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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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AU 크로린 도입부

잔물결 by 시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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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역은 트리스타, 트리스타. 내리실 승객들께선─……》

목적지 도착을 알리는 안내 방송에 린은 감았던 눈을 조용히 떴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슬쩍 보니 커브를 도는 기찻길 너머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작은 도시 하나가 보이기 시작한다. 근교 도시 트리스타. 오늘부터 린이 다니게 될 토르즈 사관학교가 위치한 곳이기도 했다. 기차 안이라 창문을 열 순 없었지만 얼핏 향긋한 꽃내음이 풍겨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린은 얼마 되지 않은 자신의 짐을 미리 헤아렸다. 기차가 도착하면 곧바로 내리기 위함이었다.

트리스타, 토르즈 사관학교. 린이 이 학교에 다니기로 한 것은 단순히 학교를 갈 나이가 되어서가 아니었다. 물론 ‘의탁하고 있는 곳’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린이 순수하게 학교를 다니길 바랐던 것도 있었지만, 린에게는 그 수많은 학교들 중에서 토르즈를 고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린에게 살아갈 이정표가 되어준 단 한 사람이. 작전이 임박함에 따라 직접 움직이길 택한 그를 직접 만난 지도 제법 오래 됐다. 편지는 자주 주고받았지만 역시 직접 보는 것에는 미치지 못함이 있었기에 린은 학교라는 핑계를 들어 그 사람이 있는 토르즈로 가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기차가 멈춰 서고 사람들이 분주하게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린은 좁은 기차 통로가 사람들로 빠듯해지기 전에 서둘러 자신의 짐을 챙겨 기차에서 내렸다. 작은 도시답게 역사 내부도 단촐하고 작아 새로운 장소를 둘러볼 마음도 없이 린은 곧장 밖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눈부신 햇살이 내리쬠과 동시에 착각이라고 생각했던 꽃내음이 코끝을 간질였다. 그 향기에 이끌려 위를 쳐다보니 라이노 꽃이 새하얗게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린은 금세 흥미 없다는 표정으로 언덕 위로 보이는 학교를 향해 발걸음을 뗐다.

곧이어 앗, 하고 뒤에서 가냘픈 목소리가 린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만약 린이 조금이라도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늦었다면 뒤에서 오던 여자애와 부딪힐 뻔했다. 금발에 붉은 눈을 가진 여자애였다. 그녀는 하마터면 린과 부딪힐 뻔한 상황이 어색했는지 머쓱한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얼핏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린과 같은 색인 붉은색이었으나 아무렴 린에게는 크게 특별할 리 없는 일이었다. 대충 고갯짓으로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 곧장 학교로 향했다.

학교로 향하면서 작게나마 꾸려져 있는 공원을 지났고, 칠요교회도 지났지만 그 어느 곳도 린의 흥미를 끌진 못했다. 망설임 없는 발걸음으로 교문 앞에 다다른 린은 학교 앞에서 웬 리무진에서 내리는 자신과 같은 제복의 백금발의 남학생을 보았지만 잠시 발걸음만이 멈췄을 뿐 그다지 눈길이 가지 않았다.

“아, 거기 잠깐만!”

그런 린을 불러 세운 것은 체구가 작은 한 여학생과 몸집이 좋은 어느 한 남학생이었다. 남학생의 경우는 잘 모른다 해도 여학생의 경우 팔에 완장을 차고 있는 것이 적어도 평범한 학생은 아닌 듯 보였다. 린은 그제야 다소 서두르게 움직이던 걸음을 멈추고 그 둘의 앞에 섰다. 빠르게 교문을 스쳐 지나가는 린을 보며 당황했었는지 여학생 쪽이 옅게 한숨을 내뱉곤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안녕, 신입생이지?”

“네. 혹시 학생회장님이신가요?”

“으응, 맞아. 토와라고 해. 빨리 왔구나. 어, 그러니까 이름이…….”

“린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그래, 그럼 린 군.”

