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찾는 탐정

8화 - 대화

됐어요, 이젠 저도 몰라요. 앞으로도 그냥 탐정님 마음대로 하세요!

잠깐의 부유감과 이후 발이 땅에 닿았다. 단테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에스카를 향해 눈을 게슴츠레 뜨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런 순간이동기 같은 편리한 게 있으면 그때도 쓰게 해 주지 그랬어? 단테의 말에 에스카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사정이 있었다. 그는 짧게 답하며 잠시 앞서 나갔다. 가볍게 주변을 훑어 보고 온 그는 적의 수가 너무 많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 말에 오르가 안경을 벗고서 전방을 응시했다. 그러자 순간 시야가 팽 돌았다. 오르는 다급하게 안경을 다시 쓰며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몇십… 몇백은 포진해 있겠는데.”

그 말에 단테와 트리니티가 에스카를 가만히 쳐다봤다. 에스카는 눈썹을 찌푸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자신은 저 정도의 수를 감당하지 못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갈 곳 잃은 시선은 결국 오르에게로 향했다. 오르는 눈을 가늘게 뜨다 감았다. 분명 파훼법이 있을 텐데. 작게 중얼거리며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했다. 얽히고설킨 피 냄새, 화약의 매캐한 향, 짙은 금속 냄새…. 그 사이로 피부를 할퀴는 듯한 섬찟함이 훅 끼쳤다. 지독한 살의로 가득 찬, 다른 것들보다 짙고도 다디단 피 냄새. 전에 느낀 적 있는 것이었다.

오르는 눈을 번뜩 뜨고서 몸을 움직였다. 똑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자 눈으로도 얼핏 익숙한 느낌의 마력이 보였다. 단테가 그의 뒤에 바짝 붙어 뭘 찾기라도 한 거냐 묻자, 오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냥 따라오라는 말을 덧붙였다. 결국 셋은 영문도 모른 채 그의 뒤를 쫓아갔다.

그는 코너를 돌기 직전 멈춰 섰다. 이윽고 턱을 문지르다가, 조용히 하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잠시 소리가 멎자 다른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금속이 맞부딪치는 소리와 작게 내뱉는 숨소리.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소리. 누군가가 너머에 있었다. 오르는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오르가 잠시 속으로 생각하는 동안 다시 한번 소리가 크게 울렸고, 일행이 있는 쪽으로 작은 파편 몇 개가 튀었다. 오르는 조심스레 그 파편을 주워들었다. 이어서 에스카를 바라보며 작게 말을 걸었다.

“이유는 묻지 말고…. 내가 파편을 던지면, 저 너머에 있는 ‘적’을 베면 된다.”

그 말에 에스카는 잠시 머뭇거렸다. 적이 누구지? 그런 짧은 물음에, 오르는 그에 맞춰 짧게 답했다. 신살자. 겉보기에 새까만 자이니,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거다. 에스카는 ‘신살자’라는 단어에 눈을 크게 떴다가, 다시 게슴츠레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행동을 보던 트리니티는 오르의 옷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 탐정님, 저는 뭘 하면 좋을까요…? 트리니티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오르는 시선을 피했다. 너는 가만히 있으면 된다. 지금 상황에서는 방해만 돼. 그 말에 트리니티는 힘 빠진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하나, 둘, 셋…. 오르가 속으로 숫자를 센 후, 건너편의 적에게 파편을 던졌다. 이전에 본 적 있던 검은 머리의 신살자는 황급히 팔에 검은 결정을 휘감아 그것을 막아 냈다. 그가 시시한 도발에 넘어간 사이, 에스카가 튀어 나가 팔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묵직한 금속음이 울리고, 검은 결정들은 깨지며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옆에 있던 이가 검을 휘둘렀고, 살갗이 베이는 소리가 울렸다. 모든 것은 불과 십 초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또 당신입니까….”

그는 오르와 눈을 마주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잠시 고통에 찬 숨을 내뱉던 신살자는 뒤로 몇 걸음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드리워진 검은 안개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아수라장이 된 현장 속에서, 에스카는 신살자가 사라진 곳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옆에 있던 이, …세인을 쳐다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오르는 둘의 모습을 보다가 몸을 돌렸다. 단테와 트리니티를 데리고 나오며 주변을 살피던 그의 귀에 대화 소리가 들렸다. 피해 주는 것이 낫나? 그가 중얼거리자, 세인이 대화하다 말고 오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세인은 그러니 자신의 집에서 잠시만 대화를 나누자며 말을 건넸다. 오르는 잠시 시선을 피한 채 침음을 내뱉었다. 여기서 더 엮이면 위험할 것 같은데…. 그렇다고 은인을 무시할 수는 없고. 팔짱을 끼고서 바닥을 발로 몇 번 탁탁 두드리던 그는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서 트리니티의 어이없어하는 소리와 단테의 모르겠다는 듯한 소리가 들렸으나, 오르는 잠시 시선만 주고서 세인 쪽으로 걸어갔다.

