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카발라 사무소
사람들은 저마다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사람들은 저마다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카발라 사무소는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찾아 준다. 때로는 애착품을, 때로는 반려동물을. 때로는… 사람을. 사무소가 찾지 못하는 것은 없다. 받은 의뢰마다 반드시 성공한다. 물론 찾을 수 ‘없는’ 상태의 것은 제외하고.
“…라고 적을까요, 탐정님?”
트리니티가 주황빛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올라간 눈매가 꼭 신나 보였다. 오르는 머리를 짚었다.
“굳이 홍보해서 뭘 하려고 그러나. 어차피 올 사람만 오는데.”
트리니티의 눈매가 다시 내려갔다. 요즘 사람도 안 오는데 홍보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며 중얼거리는 것도 잠시, 자신이 쓰던 홍보 문구를 옆으로 치웠다.
오르는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주머니를 뒤적였다. 손에 담뱃갑이 잡혔다. 그는 궐련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서 불을 피웠다. 홧홧한 기운이 입가에서 일렁였다.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내뱉었다. 머리를 맴돌던 고민이 잠시나마 날아가는 듯했다. 그가 담뱃재를 재떨이에 털 무렵, 트리니티는 다시 제 할 일을 했다. 사무소 테이블 위에는 아직 치우지 않은 의뢰서가 산더미였다. 이것도 치우고, 저것도 치워야 하네…. 분주한 발소리와 혼잣말이 사무소를 가득 채웠다.
막 해가 뜨는 아침에는 늘 분주했다. 창문 너머에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오르의 눈과 맞닿았다. 황금빛의 눈이 저절로 감겼다. 결국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블라인드를 내렸다. 슬슬 눈이 시려지는 것 같은데. 안경을 새로 맞춰야 하나? 조금 흘러내린 안경을 들어 올렸다. 이어서 다시 한번 연기를 내뱉었다.
“트리니티, 의뢰서 정리는 다 했나?”
못 들은 듯 계속해서 발소리가 이어지다가, 한참 뒤에서야 답이 돌아왔다.
“앗, 아뇨. 그래도 거의 다 했으니까, 조금만 기다리시면 돼요.”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발이 찰랑거렸다. 아마 트리니티가 가장 생기 있는 때를 묻는다면, 지금이라고 답할 수 있을 터였다. 연한 금색의 머리칼이 블라인드 사이로 내리는 아침 햇살을 받아 더욱 빛나 보이는 지금. 막 일어나 부스스해진 곱슬의 머리카락을 보고 있자면, 오르도 웃음이 나올 듯했다.
풋. 짧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트리니티가 그 소리에 놀라 오르를 쳐다보려 했으나, 그 뒤로 다른 소리가 이어졌다. 딸랑. 사무소의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트리니티는 항의하려던 것을 멈춘 채 손님을 맞이했다. 그러나 맞이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작아졌다.
“네에, 친절하시네요. 확실히 그 유명한 카발라 사무소가 맞는 모양이에요. 저를 이렇게 맞아 주시고.”
이질적인 구두 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머리를 아래로 단정히 내려 묶은 백발의 여성이 천천히 사무소 안으로 들어왔다. 사제복 비슷한 차림이 신경 쓰였으나, 오르는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비고서 소파에 앉았다. 그의 앞에 앉은 백발의 여성은 온화한 얼굴로 눈을 감고만 있었다. 오르가 계속해서 미소를 띠고 있는 그를 바라보자, 어쩐지 진한 와인 향이 훅 끼쳐오는 기분에 헛기침했다.
트리니티가 오르의 옆에 서서 무언가 불편하다는 듯 눈치를 여러 번 보았다. 여성은 그 반응을 가만히 쳐다보더니, 자신의 손을 허벅지 위에 둔 채 자세를 단정히 했다. 모아진 무릎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무척이나 절제적인 인상이었다.
“어머, 아직 제 인지도가 부족한 모양일까요. 이거 실례했네요. 자기소개를 먼저 해 드리는 게 낫겠네요. …황홀교의 교주, 마이나스랍니다. 그래도 저희 황홀교에 대해선 들어 보셨겠죠?”
부드러운 목소리는 계속되었다. 특히 사람을 찾는 데 특화되셨다고 들었답니다. 한 번도 실패하신 적이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혹시 저의 신도 찾으실 수 있을까 해서요. 사례는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어떠실까요? 감겨 있던 눈이 게슴츠레 뜨였다. 마이나스의 연둣빛 눈과 마주하자, 오르는 당황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의뢰는 받은 적 없었는데. 그가 고민하는 기색을 눈치챘는지, 트리니티가 조심스레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서 속삭였다. 탐정님, 역시 이런 의뢰는 좀…. 오르는 긴 침묵 이후에서야 입을 열었다.
“신은 신전에서나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마이나스는 다시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저었다. 무어라 말할지 정리하려는 듯 오르를 가만히 바라보고 나서야 답했다.
“제가 무얼 얘기하는지는 아실 거로 생각했는데요.”
구불거리는 검은 머리칼이 어깨 앞으로 넘어가 바닥을 향했다. 오르는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있었다. 트리니티가 그의 어깨에 다시 손을 대려 할 무렵, 갑작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트리니티의 어깨를 두드렸다. 의뢰서 작성, 돕도록 해라. 출발 준비는 내가 할 테니. 트리니티의 당황한 표정이 이어졌으나, 오르는 무시했다. 트리니티는 하는 수 없이 불편해하면서도 의뢰서를 들고서 마이나스의 앞에 앉았다.