성 없이 댄 이름에도 토와는 그 이상 묻지 않았다. 귀족 클래스부터 평민 클래스까지 다양한 신분의 학생들이 모이는 사관학교이니만큼 필히 성을 숨기고 싶어하는 학생들도 분명 있으리라. 그리고 아마도 학생회장인 그녀는 그런 것들에 대해 익숙한 모양이었고 적당한 처세도 가지고 있어 보였다. 그런 점이 린에겐 불편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혹시라도 성에 대해 묻는다면 아직 뭐라 마땅히 답할지 정하지 못한 탓도 있었다.

“그게 신청한 물건이야?”

토와와 대화를 나누느라 그만 옆의 남학생을 깜박 잊고 있었다. 노란 점프 수트를 입은 풍채 좋은 남학생이 린이 어깨에 메고 있는 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린은 안내장에 쓰여 있던 문구를 떠올렸다. 입학과 동시에 무구를 접수처에서 맡겨달라는 내용이었다. 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짐을 넘겨주었다. 남학생은 받아든 짐을 살짝 들어 보며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잘 맡아 둘 테니 걱정은 안 해도 돼. 물론 제대로 돌려받을 수도 있을 거고.”

“입학식은 강당에서 이루어지니까 저쪽으로 쭉 걸어가면 돼.”

“네.”

“자, 토르즈 사관학교에 어서 와!”

“입학 축하한다. 충실한 2년이 될 수 있길 바랄게.”

“……네에.”

이런 성대한 환영은 다소 껄끄럽다. 익숙치않은 상황에 린은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며 말끝을 늘였다. 더 말을 걸어오면 어쩌나 싶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두 사람은 뒤에 들어오는 또 다른 신입생을 맞이하느라 바쁜 모양이었다. 린은 서둘러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이렇게 입구에서 친절히 신입생들을 안내하는 것으로 보아 선배들인 게 분명했다. 이번에도 린이 찾는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차피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걸 안다는 이상 린은 더 이상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충실한 2년. 린은 방금 전 남자 선배가 말했던 말을 곱씹었다. 어차피 린에게 학교란 그저 작전을 위해 스쳐 지나가는 장소일 뿐 그 외에 다른 의미는 없었다. 2년은커녕 1년이나 다닐 지도 불투명하다. 그저 조용히 그 사람을 도우다 가야지.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입학식은 지루하고 또 따분했다. 세상의 초석이 되라는 사자심황제의 형식적인 말을 읊는 교장부터 학생들 사이에서 묘하게 흐르는 귀족과 평민 사이의 신경전도 무엇 하나 의미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자리에 앉아 가만히 그를 어떻게 만나면 좋을지 생각하던 린은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맨 앞 두 줄은 흰색의 제복, 그러니까 귀족 학생들이- 세 번째 줄부터는 초록색과 붉은색 제복을 입은 학생들이 뒤섞여 있었다. 린을 포함하여 붉은색제복을 입은 학생은 아홉 명. 귀족과 평민이 흰색과 초록색으로 반이 나뉜다는 걸 보았을 때 높은 확률로 붉은색 제복을 입은 학생 역시 그들과 반이 갈리게 될 것이란 나름대로의 확신이 있었다.

“휴, 느닷없이 허들이 올라간 느낌이네.”

바로 옆에 앉은 남학생도 붉은 제복이었다. 홍차 빛의 머리를 가진 유순해 보이는 소년은 마찬가지로 교장의 연설이 따분했는지 배시시 웃으며 린에게 말을 걸어왔다. 혼잣말을 한다기엔 너무 린을 콕 집어 쳐다보며 말하는 것이 차마 무시할 수도, 거절할 수도 없어 린은 고르고 골라 그의 말에 적당히 대답해주었다.

“……차라리 스파르타가 나으련만.”

“아하하, 그렇네. 난 엘리엇 크레이그야.”

