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 미행
정말, 뭐예요! 왜 자꾸 따라오시는 거죠?
트리니티가 어색하게 옆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일부러 펌을 해 구부러진 머릿결을 따라 손가락으로 꼬고 풀기를 몇 번 반복하다, 손을 내려놓으며 오르를 흘긋 쳐다봤다. 트리니티는 일단 마저 산책할까요, 하며 오르의 눈치를 짧게 살폈다. 그가 작은 숨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이자, 트리니티는 다시 먼저 앞으로 나아가며 걸음을 옮겼다.
그대로 몇 분을 걸으니 거리의 중앙이라 할 법한 풍경이 보였다. 점심시간쯤이어서 그런지 멀지 않은 미식 골목 쪽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꽤 보였다. 트리니티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대로 멍때리는 트리니티를 가만히 바라보던 오르는 문득 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텔레비전 가게에서 노랫소리가 흐르고 있었다. 오르가 그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트리니티 또한 뒤늦게 그를 따라가 가게 앞에 섰다. 여러 대의 텔레비전에서는 같은 인물을 내비치고 있었다. 해가 쨍쨍한 날에 고인 웅덩이에 비친 하늘빛보다도 맑고 투명한 머리색과, 그와 상반되는 붉은 포도주보다도 짙은 적색 눈을 지닌…. 사무소에 제 집 드나들 듯 자주 찾아오던 이를 두 사람이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역시 볼 때마다 익숙해지질 않네요.”
직접 가서 볼 때도 그렇고. 트리니티는 짧게 말을 덧붙이며 텔레비전을 가만히 바라봤다.
“평소에는 덜덜 떨기만 하더니…. 저런 건 어떻게 또 잘하는지.”
오르가 얹은 한마디에, 트리니티가 팔짱을 끼며 콧소리를 내었다. 탐정님이 말씀하셨던 것 때문이겠죠. 트리니티가 다시 한마디를 던졌다. 그에 오르는 짧게 생각했다. 어떤 교단에서 혀를 강제로 새파란 인어의 혀로 교체했다고 했던가. 그런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문득 트리니티가 그게 정말 인어의 혀일까요, 라며 질문을 던졌다.
“아마 비유겠지. 진짜 인어의 혀보다는 마도구일 가능성이 높아. …마족의 혀라고 해서 그렇게 특별할 리는 없지. 어차피 성질만 미묘하게 다를 뿐, 인간이랑 똑같으니. 분명 저렇게 쓰려면 가공을 해야 할 거다.”
하기야, 모든 인어의 혀가 새파란 것도 아니고…. 트리니티는 잠시 생각을 떠올리다, 고개를 저었다. 둘이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누군가 문득 두 사람의 어깨 위에 손을 톡 올렸다.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는 트리니티와 달리, 오르는 천천히 뒤를 쳐다봤다. 익숙한 마력. 이건 분명….
“누구 얘기 중? 아하, 알겠다. 그 겁많은 유명 가수랬던가, 그 녀석 얘기 중이지?”
단테가 서글서글한 표정으로 웃으며 두 사람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트리니티가 한쪽 눈썹을 찌푸리며 놀랐다고 말하는 와중에도, 그는 딴청을 피우며 넘겼다. 오르는 둘의 모습에 잠시 입꼬리를 가볍게 올리며 숨을 짧게 내쉬었다. 그 표정은 단테가 웃었냐며 얼굴을 자꾸만 확인하는 탓에 금방 사라졌지만.
“아니, 그래서. 정말 어떻게 온 거예요? 여기에 있다고 얘기한 적도 없는데…. 몰래 위치 추적기라도 달아 둔 건 아니죠?”
트리니티가 눈을 가늘게 뜨며 단테를 빤히 쳐다보자, 그는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설마 그럴 리 있겠어? 그런 말을 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단테의 반응에 그러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보라며 트리니티가 팔짱을 낀 채 왼발을 탁탁 가볍게 구르자, 단테는 알겠다며 뒷머리를 긁적이곤 한숨을 내쉬었다.
“허주라는 녀석이 ‘당신, 카발라 사무소 사람이야?’ 하고 묻더니…. 맞다고 하니까, 이쪽으로 데려다주던데? 웬 문을 여니까 바로 이쪽 근처로 오게 되더라.”
예상하지 못한 이름이 불쑥 튀어나오자, 두 사람의 표정이 일순 바뀌었다. 두 눈을 느릿하게 끔뻑이며 서로를 쳐다보는 사이, 단테가 한쪽 눈썹을 찌푸리며 두 명을 가만히 쳐다봤다. 뭐야, 뭔데? 그런 물음에도 탐정과 조수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잠깐의 정적 이후, 오르는 그저 짧게 마주쳤던 사이임에도 어떻게 그리 잘 아는지 의아했을 뿐이라며 넘겼다.
