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다왼

[구다로빈] 야식

FGO 후지마루 리츠카(남)x로빈 후드 전연령가 글

2020.04.27 포스타입 게재했던 글을 옮겨왔습니다.

마스터를 위해 뭔가 요리하는 로빈으로 리퀘 받아서 작성


심야. 날짜가 지나갈 무렵. 로빈 후드는 드물게도 칼데아의 주방에 홀로 서 있었다. 물론 드물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요 몇 달 기준일 뿐, 아직 칼데아에 서번트가 거의 소환되지 않았던 초창기에는 부디카를 위시한 몇몇 서번트와 더불어 돌아가며 주방 담당을 맡았던 그가 주방에서 무언가 요리하는 일 자체는 흔했다. 다만 그것도 모 붉은 궁병이 소환되기 이전의 이야기일 뿐.

로빈과도 나름대로의 악연이 있다면 있는 그 사내는 소환되자마자 칼데아 주방의 화신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래 요리 실력도 타에 추종을 불허할뿐더러, 마스터와 동향 출신인데다가 현대의 영령이기까지 한 그의 음식이 마스터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은 두말할 여지조차 없었다. ‘개중에서는 그나마 요리를 그럭저럭 할 수 있는 수준’인 로빈 후드가 나설 자리가 없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처사에 불만은 없었다. 한창 잘 먹어야 할 시기인 마스터가 더 맛있고 영양 면에서도 균형 잡힌 식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는데 굳이 토를 달 이유도 없다. 그 빨간 녀석이 보란 듯이 우쭐거리는 모습을 떠올리면 공연히 심사가 뒤틀리기는 하지만 그뿐이다. 누구에게나 각자 알맞은 자리가 있는 법. 독살이나 덫 놓기, 암습 따위가 특기인 보잘 것 없는 궁병인 자신에게는 시끌벅적한 주방보다는 고요한 숲이 더 어울리니까.

그런데 왜 또 다시 주방에 서게 되었는지. 솜씨 좋게 재료의 밑준비를 하던 로빈은 무심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야식 먹고 싶어’ 까지는 그렇다 쳐도, ‘로빈이 만들어준 게 먹고 싶단 말이야’는 대체 뭐람. 기왕 먹을 거면 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낫지 않겠냐는 합당한 반문에도 마스터의 고집은 꺾이는 법이 없었다. ‘안 만들어주면 만들어줄 때까지 떼쓸 거야’ 라니, 애도 아니고. 누가 그런 협박에 넘어간답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주방까지 와 버린 것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마스터에게 무른 탓이다.

“마스터도 정말, 이상한 데에서 억지를 부린다니까…….”

고개까지 절레절레 젓는 동작과는 달리, 표정이며 목소리에 싫은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티를 안 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작 하나하나에 기쁨이 묻어나온다. 기분 탓인지 칼이 도마에 닿는 소리마저 경쾌하기 짝이 없었다.

양파는 얇게 슬라이스해 매운 기가 빠지도록 찬물에 담갔다가 빼 물기를 제거한다. 잘 익은 토마토는 모양이 뭉그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적당한 두께로 썰고, 로메인 양상추는 식빵에 들어갈 만한 크기로 잘라 마찬가지로 물기를 제거한다. 베이컨은 갈색 빛이 돌 때까지 지글지글 구워 키친 타올 위에 올려 기름기를 뺀다. 베이컨 기름이 남은 팬에 달걀을 깨어 넣고 소금과 후추를 살짝 뿌려 튀기듯이 굽는다. 평소 마스터는 반숙을 좋아하지만, 샌드위치에 반숙 달걀을 넣었다가는 온통 흘러서 난리가 날 테니 이번에는 노른자를 터트려 속까지 잘 구워준다.

홀그레인 머스타드에 꿀과 소금, 마요네즈를 섞어 만든 소스를 식빵에 바르고 양상추, 토마토, 양파, 베이컨, 슬라이스 치즈, 달걀 프라이, 다시 소스를 바른 식빵을 차례대로 얹는다. 잘 쌓은 샌드위치는 랩으로 감싼 뒤 묵직한 도마 따위를 위에 눌러놓는다.

