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찾는 탐정

4화 - 조우

그는… 니세우스였다.

드르륵….

오르가 관 뚜껑을 살짝 옆으로 치웠다. 이내 관 전체가 순식간에 금빛으로 물들며, 오르의 손까지 영역을 뻗었다. 그는 간발의 차로 손을 떼어 제 손을 움켜쥐었다. 다행스럽게도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오르는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온전히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러는 것도 잠시, 뚜껑이 옆쪽 벽면으로 날아갔다. 그것은 벽에 박히며 진동을 일으켰다. 벽이 크게 파손되며 먼지가 일었고, 시야가 흐릿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질적인 굽 소리가 울렸다. 갓 익은 포도와 같은 머리색, 비대칭으로 잘린 단발. 어딘가 위험해 보이는 인상과 익지 않은 포도의 빛깔과 같은 눈. 왼쪽 귀에 달린 하얀색 십자가 모양의 귀걸이가 발소리에 맞추어 흔들렸다. 그는… 니세우스였다.

“후우… 아까는 방심했지만, 그래. 이번에는 다시 깨운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그가 여유롭게 몸을 털며 걸어 나왔다. 한 걸음, 한 걸음. 그가 움직일 때마다 주변의 공기가 차가워지는 것이 와닿았다. 냉기에 하얀 숨결이 밖으로 흘러나왔다. 오르가 뒤로 한 발짝 더 움직이려고 했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시선을 아래로 두자…. 발부터 서서히 황금으로 뒤덮이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런, 이런. 뭘 하려는 생각은 접어 두는 게 좋을 거야, 친구들. 단지… 이렇게 시간을 주는 건, 내가 갖고 노는 걸 즐겨서 그럴 뿐이지. 니세우스가 눈꼬리를 접어 웃었다. 그가 오르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오르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너를 모시고 있는 마이나스에게 요청을 받고 왔다. 이것 좀 풀어 주지 그러나? 별안간 니세우스가 그의 어깨를 세게 쥐었다. 조금 더 힘을 주었다가는 뼈가 부러질 듯했다. 내가 더 속아 줄 거라고 생각했어?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으나, 그 웃음에 서린 한기는 무척이나 서늘했다.

니세우스가 오르에게 시선을 집중한 사이, 단테가 등 뒤로 펜을 끄적였다. 무언가의 문장을 적고 마침표를 찍으려 하자, 니세우스가 문득 단테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건 안 되지. 그가 한 번 핑거 스냅을 하자, 황금이 단테의 몸을 타고 상체까지 뒤덮어 버렸다. 단테는 식은땀을 흘리며 억지로 웃었다.

“하하…. 이런 미친…. 진짜 자비라곤 하나도 없는 자식이구만.”

그의 말이 거슬렸는지 니세우스가 그를 흘겨보았다. 황금은 단테의 목까지 점점 영향을 뻗쳤으며, 곧 있으면 몸 전체를 잠식할 듯했다. 이에 트리니티가 급하게 니세우스를 향해 손을 뻗자, 무엇을 하기도 전에 니세우스에게 손목을 잡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아주 조용히. 트리니티의 손목을 비틀어 쥐기 시작했다. 트리니티는 간신히 신음을 참으며 인상을 구겼다.

…안 돼! 오르가 간신히 발을 뒤덮고 있던 황금을 녹여 없애며 소리쳤다. 이윽고 그가 니세우스를 밀치려 했으나, 그의 바로 앞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몸이 한 번 휘청였다. 시야가 저절로 바닥을 향했고, 그와 동시에 이마가 바닥에 부딪혔다. 지끈거리는 통증과 함께 눈을 뜨자… 맨바닥이 보였다. 황금으로 뒤덮인 바닥이 아니라.

“아는 얼굴이야…. 그래, 본 적 있어. 이름이 트리니티라고 했던가?”

니세우스가 트리니티의 손목을 제 쪽으로 잡아당기다, 팍 놓으며 말했다. 트리니티는 욱신거리는 제 손목을 붙잡으며 반문했다. …당신이 어떻게 알고 있죠? 니세우스는 답하지 않은 채 그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머리를 부딪친 오르와 주저앉은 단테는 찌푸리는 얼굴로 니세우스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인제 보니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네. 정말로 마이나스가 보낸 게 확실한가 봐? 그래, 뭐. 무례하게 군 점은 사과할게. 내가 또 잘못한 점에 대해선 사과할 줄은 알거든. 난 상냥하니까.”

너무도 쉽게 끝나 버린 상황에, 오르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그를 째려보았다. 니세우스는 제 책임 따위는 없다는 듯 코웃음 치며 몸을 돌렸다. 그러곤 따라 나오라는 듯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도움받은 것도 있으니, 나갈 때는 내가 보호해 줄게. 이걸로 치면 되지? 아까의 무례했던 값은. 모두의 얼굴이 전부 조금씩 구겨졌다. 오르가 그의 뒤에 바짝 붙으며 짜증 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째서 저들에게 잡혔던 거지? 우리를 순식간에 제압할 힘도 있었으면서. 니세우스는 그의 말에 눈을 데굴 굴렸다. 단지 방심했을 뿐이야. 무언가 숨기는 듯했지만, 오르는 더 캐묻지 않기로 했다. 구태여 그의 심기를 건드려 좋을 일은 없었으니. 단테는 그 모습에 오르의 옆에 붙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싸가지가 없는 게 좀 마음에 안 들지 않아? 오르는 눈살을 찌푸렸다. 너도 마찬가지인데. …단테는 말을 더 얹지 않았다.

