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찾는 탐정

3화 - 습격

소문으로만 존재한다고 일컬어지는 신들을 살해하겠다고 나서는 무리….

중심부에 다다르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모두가 오르의 빠른 발걸음에 맞춰 걸으니 원래 걸렸어야 할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단테는 도착하자마자 숨을 몰아 내쉬며 근처에 주저앉았다. 오르는 그런 단테의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트리니티는 잠시 그를 지켜보기는 했으나, 이내 오르를 따라다녔다. 단테는 문득 억울해진 듯 투덜거리다 관두었다.

마력이 가장 짙게 느껴지는 곳에는 포도나무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황금으로 이루어진 포도나무였다. 흐름이 여기서 끊겼는데…. 별다른 건 없나? 오르가 눈살을 찌푸리며 나무를 매만졌다. 그가 나무를 매만지는 순간, 문득 역한 마력 덩어리가 느껴졌다. 와인 향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이질적인 기운, 이것은 필시….

여기에 누군가 또 있다. 그걸 깨달은 순간 손을 떼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쩌적…. 황금이 갈라지는 소리가 울리고, 이어서 파열음이 터졌다. 오르는 반사적으로 오른팔로 제 머리를 막았다. 나무가 팔에 부딪히자, ‘우두둑’하는 불길한 소리가 뼈를 타고 울려 퍼졌다. 그는 간신히 나무를 옆으로 치우며 이를 꽉 깨물었다. 대신 힘이 전부 빠져 주저앉았다.

완전히 부러져 버렸군…. 이건 낭패다. 조각나 버린 뼈가 온 팔을 찌르는 것이 느껴졌다. 오르는 흘러나오려는 신음을 간신히 참으며 정면을 쳐다보았다. 흙먼지 사이로 단정한 걸음 소리가 선명히 들렸다. 흐트러지지 않는 박자였다. 낯선 습격자는 흙먼지를 가르며 제 손에 낀 검은 장갑을 잡아당겼다. 골반까지 내려오는 직선의 머리칼과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검은 눈. 딱 봐도 위협적인 인상이었다. 오르가 무어라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으나, 그는 ‘쉿’ 하며 검지를 제 입술에 갖다 대었다.

“탐정님!”

트리니티가 다급히 그의 앞에 서려 했으나, 오르는 남은 팔을 들어, 오지 말라는 듯 경고했다. 트리니티가 멈칫하자, 습격자는 조용히 미소 짓는 얼굴로 오르의 앞에 섰다. 그는 새카만 코트를 툭툭 치며 먼지를 털어내고는 고개를 숙여 오르와 눈을 마주했다. 공허로 가득 찬 눈이 황금빛 별이 나란히 마주쳤다. 그러고 있자니 꼭 별이 공허에 잠식되는 듯했다.

“참으로 용감한 탐정이라도 되시나 봅니다. 목숨이 아까운 줄 알면 신을 찾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하셨을 텐데.”

오르가 한쪽 눈썹을 구겼다. 그게 무슨 소리지? 그는 제 머리칼을 쓸어 넘기더니, 오르의 안경을 낚아채 바닥으로 던졌다. 그러고는 구두로 안경을 짓밟았다. 오르는 안경이 벗겨짐과 동시에 헛구역질을 할 뻔했으나, 간신히 삼켰다.

“신살자라고 들어 보신 적 없습니까? 한 번쯤은 들어 보셨을 텐데. 당신 같은 사람이 모를 리가 없잖습니까, 카발라 사무소의 오르 탐정님.”

“유명한 것도 참… 피곤하군.”

가볍게 농담으로 받아쳤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신살자’라는 단어를 되뇌었다. 신살자, 신살자…. 그제야 떠올랐다. 요즘 들어 위세가 커졌다는 집단, 신살회. 그리고 신살회에 가입한 이들을 일컫는 말, 신살자. 소문으로만 존재한다고 일컬어지는 신들을 살해하겠다고 나서는 무리…. 아아, 그래서였나. 이제야 모든 것이 파악됐는지 자조의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이번 의뢰를 받아서는 안 됐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트리니티는 언제부턴가 몸을 움츠린 채 덜덜 떨고 있었고, 단테는 어색하게 웃으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전부 내 상대는 안 되는 것인가. 무표정을 유지한 채 한 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모두를 얕보고 있었다.

“어이, 도움이 될 거라고는 했지만…. 나는 저런 거 상대 못 한다고? 어떻게 좀 해 봐, 탐정님. 네 조수도 지금 잔뜩 겁먹었다고.”

말소리에 문득 고개를 돌렸다. 단테는 두 손을 든 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처럼 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무시했어야 했나.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습격자는 그런 오르의 여유로운 반응이 거슬린 듯 인상을 찌푸렸다.

당신들은 저와 함께 가 주셔야겠습니다. 오르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가 손을 뻗자 시야가 어두워졌다. 순식간에 어둠에게 사로잡힌 느낌이었다. …그 감각에 휩쓸리고, 오르는 의식을 잃었다.

***

머리가 울렸다. 지끈거리는 감각이 뇌를 찌르는 듯했다. 그때 머리도 맞은 건가? 아니면 그 기분 나쁜 마력의 영향인 건가? 오르는 몇 번 자문을 던졌지만, 마땅한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단지 그가 알 수 있는 것은 손에 채인 수갑의 존재뿐이었다.