크레이그. 분명 그 이름은 재국 정규군의 제4기갑사단을 지휘하는 《붉은 머리의 크레이그》와 같은 성임에 틀림없다. 제국 최고의 명장. 분명 ‘이쪽’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런 명장의 아들이 이렇게 유순한 얼굴의 소유자란 것에는 아무래도 좀 놀랐다. 아무리 봐도 엘리엇은 사관학교와는 그닥 어울리는 인상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린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성을 제외한 이름만을 소개했다. 때마침 교장의 말이 끝나서 그런지 엘리엇은 린의 성에 대해 묻거나 하진 않았다. 대신 제복의 색에 대해 궁금해 하는 눈치기에 아마 같은 클래스가 되지 않을까 하며 넌지시 그의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것으로 대화를 마쳤다.

지정된 반으로 이동하라는 귀족풍 남성의 말에 흰색 제복과 녹색 제복을 입은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져 강당 밖으로 나갔다. 그 바람에 강당 안에는 아까 보았던 아홉 명의 붉은 제복의 아이들만이 남게 되었다. 어, 정말인가 봐. 엘리엇은 조금 전 린의 말을 떠올리며 주위를 어수선하게 두리번거렸다. 린을 제외하면 다른 학생들도 영문을 모르는 표정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자, 자. 붉은 제복을 입은 학생들은 주목~!”

학생들의 시선을 이끈 것은 한 여성이었다. 입학식 때 교단 앞에 서있던 것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그녀가 린의 클래스의 담임 교관일 것이 분명했다.

“반을 알 수 없어서 당황한 모양이네. 여기에는 조금 사정이 있어서~ 지금부터 너희들은 『특별 오리엔티어링』에 참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전원 따라오라는 말에 영문을 모르는 붉은 제복의 학생들이 그녀를 따라 강당 밖으로 종종 나섰다. 가장 마지막으로 강당을 나서게 된 건 린과 엘리엇이었다. 린은 문득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에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 보다 흰 제복을 입은 금발의 남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애매하게 날이 선 눈빛이 퍽 우스웠다. 꼴에 귀족이라고 본인들보다 특별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건지 정작 본인도 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 경계하는 꼴이 그랬다. 신경 쓸 가치조차 느껴지지 않아 린은 표정조차 짓지 않은 채 고개를 홱 돌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아주 짧은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꽤 자존심이 높아 보이는 귀족 도련님치곤 제법 건방져 보였을 린의 태도에 그 어떤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귀족들이 그럼 그렇지. 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을 기다리는 엘리엇의 뒤를 서둘러 따랐다.

교관이 그들을 이끌고 도착한 곳은 사관학교 뒤쪽에 위치한 낡고 허름해 보이는 옛 건물이었다. 뭐가 즐거운 지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그녀는 굳게 잠긴 자물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누가 보아도 수상한 행동에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지만 큰 트러블을 일으켜 눈에 띄고 싶지 않았던 린은 얌전히 그녀를 따르기로 했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는지 하나둘씩 건물 안으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뭔가 나올 것만 같은데. 오직 엘리엇만이 새끼 다람쥐처럼 오들오들 떨 뿐이었다.

이번에도 마지막으로 들어서면서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있었다. 그러나 방금 전과 같이 시답잖은 귀족 학생들이거나 혹은 다른 교관이나 선배들이겠거니 린은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무래도 감정기복이 들쑥날쑥한 젊은 학생들이 여럿 모이는 학교라 그런지 일일이 하나씩 반응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나이가 어린 학생들이란 별 것도 아닌 일에 적의를 보이면서도 금세 선의를 보이듯 워낙 변덕스럽다. 그러니 지금은 신경을 끄고 눈앞에 있는 그 『특별 오리엔티어링』에 집중하기로 했다.

 

 

 

“저건…….”

“아는 얼굴이라도 있는가?”

“아, 아니……. 잘못 본 것 같아.”

“그세 마음에 든 후배가 있었나 보지?”

한 편 린이 무시하기로 한 그 두 명의 시선. 린이 있던 곳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위치에는 붉은 제복을 입은 학생들이 옛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두 명이 있었다. 그 중 두건을 두른 한 남학생이 조금 굳은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다 금세 표정을 감추었다. 검은 바이크 수트의 여학생이 그런 그를 보며 장난스럽게 미소 지었다. 장난스러운 미소 뒤에 제법 날카로운 눈빛이 그를 훑고 있었다.