다시 나가는 길은 순탄했다. 지하를 제외한 구역은 그리 넓지 않았으며, 몇 명 서 있던 경비들은 금세 황금으로 덮여 버렸으니. 모처럼 준비한 의미가 없을 정도로 쉽게 나올 수 있었다. 입구쯤에 다다랐을 즈음, 오르는 의아함에 서둘러 바깥으로 나왔다. 밖은 그의 걱정과 달리 무척이나 평범한 풍경이었다. 어디선가 봤을 법한 한산한 거리였다. 사람과 차가 드문드문 그의 앞을 지나다녔다.

모두가 건물 밖으로 나오고, 니세우스 또한 마지막으로 나왔을 무렵. 건물은 온전히 황금빛으로 덮여 버렸다. 지나가는 몇 명의 사람들이 그것을 쳐다보았으나, 잠깐 신기해할 뿐 시선을 오래 두지는 않았다. 지하 시설만 넓을 뿐 그 외는 큰 건물이 아닌 탓이었다. 니세우스는 자신을 잠시 바라보는 이와 시선을 마주하다, 오르의 어깨를 덥석 잡았다.

“내가 이래서 방심했었다니까?”

오르는 여전히 한쪽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다. 니세우스는 그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웃는 얼굴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까 여기, 내가 잘 아는 곳 같은데? 황홀전이랑 가까운 거리 같기도 하고. 아, 그래. 저기 봐, 황홀전이 보이잖아. 그렇지? 니세우스가 가리킨 끝에 황홀전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었다. 오르가 말없이 그것을 쳐다보고 있자, 니세우스는 손을 몇 번 털고서 걸음을 옮겼다. 오르는 잠시 의문을 버려둔 채 그를 따라갔다.

일행이 걸은 지 몇십 분이 지났다. 어느새 황홀전 앞에 도착해 있었다. 마이나스는 진작에 기척을 느꼈는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니세우스가 그 앞으로 걸어오자, 마이나스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세게 끌어안았다. 니세우스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 동안, 오르가 조용히 그 옆으로 걸어왔다. 이윽고 몇 번의 헛기침을 했다. 마이나스는 그제야 팔을 내리고서 자신의 매무새를 고쳤다. 멋쩍게 목을 가다듬는 소리가 이어졌다.

“…단정치 못한 모습을 보여 죄송합니다. 아무튼… 약속했던 보수는 드려야겠죠. 그런 의미로 한마디 묻겠습니다. 탐정님께서는 무얼 원하시나요.”

그 말에 트리니티의 표정이 바뀌었다. 조금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오르를 쳐다보았다. 트리니티가 무어라 말하려던 순간, 오르가 입에 검지를 갖다 대었다. 트리니티의 표정은 순식간에 시무룩해졌다. 오르는 그 표정을 흘긋이다 제 할 말을 이었다. 그때 뭐든 보수로 줄 수 있다고 했지. 마이나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의 침묵 이후, 오르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금전적인 부분은 필요 없다. 다만… 사람 한 명을 찾는 걸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그 말을 하는 오르의 표정은 사뭇 씁쓸해 보였다.

예상하지 못한 오르의 제안에 트리티니의 얼굴이 의문으로 가득 찼다. 단테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마이나스 또한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말에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은 니세우스뿐이었다. 니세우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안으로 들어가자, 마이나스가 말을 이었다. 사람 찾는 건 탐정님의 전문 아닌가요? 오르는 끄덕였다. 맞긴 하지만,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어서. 마이나스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의중을 파악했다. 그는 잠시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나머지는 여전히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좋아요, 그 정도 도움은 드리겠습니다.”

오르는 말이 끝나는 순간 바로 물었다. 소프라는 이름을 지닌 자를 아나? 중부에서 꽤 유명한데. 흔한 이름이 아니기도 하고. 마이나스는 손을 살짝 굽힌 채 제 턱으로 갖다 대었다. 흐음…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네요. 그 사람을 찾을 수 있게만 도와드리면 되는 거죠? 오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제스처를 본 마이나스는 단테에게 다가갔다. 뻔뻔한 얼굴로 손을 내밀자, 단테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메모장과 만년필을 주었다.

사각사각. 잠깐 만년필이 움직이는 소리가 이어지고, 마이나스는 그것을 단테에게 돌려주었다. 단테의 옆에 서 있던 트리니티가 메모장을 흘긋 보았다. 둘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것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오르가 메모장을 홱 낚아챘다. 가만히 보니 마이나스의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은 그가 불평을 던지려 했으나, 마이나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협력 관계가 된 기념이랍니다. 큰 신세를 졌으니, 앞으로도 여러분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거든요. …오르는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거래는 그렇게 끝났다. 마이나스가 다시 신전 안으로 돌아갔다. 오르는 떠나기 전 마지막 담배를 피웠다. 담배가 거의 다 탄 후, 그는 담배를 떨구어 짓밟았다. 이내 천천히 걷기 시작하며 손짓했다. 이만 돌아가지. 트리니티는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라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단테는 불평 섞인 혼잣말을 내뱉다가 오르의 옆으로 재빨리 걸어갔다.

“나도 데려가는 거, 잊지 말라고.”

단테의 말에 트리니티가 ‘하아?’ 하고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은 임시로 협력하기로 했잖아요? 왜 따라오시는 거죠?”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 의뢰에서만 돕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는데? 결국 오르가 눈을 지끈 감았다. 맞는 말이기는 하니…. 그래, 이 정도는 뭐…. …너도 따라와라. 오르의 반응을 본 트리니티는 몇 번 더 짜증 섞인 말을 내뱉다 관두었다. 단테는 마냥 흥얼거리기만 했다.

“참. 대충 보면 알겠지만, 나 집이 없어서. 사무소에 한 자리 좀 비워 둬? 나도 좀 있게.”

오르가 주먹을 꽉 쥐며 한마디 얹으려 했으나, 말을 아꼈다.

…사무소로 돌아가는 길은 전보다 더 소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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