 

세인의 집은 그리 멀지 않았다. 도보로 대략 오 분 정도의 거리로, 가는 길마다 전부 난장판이었다. 단테는 여기저기 긁히고 파인 건물들을 바라보며 가관이라는 듯 휘파람을 불었다. 청소부들 월급 좀 올려 줘야 하는 거 아냐? 그가 말을 던짐에도 분위기는 무거운 상태 그대로였다. 결국 보다 못한 트리니티가 조용히 하라며 그의 팔을 주먹으로 한 대 쳤다. 잠깐 부러지는 소리가 나는 듯도 했으나, 단테는 소리도 내지 못했기에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법한 골목을 걷다, 세인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한 집의 대문을 열고서 현관문 앞에 서더니, 비밀번호를 누르는 일 없이 열었다. 아까 고장 나 버렸나…. …들어 오세요. 그의 말에 나머지 일행이 안으로 들어섰다. 집 내부는 바깥보다 더 가관이었다. 벽지가 군데군데 찢겨 있는 것은 물론, 어떤 곳은 유리 파편이 흩뿌려져 있었다. 세인은 뒤로 넘어진 소파를 하나하나 일으키며 초라한 자리를 내주었다. 한참 주변을 둘러보던 단테는 세인이 자리를 내주자마자 냉큼 앉았다. 아까 그놈이 한 짓인가 보네. 단테가 다리를 꼬며 비스듬히 앉자, 세인 또한 1인용 소파에 앉고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여태껏 찝찝한 표정으로 있던 트리니티가 단테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 세인은 잠시 탁자가 있던 자리만을 보다가 모두를 둘러봤다. 아무래도 제 업보인 것 같네요. 그는 무릎 위에 두었던 손을 깍지 끼며 엄지끼리 틱틱 부딪쳤다. 남은 둘 또한 맞은편의 다인용 소파에 앉아 그를 쳐다봤다.

무거운 분위기 속, 세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종교 전쟁의 참전 용병이었어요. 신앙파에 고용됐었죠. 반신앙파… 그러니까, 현재의 신살자들에게 맞서서 싸웠어요. 그러다 결국, 친구 한 명을 잃게 되어서 용병 일은 관두고 스승 노릇이나 하게 되었지만. …하지만 제자를 기르며 지내는 평화도 오래 가진 못했어요. 신살자들이 제 행적을 쫓기 시작했거든요. 그 탓에… 죽은 척 잠적했고.

에스카는 가만히 듣다 말고 자리에서 확 일어나 그를 째려봤다. 이런 얘기는 한 번도 들은 적 없습니다. 왜 인제 와서…? 원망 섞인 목소리에, 세인은 잠시 앞으로 나오더니 오르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에 에스카는 하던 말을 끊는 수밖에 없었다. 불편한 기류가 흘렀고, 오르는 팔짱을 낀 채 제 팔을 꽉 쥐었다. 이런 상황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탓이었다. 세인은 그런 오르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오르가 잠시 팔을 뺀 사이 그의 두 손을 꽉 쥐었다. 손뼈가 으스러질 것만 같을 정도로.

신살자들이… 그를 협박용으로 숨긴 것 같아요. 부디 제 친구를 찾아 주세요. 시신이라도 어느 정도의 도움이 있으면 찾을 수 있다고 들었어요. …제발 한 번만 도와주세요, 탐정님. 사례라면 얼마든지 해 드릴게요. 마지막… 마지막 부탁이에요. 이 이상으로 저희와 엮일 일은 없도록 할 테니까, 네? 부탁드려요…. 세인은 바닥을 향해 고개를 푹 떨군 채 울먹이는 목소리를 내었다. 오르가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사이, 트리니티가 고개를 저으며 그를 쳐다봤다. 확실히 이미 얼굴이 알려진 상황에서 그들과 다시 깊게 접촉하는 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목숨값도 갚아야 하니…. 안전만 보장된다면, 받아들이도록 하지.”

오르가 답을 마치자, 누군가 발을 구르듯이 바닥을 세게 차며 일어났다. 트리니티였다.

“뭐라고요?!”

이후 정적이 흐르자, 트리니티는 잠시 눈치를 보더니 오르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세인에게서 낚아챘다. 저희 잠깐 얘기 좀 해요. 오르는 감사하다고 말하려던 세인을 흘긋 쳐다보다가 잠시 고개를 까딱이고는 트리니티의 발걸음에 맞춰 움직였다. 트리니티는 고장 난 현관문을 확 열어젖히고서 오르를 바깥에 내팽개치듯 손을 뗐다. 이윽고 현관문은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오르는 화난 기색이 엿보이는 트리니티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봤다. 트리니티는 씩씩거리는 숨을 내쉬다가, 겨우 할 말을 정리했는지 말을 더듬더듬 꺼냈다.

이해가 안 가요. 저번부터 모든 의사결정을 혼자서 다 하고 계시잖아요. 탐정님, 왜 이렇게 제멋대로 구세요? 본인 몸도 간수 못 하시는 분이 왜 이리 무모해진 거예요? 사례에는 관심이 그리 크지 않으셨잖아요. 저희가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하면 손해일 뿐 아니에요? 대체 뭐 때문에 이러시는 건데요! 트리니티가 오르의 양팔을 꽉 잡은 채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오르는 트리니티를 차분하게 바라보다, 그의 팔을 천천히 내려놓고는 양어깨를 잡았다. 우리는 종교 전쟁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지 않나. 특히 신살자에 대해서라면 더더욱. 그의 말은 트리니티의 표정을 바꿔 놓았다. 트리니티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한참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결국 오르의 팔을 뿌리치고는 등을 돌렸다.

“됐어요, 이젠 저도 몰라요. 앞으로도 그냥 탐정님 마음대로 하세요!”

트리니티는 현관문을 다시 열기 전에 옷 소매로 얼굴을 닦고는 문을 열었다. 오르는 그 뒷모습을 한참 지켜만 봤다. 한참 낮은 소리를 내던 그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주머니의 담배를 꺼내기를 택했다. 궐련 한 대를 입에 문 그는 라이터를 꺼냈다. 틱, 틱. 기름이 다 떨어진 것인지 좀처럼 불이 켜지지 않았다. 오르는 결국 담배를 저 멀리에 던져 버리고는 라이터를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그러곤 하는 수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카테고리
#오리지널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