“자고로 나는 아는 학생이 있어. 근데 알리사도 그렇고 다들 귀엽단 말이지~”

“아니 벌써부터 꼬셔 대는 거야? 너 때문에 근 1년 간 얼마나 많은 남학생들이 쓸쓸한 추억을 경험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코웃음을 치는 그녀의 반응에 남학생은 파르륵 몸을 떨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느꼈던 설마 하는 불안감이 단번에 날아갔다. 뭐 덕분에 상대방도 방금 전의 화제에 대해서 금방 잊어버린 모양이지만 방금 그가 뱉은 말은 정말로 진심이었다. 학생들 사이에선 나름 발이 넓어 여러모로 소식에 밝았던 그가 그녀로 인해 많은 남학생들의 좌절을 보았는지 안다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신입생이 들어오면서 좀 나아질까 했더니 또 지난 1년간의 반복이라고 생각하니 어휴 벌써부터 아찔했다.

둘이 투닥거리고 있자 뒤에서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토와였다.

“또, 또 싸우고 있었네. 싸우지 말래도.”

“여어, 토와. 수고 많았어.”

“다른 병아리들의 분류는 끝난 거야?”

“응, 다들 좋은 얼굴을 하고 있던 걸. 좋아! 다들 충실한 학교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열심히 서포트 해줘야지!”

“역시 학생회장님이시구만.”

“뭐 다들 처음엔 도움이 없으면 힘들 테니까. 그런데 그쪽 준비는 다 마친 모양이지?”

“그래. 교관님이 지시한 대로 전부.”

그들이 조금 동정이 가는 걸. 동정을 금치 못하는 목소리에 두건의 남자도 방금 전 학생들이 들어간 건물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을 이끌고 들어간 교관이 지시한 사항은 바닥의 함정 설치였다. 무얼 하려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었지만 함정의 형태로 보아 대강은 알 수 있었으므로 영문을 모르고 따라간 학생들이 다소 가여워졌다. 아무리 기본적인 무(武)를 익힌 사관학교 학생들이라지만 갑작스런 함정에 대처하기엔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할 것이다.

린이라면? 남자가 보았던 익숙한 뒷모습이 정말 ‘린’이었다면? 두건을 두른 남자, 크로우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항상 경계를 세우는 예민한 고양이처럼 날이 서있는 린은 분명 그런 것 즈음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처할 것이다. 그런 확신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친구들 몰래 말아 쥔 주먹 안에서 땀이 차올랐다.

 

 

 

교관의 이름은 사라 발레스타인.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붉은 제복의 학생들은 모두 한 반으로 Ⅶ반에 배정되었다. 미리 조사했던 커리큘럼에는 없는 클래스라 기껏해야 Ⅴ반 밖에 없는 토르즈에서 갑자기 웬 Ⅶ반인가도 싶다가도 제복부터 작년에는 없던 것으로 요 1년 사이에 새로 발족된 클래스인 듯 했다. 신분과 출신에 따라 클래스가 나뉘는 토르즈에서 새로 만들어진 특과 클래스 Ⅶ반은 당연하게도 기존의 틀을 깨부수듯 다양한 신분과 출신이 뒤섞여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새로운 클래스를 새로운 제복까지 입혀가며 만들 리 없었다. 그리하여 당연히 반발은 있었다.

가장 먼저 소리친 것은 안경을 쓴 남학생이었다. 마키아스 레그니츠. 남학생의 이름을 듣자마자 린은 단번에 이해가 갔다. 레그니츠 역시 크레이그와 마찬가지로 ‘이쪽’의 요주의 인물이었다. 아마 크레이그보다도 더욱 더 감시 대상에 가까웠으면 가까웠지 결코 낮지는 않았을 터다.

