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찾는 탐정

6화 - 반환 (1)

그는 아주 조심스레, 아주 천천히 등을 돌렸다.

“자, 도착했습니다. 아가씨들.”

단테가 여유롭게 차를 세우며 웃는 얼굴을 내비쳤다. 오르의 인상이 확 찌푸려졌다. 그런 대사는 어디에서 배워 온 거지? 단테는 차 키를 손가락에 끼운 채 돌리며 눈을 피했다. 뭘 그렇게까지 짜증을 내시나. 자, 얼른 내리라고. 지금 안 내리면 다시 돌아간다? 오르는 이마를 짚다가 문을 열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두어 번 났다.

눈앞의 스피나는 글래시어 못지않게 꽤 큰 건물이었다. 규모는 조금 더 작았으나, 오가는 사람이 적지는 않았다. 이름에 걸맞게 입구의 화단에 심어진 장미들이 눈에 띄었다. 오르는 잠시 건물 꼭대기를 쳐다보았다. 그러는 동안 문득 전화기가 울렸다. 문자 하나가 오르에게 전송되었다.

[지금 당장 뒤쪽을 봐라.]

오르가 고개를 돌리자, 골목에 서 있는 자그마한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꽤 번거롭군. 오르는 전화기를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에 트리니티가 먼저 따라나서려 했으나, 오르는 손을 들어 기다리라는 신호를 주었다. 주변 좀 보고 있어라. 잠시 다녀올 테니. 트리니티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단테를 잠시 째려보다 관두었다. 단테는 마냥 어깨를 으쓱이기만 했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인영이 대뜸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굳이 악수를 해야 하나? 오르가 의문을 표하자, 그는 말없이 손을 거두었다. 혹시나 해서 말이지. 에스카는 벽에 등을 기대며 오르를 올려다보았다. 잠깐 계획에 관해서 얘기 좀 할까. 그 말에 오르는 반대편 벽에 몸을 기댔다. 주머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불을 지펴 입에 물었다. 짧게 부탁하지. 에스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부하에게 시켜서 들은 정보가 하나 있는데. 상자는 로자의 사무실에 있다고 하더군.”

그가 서두를 떼었다. 그 상자를 빼돌려 글래시어로 돌아오면 된다. 그 녀석은 네가 나와 엮인 줄 모를 테니, 사무실에는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겠지. 아마 ‘스승의 위치를 알고 있다’고 말하면 바로 들여보내 줄 거다. 오르는 연기를 한 번 내뱉었다. 들어갔다고 치지. 그렇다면 어떻게 빼돌려야 하는 건가? 집자마자 바로 붙잡힐 게 뻔한데. 그의 말에 에스카가 숙여 보라는 듯 손을 까딱였다. 오르는 자연스럽게 등을 굽혔다.

이거면 될 거다. 그가 오르의 안경테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오르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자, 에스카는 팔짱을 꼈다. 안경을 한 번 들썩이면 나에게 신호가 오는 형식이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을 때 신호를 보내면, 그 뒤는 내가 돕겠다. 이목을 끌기만 하면 나머지는 알아서 할 수 있겠지? 오르는 잠시 눈을 게슴츠레 떴으나, 이내 알겠다 말하며 피우던 담배를 짓밟아 껐다. 그럼 있다가 보도록 하지. 에스카는 빠른 걸음으로 골목 끝으로 빠져나갔다. 오르는 그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나서야 등을 돌렸다.

오르가 돌아오자, 트리니티는 조금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오르는 그 얼굴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다. 이상은 없었나? 그 말에 단테가 어깨를 으쓱였다. 별로. 정말 평범한 곳이던데. 트리니티는 단테를 어깨로 조금 밀어내며 오르를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탐정님. 앞으로 어떻게 하면 돼요?”

그는 잠시 눈을 감으며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오는 길에 설명했지만, 그 상자를 빼앗아 글래시어로 다시 향하면 된다. 자세한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는 말고. 그는 말을 끝냄과 동시에 발을 뗐다. 둘은 바로 이동한 오르의 뒷모습을 잠깐 쳐다보다 뒤따라 나섰다.

