전 비싸니까 굳이 나잇값을 추가해서 부담스럽게 할 생각은 없는데? 참, 너 그 망할 친척 집에 살고 있지는 않지?”

“별 걸 다 아네.” 해리는 안경을 고쳐쓰며 신경질적으로 뇌까렸다. “그리고 거기 살아야 해.”

“뭐?” 말포이가 얼굴을 구겼다. “내가 너였으면 그 핏줄 하나 살리고 다 죽였을걸.”

절대 그러지 않을 것 같은 말포이가 일부러 이렇게 말하는걸 들은 해리는,

“우리 진짜 사귀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이런 완벽한 애인 또 없지? 네 구원자 컴플렉스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도와주지. 그리고 지금은 머글 살해죄가-”

“닥쳐.” 해리는 눈을 부라렸다.

“좋아, 이렇게 하자. 성인이 될 때까지 내가 문신을 새기는 법을 연구해서 그 머글들에게 씌운 다음 다 죽여버리고 관을 하나 늘리는거야.”

“너 그 짓거리 또 하려고 하면, 그전에 네 골통을 으스러뜨릴테니까 각오해.”

“난 머리 안 깨부쉈어!”

“네 망할 손질을 보고 삼일을 토했다고!”

*

말포이는 사실 계획적으로 저지른 일은 아니라고 했다. 그저 배를 힘껏 쑤신 잔당이 괘씸해서 주변을 좀 털어봤더니 웬 듣도 보도 못한 죽음의 찌끄레기들이 하도 많아 조용히 정리만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생명의 위협을 끼친 놈을 죽여놓고 보니 그럴 생각이 들었다며.. 그리고 그중 하나를 잡아놓고 이걸 살려서 보내야하나 고민하며 지하에 가둬두자 그자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말포이에게 어두운 정보를 이것저것 건넸다고 한다.

그 중 그의 가족이 감히 그분께서 주신 문신을 연구하려다 죽고 자신은 재기불능으로 밟아놓았다는 말에 이거다 싶어 틀어박혀 연구를 했단다.

제 몸에 연구를 하긴 싫으니 가둬둔 죽음을 먹는 자에게 이것저것 확인하는 약과 마법을 썼고 가끔 자문을 구했다. 딱히 식사를 챙겨주지는 않았으니 굶어죽었는지 부작용으로 죽었는지 알 수가 없다고 나긋하게 말하는 말포이의 얼굴에서는 그저 지독한 호기심만 보여 해리는 조금 경멸스러웠다.

개미집에 물을 붓듯 문신에 지독한 통증을 불러일으켜 그들이 찾아 헤매게 만들고, 서로 죽이게 만들고, 시체를 단장하며 보낸 7년.

그는 더이상 살인에 벌벌 떨던 청년이 아니었다.

어둠으로 가득 찬 모르는 마법사였다.

사실 해리는 학창 시절 말포이를 악으로 똘똘 뭉친 사악한…소리를 빽빽 지르는 못되처먹은 5살정도로 생각했는데 그때 말포이는 해리의 시선을 끌기 위해 무슨 짓이든 했다.

지금은 아니었다. 그는 이제 그 존재 자체로 해리의 눈길을 끌었다.

그래서 해리는 막 오러가 되어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말포이를 현장으로 뛰쳐나갈 때마다 옆구리에 끼고 갔다.

적어도 더이상 동료를 잊고 적을 처부수는 것에 집중해도 상관없을 사람이 들어왔으니까. 그리고 말포이는 그 모든 난장판에서 살아남는 능력을 10년 동안 증명한 베테랑이었다.

언제나처럼 어린 아이를 인질로 잡고 위협하는 개자식들의 머리를 반쯤 부숴놓은 그들은 아무렇게나 의자를 빼고 앉아 수거반을 기다리고 있었다. 말포이는 늘 챙기고 다니는 생수를 조금 마시더니 머리와 얼굴에 조금 뿌리고 탈탈 털었다. 그는 해리가 앉은 의자의 반쯤 무너진 책상에 앉으며 뜬금없이 말을 걸었다.