린은 조금 흥미롭게 소리를 높이는 마키아스를 쳐다보았다. 평민을 대표하는 레그니츠가 있다면 분명 신분이 뒤섞인 클래스인 만큼 귀족의 자제분도 있을 것이다. 린의 시선이 가장 먼저 백금발의 남학생에게 닿았다. 입학식 전 교문 앞에서 보았던 리무진의 그 남학생이었다. 가장 귀티가 나는 얼굴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리무진씩이나 끌고 학교에 오는 걸 보니 필히 귀족 자제분은 저 쪽일 것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이름은 유시스 알바레아로 무려 사대명문의 도련님이었다.

조금 놀라운데. 린은 놀란 표정을 가리기 위해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별다른 생각 없이 토르즈에 입학은 했다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요주의 인물들이 그것도 자신과 같은 클래스에 있었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이나 소소하게 도울 생각이었지만 이대로라면 분명 이쪽 Ⅶ반에서도 얻어내는 꽤 큼지막한 정보가 있을 것이다.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학교나 다닐 생각이었던 린은 조금 마음을 고쳐먹을 필요가 있었다.

“자, 자.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불평은 나중에 듣겠어. 지금 바로 『특별 오리엔티어링』을 시작해야 하니까.”

사라가 웃으면서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더니 벽 위에 손을 얹었다. 그 손끝에는 손바닥 크기만 한 패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설마, 하는 사이 사라는 망설임 없이 패널 위의 버튼을 꾹 눌렀다.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발밑이 붕 뜨는 것처럼 가벼워지더니 이내 바닥이 아래로 향해 열렸다. 갑자기 생긴 가파른 비탈길에 학생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당황하며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린은 사라가 버튼을 누르는 것과 동시에 재빠르게 자세를 취한 덕분에 여느 학생들처럼 갑작스레 미끄러지진 않았지만 너무 빈틈없는 모습을 보이면 의심을 살 것이 분명했기에 미끄러지는 듯한 연기를 취했다. 때마침 바로 근처에서 역에서 보았던 금발의 여학생이 대책 없이 미끄러지는 것이 보이기에 ‘다정하고 친절한 학생’ 연기를 위해 린은 크게 도약을 디뎌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등과 다리 밑에 손을 넣어 안아 들고는 차분히 아래로 떨어졌다.

단 한 명, 은발의 여학생을 제외하곤 모든 학생들이 아니나 다를까 갑작스런 상황에 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그렇게 높은 높이는 아니었던지라 다들 큰 부상은 없는 채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린 역시 안고 있던 여학생을 바닥에 내려주며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무, 무슨─”

“……?”

옷을 털어낸 린은 여학생의 반응을 살폈다. 터질 것 같이 달아오른 얼굴에는 당혹스러움과 수치심이 가득했다. 아, 그럴 만도 한가. 계산적으로 움직였다고는 하나 아무래도 면역력 없는 여학생들에겐 다소 조금 과한 ‘행동’이었을 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도 인정한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이러다 뺨이라도 치겠다 싶었다. 피하는 것 즈음이야 어렵진 않았으나 슬쩍 주변을 눈짓으로 훑어본 결과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두 사람을 향해 쏠려 있었다. 지금 여기서 뺨 한 쪽을 내어준다면 도와주고도 얻어맞은 불쌍한 남학생 칭호 정도는 하나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아 린은 얌전히 있기로 했다.

그리고 찰싹. 생각보다 매서운 손뼉이 린의 왼쪽 뺨으로 날아왔다.

“아하하, 그 뭐랄까……. 재난이었네. 괜찮아, 린?”

“응. 조금 운수가 사나운 모양인가 봐.”

그녀는 린을 무슨 치한이라도 대하듯 이미 저 멀찌감치 떨어져 등을 돌리고 있었다. 측은하게 여긴 엘리엇이 다가와 말을 걸어주는 걸 보면 린의 예상대로였다. 다른 학생들도 내색은 하지 않지만 분명 그렇게 여기는 사람 한 둘 즈음은 있을 것이다.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다.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용 도력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었다. 소리가 하나가 아닌 것이 린의 것뿐만이 아니라 아홉 명 전원의 휴대용 도력기가 울리고 있었다. 입학 안내서와 함께 보내져 왔던 그 휴대용 도력기였다. 겉에는 붉은색 배경에 금장으로 토르즈의 문양이 그려진 것으로 당연히 아홉 명이 모두 같은 디자인의 도력기를 가지고 있었다. 커버를 여니 안에선 사라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일반적인 휴대용 도력기와 다르게 통신 기능이 내장된 모양이었다. 정식 명칭은 제5세대 전술 오브먼트 《ARCUS》. 이것이 소문으로만 듣던 앱스타인 재단과 라인폴트사가 공동으로 개발했다던 그 차세대 전술 오브먼트인 듯했다.