셋이 들어간 스피나의 건물 내부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조금 혼잡했다. 이렇다 할 복장 규정도 없는지 직원들은 가지각색으로 입고 있었으며, 하나같이 어딘가 단정치 못해 보였다. 중구난방인 분위기 속에도, 셋은 이방인처럼 보였다. 풍기는 분위기가 다른 탓이었다.

“실례합니다. 혹시 어떤 사유로 오셨을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나마 단정하게 차려입은 직원 하나가 다가왔다. 오르는 친근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로자와 만나고 싶은데. 그의 스승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거든. 사무실로 데려다 줄 수 있겠나? 직원의 두 눈이 잠시 동그래졌다, 이내 돌아왔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꾸벅였다. 모시겠습니다. 따라오시죠. 직원이 먼저 한 발짝 움직이자, 오르는 뒤를 돌아 둘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짓에, 단테와 트리니티는 자세를 고치고서 뒤를 밟았다.

그들이 다다른 사무실은 과연 대표이사의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별것 없어 보였다. 보안도 그리 삼엄하지 않았으며, 일전에 보았던 에스카의 사무실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손님이 왔다며 직원이 문을 열자, 시선 끝에 거만하게 앉은 이의 모습이 보였다. 왼쪽 눈을 가린 장미 문양이 새겨진 안대는 그가 이곳의 대표이사임을 짐작케 했다. 장미보다도 붉은빛을 띠는 머리는 꼭 활활 타오를 것 같았다. 오르는 마른침을 삼켰다. 거만하게 앉아 있던 이, 로자는 몸을 일으키며 들어오는 셋을 맞이했다.

“좋아, 악수라도 할까? 우리.”

로자가 손을 내밀자 오르는 어색하게 그의 손을 잡아 가볍게 흔들었다. 로자는 악수가 끝남과 동시에 다시 소파에 다리를 꼰 채 앉고는 오르와 눈을 마주했다. 그의 시선은 단테나 트리니티에게 한 번도 닿지 않았다. 오르는 그의 태도에 인상을 짧게 찌푸리다 관두었다. 로자는 그가 어떤 표정을 짓든 상관없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소파의 팔걸이 부분을 두드렸다.

좋아, 그러면 형식적인 걸 먼저 물어볼까. 내 스승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겠지? 그에 대한 정보 먼저 간략하게 말해 봐. 위치에 관한 얘기를 듣는 건 그다음으로 하고. 본론부터 말하는 그의 모습에, 오르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는 안경을 한 번 고쳐 쓰고서 입을 떼었다. 그 순간….

쾅―!

제법 큰 폭발음이 들렸다. 단테와 트리니티는 당황한 듯 문 쪽을 쳐다보았다. 오르는 속으로 짜증 섞인 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는 관심 없다는 듯 로자가 바로 일어섰다. 그는 짧게 욕설을 지껄이며 문 쪽으로 향해 달려갔다.

“젠장, 그 자식 짓인가! 너희들,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리고 있어. 금방 돌아올 테니까.”

문이 거세게 닫히는 소리가 울리고, 아까의 폭발음이 무색하게 사무실 내부는 정적으로 가득 찼다. 모두가 한참을 입을 다물고 있던 그때, 단테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뱉었다. 아무래도 그 녀석들이 주의를 끌어 준 것 같은데, 지금 빼돌려야 하는 거 아냐? 그의 말 이후, 트리니티가 팔짱을 끼며 투덜거리듯 말을 덧붙였다. …맞기는 해요.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거예요, 탐정님. 오르는 둘의 말이 끝나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지금이 아니면…. 그런 생각에 급한 듯이 로자의 책상 쪽으로 다가갔다. 서랍 쪽을 살피자 금고처럼 보이는 칸이 눈에 들어왔다. 주먹으로 부숴 보려 세게 쳐 보아도 금고는 꿈쩍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특수한 마력으로 보호되는 모양이었다. 그가 얼얼한 감각에 주먹을 감싸고 있자, 가만히 쳐다보던 단테가 옆으로 다가왔다.

“도와줄까?”