“원래 계획하던게 있는데, 자수하면 참작되냐?”

“범죄야?”

“내가 법을 어길 것 같아? 그런데 그레인저라면 어떻게든 잡아넣을 수 있겠지.”

“갑자기 뭔데.”

“문신을 확인하는 다른 수고스러운 방법.”

해리는 상체를 뒤로 젖히며 안경을 벗어 로브 안감으로 닦았다. 그러자 말포이가 그의 이마에 물을 뿌려주었고 그는 아무말 없이 다른 손으로 탈탈 머리를 털었다.

“아, 퉤. 이젠 나름 오러도 마음에 드니까. 죽이지만 않으면 다 된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고.”

“해리 포터와 함께라면 말이지.”

해리가 안경을 쓰며 씨익 웃자 말포이는 떫은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확 쓸어내렸다. 짰다.

“사실은, 행복에 겨운게 진짜 꼴보기 싫어서야.”

“그래서 그 방법이 뭔데.”

연달아 펑퍼벙, 하는 소리와 함께 나타난 숙련된 마법사와 마녀들이 잠든 아이를 조심히 데려가고 버둥거리는 인사들을 대충 질질 끌고갔다. 마법사고복구반은 늘 바쁘기에 오늘도 늦는듯 했다. 해리들은 잔당이 뒤늦게 올지도 모른다는 명목하에 늘 그들을 기다리곤 했다..

이때 말포이가 뭐라 했더라. 그가 천장을 바라보며 한동안 침묵하다 대뜸 묻던 말만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담배 있냐?”

“나는 머글 담배밖에 안태워.”

“날 뭘로 보고. 이 세상 담배는 다 피워봤다고. 내놔.”

*

해리는 삼일밤낮 동안 술을 마시고 토하기를 반복한 것처럼 골이 다 아파왔다. 말포이는 돌아오긴 했지만 해리와 키스하는 것에 정신이 쏠려 말을 걸어도 느물거리며 흘려버리거나 동문서답하기 일쑤였다.

“아오, 진짜.” 해리는 말포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어떻게 하면 세드릭 대신 크라우치 2세를 공동묘지에 밀어넣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기로 했다. 하도 그가 미래를 조심스럽게 긍정적으로 바꿀 궁리를 하는 탓에 그리핀도르의 동급생들은 그가 몽상가 기질이 강하다고 오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말포이였다..

“디고리를 살리는 방법? 그냥 재워서 한달정도 못일어나게 하면 되지.”

“한달은 너무 길어. 1주일이면 돼.”

“좋아, 일주일.”

말포이가 크게 양보한다는 듯이 거드름을 피우며 답했다. 사실은 1주일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해리의 흥정을 받아보려고 이러곤 하는 것이다.

“기상 마법을 맞든 눈에 망치를 맞든 못일어나게끔 해줘야겠군.” 해리가 눈을 찌푸리자 말포이가 불만스럽게 덧붙였다. “그정도가 아니라면 덤블도어의 레너바이트에 깨어버릴거라고. 눈에 힘 풀지?”

“알겠어. 그래서 어떻게 먹이게?”

“내가 잘하는거 있잖아.”

“걸리고 퇴학이나 당해라.”

“어차피 덤스트랭에 더 오래 있었거든, 여기선.”

해리는 학을 뗐다. 말포이는 임페리우스 저주 하나로 삼대가 먹고 살 재산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어찌나 암시를 교묘하게 쓰는지.. 상대가 지팡이를 빼들 반사신경이 없는 민간인이라면 그대로 빼먹히기 십상이었다.

“아니면 뭐, 폴리주스를 마시고-”

“남한테 뒤집어 씌우지 말고 해.”

“성자, 구원자, 그리고 더럽게 깨끗한 포터. 나한테 떠맡길 생각으로 애타게 찾아댄 거였군.”

“내가 생각한건… 그 미로에서 세드릭을 만나자마자 기절시키는거였는데.”

“끔찍하긴!” 말포이가 질색하며 고개를 휘휘 젓고 일어났다.

“가게?”

