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찾는 탐정

5화 - 새출발

다시 일할 시간이 되었다.

처음으로 ‘신을 찾아 달라는’ 의뢰를 끝낸 후로는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특별한 의뢰가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작게는 물건을 찾아 달라는 의뢰가 오거나, 때때로 사람을 찾아 달라는 의뢰가 오기도 했다. 그렇게 자잘한 의뢰서가 쌓여 갔다. 단테는 그러한 의뢰서들의 목록을 점검하고 있었다. 지갑 찾기, 커플링 찾기, 미아 찾기…. 단테가 소파에 누운 채 목록을 적어 둔 종이를 넘기고 있었다. 그가 중얼거리고 있자, 트리니티가 물걸레질을 하다 말고 단테를 째려봤다.

“뭔 말이 그렇게 많은 거예요? 청소하는 데 방해돼요. 집중이 안 된다고요. 조용히 좀 해요.”

트리니티의 매몰찬 말에, 단테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저기 저 탐정님은 일도 안 하고 있는데. 왜 일하는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거람. 오르가 창틀에 팔을 기댄 채 담배를 피우다 말고 단테를 흘긋였다. 물론 그 관심도 잠시일 뿐이었다. 자신을 무시한 오르의 반응에 단테가 한숨을 내뱉자, 트리니티가 한 번 더 꾸짖었다.

“탐정님은 엊그제도, 어제도 계속 일하셨잖아요. 단테 씨, 당신. 일도 안 하고 사무소에서 뒹굴기나 했으면 좀 가만히 있으라니까요?”

결국 단테가 입을 다물었다. 말소리 대신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 내었다. 트리니티는 그제야 만족한 듯 청소를 다시 시작했다. 오르는 둘의 모습을 가만히 구경하다,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꽤 맑은 하늘이었다. 간간이 흐르는 흰 구름은 당분간 비 소식이 없을 거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안경도 이제 여분이 얼마 없던가… 슬슬 사기는 해야겠군. 그 하늘을 바라보며 짧게 중얼거렸다.

문득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에 달린 종이 딸랑 울렸다. 이윽고 익숙한 굽 소리가 났다. 마이나스였다. 그는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가늘게 뜬 두 눈의 시선은 단테에게로 향했다.

“이 시간대쯤에 오겠다고 연락했었는데. 받지 못하셨나 봐요?”

어쩐지 투덜거리는 말투였다. 그 말에 트리니티가 급하게 밀대를 벽에 둔 채 소파 쪽으로 향했다. 허겁지겁 단테를 들어 올리고는 그를 벽 쪽으로 내팽개쳤다. 꽤 큰 소음이 들렸으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단테가 억울한 소리를 내지름에도, 트리니티는 탁자 위의 종이 더미들을 주워 널브러진 단테의 옆에 두었다. 연락을 못 받았었나 봐요. 미안해요. 여기 앉으세요, 커피라도 드릴까요? 마이나스가 조용히 소파에 앉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에 트리니티는 쭈뼛쭈뼛 자리를 피했다.

오르가 조용히 담배를 끄며 마이나스의 앞에 앉았다. …나도 사과하지. 요즘 일하느라 의뢰 연락이 아니면 대부분 넘기는 편인지라. 마이나스가 짧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몇 번 접힌 종이를 탁자 위에 두며, 용건을 말했다.

“전에 말했던 소프라는 이름의 사람을 찾은 건 아니지만…. 대신, 그의 행방을 알 법한 사람을 찾았답니다.”

오르가 종이를 주워 펼쳤다. 종이에는 한 사람의 간단한 약력이 적혀 있었다. 이름은 에스카. 서부에서 꽤 유명한 보안업체인 글래시어를 운영 중. 빙하같이 차가운 인상의 인물이었다. 옅은 푸른색의 단발머리는 몇 번 잘린 듯 조금 불규칙적이었다. 거기에 왼쪽 눈을 가로지르는 흉터를 보니 제법 거친 삶을 살아온 듯했다. 오른쪽의 푸른 눈과 다른 붉은 눈. 의안이라도 사용하는 중인 건가? 오르가 그 얼굴을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자, 마이나스가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그는 그제야 마이나스를 쳐다봤다.

