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찾는 탐정

9화 - 절망

시선이 끝나는 그곳에는….

“얘기는 다 끝난 모양이네?”

단테의 물음에 오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단테는 자리에서 일어서 그의 옆으로 다가가더니 어깨를 두어 번 툭툭 쳤다. 그는 얼굴을 귓가에 가까이 댄 채 오르에게 속삭였다. 트리니티가 많이 화난 것 같으니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나중에 화 좀 풀어 주라며. 앞으로 의논 좀 하라는 말을 덧붙이자, 오르는 그 말을 흘려들으며 알겠다 답했다. 단테는 영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닌 듯 어깨를 으쓱이며 구석에 서 있는 트리니티에게 향했다. 오르는 그의 모습을 흘깃 쳐다보다 관두었다.

오르는 제 팔을 쓸며 긴장한 듯 눈치를 보는 세인의 앞에 섰다. 얘기는 잘하셨나요? 그 한마디에, 그는 눈을 감고서 고민하다 한 번 고개를 까딱였다. 그의 반응에 세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르는 그의 앞에서 손가락을 몇 번 접었다 펴며 절차를 가늠했다. 세인이 의문에 찬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자, 오르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짧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아도 절차가 많이 줄어들 리가 없던 탓이었다.

“우선… 지체 말고 아까 그 신살자가 머물러 있던 곳에 가는 것이 어떻겠나. 그러면 신살회 건물의 위치 정돈 알게 되겠지. 거기서 단서를 수집해야 실마리가 조금이라도 잡히지 않겠나.”

세인은 알겠다는 말과 함께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인이 현관 쪽으로 나아가자, 오르는 그의 뒷모습을 흘긋 쳐다봤다. 무언가를 챙기고 있는 것 같은데…. 오르의 눈에 세인이 서랍장을 뒤적이는 모습이 보이긴 했으나, 등에 가려져 무얼 줍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한 번 고개를 휘젓고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오르의 시선 끝에 트리니티와 단테가 닿자, 트리니티는 입술을 잘끈 깨물다 고개를 푹 숙이고서 움직였다. 단테는 그저 오르를 흘긋 쳐다보다 트리니티의 뒤로 붙었다. 오르는 잠시 바닥을 내려다보며 침음을 흘리다 몸을 움직였다. 모두가 움직이자, 마지막으로 에스카가 자리를 정리하며 뒤따랐다. 세인은 자신의 뒤로 모인 이들을 바라보다, 이만 출발하자며 조심스레 문을 열어젖혔다.

 

밖은 여전히 스산했다. 정리되지 않아 널브러진 잔해들이 여전히 그들을 반기고 있었다. 오르는 잔해에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인제 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 스피나의 건물이 보였다. 용케도 제자에게 들키지 않고 잘 숨어 있었군. 그렇게 생각하던 차에, 갑자기 굉음이 크게 울렸다. …쾅! 이윽고 묵직한 공기가 느껴졌다. 곧 발목이 비틀리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이내 몸이 아래로 확 가라앉았다. 바닥에 무릎이 세게 부딪히자 얼얼한 느낌이 전신으로 느껴졌다. 오르는 손으로 간신히 바닥을 짚은 채 바닥을 향하려는 머리를 위로했다. 막 피어오르는 흙먼지 사이로 전에 보았던 습격자가 걸어 나왔다. 그는 손에 낀 장갑을 고쳐 끼며 오르를 내려다봤다.

“그래도 신에게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군요. …아무리 이름을 날렸던 용병이라도 말입니다.”

그의 말에, 오르는 다급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자신을 포함한 모두의 무릎이 꿇려 있는 상태였다. 불길한 직감이 몰려왔다. 이 자는 이런 마법을 쓴 적이 없는데. 설마, 아니겠지. 애써 불길함을 물리치려 애쓰며 오르가 식은땀을 흘리며 트리니티를 쳐다봤다. 트리니티는 눈을 크게 뜬 채 동공을 떨고만 있었다. 입술을 꽉 깨물지도, 몸을 움직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로. 입을 벌린 채 흙먼지 너머를 쳐다봤다. 트리니티의 시선이 끝나는 그곳에는….

“…여기서 더 해야 할까요? 아예 압사시켜 버리는 방법도 괜찮을 것 같은데.”

끝으로 갈수록 은은한 회색빛이 도는 듯한 흰 머리의 누군가가 굽 소리를 내며 흙먼지를 가르고 나타났다. 그가 앞으로 다가왔을 때는 공기가 전보다 더욱 쾌적해졌다. 차분하게 올려 고정한 머리처럼 그의 인상은 무척이나 차가워 보였다. 짙은 연기 같은 회색빛 눈에는 빛이 옅게 들어와 흐리멍덩하게만 느껴졌다. 멍하게만 보이는 그는 두르고 있던 흑홍색의 로브에 붙은 먼지를 툭툭 털며 가벼운 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제힘에 무릎 꿇린 이들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던 가운데, 누군가 숨을 삼키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세인이었다.

“리… 리베르타…?”

