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제로] 관찰구역 보고 일지

그체 by 하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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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아이의 기록을 읽지 않으셨다면 전편을 먼저 읽으신 후 열람해 주시기 바랍니다.

*해당 글의 세계관은 AU로서 원작과는 별개의 세계관이며, 디오는 마족이 아닙니다. 크리쳐=변이체 동일한 의미로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충 괴물들이 돌아다니는 아포칼립스 세계관 분위기로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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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4일.

[관찰 구역 저택으로의 침입을 명한다. 관찰 목표-일명'박사'-는 크리쳐에 대해 깊은 흥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변이체로 보이기 위해 인공으로 달아둔 뿔과 손톱이 발각될 경우 위험도가 높아지며 경계 수준이 향상될 것으로 예측되니, 발각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발각될 것 같은 경우 신속히 그곳을 이탈하기 바람.]

- '박사'의 저택에 침투에 성공했다. 확인되었던 것과는 달리 추가로 어린아이가 1명 더 있다. 관찰 대상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르기는 하나 오즈 폰 막스 라인하르트는 밝혀진 친자관계가 없음. 조사가 조금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이의 이름은 제로. 무언가의 실험에 동참하고 있는 것 같다. 환경은 열악함. 기본적인 식사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 있음에도 발육상태가 좋음. 실험에 사용된 탓으로 보인다. '박사'에 이어서 추가 관찰 대상으로 인식하겠다.

이상.

3월 7일.

[보고 받은 이름의 아이로는 최근 실종 신고가 들어온 것은 없음. 실종된 아이 중 가명으로 이름을 바꿔서 사용하도록 하고 있거나, 고아일 가능성이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부분에 대해서 보고 바람.]

- 박사는 주기적으로 아이의 몸에 상처를 내며 회복 속도를 관찰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무언가를 주사하기도 한다. 경계도가 상당한 탓에 자세히 살피지는 못했으나 녹색을 띤 액체로 보인다. 향은 파악 불가. 대신 아이의 상처를 지혈하며 채취한 혈액 샘플을 동봉한다. 평범한 아이가 버티기엔 가혹한 환경으로 판단된다. 빠른 시일 내로 약물의 정체를 파악한 후 구출 명령을 내려주길 바람.

이상.

3월 10일.

[혈액 검사 결과, SS급 위험도의 변이체의 신체 일부를 정제한 약물을 투여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정밀 검사는 시간이 더 소요되므로 아직 확실하지 않은 정보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에 착수하기 바람.]

- 회신 받은대로, 약물의 정체는 일종의 크리쳐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변이체를 정제해서 주입하고 있는 거라면 자아가 있는 생체 병기 등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로 추측된다. 오늘 아이의 몸에서 이상현상이 발생했다. 고열 이후, 마치 인격체가 달라진 것 같은 행동을...

"..."

디오는 종이에서 뒷줄을 적은 부분만 찢어낸 뒤 그것을 제 입으로 먹어 없앴다. 그 후 다른 종이를 한 장 더 덧붙여 이어적었다.

-...오늘 아이는 고열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워하긴 했으나, 별다른 이상현상은 없었다. 아직 실험이 순조로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더이상 방치하는 것은 위험할 것으로 사료됨. 시급히 구출 명령을 요청한다.

이상.

3월 17일.

[요청은 기각한다. 상황을 더 파악하여 보고 바람.]

"……쯧."

이번 회신은 너무나도 간결했다. 디오는 은연중에 눈치챘다. 아직 완벽히 크리쳐를 다룰 수 있는 존재란 이 세상에 없다. 박사는 비인도적, 비인륜적인 인체실험을 강행하고 있으므로 이 시점에서 이미 범죄자이며 회유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의 지식수준은 탐이 나는 것이겠지. 그러니까, 그에게 '생체병기'를 만들게 시킨 뒤 나에게는 '회수' 및 '박사의 처분'을 시키면… 깔끔해진다는 소리다.

이 정도의 예측은 별로 어렵지도 않다. 그들이 하는 생각이란 다 비슷비슷하니까. 그럼에도 대외적으로는 사람들을 지키기에 여태껏 군말없이 따르고는 있었다만…….

3월 18일.

"박사."

디오는 처음 이 저택에 들어오기 전 상황을 떠올렸다. 그토록 경계심 심한 인물이 고작 인공 뿔, 인공 손톱 하나 달았다고 경계도를 확 낮출 리가 없었다. 게다가 상대는 천재라고 불릴 만큼 머리가 비상한 인물이다. 나조차도 쉽게 간파해낼 수 있는 속내를, 그라고 눈치채지 못할까?

그래서 디오는 처음부터 계획대로 일을 추진하지 않았다. 박사에게 자신을 변이체와 일체화된 몸이라고 소개하며 호기심을 유발한다는, 헛점투성이인 계획따위를 따르지 않았다.

어차피 위험을 부담해야 하는 것은 이 인물과 접촉한다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성공 가능성이 높은 쪽에 걸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와 거래 하나 할까?"

3월 28일.

열흘 내내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고작 그가 건넨 가루약을 아주 조금 먹었을 뿐인데도 이렇게 격한 반응이다.

위험한 거래였다. 오즈는 조금이라도 낌새가 이상하다 싶으면 제로를 죽이고 다른 실험체를 찾을 만한 인물이었다. 자신이 그에게 죽임을 당할 거란 염려는 가능성에 두지 않는다. 애초에 오즈를 '처분'하기 위해 파견된 몸이다. 박사 또한 그것은 알고 있는지 나를 죽이려는 생각은 한 톨도 없는 것 같았다.

