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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페커미션 37. 돌아오지 않는

1차 - 에네로 + 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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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네이오] 돌아오지 않는

어두워야 할 밤거리에 조금씩 주홍빛 등을 밝힌다. 조용해야 할 밤거리에 소란이 인다. 그 누구도 일찍 잠들지 않고 그 누구도 제 모습으로 있지 않는 축제의 밤. 오늘은 죽은 혼이 되살아나고 정령과 마녀가 횡행하는 날이므로 불을 밝히고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장난을 치고 떠들썩하게 굴며 그들을 속이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죽지 못하는 영혼이, 하나.

생존도 절박도 바라지 않으나 죽음도 방치도 허락되지 않은 터에 웃으며 살아가야 하는 자가 여기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분장도 의상도 호박등도 순무도 장식도 없이 그저 분명히 문을 두드릴 아이들을 위한 과자를 현관 옆에 놓아두었을 뿐. 그는 그 누구의 눈도 속이고 싶지 않았다. 귀신이든, 정령이든, 마녀든. 아니, 그러고 싶지 않다는 건 허세일 뿐이었다. 그가 애써 조절하지 않으면 어떤 것이라도 그를 알아채고야마는 것이므로. 변장을 해보았자 가진 힘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이조차도 허세일지 모른다. 능력의 조절은 이미 능숙하지 않은가.

사실을 말해, 누군가가 귀에서 속삭인다. 사실은 어떻게든 되어버렸으면 좋겠지, 귀에 울리는 소리. 어쩌면 정말로 악령이 온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마녀라거나, 정령이. 버릴 수도 없는 짐이 너무 무거워서 그러는 거지, 하고 비웃는 소리가 연이어 울린다.

그는 웃는다. 아이들이 문을 두드리기에. 그 무엇이 그 무엇을 비웃어도 웃어야 하는 사람처럼 그는 상냥하게 웃으며 아이들을 맞이한다.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몇 번이 나도 그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아이들일 것이 뻔했다. 혹은 마녀거나 정령이거나 악령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는 기대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선한 영혼이 오는 것은 11월 2일이지 오늘이 아니었다.

그러니 이오는 오늘 오지 않는다. 밤이 늦도록, 새벽이 올 때까지, 온 세상의 사람과 사람 아닌 것들이 문을 두드려도 그것이 이오일 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틀 후에도 이오는 오지 않을 것이다. 죽고 싶어 한 이가 산 자의 영역으로 올 리가 없으니까. 설령 온다고 해도, 자신을 죽인 사람에게 굳이 오고 싶어 하진 않을 테니까.

어제는 절망적인 말을 들었다. 사람은 원래 죽음을 무서워하도록 태어났다고. 죽고 싶다는 말은 사실 정말 죽고 싶은 게 아니라고. 단지,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일 뿐이라고. 그 한마디에 위태롭게 서 있던 평화가 무너져 내렸다. 그의 평화는 어떠한 믿음 위에서야 겨우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오는 분명, 진심으로 죽고 싶어 했을 거라는 믿음, 그의 무력감은 영원으로 수식되었을 거라는 믿음.

작은 가짜유령이 지나가고 오기를 반복하는 틈새에서 그는 소파 위에 몸을 던졌다. 온 힘을 다해 웃었더니 그것마저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는 천장을 바라보다가, 바깥의 불빛과 희미한 전등불이 일렁이는 것을 보았다. 비슷한 모양을 언젠가 보았다. 분명, 과거에, 여기가 아니었을 때, 언젠가.

마치 하품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는 제 목에 양 손을 가져다대었다. 조금씩 힘을 주면 숨이 점점 막혀왔다. 더, 더, 더, 더, 더……. 손으로 자기 목을 졸라서 자살할 수는 없대. 누가 그런 말을 했더라, 기억해내는 건 의미가 없다. 알고 있었다. 산소가 모자라면 몸의 끝부터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는 걸. 그래서 쾌락을 위해 낮은 곳에 줄을 걸고 목을 매는 것이 위험하다는 걸, 왜냐하면 손발부터 힘이 빠지니까 간단히 목에서 뺄 수 있는 줄도 뺄 수가 없게 된다고……. 그래서 이런 방법으로는 죽을 수 없다고.

손이 절로 목에서 떨어져나갔다. 생리적인 현상으로 나온 눈물이 옆으로 흘러내렸다. 그는 무서웠다. 사실은 이오가 죽고 싶었던 게 아니라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던 거라면, 곧이곧대로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이렇게’가 아닌 삶을 찾아주었더라면…….

그랬다면, 에네로는 이오의 영웅이 될 수 있었을까?

언젠가는 다시 파트너가 될 수 있었을까.

어쩔 수 없었던 게 아니라, 그저 이오의 말을 곧이곧대로 이해하며 편한 길을 고른 건 아닐까.

남은 눈물로 천장이 이지러져보였다. 어떤 불빛은 마치 꽃처럼 빛났다. 그는 옛날의 이오처럼 빛나는 천장의 꽃잎을 마음속으로 떼어내며 중얼거렸다. 죽어도 된다, 죽으면 안 된다, 된다, 안 된다, 된다, 안 된다, ……, 죽을 수 없다, 없다, 없다…….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이오일 리는 없었다. 따라서 그는 대충 눈물을 닦아내고 입술을 끌어올렸다. 웃으며 살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저 어린 손님들에게는 죄가 없으니. 그는 과자를 나누어주며 계속해서 웃었다. 웃고, 웃고, 또 웃었다. 마치 그렇게 해야 속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지 못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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