오르의 시야에 간신히 닿은 세인의 뒷모습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표정을 보지 않아도 그가 어떤 표정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불안하게 일렁이는 마력은 그의 기분을 나타내고 있었다. 당황, 후회, 슬픔, 그리움…. 오르는 그것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이런 일렁임은 수도 없이 봐 왔던 탓이었다.

“리베르타, 나야. 세인…. 대체 왜 이래, 응? 나 못 알아보겠어? 왜 네가 거기 있는 건데, 응? 신이라는 건 도대체 또 무슨 소리고…?”

복잡한 감정, 명확한 호명. 그의 반응은 눈앞의 이가 죽었던 친우라는 이인 듯했다. 오르는 사지가 으스러질 것 같은 와중에도 계속해서 생각했다. 미쳤군…. 그의 깊은 생각 끝에 나온 혼잣말이었다. 귀가 점차 먹먹해지는 탓에 본인이 내뱉은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리베르타는 여전히 무관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자신의 이름을 부른 데에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기는 했으나, 말 그대로 ‘잠시’였다. 제 이름을 어떻게 알고 계시죠? 리베르타의 입에서 나온 짧은 질문이었다. 세인은 그 물음에 어떠한 대답도 내놓을 수 없었다. 단지 부들부들 떨며 빳빳이 세우던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그 순간 짧은 정적이 맴돌았다. 중압 때문인지, 아니면 이해되지 않는 상황 때문인지…. 그 정적은 한겨울의 고드름보다도 차갑고도 아렸다.

 

“벌써 이걸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멈췄던 시간을 다시 움직이게 한 것은 세인의 움직임이었다. 그는 몸을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안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것을 꺼냈다. 누구도 말을 꺼낼 수 없었지만 모두 속으로 놀람을 삼켰을 것은 분명했다. 세인은 눈앞의 이들을 두고서 뒤로 고개를 돌렸다. 만일을 위해서 챙긴 거였는데…. 수는 넉넉해서 다행이에요. …이만 돌아가세요.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영롱하게 푸른 빛을 내뿜는 결정은 세인의 손에서 떨어져 나왔다. 결정이 터지며 빛을 일으키는 짧은 순간 속, 세인은 언제 꺼냈을지 모르는 검을 쥔 채 앞을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무리한 부탁, 들어줘서 고마웠어요. 사례는 다음에 반드시 해 드릴게요.”

그 말을 끝으로 푸른 섬광이 시야를 온전히 가렸다. 오르가 눈을 몇 번 깜빡였을 때는 이미 다른 곳에 도착한 후였다. 그는 여전히 멍한 감각을 진정시키며 손을 바닥에 짚곤 고개를 수그렸다. 갑자기 돌아온 중력에 구역감이 올라오는 듯했다. 오르가 콜록거리며 잔기침하는 동안, 남은 인원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양옆으로 고통 섞인 한숨이 들렸다.

그러니까…. 긍정적으로 말하면 이제 남은 건 그를 생포해서 기억을 되찾게만 하면 된다는 거겠군. 오르가 고개를 들자, 에스카가 인상을 찌푸리며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뒤늦게 오르의 상태를 본 트리니티와 단테가 그를 부축하자 눈앞의 건물이 눈에 띄었다. 낯익은 건물이었다. 아무래도 귀환석으로 글래시어까지 온 듯했다. 오르가 한마디를 내뱉으려 한 순간, 옆에서 누군가 먼저 입을 열었다. 트리니티였다.

“그 정도 위력은… 처음 봐요. 꼭 저번에 봤던….”

트리니티는 더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분명 니세우스와 비슷한 위력이었다고 생각한 거겠지. 오르는 잠시 눈을 감고서 부축하던 손을 물리고 손을 털며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우리가 나서 봤자 소용없겠지. 지금 필요한 건 무력뿐일 테니. …그렇지 않나? 오르의 말에 에스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 적이 거의 없어 기억도 흐릿하지만, 분명 신살회에서 그에게 무슨 짓을 한 게 틀림없다. …쉽게 해결되지는 않겠지. 그가 하는 말은 꼭 실패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오르가 역시 제대로 된 정보는 받을 수 없는 건가, 라는 말을 하려던 그때 에스카가 다시 서두를 떼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야겠지.”

그는 말을 더 이었다. 소프는 현재 남부 카르타고의 아카데메이아에 있다며, 아마도 누군가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것 같다는 얘기였다. 오르의 두 눈이 커졌다. 기대도 안 하던 정보가 귀에 들어왔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인 정보가. 그곳의 교직원들이 그의 행방을 자세히 알 테니… 그들에게 물어보면 될 거다. 에스카는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가늘게 뜨다, 발걸음을 옮겼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렇게 글래시어의 앞에는 셋이 남겨졌다.

“…일단 돌아갈까.”

아무도 말이 없던 사이 단테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 트리니티도 거들며 돌아가자는 말을 했다. 오르는 잠시 깊게 침음하는 소리를 내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뭐, 다들 피곤하면 자 둬. 운전할 때 자도 신경 안 쓸게. …그런 단테의 농담이 있었지만, 받아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괜한 농담 때문에 더욱 어색해진 분위기 속,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이끌며 노을을 마주 보며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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