말포이는 완전히 얼어붙더니 느리게 고개를 돌려 해리를 쳐다보았다.

“행복해, 포터?” 말포이는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화가 난 것 같았다. 좋은 남자친구인척 하다가-입이 갑자기 떫었다-거리를 두고 하여튼 영 신경쓰이게 빨빨거렸다. 말포이는 이 어정쩡한 자세로도 깊은 생각에 빠질 수 있는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땠어?” 그는 해리가 더 구체적으로 질문하지 않는다면 듣는 척도 않을걸 아주 잘 안다는 듯이 아주 친절하게 덧붙였다. “설마 편지가 안될지는 몰랐지. 제 아무리 덤스트랭이라도 말이야.”

해리는 아주 조금 마음이 풀려 중얼거렸다.

“그건 그렇지. 방학에도 거기 있었어?”

“그래, 음… 돌아가신 부모님의 젊음과 어리석음을 함께 보는건 그다지 취향이 아니라서 말이지. 죽은 사람은 죽었으므로 가장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는거니까.”

너는 어땠냐고 부드럽게 묻는 듯한 말에, 해리는 불현듯 슬프고 그가 가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돌아갈 수 있을거야.” 해리는 확신을 담아 단단하게 말했다. “너는 똑똑하고, 나는 분명히 그를 다시 죽일 수 있을테니까 그 사이에 알아가면 돼.”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할거야?” 말포이가 의뭉을 떨었다. 해리는 눈을 가늘게 떴다.

“너, 뭐 알고 있지.”

갑자기 말포이가 단검을 빠르게 꺼내 휘둘렀고 해리는 손바닥으로 막았다. 피가 비현실적으로 튀어 말포이의 창백한 피부에 튀었다.

“안 아프지?” 말포이가 해리의 베인 손목을 틀어잡고 내리찍으며 속삭였다. 해리는 불현듯 이게 꿈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빨리 끝내자, 자기야. 이게 가장 확실하단 말이야.”

생각보다 아프진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 감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해리는 천천히 거대한 성이 무너지는 것처럼 들리는 이명을 무시하며, 또다시 단검을 내리찍으려 하는 말포이의 손목을 잡았다. 칼날에 묻은 피가 해리의 눈가로 흩뿌려졌다.

“왜 이런 방식이어야만 했어?”

“무너지기 전에 빨리!”

“꼭 지금처럼 덤블도어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이건 내가 먼저 하겠다고 한거야.”

“내가 꿈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해서 왜 현실이 아니겠냐고 하더라. 지금에 딱 어울리는 말같네.”

소음이 멎었다. 호그와트를 즐겁게 채우는 재잘거림마저 싹 사라져 참, 현실감이 없었다.

“하지만 넌 이미 이게 꿈인걸 알잖아. 무너지게 될거라고.”

“꿈은 다 그렇지. 그리고 넌 이걸 절대 잊지 못할거고.”

해리가 손을 놓자 팽팽하게 힘을 주고 있던 말포이는 중심이 무너져 해리에게 쓰러지며 목을 그었다.

“좀 따끔거리네.. 울지 마. 나중에 내 기억을 지워버리려고 하지 말고.”

“네 위로법은 진짜 최악의 쓰레기야. 그러니까 차이지.”

“사정이 뭐가 됐든 날 죽이려 한 것만으로도 차일 법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시간을 함께 갖던 애인을 독수공방하게 만드는 것도 차일 법해.” 말포이가 바로쥔 검을 벽에 콱 꽂으며 작게 말했다. “뭐, 자고 나면 생각이 좀 바뀔지도 모르겠는데.”

어쩌면 느낌이 달라서 확 깨버릴 수도 있잖아. 안그래?

*

그들은 무너지는 꿈을 향유했다. 조금더 추억에 젖고 싶은 해리의 바람과는 달리, 이제 이곳에는 그들을 제외한 누구도 없었고 호그와트에는 하얀 구멍이 숭숭 뚫렸다.

“대체 뭐가 좋다고 계속 머무르려는건지 모르겠네.”