《ARCUS》와 입학식 전 맡겨 두었던 무구들을 되찾고 나니 시작된 특별 오리엔티어링 내용은 구교사라고 불리는 옛 건물의 지하를 탐색하는 일이었다. 아홉 명이 사이좋게 하하호호 손잡고 나간다는 생각은커녕 그럴 마음도 없었던 린이라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시작부터 마키아스와 유시스가 귀족과 평민 운운하며 신경질을 내며 따로따로 가버린 것과 여학생들이 따로 무리를 지어 가버린 것은 아무래도 역시 조금 피곤했다. 단순히 인원과 협력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진창 시작되어 버린 귀족과 평민의 기싸움, 그리고 생각보다 금발 여학생의 반응이 린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었다.

다행히 남은 멤버는 그나마 마음이 편한 엘리엇과 처음 보는 외국인으로 노르드 고원 출신이라는 가이우스였다. 가이우스도 엘리엇과 마찬가지로 주위에 잘 적응하는 모난 곳이 없는 성격이었던 지라 현재로썬 린에겐 이 조합이 그나마 베스트 멤버였다. 린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만들어 내며 검집에서 태도를 뽑아 들었다. 좋든 싫든 꽤 성가신 하루가 계속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

 

 

 

생각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 정신없던 『특별 오리엔티어링』으로부터도 벌써 2주 남짓이었다. Ⅶ반 학생들과 통성명을 하고 개개인의 전략을 파악한 뒤 마지막에는 뜬금없이 나타난 석상 가고일과 싸워야만 했다. 그건 린에게도 있어 처음 맞닥뜨리는 것의 류였다. 누군가는 고대 암흑시대의 산물이라 그랬다. 아무렴 어떤들 마주친 이상 쓰러뜨려야 했음은 변함없었다. 처음 상대하는 것이라 조금 애먹기는 했다마는 아주 혼자서 못 쓰러뜨릴 만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현재 린은 Ⅶ반의 멤버로써 그 자리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은 주변의 눈치를 보기로 했다. 알리사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린은 오는 도중 마주쳤던 다른 사람들의 전력을 분석하여 가장 확실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을 법한 인물에게 마무리를 맡겼다.

라우라가 가고일의 머리를 베는 것으로 오리엔티어링이 끝났을 때 린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예상에서 벗어난 광경을 목격했다. 취지야 어떻든 간에 가장 합이 맞지 않을 귀족과 평민 두 사람을 모아둔 특과 클래스가 그렇게 쉽게 결성될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의외로 아홉 명 전원 참가라는 형태로 이뤄지게 된 것이었다. 단편적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었던 린은 언젠가 그가 얘기했던 것을 떠올렸다.

‘린. 관계란 복잡하면서도 의외로 단순해서 최악일 거라 생각했던 것이 의외의 시너지를 만들기도 해. 인간관계든 인과관계든 무엇이든.’

그게 그런 얘기였나. 린은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해 그렇게 납득했다. 그렇게 한두 명씩 Ⅶ반에 참가 의사를 밝히더니 어느덧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린이 되어 버렸다. 사라와 다른 학생들의 시선이 린을 향했다. 너는 어떻게 할래? 그렇게 묻는 사라의 질문에 린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가고일의 머리를 라우라가 베었을 때, 사실 린은 자신 나름대로 개개인의 전력을 분석하고 가장 합리적일 것이라는 라우라에게 마무리를 맡겼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아마 본인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모두 느꼈을 터다. 마지막에 모두를 감싸 안은 푸른 빛. 그 순간은 모두의 움직임이 보일 듯이 예상이 가능했다. 사라가 말한 전술 링크가 이런 것이었나 보다. 말이나 사인이 없어도 서로의 연계가 가능한 차세대 전술. 제대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확실히 앞으로의 전장에 있어 전략은 기존과 달라질 것이 분명했다. 그야말로 말 그대로 전장의 ‘혁명’이었다. 린이 그 《ARCUS》에 적합자인 건 의외의 발견이었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이건 분명 ‘전선’에 있어서도 좋은 전략이 될 것이다. 린이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네, 참가하겠습니다.’

