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지 않은 밤

거룩하지도 않은 밤

비휴 by 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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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뛰어다니는 소리가 골목 사이사이에 울려 퍼진다. 중구난방으로 이리저리 방향을 잃고 흩어지는 발소리들. 뛰고 있는 발들은 모두 급하다. 발소리 뒤에 이어지는 것은 시끄러운 함성 혹은 비명. 앞으로 있을 새해를 맞이하고, 한 해의 마지막 행사인 성탄절에는 영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다. 고요하게 집 안에서 가족이나 연인, 친구와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내며 작은 웃음소리가 흐르는 것이 아니다. 축제를 맞이하여 신나서 떠드는 젊은 이들의 술 취한 웃음소리도 아니다. 이것은 그보다 더 원초적인 것에 가까웠다.

끼에에엑!!

머리에 동물 탈을 쓴 이들이 뒷골목을 달리고 있다. 돼지, 사슴, 토끼, 닭 등등 별의별 탈을 쓴 이들이 뛰어다니며 시끄럽게 소리를 지른다. 만약 이 정도의 소란으로 끝났다면 그렇게 끔찍하지는 않았을 텐데, 눈앞에 지나가는 행인이 보이면 여럿이서 덮친다. 무언가 찢어지고 살려달라는 비명이 몇차례 울려 퍼지면 곧 사람의 머리에 동물 탈이 꿰매진다. 언제부턴가 이 땅은 안전과는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하늘이 금색으로 물들고 달이 지고 시계 바늘소리가 울린 이후 무언가 이 세계는 결이 변했다. 야릇하고 끈적거리는 서정시를 읊던 음유시인이 돌연 거품을 물고서 사교도의 찬송가를 부르는 것과 같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고 정확하게 그때 일어났던 사건이 무엇인지 일개 모험가, 용병 나부랭이들은 알 턱이 없다. 그것들을 접근하기 위한 대단한 존재들이면 모를까 당장 여관비를 내지 못 하면 쫓겨나고 던전에서 수확이 없으면 거리의 부랑자들처럼 구걸이나 하고 다녀야 하는 것들은 그런 거창한 일은 모른다. 의뢰나 열심히 하고 던전에서 아득바득 살아남고 영주 마음에 거슬리지 않게 조심하고 대형 길드들의 뒤를 봐주며 성채를 장악한 도적 떼들에게서 어떻게든 도망치며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 지금처럼.

"그쪽 골목으로 셋 몰았어!"

성현아의 귀에 목소리가 직접 꽂힌다. 여전히 이건 적응 안 되는 마법이다. 이명이 잠깐 들려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그 순간 사람 여럿의 발소리와 비명이 목소리가 들린 곳의 반대 귓구멍에 화살처럼 날아와 박힌다. 지시를 내린 성현아의 선배는 그리 유능하지는 않다. 몰았다고 표현하기보다는 놓쳤다고 얘기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으나 성현아는 그런 시답잖은 얘기에는 영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할 일은 크게 바뀌지 않으니까. 원숭이탈을 쓴 사람이 가장 먼저 성현아에게 달려온다. 뒤이어 닭과 염소도 죽일 듯이 뛰어온다. 당장이라도 넘어뜨릴 기세로 달려오더니 체중을 한껏 실은 채 몸을 내던진다.

골목 한 쪽에 놓인 쓰레기 더미들이 무너지고 투박하게 무언가가 맞는 소리가 여러 차례 들린다. 바닥에 쓰러지고 규칙적으로 누군가가 맞는 소리가 생경하게 울려 퍼진다. 보통의 성탄절이라면 종소리가 울렸을 텐데, 하루 벌어 먹고 사는 거지같은 이 곳에서 그런 것을 꿈꾸는 것조차 사치다.

"현아! 현아야!"

뜀박질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더니 곧 골목길 앞에서 멈추어 선다. 레이나는 펄럭이는 코트 자락을 추스를 여유도 없이 입을 벌린 채 눈앞의 참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현아... 야?"

"왜 자꾸 불러. 시끄럽게."

담배 연기가 추운 입김과 함께 하늘로 붕 떠오른다. 바닥에는 사람 셋이 엎어져 있다.

"왜 전음은 안 받아! 걱정 했잖아!"

레이나에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무시당했음에 기분 나빠할 법도 했지만 곧장 한숨을 쉬더니 레이나는 품에서 스크롤을 꺼내어 들여다본다. 5분 정도 지났을까 머리를 쳐박듯이 바라보다가 곧 눈을 돌리고 쓰러진 사람들을 살핀다.

"…야 너, 뭘 한 거야."

"뜯으면 원래대로 돌아올 줄 알았어."

탈을 목에 꿰맨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아예 얼굴 가죽과 들러붙은 모양이다. 탈과 얼굴 가죽이 반쯤 벗겨진 시체의 얼굴은 똑바로 쳐다보기가 어려워 레이나는 고개를 돌렸다.

"너도, 진짜 일 무식하게 처리한다. 이걸로 우리 길드 할당량은 채웠으니까, 복귀해도 된대."

"생각보다 빨리 끝난 것 같은데."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도시 경비대가 여기 도시에 있는 길드며 떠돌이 용병들이며다 연락해서 의뢰 돌렸다더라."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 일인가? 이 정도면 고블린 떼도 안 될 것 같은데."