단테는 잠시 흐음, 하며 불만족스러운 듯한 소리를 내다가 관두었다. 그는 의문을 품는 대신 둘에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가 고른 질문은 물론 적당히 주의를 환기할 만한 소재가 담긴 질문이었다.
“참, 그래서. 둘이서 뭐 하고 있었어?”
“응? 아니, 뭐…. 산책하고 있었죠.”
트리니티의 답에 오르 또한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반응에, 단테는 잠시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참, 오면서 마도구 가게들이 널린 골목을 봤는데. 나 뭐 좀 사야 할 게 생각났거든. 같이 갈래? 어차피 산책 중이라며.”
마도구 골목을 얘기하는 건가. 트리니티가 잠깐 팔짱을 끼며 흐음, 하는 소리를 내었다. 높은음의 숨소리에 단테가 가만히 허리에 손을 올리고서 기다리자, 트리니티는 곧 팔짱을 풀고서 고개를 가볍게 까닥였다. 좋아요, 하는 트리니티의 대답에 단테가 그러면 가자며 앞장섰다. 두 사람은 먼저 걷는 그를 잠시 쳐다보다, 서로의 얼굴을 흘긋 바라보고는 가벼운 숨 섞인 미소를 지으며 움직였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니 잡다한 소음이 귀를 스쳐 지나갔다. 한 구석에서는 가게 주인과 손님이 옥신각신 싸우는 소리가 들렸고, 어떤 곳에서는 와서 물건 좀 보고 가라며 홍보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시끄러운 생활 소리에 오르는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역시 이런 곳에 오는 것은 그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다양한 마력들이 얽히고설키기를 반복하는 풍경이 그에게는 꽤 어지럽게 보였다. 그는 안경을 고쳐 쓰며 한숨을 내뱉었다.
두 사람이 어떤 반응인지 별 상관도 없다는 듯, 단테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나선 먼저 걸음을 뗐다. 그는 주머니에 왼손을 푹 집어넣고서 자신의 카디건을 몇 번 팔랑였다.
“그럼, 이따가 봐. 살 거 다 사고 나면 다시 연락할 테니까.”
그가 손을 흔들며 멀어지자, 트리니티가 뒤늦게 등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물론 본 사람이 없어 그 손짓은 멋쩍은 손짓으로만 남게 되었지만.
그렇게 멍하니 단테가 인파에 묻히는 걸 보고 있던 트리니티는 몇십 초 뒤에서야 오르의 상태를 살폈다. 인상을 살짝 찌푸린 그의 얼굴을 보자, 트리니티가 그의 팔을 잡고서 옷을 몇 번 잡아당겼다. 그에 오르가 흘긋 트리니티를 쳐다보았다. 트리니티는 걱정하는 기색을 내비치며 뜸 들였다.
“저어…. 탐정님. 피곤하시면 어디에 앉아 있을까요?”
오르는 고개를 저었다. 곧 있으면 낫는다는 그의 말에, 트리니티는 하는 수 없이 손을 놓고서 몇 걸음 물러났다. 트리니티는 눈치를 보며 제 손을 만지작거렸다. 그 모습을 보던 오르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트리니티의 머리 위로 손을 얹었다. 폭. 트리니티가 눈을 짧게 끔뻑거리곤 그를 올려다봤다. 주황빛 등불 같은 눈이 가만히 응시하는 사이, 오르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머리를 세게 쓰다듬었다. 평소 같았으면 머리가 헝클어진다며 무어라 말할 트리니티였으나, 오히려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제 머리를 정리했다.
“정말 괜찮으니까.”
그런 말을 하며 먼저 걸음을 옮기자, 얼떨떨하게 서 있던 트리니티가 뒤늦게 그의 뒤를 따랐다.
다시 몇 분을 걷고 있자, 어쩐지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마주친 적 있는 듯한 느낌에 오르가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 또다시 익숙한 인영이 그를 반기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바람이 살랑이듯 불었다. 어디선가 느껴 본 듯한 따듯한 봄바람…. 짧게 눈을 감았다 뜨자, 눈앞의 이가 웃는 얼굴로 둘을 반겼다.
“어머, 또 마주쳤네?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는걸.”
그 순간 트리니티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그를 노려봤다. 정말, 뭐예요! 왜 자꾸 따라오시는 거죠? 쏘아대는 듯한 질문이었다. 매서운 질문에 허주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는 너무하다며 자신의 뺨을 긁적이다, 두루마기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새하얀 종이였다.
“뭐야, 정말. 여기 골목 깐깐한 곳이라구. 내가 여기서 물건 팔려고 허락도 받고 그랬는걸? 단순히 따라오는 거면 이런 짓까진 안 하지 않겠어?”