오르가 어떻게 하려고, 하며 반문하려던 차에 그가 찡긋 윙크해 보였다. 질색하며 뒤로 물러나자, 단테는 휘파람을 불며 금고에 손을 갖다 대었다. 열쇠가 필요하네. 뭐, 비밀번호를 알아내야 하는 것보단 나을지도. 그는 주머니에서 메모장을 꺼내더니, 이내 펜으로 무언가를 끄적였다. 이윽고 종이 한 장을 뜯어내자, 종이가 열쇠로 변했다. 때마침 바깥을 살피다 돌아온 트리니티는 그 광경을 보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숨을 들이마셨다.

어떻게 했어요? 그런 질문에 단테는 웃는 얼굴로 검지를 입술에 대었다. 업계 비밀이야. 그는 만들어 낸 열쇠를 금고의 열쇠 구멍에 넣고 돌렸다. ‘찰칵’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금고 안의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상자를 꺼내며, 단테는 손으로 브이 자를 내 보였다.

“상자는 됐고…. 이제 어떻게 돌아갈 셈이야?”

그가 손을 거두며 묻자, 오르는 잠시 고개를 숙여 침음을 흘렸다. 트리니티는 그런 오르의 옆에 붙어 그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역시 그 방법밖에 없겠네요. 트리니티의 말에, 오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것밖에 없는 것 같지. 둘의 대화가 오가는 사이, 단테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 방법’이 뭔데? 그가 물음에 트리니티는 창문을 가리켰다.

창문을 통해서 탈출해야죠. 당연한 거잖아요? 사내에는 경비가 삼엄할 테니까. 단테는 한쪽 눈썹을 찌푸리며 어색한 웃음소리를 몇 번 내었다. 하… 하하. 농담이지? 식은땀이 뺨을 타고 흘렀다. 트리니티는 그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콧소리를 흘렸다. 진심인데요? 자, 빨리 준비하세요. 단테는 상자를 양팔로 끌어안듯 꽉 쥔 채 고개를 두어 번 저었다.

싫어, 절대 안 해! 여기가 몇 층인지 알기나 해?! 그가 악을 쓰며 뒤로 물러나자, 오르는 귀찮게 됐다는 듯 이마를 짚으며 한숨 쉬었다. 결국 트리니티는 품에 있던 상자를 빼앗아 오르에게 건네고는 단테를 둘러멨다.

“싫다니… …으악!”

오르와 트리니티가 동시에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단테가 한참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도 트리니티는 제 할 일을 했다. 그가 짧게 손짓하자, 건물의 벽면에서부터 경사면이 점차 생기기 시작했다. 벽면과 똑같은 재질의 경사면이 죽 생김과 동시에 둘은 자세를 고쳐 익숙하게 미끄러져 내려갔다.

이게 대체 뭐야! 한쪽 눈을 질끈 감으며 묻는 단테의 모습을 보고는 트리니티가 짧게 코웃음 쳤다. 흥, 이게 바로 저의 ‘조화’예요. 단테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얼굴로 다시 물었다. 이게 조화라고? 내 눈에는 그냥 베끼는 것 같아 보이는데. 그 말에 트리니티가 단테의 허리춤을 꽉 쥐었다. 손 놓기 전에 조용히 하세요. 결국 단테는 입을 다물었다.

…탁.

경사면의 끝자락에서 뛰어 사뿐히 바닥에 내려섰다. 그와 동시에 트리니티가 단테를 내려 주자, 단테는 이마를 짚은 채 비틀거렸다. 트리니티는 손을 탁탁 털며 오르와 눈을 마주했다. 탐정님, 내려오면서 보니까 직원들이 너무 많던데. 어떻게 나갈까요? 방법, 찾으실 수 있겠어요? 오르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손을 턱에 댄 채 가만히 고민했다.

“방법이… 없을 것 같은데. 충돌을 피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대로라면 싸워야 할지도 모르겠….”

그의 말이 갑자기 끊겼다. 등 뒤에서 소름 끼치는 마력이 확 느껴졌다. 오르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졌다. 이건 분명 살기다. 짧은 생각이 뇌리를 스치며, 저릿한 감각이 온몸에 퍼졌다. 식은땀과 함께 뒤를 돌아봐야 한다는 충동이 느껴졌다.

그는 아주 조심스레, 아주 천천히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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