수갑은 묵직했다. 수갑에서 마력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일종의 방해 장치인 듯했다. 이거라면 웬만한 이들은 마법을 쓰지 못하겠군. 부술 수도 없을 텐데…. 어쩌지. 그가 고민하며 수갑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꽉 끼는 것이 빠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부러진 팔은 돌아와서 다행인가. 욱신거리는 감각이 조금 남아 있었으나, 오른팔은 뜻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윽고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주변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천장의 등 하나에만 의존하는 방인 듯했다. 신살회 지부 내의 독방이라도 되는 모양이군. 그는 잠시 눈을 감고 냄새를 맡았다. 창문조차 없어 먼지 냄새가 심했다. 먼지 냄새 사이로 와인 향 또한 느껴졌다. 익숙한 향이었다. 익숙함에 급하게 일어서자 몸이 비틀거렸다. 아직도 현기증이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오르는 간신히 두 다리로 몸을 지탱했다.

끼이익….

그때였다. 열리지 않을 것만 같던 문이 열렸다. 적인가? 오르가 경계하며 맨몸으로라도 싸울 생각으로 자세를 바꾸었다. 그러나 그의 경계는 쉽게 풀렸다. 문 너머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조금 헝클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단정한 남색 머리, 어쩌면 지적으로 보이게 하는 사각 안경. 단테였다. …이제야 도움이 좀 되는군. 오르가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단테는 능글맞게 웃었다.

“싸움에는 자신 없어도, 이런 건 할 수 있지.”

그는 열쇠고리를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오르에게 다가가더니, 그의 수갑에 열쇠를 하나하나 맞춰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너는 이 상황에도 휘파람이 나오나? 오르가 얼굴을 구겼다. 급할수록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 한다고. 단테의 그 말과 동시에 ‘찰칵’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맞는 열쇠를 찾은 것이었다.

수갑이 풀리자 트리니티가 문틈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여간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오르는 트리니티를 바라보다 제 손목을 움직였다. 붉은 자국이 조금 남기는 했으나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팔, 그새 나은 모양이네? 게임으로 치면 방어만 무식하게 높은 건가.”

농담으로 던진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단테를 무시한 채 트리니티에게 다가갔다. 단테가 입을 비죽 내민 것도 같았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트리니티, 괜찮나? 다친 데는 없고? 트리니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와는 다르게 자세부터 위축되어 있었다. 오르는 트리니티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상황이 불안정하긴 하지만, 지금이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안으로 들어간다. 무엇보다 그와 합류하는 편이 더 안전할 가능성이 크기도 하고.”

트리니티가 제 팔을 매만지며 물었다. ‘그’라면…. 그에 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니세우스. 그자의 마력이 느껴진다. …옅지만 확실히 여기에 있어. 단테가 벽에 기댄 채 열쇠고리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런 거라면 나한테 맡겨, 보다시피 내가 미리 구조를 좀 파악해 뒀거든. 자신만만한 그의 웃음에 오르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한참 고민한 끝에서야 고개를 까닥였다. 그럼 부탁하지. 단테는 오케이, 하며 가볍게 웃었다.

오르가 방향을 가리키고, 단테가 길을 찾으며 이동했다. 깊이 들어갈수록 오래 숙성한 듯한 와인 향이 짙게 느껴졌다. 하필 안경이 없어서…. 그는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리며 움직였다. 맨 뒤에서 움직이던 트리니티가 그를 걱정했으나, 신경 쓸 겨를이 없던 탓에 그 걱정은 무시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드문드문 섞인 황금색이 나타났다. 오르는 당연하다는 듯 황금 위를 밟으며 지나갔다. 그 뒤로 단테, 트리니티가 발을 맞춰 움직였다. 복도에는 세 명분의 발소리만이 울렸다. 불현듯 트리니티가 제 어깨를 만지작거리다 조심스레 물었다. 생각해 보니까, 오면서 경비를 얼마 보지 못한 것 같아요. 심지어 전부 약해 빠진 경비뿐이었다고요. 중요 인력이 전부 나가기라도 한 걸까요? 하지만, 나갈 이유가 없잖아요. 대체 왜…. 오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습관처럼 안경을 들어 올리려는 제스처를 취하다,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한숨을 쉬며 답했다.

“트리니티, 진정해라. 나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단 현재에 집중해야지. 그리고… 어쩌면 적들이 바깥에 포진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더더욱 그와 합류해야 하는 거고.”

그의 말에 결국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럼에도 트리니티의 얼굴은 여전히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르도 그 불안감을 어느 정도는 이해했다. 그토록 끔찍하게 여기던 신살회와 접촉하게 됐으니. 트리니티를 안고 달래 줄 의향은 있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적진에 들어온 이상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되니까. 그는 잠시 고개를 젓고서 발걸음을 마저 옮겼다.

코너를 돌자, 그들의 앞에 황금으로 뒤덮인 복도가 나타났다. 문의 자그마한 틈 사이로 취할 것 같은 향기가 새어 나왔다. 오르는 조용히 다가갔다. 척 보기에도 열쇠로 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인가. 그는 잠시 중얼거리다 뒤로 살짝 물러났다. 이후 제 어깨로 문을 치며, 문을 넘어뜨렸다. 오르의 몸이 닿은 부분은 황금이 녹은 듯 사라졌다.

그는 어깨에 묻은 금가루를 털어내며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예상했던 대로 황금으로 덮여 있었다. 그중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한 것은 중앙에 위치한 관이었다. 관에서 지독할 정도로 진한 와인 향이 풍겼다. 오르는 옷소매로 코를 막다가, 진정되고 난 후에서야 팔을 떼었다. 이제 저 관을 열기만 하면 되는 거겠지. 겉보기에는 관이었지만, 마력이 생생히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산 채로 넣었을 것이 분명했다.

관을 열어야 한다. 오르는 조심스럽게, 천천히…. 관 뚜껑에 손을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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