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all during a business trip.
여느 때와는 살짝 다른 일상.
출장을 온 하인하트 둔켈은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이 수많은 서류 더미들의 작성을 빨리 끝마치고, 자신의 사랑해 마지않는 연인의 곁으로 돌아갈 것인가에 대하여. 이윽고,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른다.
“⋯. 이런 실없는 생각을 할 시간에 빨리 해치우는 것이 낫겠지.”
본디 하인하트는 자신의 방이 있음에도, 어릴 적부터 제게 짙게 자리 잡은 불면증 탓에 제 연인과 같은 방에서 자고 일어나며 생활한다. 이런 생활은 벌써 몇 개월째 지속되었기에 하인하트에게 있어 자신의 연인 없이 밤을 보내는 것은 매우 어색한 일이었다. 애초에, 연인의 침실이 아니거나 연인의 부재 시에는 자지도 못하지만. 새벽이 다 되어가도록 일을 끝내지 못한 하인하트를 반기는 것은 전에 제출한 보고서의 반려였다.
12시가 다 된 뒤에야 반려된 보고서를 넘기는 출장지의 직원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방문을 쾅, 하고 닫아버린 뒤에야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연인의 부재는 생각보다 더욱 그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아, 정말 최악이다. 혼자 중얼거린 뒤에야 책상에 앉아 엎어졌다.
‘도대체 나를 어디까지 응석받이로 만드는 건가요, 당신은.’
연회 전의 하인하트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생각이라며 중얼거리고는, 잠시 정신을 차리고자 세게 뺨을 쳤다. 3대 정도 스스로의 뺨을 치며 정신을 다 잡은 하인하트는 다시 펜을 쥐었다.
⋯. 그럴 예정이었다.
연인에게서 연락이 오기 전까지.
자신의 연락석에서 반응이 오자 더할 나위 없이 기꺼운 표정으로 연락을 받으며, 하인하트는 그날 처음으로 옅게 미소 짓는다.
-페인, 안 자고 있지. ⋯. 잠깐, 잠깐만, 페인. 볼이 빨간데, 무슨 일 있었어?
“⋯. 생각보다 할 일이 많네요. 별장 관리도 이것보단 덜할 거예요. 볼이 빨간 건 신경 쓰지 말아요. 정신 차리고자 몇 대 때린 것뿐이니까. 그나저나, 당신은 왜 안 자고 있나요, 하일?”
-너 안 자고 있을까 봐 자라고 연락한 거야. ⋯. 근데 얼굴 보니까 그럴 상황은 아닌 듯 싶네.
“정확해요. 보고서가 반려 당해서 원점으로 돌아갔어요. 거기다, 알잖아요. 전 안 자는 게 아니라 못 잔다는 거.”
-⋯. 응. 우리 페인은 내 곁이 아니면 자지 못 하지. 텔레포트 가능하지 않아? 데리러 갈까? 자고 하는 게 페인한테도 더 나을 텐데.
“아니에요. 어차피 오늘 못 하면 내일 해야 하는 거라, 그냥 빨리 처리하고 당신 곁으로 가는 게 나아요. 물론, 제가 도착하면 당신은 이미 출근했겠지만.”
하인하트는 쓴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낮잠을 청할 때가 되면 분명 연인은 출근해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원래는 별 생각도 없던 마탑주를 향한 저주를 퍼붓고 싶어진 하인하트였으나, 제 소중한 연인과 연락하던 도중에 이런 것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불경하다고 생각해 그만뒀다.
“하일.”
-응, 왜 그래? 어디 불편하거나 그런 거 있어? 그럼 안 되는데⋯. 다친 곳 있거나 하면 바로 말해줘. 돌아오는 대로 내가 치유 마법 걸어줄게.
제 연인의 걱정이 달가운 것인지, 그저 귀여워서 그런 것인지 모를 웃음을 내비친다. 아마 그런 자신의 마음은 잘 모르겠지, 라고 생각하며 아니라고 고개를 내젓는다. 그것보다는 좀 더⋯. 정확하게 하고 싶은 말을.
-페인? 다치지 않았다면 다행인데, 왜 부른 거야?
“그냥, 그냥요. 그냥⋯. 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정말로. 너 없으니까 허전하고 별로야.
“통했다면 다행이네요. 당신 혼자 두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알죠? 원망은 마탑주께 하도록 해요.”
-난 원래도 그 사람 싫어하는데, 더 싫어지게 생겼어.
“왜요? 저 출장 보내서요?”
-원래 본인이 가도 될 일을 굳이 너한테 가라고 한 거잖아. 짜증나. 마음에 안 들어. 원래 같으면 페인이랑 함께 자러 들어갈 시간인데.
잔뜩 짜증이 나서는 툴툴대는 제 연인을 보며 그간의 스트레스는 잊은 듯, 오롯하게 그에게만 보여주는 환한 미소로 답장한다. 그래, 저는 이런 연인의 모습이 너무나도 좋아서⋯. 그래서 역으로 하인하트에겐 힘들었다. 당장이라도 다 접어서 고이 날려버리고, 마탑으로 되돌아가고 싶었으니까. 그럼에도 그리 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 그렇게 하면 마탑주가 또 난리를 칠 게 뻔하지. 솔직히, 마탑주가 나를 건들지 못할 건 알지만. 밉보여서 좋을 것은 없다.’
“슬슬 자야하지 않아요, 하일? 졸리잖아요.”
-너한테 옮은 거 같아. 페인이 없으니까 잠이 안 와.
“무슨 실없는 소리예요. 내일 월차 낼 거 아니면 얼른 자요.”
-진짜 낼까?
“제가 비오는 날에 그러면 뭐라고 하면서.”
-그건⋯.
“됐어요. 따지려고 하는 말은 아니니까요. 얼른 자요. 당신이 자고 일어났을 때 당신 눈 앞에 있도록 노력해볼게요.”
-⋯. 알겠어. 얼른 와, 보고 싶어.
“네. 저도요.”
보고 싶은 것은 보고 싶은 것이고, 일은 일이다.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하는 하인하트이지만, 오늘만큼은 조금만, 아주 조금만 ‘마법사 하인하트 둔켈’의 감정은 내려놓고, ‘이엘로 폰투스의 연인 하인하트 둔켈’의 감정을 가지고 일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일은 착오 없이 끝낼 생각이다. 한시라도 더 빨리 자신을 기다리는, 저의 사랑하는 사람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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