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니어런 마사트로
푸른 상록수 잎 사이로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 어린아이가 칭얼거렸다.
“오빠, 아직이야?”
“조금만 더 기다려주라.”
나는 여동생을 진정시켰다. 이제 선만 조금 손 보면 그림이 완성될 참이었다. 때마침 여동생의 코 위로 나비가 내려앉았다. 나는 곧 입을 다시 열었다.
“완성됐어.”
여동생은 바로 자세를 풀고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달려왔다. “그러다 넘어져.” 예상했다는 듯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다급한 답장이 돌아왔다. “안 넘어져, 안 넘어져.”
나는 소싯적부터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여동생은 내가 그림을 그리는지 마는지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자신을 그려주면 늘 기뻐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언제나 그림을 선물했다.
내게 타인에게 무언가를 베푸는 기쁨을 깨닫게 해 주신 것은 어머니였다. 우리 가족은 마을의 변두리 숲속에 살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과 교류를 허투루 하지도 않았다. 부족하면 나누고, 충분하면 나누자는 것이 어머니의 지조였다.
우리 남매는 그런 어머니의 말을 곧잘 따랐다. 그 덕에서인지 마을과 떨어져 학교로 향하는 길은 멀었지만 마을에서 사는 친구들은 우리 집으로까지 발길을 돌려 함께 걸어 주기도 하였다. 그런 친구 중 하나인 젠은 “너희 어머니가 해 주시는 빵이 정말 맛있더라”라며 말을 돌렸고, 나 또한 젠의 말에 말없이 웃음으로 화답했다.
“마사트로!”
멀리서 보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란의 옆에는 젠이 서 있었다. 나는 발치에 두었던 가방을 어깨에 맸다.
“보란.”
“시장에 가자. 마침 할 것도 없잖아. 솔르도 심심해 보이고.” 젠은 슬쩍 눈치를 주었다.
학교는 지금 휴교 중이었다. 하루 일정이 사라진 나는 여동생과 함께 유유히 시간을 보내다 시간이 되면 도서관에 가려고 했었다. 여동생 솔르는 어느새 보란의 다리에 찰싹 붙어 떨어질 기미가 없었다.
“좋네. 안 그래도 마을에 갈 곳이 있어서 갈 참이었으니까.”
“갈 곳?”
보란이 물어왔다.
“도서관. 이전에 빌렸던 책은 다 읽었으니까, 다른 책을 읽으려고. 뭐가 좋을지 찾아봐야겠어.”
“이제 더는 다른 책도 없는 거 아냐? 위에서 전국 도서관에 있는 유해 도서는 전부 없애겠다고 난리야. 그건 사실상 모든 책을 다 없애버리겠다는 거지. 당분간은 여기저기서 불을 땔 테니 숲으로는 다가가기 어렵겠어. 나처럼 복장이 허름한 사람이 잘 못 어슬렁거렸다가 군인들한테 걸리면 개죽음이야. 거지가 불온한 사상을 다 가졌다면서.”
“개죽음이 뭐야?”
“왈왈 강아지처럼 꼴까닥하는 거야, 솔르 공주님. 나는 책 읽는 걸 즐기지는 않지만 마사트로가 읽는 걸 보면 안에 있는 것들이 나쁜 게 아니란 것 정도는 알겠어. 분명 높으신 분들은 그것조차 버거운 거지. 겪어보지 않으면 어떤지 몰라. 마치 맛보지도 않은 채소를 맛없을 거라고 합리화하고 편식하는 것처럼.”
“젠.”
솔르의 말에 답하려던 젠에게 보란이 꾸중을 주었다. 보란의 눈썹은 척 보기에도 불쾌하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보란의 곁에 있던 솔르를 한품에 안아 목마를 태웠다. 그러는 사이에 젠은 내 가방을 대신 들어주었다.
“알 건 알아야지, 그게 누구든.”
“솔르는 그런 걸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
“내가 막아도 마스트로가 얘기해 버리면 그만이거든.”
“그래, 마스트로. 그거 좋다. 솔르한테 젠 얘기는 듣지 말라고 못 박아버려.”
“뭐라고.”
“하하.”
둘의 대화에 나는 웃음이 터졌다. 곧이어 두 사람의 웃음소리도 이어졌다. 솔르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다들 웃자 자신 덕에 웃는다고 생각하며 행복해했다. 문장에 본인의 이름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젠과 보란은 그런 솔르를 보며 사랑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역시 그랬다. 우리는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은 20분 쯤 걸어가다 보면 촌장님의 집 너머에 있는 다리를 건너면 가게들이 줄 서 있었다. 이 시간대에 촌장님 집안에는 어른들이 모여 마을 회의를 진행하고는 했다. 모두의 시선이 촌장님의 집안을 향했다. 오늘은 유독 집안에 사람이 많아 보였다. 눈에 익은 사람이 보였다. 처음 보는 이들도 눈에 보였다. 오늘 학교가 휴교한 일도 마을 회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젠은 이미 시선을 다른 곳에 돌리고 있었다. 그 시선이 닿는 곳은 끝이 없었다. 우리는 촌장님 댁을 지나쳐 갔다.
“어디 가?”
솔르가 물어왔다. 젠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 대신 보란이 입을 열었다.
“어른들이 모여서 마을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거야. 예를 들면, 음……. 다음 달 장날에는 무슨 맛있는 걸 팔까 같은 거.”
“그럼 사과도 팔아?”
“그랬으면 좋겠네.”
보란은 거짓말을 하지 못 하는 성격이었다. 물론 나 또한 그랬다. 젠은 처음 보는 사람이든 한때 싸웠던 사람이든 언제나 대화를 잘 했다. 언제나 대화의 끝은 좋게 마무리되었다.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입을 다물었다. 네 명이 있는 곳에서 두 명의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은 계속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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