"진압이 비교적 빨라서 그렇지, 점차 수가 불어나면 골치 아프잖아."

성현아는 이번에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전부였다. 긴급 의뢰였으니 전보다 돈을 더 줄지도 모른다. 제 앞까지 와서는 떨어지는 돈이 얼마 되지 않겠지만 스프에 들어갈 건더기가 몇 개 더 늘어난다면 좋겠다. 저녁을 먹지 않고 뛰쳐나온 탓인가 성현아의 배는 열심히 제 위장에 먹을 것을 채워넣으라 울부짖고 있었다.

"이제 집으로 갈 거야? 하긴 너무 늦은 밤이네."

"밤새 술 마시자는 거라면 사양이야. 네 뒤치다꺼리 할 취미는 없으니까."

"아 왜 이래~ 직·속·선·배 한테 그럴 거야?"

성현아는 얼굴을 구기며 레이나를 바라보았다. 선배답지도 않은데 왜 저러는지. 그리고. 그때였다.

"야! 뒤!"

레이나의 머리 위로 인형 탈을 쓴 이가 갑자기 떨어진다.

"으악!!"

수는 아까와 같이 셋. 성현아는 당황했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레이나에게서 인형 탈 무리를 떼어놓으려고 했다.

끼에에에엑!

"살... 살려줘!"

빠르게 달려가 몸으로 밀쳐내려고 했지만 곧바로 독수리 탈을 쓴 이에게 붙잡혀 속도가 줄어들었다. 힘껏 뿌리치고 다시 달려가려고 하면 다시 눈앞에 개 탈을 쓴 것이 발목을 잡는다.

"혀... 현아야! 살려줘!! ㅎ ㅕ ㄴ.."

"정신 차려!"

아티팩트니 뭐니 하는 특별한 힘이 담긴 무기면 모를까 제 손을 감싸는 건 검은색의 가죽제 장갑뿐이었다. 하지만 이제껏 그래왔듯 이것이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우선 눈앞에서 온 몸으로 달라붙는 개 탈의 머리통을 힘껏 내리친다. 동물 탈을 썼지만 내구성은 일반인과 다르지 않은지 곧바로 괴상한 소리를 내며 힘을 잃고 쓰러진다. 레이나 위에 올라타 바느질을 하는 염소 탈의 옆구리를 걷어찬다. 무언가 부러지는 감각이 있었다. 아마 한동안은 못 설테다. 힘없이 고꾸라지는 걸 보고선 성현아는 바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현... 아...야"

탈이 완전히 씌워진 것도 꿰매진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 목에서는 바느질된 자국에서 피가 줄줄 새어 나온다. 저들과 같은 괴물이 되지 못해서 고통과 지성이 남았고 점차 죽어가기 시작했다.

"말하지 마, 기다려. 포션이.."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처음으로 레이나가 현아의 말을 고분고분 들은 순간이었다. 코트 속을 빠르게 뒤져 포션을 꺼내었을 때 성현아는 그것을 그대로 바닥에 내리칠 수 밖에 없었다. 붉은 색의 액체가 바지에 튀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목에 있는 실밥을 조심히 뜯어내고, 인형 탈을 벗겨 내주는 것이 전부였다. 이 세계에서 약한 이는 살아남지 못 한다. 그리고 사람을 지키지 못 한다.

자신을 멈춰세웠던 독수리 탈이 점점 제게 다가옴을 성현아는 느꼈다. 하지만 쉽사리 몸이 움직여지는 것은 아니었다. 모험가든 용병이든 언제나 황혼의 저편, 죽음의 속삭임과는 가까울 수 밖에 없지만 그것이 익숙해진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게 지금 얌전히 죽음을 받아들여도 된다는 걸 의미하지도 않는다.

지척까지 탈을 쓴 것이 다가오자 성현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주먹을 뻗었다. 검이나 거대한 망치로 내려찍는 것이 아니다. 그저 주먹을 빠르게 뻗었고 그것이 독수리 탈의 부리를 찍어누르듯 강타했을 뿐이다. 그리고 상황은 끝이 났다.

성현아는 손에 묻은 피를 자신의 때가 탄 셔츠에 쓱쓱 비벼 닦았다. 그리고 입에 연초를 물었을 즈음에 골목에 다시 괴성이 울려 퍼졌다. 몇 시쯤 되었으려나. 너무 늦은 시간이다. 하늘 위에 뜬 별들로는 감각이 흐리멍청해질 뿐이다. 지금 레이나의 시신을 수습하지 않으면 그대로 까마귀들의 먹이가 되고 말 것이다. 우선 수습하려고 아직 온기가 채 식지 않은 시신을 업고서 일어나려던 순간이었다. 귀를 때리는 전음 마법.

"여기는 도시 경비대. 여기는 도시 경비대. 즉시 지원 바람. 위치는 마을 앞 광장. 반복한다. 전음 받은 이들은 지원을 최우선으로 움직이길 바란다. 거대한 탈을 쓴 괴물이 등장했다. 모체로 추정된다."

누군가를 추모하고 애도하기엔 너무나 빠듯한 삶이다. 성현아는 레이나의 시체를 두고선 뛰기 시작했다. 아직 이 세계의 밤은 아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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