“미안하군. 직업병 정도로 생각해 주겠나.”

마이나스가 팔짱을 끼며 제 팔을 두드렸다. 어쨌거나, 나름의 인연이 있는 분이신지라. 제가 미리 연락해 두었어요. 직접 가서 만난다면 그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죠. 올라가 소파에 등을 기대며 안경을 고쳐 썼다. 그가 말없이 있는 사이, 마이나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오르에게 시선을 주었다. 요즘 한 가지 고민을 가지고 있는 것 같던데. 아마 그거에 대한 해결을 요구할지도 모르겠네요. 나름의 보수랄까. 그 조언에 오르가 참고해 두도록 하지,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마이나스는 금세 자리를 떠났다. 단테는 멍하니 문 쪽을 바라보다 매무새를 고치며 일어났다. 이야, 정말 사무적이네. 그가 한마디를 툭 내뱉자, 트리니티가 옆에서 팔꿈치로 옆구리를 찔렀다. 악! 또 왜?! 하며 내지르는 소리가 나왔으나, 트리니티는 무시한 채 오르에게 다가갔다. 바로 출발하실 거예요? 미리 준비해 둘까요? 오르가 일어서며 한숨을 쉬었다. 결국 일거리가 늘어 버리는 건가…. 그래, 바로 출발하지. 벗어 두었던 코트를 집어 들었다. 그 모습에 트리니티가 다시 분주하게 움직였다. 단테는 한참 멀뚱히 서 있다 허겁지겁 서류 더미를 정리하며 둘을 뒤따랐다.

…부웅…. 셋이 탄 차는 조용히 도로 위를 달렸다. 단테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운전대를 두드렸다. 그러고 보니까, 대체 내가 왜 운전사가 된 건데? 조수석에 앉아 있던 오르가 팔짱을 끼며 눈을 감았다. 첫째, 일단 너는 크게 하는 게 없고. 둘째, 월급을 받으면서 월급에서 삭감하지 않고 의식주를 제공받고 있지 않나? 단테는 끄응, 소리를 내며 입을 다물었다. 그는 괜스레 액셀을 세게 밟았다. 그 탓에 트리니티가 창에 머리를 박았고, 결국 트리니티의 잔소리가 도착하기 전까지 이어졌다.

“네네, 잘 알겠고…. 됐다, 도착했어. 여기 맞지? 글래시어라는 곳 말이야.”

잔소리하던 트리니티의 시선이 문득 창밖으로 향했다. 차 내부에서는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크기의 건물이 눈앞에 있었다. 건물의 입구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대부분은 험악해 보이는 인상이었으며, 몇몇은 단순한 일반인으로 보였다. 트리니티가 입을 닫은 채 건물을 가만히 구경하자, 오르가 뒤를 흘긋 바라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이만 내릴까. 트리니티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마이나스의 말에 따르자면 로비에서 바로 우리를 맞이할 거라고 하던데. 오르가 차에서 내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에 트리니티가 입을 열기 직전, 단테가 끼어들었다. 그래, 맞아. 뭐라고 했더라, 뭔가 좀… 이질적으로 보일 거랬나? 종알거리는 단테를 보고서 한 대 치려고 했으나, 많은 이들이 보고 있기에 참았다. 단테는 잠깐의 살기를 느꼈었는지 말을 더 잇지는 않았다.

입구 앞으로 다가서자 자동문이 양옆으로 열렸다. 로비는 전형적인 대기업의 로비 모습과 흡사했다. 단테가 신기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우와, 되게 넓은 곳이네. 여기서 바로 알아볼 수 있다니, 대체 얼마나 이상한 녀석인 거려나? 오르가 미간을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끄럽다 말하려 했으나, 그렇게 말하는 일은 없었다.

“악!”