자세히 보니 허가증이었다. 트리니티는 그 종이를 허리를 숙인 채 가만히 쳐다보다가, 허리를 확 세웠다. 미안해요! 트리니티가 양손을 꼭 모으고서 눈썹을 찌푸리자, 허주는 그 손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는 괜찮다고 말하다가 문득 멈추었다. 그의 시선이 한 곳으로 고정되자, 트리니티 또한 시선을 따라 눈을 돌렸다. 가방에 매달린 노리개가 시야에 잡혔다.
“어라? 노리개, 아직도 갖고 있네.”
허주가 금방 버렸을 줄 알았다는 농담을 던졌다. 그의 말에 트리니티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예상하지 못한 반응. 허주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다,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며 왼손을 한 번 위아래로 내저었다. 그의 손짓에 중지의 붉은 날개 모양을 한 반지가 눈에 띄었다. 어디서 본 적 있는데. 트리니티가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사이, 허주가 말을 이었다.
“농담이야. 그나저나, 감동인데. 할인해 줄 테니 이번에는 정말로 보고 가지 않겠어? 뭐…. 오해한 게 미안하다면? 흐흥, 이것도 농담이야.”
왜인지 자꾸 사람의 양심을 찌르는 듯한 농담이 이어졌다. 그런 소리에 트리니티는 눈을 꾹 감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요, 보면 될 거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며 트리니티가 쪼그려 앉아 그가 내놓은 물건들을 바라봤다. 전에 보았던 거울, 접부채, 반지…. 그가 파는 마도구의 형태와 기능은 조금 통일성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유일한 통일성이라면 동부의 물건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다. 트리니티는 한쪽 눈썹을 찌푸리며 그것들을 찬찬히 살펴봤다.
문득 천천히 보던 트리니티의 눈에 귀걸이 하나가 띄었다. 트리니티가 그것을 집어 들고서 이게 뭐냐 물어보자, 허주는 굽혀 한쪽 팔을 기대던 자세를 바로 하고는 책상다리로 앉았다.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팔꿈치를 무릎에 대 몸을 기댄 채 숙였다.
“마력 조절을 수월하게 해 주는 마도구야. 왜, 예뻐서 관심이라도 생겼나 봐?”
트리니티는 아뇨, 라고 말하며 무어라 말을 더 이으려 했다. 그러나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트리니티는 그에 답하는 대신 뒤를 돌아 오르에게 귀걸이가 어떻냐 물어보려 했으나, 답은 들리지 않았다. 오르의 모습 또한 보이지 않았다. 탐정님? 트리니티가 다시 불러 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시끄러운 인파의 소리였다. 트리니티가 당황한 얼굴로 다시 뒤돌았다. 그에 허주가 한쪽 눈썹을 찌푸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설마 누가 잡아갔나? 거봐, 내가 말했잖아. 누군가가 쫓고 있다고 했는데. 역시 그 신살자인가, 뭔가 하는 애들이려나.”
“네?”
허주의 말에 트리니티가 손을 쫙 편 채 멈췄다. 이 이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숨이 점차 가빠졌다. 나는 탐정님처럼 누굴 잘 찾을 방법도 없는데. 어떡하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겠어. 탐정님, 괜찮으신 걸까? 온갖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렇게 머리가 완전히 새하얘지려는 사이, 허주가 말을 한마디 더 내뱉었다.
“내가 도와줄게, 탐정님 찾는 거.”
태평한 목소리였다. 트리니티는 한쪽 눈을 찌푸렸다.
“당신이요? …왜요?”
“왜냐니? 내 손님이잖아. 이 정도는 책임져 줘야지. 난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니까.”
설마 내가 그 정도도 못 도울 정도로 약해 보이는 건 아니지? 허주가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트리니티는 여전히 뚱한 표정이었다. …그런 얼굴로 머리를 굴렸다. 마도구라면 질릴 정도로 갖고 있을 행상인. 확실히 그라면 오르를 돕기는 수월할 터였다. 여전히 수상하기 짝이 없는 이이지만, 그래도. 일단….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잠깐의 침묵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허주는 트리니티의 모습을 잠시 천천히 위아래로 살피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딱.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는 소리에 조금 서늘한 바람이 훅 불었다. 눈앞에 펼쳐져 있던 물건들은 어느새 사라졌었다. 트리니티가 잠시 멍하니 아무것도 없는 바닥을 내려다보자, 허주가 어깨를 가볍게 툭툭 쳤다.
“뭐 해, 출발해야지. 일단 그 단테라는 녀석이랑 합류해서…. 어디로 납치됐을지 의논 좀 해보자구.”
허주가 상냥한 미소를 보였다. 그의 미소는 어쩐지 안심되었다. 마치 오래 본 사람의 상냥함을 느끼는 듯했다. 트리니티는 조용히,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둘이 함께 산책하는 거였는데. 트리니티는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 뜨고는 단테가 갔던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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