사라가 예상했다는 듯 싱긋 웃었다. 생각보다 일이 수월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린이 《ARCUS》의 적임자이고 아직 시험 단계인 차세대 전술 링크를 쓸 수 있다는 것은 토르즈에 들어온 것들 중 생각보다 큰 수확이었다.

그리고 현재, 입학식이 끝나고 신학기가 시작된 지 2주 남짓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린은 만나야 할 사람을 못 만나고 있었다. 《ARCUS》에 대한 정보든 뭐든 간에 만나야 어떻게든 할 것이 아닌가. 신입생이 학생들에게 선배에 대해 묻고 다니는 것조차 의심을 받을까봐 섣불리 움직일 수 없어 어떻게든 우연이 따라주길 기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토요일, 모든 수업이 끝났음에도 린이 아직도 학교를 돌아다니는 것도 전부 그 때문이었다. 뭐, 사라의 심부름을 하는 것은 그 일환에서 겸사겸사였다.

분명 학생회에서 무언가를 받아 달라는 것 같았는데. 린은 학생회관 앞에 서서 건물 올려다보았다. 학교에 대한 전반적인 구조와 위치에 대해서는 진즉 익혀 두었지만 정작 린은 2주가 되어 가면서도 학생회관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학생 생활을 충실히 즐기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에 다른 학생들과 달리 부활동에 들지도 않았다. 수업 일정에 맞춰 학교와 기숙사를 오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여, 후배.”

학생회관 앞에서 서있던 린의 이름을 누군가가 불렀다. 잊을 리 없는 목소리. 린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린이 그토록 만나고 싶어 하던 인물이 있었다. 크로우, 린이 그 이름을 중얼거리듯 읊조렸다. 막상 만나면 반가워서 달려들 줄도 알았는데 생각만큼 몸이 움직여 주질 않았다.

멍하니 서서 자신을 쳐다보는 린을 보며 크로우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의외의 구석에서 그 맹한 부분은 여전해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크로우는 주변을 슬쩍 둘러보고는 여전히 멈춰 있는 린의 손목을 잡고 학생회관 뒤쪽으로 데리고 갔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부활동이나 하교를 마쳐 교내는 한적했지만 그럼에도 혹시 모를 목격자는 줄여두고 싶었다. 해가 서쪽으로 늘어지는 탓에 학생회관 뒤쪽은 대부분이 그림자가 져 밖에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은밀한 장소가 되어 주었다. 크로우는 그제야 다시 한 번 린을 쳐다보았다.

“린.”

이름이 불리자 마법이 풀린 것처럼 린이 단번에 크로우를 와락 안았다. 마주 닿은 품에서 느껴지는 심장 소리가 콩닥콩닥 요란스러웠다. 긴장이라도 했는지 몰아 내쉬는 숨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이유가 짐작이 가지 않는 건 아니라 크로우는 가만히 린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린의 숨 이 다시 진정될 때까지 보채지도 않고 그저 놀라 콩닥거리는 작은 등을 천천히 쓸어주며 기다렸다.

덕분에 린이 진정하고 상황을 받아들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린은 그제야 반 발자국 정도 떨어져서 크로우와 마주 섰다. 크로우는 얼굴에 조금 장난기가 가득 들어찬 것 정도를 제외하면 린이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과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았었다. 무사히 잘 지낸 것 같아 다행이라 린은 표정을 풀고 미소 지었다. 여태까지 날이 서있던 인상이 단번에 배시시 풀어지는 순간이었다.

“오랜만이네, 그동안 잘 지냈어?”