무엇을 먹었는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그동안 박사에게 새로 생긴 재료라면 변이체의 뿔 뿐이다. 신체 외부에 달아둔 것이긴 하지만, 본디 이 뿔과 손톱은 한 마리의 크리쳐로부터 떨어져나온 부속품이었다. 서로 동일한 경도를 지녔기에 뿔은 손톱으로만 잘리고, 손톱은 뿔로 내리쳐야지만 잘린다. 그 외의 것으로는 무슨 짓을 해도 잘리지 않고, 녹지 않고, 부식되지 않는다. 박사를 현혹시키기 위함도 있지만 일종의 '무기'인 셈이었다.

하지만…….

디오는 이것을 거래 용도로 썼다.

"……읏."

"왜 그러십니까?"

저녁 식사시간. 그리고 제로가 잠들기 전 잠깐의 시간만이 유일하게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물론 디오의 기준은 아니었다. 그는 늘 24시간 경계태세였으므로, 이것은 제로의 기준으로 평화로운 시간이라는 뜻이었다. 오즈가 '실험체'와 한 공간에서 밥을 먹을 리 없으니 그의 몫은 나중에 연구실로 가져다 주면 그만이었다. 즉, 오즈와 완전히 분리되어 따뜻한 밥을 걱정 없이 먹고 편안히 쉴 수 있는 시간이라는 뜻이었다.

그랬기에 디오는 제로가 이 시간만큼은 마음 놓고 있었으면 했다. 그는 아무리 봐도 평범한 어린아이였다. 신체의 이야기가 아니다. 신체 능력은 평범과는 동떨어져있다 할지라도, 그는… 아이였다.

"아무... 아무 것도 아니에요."

눈치를 보며 답한다.

박사는 그의 이런 태도가 '답답해서 짜증나지만 고분고분해서 좋다'라고 평하는 듯하지만….

"아무 것도 아니지 않을 텐데요. 작은 어르신을 제대로 모시지 못하면, 어르신에게 제가 혼날 겁니다."

"……!"

이런 협박은 좋지 않다. 디오는 알고 있었다. 가뜩이나 주눅이 들어있는 아이에게 공포의 대상을 거론하다니. 하지만 이만큼 효과가 좋은 것도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착한 아이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과 그가 혼나는 것 사이에서 빠르게 저울질을 마쳤다.

"...오늘... 음식이, 아무 맛도 안 나서요...... 아, 맛이 없다는 게 아니에요. 그냥……."

디오는 어물거리며 말하는 제로의 모습에 뒷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얼얼해졌다.

미각 상실.

먼저 겪어 보았기에 알 수 있었다. 크리쳐의 뿔을 갈아만든 가루약을 먹은 당일에만 발생하는 부작용이었다. 디오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그럴 수 있습니다. 별 대수로운 일은 아니지요."

미친 새끼.

"걱정 마십시오. 내일이면 원래대로 괜찮아지실 겁니다."

애한테 뭘 먹인 거야?

4월 1일.

본부와의 연락을 끊은 지 한참 되었다. 슬슬 저쪽에서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챌 것이다.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음을 디오는 직감했다.

"...나와 거래 하나 할까."

침대 위에 앉아있던 아이가 스산한 눈빛으로 말을 걸어왔다.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다.

처음에는 외부에서 오는 자극에 대한 방어기제로 해리성 인격장애라도 생긴 걸까 싶었지만, 본인이 스스로 말했다. 몸을 빼앗은 것은 아니며 원한다면 얼마든지 외부로 빠져나올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 그런 짓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봤자 박사에게 더 좋을대로 놀아날 뿐이라고 판단한 '그'가 여태껏 내부에 잠자코 숨죽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대가로 아이가 더욱 참혹한 실험을 받게 된다 할지라도.

"무슨 거래?"

"간단해."

아이의 모습을 한 '그것'이 비뚜름하게 웃었다.

그러나 말투에서 전해져오는 간절함은, 무시할 수 없었다.

"내가 너를 따라갈게. 어차피 너희들이 원하는 것은 나잖아? 인간과의 융합을 시도해 봤자 내가 거부하면 그만이라는 걸 지금 잘 알았겠지. 그러니까……."

"……."

"…우리를 살려줘."

이 시점에서 디오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크리쳐에게도 감정과 자아가 있다니?

"나쁜 거래는 아닐 텐데. 이봐, 너도 알잖아? 나만큼의 지능을 가진 변이체는 없어."

확실히 맞는 말이다. 그러나, 디오는 커다란 빈틈을 지나치지 않았다.

"이미 그 몸을 빌려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는 시점에서 박사의 실험은 성공한 거야. 너는 완전한 융합이 아니라고 했지만, 몸 밖으로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 소년과 어느 정도 정신적 결합이 되어있는 상태겠지. 따라서, 거래는 거절한다."

아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역시 인간 따위를 믿어 보는 게 아니었다며 혀를 차고선 몸을 돌려 침대위에 눕는다. 이런 놈이 뭐가 좋다고, 하며 투덜거리는 소리도 작게 들려왔다. 디오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은 가뿐히 흘려들은 후, 그의 방을 나오며 마음을 굳혔다.

이미 박사의 실험은 성공했다.

그렇다면 이 아이는, 앞으로도 영원히 구원의 손길을 받을 수 없다.

나는...

난 '그들'과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다.

4월 4일.

창가를 보니 멀리서 벚꽃잎 한 장이 날아들어와 있었다. 날씨가 좋은 모양이다. 첫 여행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성 싶었다.

"…제로."

여행길에 오르면 제일 먼저 벚꽃을 보러 가자.

"나와 떠나자."

나는 이제 네가 아닌, 꽃 따위를 관찰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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