몇 번의 말소리가 오가고, 펜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오르는 제 안경을 닦으며 한숨 쉬었다. 어쩌면 때가 된 걸지도 모르겠군. 혼자서 짧은 말 한마디를 던진 채 안경을 다시 쓰며, 크라바트를 만지작거렸다.
***
마이나스의 안내에 따라 이동한 곳은 황홀교의 신전이었다. 신전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풍경은 형용할 수 없었다. 거대한 조각상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이, 예배석 구석에 앉아 무엇인가 속삭이는 이. 그런 황홀교의 신도들을 보고 있자니, 알 수 없는 욕지기가 울렁거렸다. 오르는 메마른 숨을 삼켰다. 트리니티 또한 긴장감에 휩싸인 것인지, 그에게 바짝 붙어 걸었다.
그 장소에서 한동안 걸었다. 걸음을 멈춘 것은 몇 개의 문을 지나치고 나서였다. 마지막 문을 열고서 방 안으로 들어가자, 맡아본 적 있는 와인 향에 휩싸였다. 오르는 현기증이라도 난 듯 몸을 비틀거렸다. 트리니티는 그의 옆에 선 채 자신에게 기대도록 했다. 마이나스는 오르의 반응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방의 침대 앞으로 가더니, 흐트러진 시트를 손으로 펴고서 다시 뒤를 돌아 오르와 마주했다.
“여기가 니세우스 님의 방이랍니다. …아까 말씀하셨죠, 마지막으로 발견한 장소와 흔적이 강하게 남았을 법한 장소나 물건 정도면 찾는 데 충분하다고. 그 말이 거짓이 아니어야 할 거예요. 함부로 올 수 있는 장소가 아니거든요, 여기는.”
오르는 어지러움을 뒤로하고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니세우스. 황홀교에서 모시는 신…. 대체 뭐 하는 작자이길래 와인 향이 이리 어지럽도록 나는지. 그는 잠시 벽에 기대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여기에 더 있다가는 오히려 내가 휩쓸리겠군…. 오르는 다시 등을 떼고서 트리니티를 불렀다. 트리니티는 마이나스에게 무언가 물으려는 듯 입을 뻐끔거리다 말고 몸을 돌렸다.
방 밖으로 나오니 멍하던 정신이 맑아졌다. 안개가 껴 있던 것이 걷힌 듯 맑아지니 상태가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뒤늦게 마이나스가 그들을 따라 나오며,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정말 이렇게 둘러보는 정도면 되는 건가요? 마력 감지, 라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보통은 도구를 이용하지 않나요.”
오르는 자신의 안경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마이나스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 자신의 턱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오르가 팔짱을 끼며 그를 쳐다보자, 마이나스는 잠시 뒤에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발견한 장소는 여기서 그리 멀진 않아요. 하지만 가는 길이 조금 복잡해서, 지도를 만들어 두어야 할 것 같은데.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그리 오래 걸리진 않으니, 신전 내부에서 기다리셔도 괜찮답니다.”
자, 자. 얼른 쉬고 계세요. 마이나스가 등을 떠밀자, 둘은 니세우스의 방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반쯤 쫓겨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까의 본당이었다. 오르는 잠시 고민하다 본당의 구석에 위치한 예배석에 앉았다. 트리니티 또한 그 옆에 앉아, 주변을 한참 둘러보았다. 트리니티가 입을 여는 것은 한참 뒤였다.
“저, 계속 신경 쓰이던 게 있는데요….”
어렵게 서두를 떼자, 오르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트리니티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을 이었다. 계속 여쭤 보고 싶었어요. 여기, 어쩐지 어릴 때 본 적 있는 장소 같아서…. 마이나스 씨도 그렇고요. 그래서… 그분의 의뢰를 받아도 될지 모르겠어요. 정말 괜찮은 걸까요… 왠지 위험한 예감이 든단 말이에요. 오랜만에 보는 불안감이었다. 오르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신경 쓰지 마라. 우리는 의뢰만 하는 거니까. 그 외로 엮일 일 없이 행동하면 돼. 오르는 나름 다정하게 말을 던졌지만, 트리니티는 오히려 고개를 푹 떨궜다. 그래도…. 그 뒤로 무어라 더 답하려 했지만, 더 말해 봤자 소용이 없음을 깨달은 듯 입을 다물었다. 오르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이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오히려 불안만 더 키운 듯했다.
둘이 짧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점점 신도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빈 예배석이 하나둘 차기 시작했고, 점점 앉아 있는 것이 눈치 보이기 시작했다. 가시방석에 앉은 듯 얼마나 불편하게 있었을까. 시간이 흐른 후, 마이나스가 특유의 발소리를 내며 본당으로 돌아왔다. 신도들이 마이나스를 이따금 쳐다보았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둘의 앞에 섰다.
“곧 있으면 예배 시간이랍니다. …죄송하지만 잠시 나가 계셔 주시겠어요? 몇 분이면 된답니다.”
오르의 표정이 의아함으로 가득 찼다. 아직 장소에 관해서 얘기를 들은 게 없는데. 마이나스는 변함없는 상냥한 얼굴로 답했다. 따로 알려드릴게요. 다 방법이 있답니다. 그러면서 또다시 둘을 일으키더니, 손으로 밀며 배랑까지 몰아냈다.
끼이익… 쾅. 문이 열리고, 결국 배랑 밖으로 쫓겨났다. 조금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트리니티는 불안해하던 기색도 떨친 채 이건 너무하지 않냐며 화를 내다가 관두었다. 오르는 말없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하늘에는 유독 흐릿한 구름이 껴 있었다. 하늘이 어두웠다.
당분간 힘들지도 모르겠군…. 오르의 혼잣말이 바람을 타며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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