샌드위치 모양이 잡히는 동안 음료를 만들 차례다. 평소라면 설탕과 우유를 듬뿍 넣은 커피나 홍차를 곁들여 내겠지만 지금은 밤이니 카페인이 든 차는 숙면에 방해가 되겠지. 잠시 고민하던 로빈이 꺼낸 것은 얼려 보관해 놓은 바나나와 새콤달콤한 베리들이다. 껍질을 벗겨 적당한 크기로 자른 바나나와 블루베리, 라즈베리, 블랙베리 등을 적당량 믹서기에 넣고 꿀과 우유를 넣어 함께 갈아낸다. 잘 갈린 스무디는 유리컵에 담은 후 남은 베리 몇몇 개를 얹어 장식한다.

다음은 뒷정리 차례다. 사용한 식기들을 그냥 내버려 두고 갈 수는 없는 법. 자른 채소를 올려뒀던 접시는 잘 닦아 물기가 빠지도록 건조대 위에 둔다. 숟가락이며 다른 식기 역시 잘 닦아 둔다. 기름을 썼으니 프라이팬은 꼼꼼하게 기름기를 닦아내야 한다. 눌러놓았던 샌드위치를 먹기 좋게 잘라 접시에 담은 후 도마와 칼까지 모두 설거지를 끝내고 남은 물기를 닦아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마지막으로는 빵가루며 흘린 소스 따위를 훔치고 행주까지 빨아서 마르도록 걸어 놓기까지 하면 끝이다.

간단하기는 해도 의외로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야식임을 감안해 평소 마스터가 먹는 양보다 적게 만들기는 했어도 완성하고 뒷정리까지 끝내는 데 걸린 시간이 짧은 것은 어디까지나 로빈 본인의 수완이다. ‘이 정도는 익숙해졌으니까’ ‘미적대다가 다른 사람이랑 마주치면 싫어서’ 따위의 변명으로 무장했어도 실제로는 배고픈 마스터에게 얼른 음식을 가져다주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크겠지. 재빨리 임무를 마친 로빈은 트레이에 샌드위치와 음료를 담아 누가 볼세라 주방을 나섰다.

“문 좀 열어줘요.”

마스터의 방문 앞에 선 로빈이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어서 와! 우와, 뭐야? 샌드위치? 야호! 신난다!”

먹어도 돼? 하고 물어보는 마스터의 눈이 기대와 기쁨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그 강렬한 시선에 어쩐지 열없어진 로빈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손부터 씻고 오라구요. 뭐, 맛은 보장 못하지만.”

“로빈이 만들었는데 맛이 없을 리가 없잖아.”

“내 요리 질리도록 먹었으면서 새삼.”

트레이를 테이블에 내려놓은 로빈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말 그대로, 로빈이 할 줄 아는 요리라고 해 보았자 칼데아에서 새로 익힌 것까지 포함해도 양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특히 샌드위치는 구색 갖추기도 좋고 영양 면에서도 훌륭한 터라 속재료만 바꿔 가며 여러 차례 내놨으니 질리지 않는 게 이상한 수준이다.

“질릴 리가 없잖아.”

그런데도 마스터는 단칼에 저런 말을 해 버린다. 이럴 때 그렇게 진지한 표정 짓는 건 반칙이잖아요. 로빈은 삽시간에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려 노력하며 시선을 피했다.

“네에, 네. 얼른 먹기나 합시다. 후딱 먹고 자야 내일 안 힘들어요.”

“응! 맛있겠다. 이건 뭐야?”

샌드위치를 덥석 집어든 마스터가 다른 손으로는 음료를 들었다. 그러고는 대답도 듣기 전에 꿀꺽꿀꺽 마셔 버린다.

“아, 우유에 얼린 바나나랑 이것저것 넣고 갈아본 건데…….”

“맛있어!”

입술 주위에 음료를 온통 묻힌 채로 활짝 웃는 마스터는 그야말로 천진한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의 얌전하고 나이보다 어른스럽던 모습과 비교하면 정말이지 다른 사람이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그렇슴까.”

“응. 시원하고 새콤달콤해서 엄청 맛있어! 역시 로빈이 해준 건 뭐든 맛있다니까!”

“뭐어, 입맛에 맞으면 다행이고.”

그래도 로빈은 지금의 마스터가 훨씬 좋았다. 다소간의 억지는 용인되는 관계라는 신뢰가 있다. 어리광을 부려도 괜찮은, 의지할 수 있는 상대라고 여겨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확실하게 느껴지는 인연이 여기에 있다.

“응, 로빈. 고마워.”

로빈은 그저, 그것이 기뻤다.

“별말씀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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