…그의 비명이 먼저 울렸기 때문이었다. 단테가 정강이를 걷어차인 듯 오른쪽 다리를 든 채 콩콩 뛰었다. 오르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시선을 아래로 하자, 꼬마처럼 보이는 이가 서 있었다. 그러나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었다. …어려움이라는 게 이걸 말한 건가.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그가 오르에게 고개를 돌렸다. 물론 단테는 안중에 두지 않은 채로.

“반갑다. 지금은 이런 모습이 되긴 했지만…. 에스카다. 바쁜 몸인지라,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고 싶은데. 괜찮겠지?”

에스카가 손을 내밀었다. 오르는 어색하게 그의 손을 잡아 악수했다. 에스카는 손을 거두며 말을 이었다. 소란스러운 건 싫으니… 저 둘은 건물 ‘구경’이나 보내도 괜찮나? 오르가 둘을 흘긋였다. 단테는 눈물을 찔끔 흘린 듯 찌푸린 얼굴로 오르를 쳐다보았다. 트리니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둘을 한참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럼 우리 둘만 얘기하는 것으로 하지. 에스카는 이해가 빨라서 좋군, 하고 말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너도 보면 알겠지만, 지금의 난 ‘시간’을 빼앗긴 상태다.”

소파에 앉아 오르를 마주 보던 에스카가 서두를 떼었다. 오르가 답하기도 전에, 그는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전 친우에게 배신을 당했거든. 그가 내게 제약을 두기 위해 이런 모습으로 만들었다. 오르가 다리를 꼬며 에스카를 내려다보았다. 역시 내가 도움을 주어야 정보를 말할 생각인가 보군. 그래, 그러면 내가 무얼 도우면 되는 거지? 에스카가 한숨을 내쉬었다. 보다시피 나도 절박한 상황인지라. 무려 5년 동안 이런 상태를 유지 중이란 말이다. 그는 한탄 뒤에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미안하군. 바로 본론을 말하겠다 했었는데. 오르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의 반응을 본 에스카는 다시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다른 건 필요 없고. 시간만 되찾을 수 있게 도와주면 된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도록 하지. 자세한 내용은 내 친우… 로자가 있는 곳에 도착하면 알려 주겠다. 어째서 지금 당장 얘기해 주지 않는 것인지 의아했으나, 오르는 구태여 묻지 않았다. 대신 다른 질문을 하기도 전, 에스카가 시간을 확인하더니 그에게 손짓했다. 곧 회의를 해야 해서. 이만 가 주겠나? 위치는 사람을 시켜 알려 주도록 하지. 먼저 갈 때쯤에는 나도 도착해 있을 거다. 이야기는 물음표를 남긴 채 끝났다. 오르는 답도 하지 못한 채 사무실에서 나왔다.

에스카의 사무실에서 나온 후, 오르는 때마침 단테와 트리니티를 마주쳤다. 구경은 잘했나? 그의 물음에, 트리니티가 어깨를 으쓱였다. 별건 없었더라고요. 겉보기엔 정말로 평범한 회사 같은 거 있죠. 건물 조사를 허락해 준 이유를 알 것도 같네요. 이어서 트리니티가 더 말하려 했으나, 단테가 입을 열었다. 별것 없다기엔 엄청 호들갑을 떨던데? 이렇게 큰 건물은 오랜만이라나 뭐라나. 그 말에 트리니티가 단테의 발을 짓밟았다. 단테는 입술을 꽉 깨물며 신음을 참았다.

“하, 그럼 이만 일하러 가 볼까.”

웃음 섞인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르의 말에, 트리니티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또 뭐라도 찾으러 가는 거예요? 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번에는 ‘시간’을 되찾으러 갈 거다. 그 말에 트리니티는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옆에 있던 단테는 식은땀을 흘리며 웃었다. 그래, 재밌겠네. 얼른 가자고… …아파 죽겠으니까. 트리니티가 또 그에게 짜증을 내려 했으나, 오르가 먼저 걸음을 뗐다. 트리니티는 결국 단테에게 관심을 끈 채 오르를 뒤따라갔다. 단테는 한참 숨을 마시는 소리를 내며 어정쩡한 발걸음으로 둘의 뒤를 밟았다.

다시 일할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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