“나가면 출근해야할 것 아냐. 좀 쉬자고.”

“네가 기억 못하는 2년 간의 얘기를 하는 것도 재밌겠네..”

말포이가 또 뭐가 있더라, 하며 기억을 꺼내오는 동안 해리는 재빠르게 궁금한걸 물었다.

“그런데 왜 나만 기억이 없는건데?”

“내가 이게 어떤건지 너한테 다 말해준게 2년 전이라, 어쩔 수 없었지. 네가 징조를 눈치채자마자 그 얘기랑 이어버리면 어떡해?”

“넌 처음부터 알고 있었잖아?”

“그러니까… 이건 내가 꾸는 자각몽에 널 데려온거야. 그러니까 네가 꿈이란걸 알아채고 나한테 그걸 말할 수록 내 꿈은 널 위협으로 받아들이게 되는거지. 이해됐지?”

“아하.” 이해 못했다. 사실 꿈이란게 당시에 이해를 했다 생각해도 사실은 이해하지 못했고, 반대로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던 것이 깨어나면 이해되곤 했으니 대충 넘긴 것이다.

“이제 완전히 가망이 없는데, 현실로 돌아갈 생각은 안들고?”

“어쩐지 도망치라는 것처럼 들린다, 그거.”

“나가서 도망은 내가 쳐야지.” 말포이가 웃으며 그를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

해리는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잘 기억하지 못했다. 배를 찔린 것 같기도 했고, 말포이가 뒷목을 한번에 찔러 즉사시킨 것 같기도 했다.

물어보려고 했다.

“말포이?”

왜 꿈에서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말포이가 그토록 그를 죽여서 내보내려고 했던 것은… 자신이 먼저 나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인데.

‘나가서 도망은 내가 쳐야지.’

“야,” 해리는 미친듯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손에 무언가 쥐고 있음을 깨달았다. 황급히 펼치다가 찢어진 편지조각을 맞춰서 바닥에 놓았다.

‘지금쯤이면 내가 널 완전 속였다는걸 깨달았겠지.’

말포이와 그는 사귀지도 않았고, 이건 합의 하에 진행된게 아니었다. 해리는 말포이가 그 망할 물약의 제조법을 폐기한 줄로만 알고 있었다.

‘원래 이런건 마지막이 중요한거 알지? 네가 먼저 날 꺾었지만 마지막으로 널 꺾은건 나야.’

이제 다시 나타나서, 가증스럽게 ‘서프라이즈’같은 말을 해줬으면 했다.

‘내가 언제 죽고 싶었는지 아냐.

모든걸 실패했을 때나, 어머니가 힘들어하면서 서서히 내 심장을 저밀 때나, 두분을 내가 죽였을 때나, 그전에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을 때나 아니라.

널 사랑한다는걸 깨달았을 때.’

말포이는 흔한 ‘간다’ 라는 말이나, 맺음말도 없이 편지를 끝냈다.

편지를 뒤집어보니, 작은 중얼거림같이 휘갈긴 말이 있었다. 그 위로 눈물이 떨어져 잉크가 번졌다.

‘그러게, 그날 바로 …지 그랬어.’

*

그날 왜, 나를 받아들였어?


정말 드레이코는 저 쪽지를 남기고 사라졌을까요?

아니면 해리의 바람대로 해리가 충격받는걸 충분히 즐기다가 방문을 열고 서프라이즈~ 라며 나타날까요.

드레이코의 쪽지에는 진심만 담겼다는 말만 남겨놓고 싶네요.. 즐겁게 읽으셨다면 기쁘겠습니다! ㅎㅎ

-게재 당시 후기


비교적 가장 최근에 완성해서 그런지 제가 쓴 해리드레 픽 하면 첫번째로 떠오르는 글입니다. 아마 당시 구독자 리퀘 이벤트로 소재를 받아 손 가는 대로 스스슥 가볍게 썼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고 리퀘 주신 분도 굉장히 좋아해주셔서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정말 꿈결처럼 끝을 냈네요. 드레이코가 그대로 사라졌든 다시 나타났든 최악의 방식으로 고백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