“크로우야말로 잘 지낸 것 같아 다행이야.”

“나도 뭐. 못 지낼 건 없었지.”

마지막으로 본 지 1년이나 좀 되었을까. 그동안 가족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전선’에서 함께 지내왔던 세월이 길었지만 근래 보지 못했던 1년의 세월이 느끼기엔 더 길었다. 적어도 크로우에겐 그랬다. 1년이라고 해봤자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을 텐데 오랜만에 만난 린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애들은 금방 큰다는 세간의 말들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그래봤자 나이 차이는 그렇게 많이 나지 않을 테지만 어린 건 어린 거였다. 거의 업어 키운 제 동생이나 다름없는 녀석이라 그런지 유독 전선 사람들 중에서도 린은 더욱 특별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크로우는 린을 이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입학식 당일 구교사로 들어가는 Ⅶ반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린을 보고도 믿지 못했던 것은 전부 그 때문이었다. 크로우가 이곳에 오게 된 근본적인 계기를 떠올리면 린은 굳이 토르즈에 오지 않았으면 싶었다.

“솔직히 말해서 네가 토르즈엔 올 줄 몰랐어.”

“아… 클로틸드 씨가 내가 가는 게 가장 나을 거라고 그랬어.”

“비타가?”

비타, 크로우와도 오랜 연이 있는 그 푸른 마녀가 그렇게 말했다면 분명 순수한 의도는 아님이 분명했다. 그녀도 크로우와 마찬가지로 오랜 커다란 계획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그런 비타가 내린 결정이라면 분명 린이 토르즈에 오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크로우는 몇 년 전 올디스의 푸른 바다를 떠올렸다. 설마 하는 생각이 싸늘하게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사실… 내가 오고 싶었던 것도 있었어.”

물끄러미 이쪽을 쳐다보는 린을 보면 역시 이렇게라도 만나서 좋다고 생각하게 되고야 만다. 크로우의 복잡한 심정을 눈치라도 챈 건지 조심스레 말을 꺼내는 그 모습조차 말도 안 되게 사랑스러워서 크로우는 일단 1년 만의 재회에 집중하기로 했다.

“요 놈 봐라~ 언제 이렇게 커가지고?”

제 눈치를 살피느라 예민해진 린의 목덜미를 크로우는 팔로 와락 휘어 감고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으앗, 하는 얼빠진 소리로 린이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하지 말라면서 투정을 부리지만 빠져나갈 힘이 충분히 있음에도 린은 잠자코 크로우의 손길을 받아냈다. 크로우 역시 그런 린의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라 그저 기회를 틈타 마구마구 머리를 쓰다듬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시간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라고, 하염없이 쓰다듬는 것이 어색해질 즈음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흐트러진 머리를 가다듬는 린을 보며 크로우가 손을 보태 도와주었다. 살짝 상기된 뺨으로 웃는 린의 얼굴에는 여태 날카로웠던 인상은 사라지고 이젠 완벽하게 그 나이다운 앳된 티가 가득한 소년의 얼굴만이 남아 있었다.

“크로우를 보면 말하고 싶었던 것이 있어.”

“으응? 뭔데?”

조금 많이 헝클어뜨렸나, 머릿결을 제대로 되돌리는 것이 은근 시간을 잡아먹는다. 그러나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린이 크로우의 손을 잡고 끌어 내렸다. 자연스레 크로우의 시선이 린의 손으로, 그리고 결국엔 그 시선에 닿았다. 투명한 아메지스트의 빛을 머금은 눈동자가 올곧게 크로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크로우를 돕기 위해 토르즈에 왔어.”

“…….”

“네가 짊어진 짐을 내가 나누어 들 수 있게 해 줘.”

다른 이가 들었다면 로맨틱했을 법한 말이었다. 물론 크로우 역시 그 말에 동요는 했다. 무슨 맥락으로 린이 그런 말을 하는 지 못 알아듣지는 않았다. 

모를 리가 없기에.

“나도 《제국해방전선》의 일원이니까.”

마지막 말은 못 들은 척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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