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렛스테

만성의 전야

할로윈 연성 (현대 판타지 요소 O)

보관함 by 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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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걷은 기억이 없는 커튼은 이미 활짝 열려 있다. 창문을 통과하는 햇빛이 침대 위까지 늘어진다.

방 밖에서는 가벼운 흥얼거림과 함께 규칙적으로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난다. 잠깐…… 인기척? 그럴 리가 없는데, 생각하며 스칼렛은 대충 이부자리를 걷어차고 방문을 덜컥 열어젖힌다.

"일어났어? 오늘 날도 좋던데. 산책이나 갈까?"

왜 그래, 귀신이라도 본 것 마냥.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 서 있다가,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면 그의 앞에는 여상한 태도로 소파에 걸터앉은 정인이 있다. 여상한… 너무도 평범한, 스칼렛 파이어의 일상. 

어, 어… 그렇지. 산책, 좋아. 위화감은 빠르게 지워진다. 이상할 것도 없는데, 쓸데없이 예민해졌나 보지. 여즉 부스스한 머리칼을 몇 번 털며 그는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을 멍하니 쳐다본다. 평화로운 낯. 아침이면 졸음 외에는 오갈 것이 없는. 수도꼭지의 물을 잠글 생각도 못 하고 한참이고 정신을 빼놓고 있자면 순간 잔뜩 일그러진 환상이 스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느낌이 썩 긍정적이지도 않아 거울을 몇 번 문지르고 다시 들여다보면 또 얼핏 일렁이던 것은 온데간데없다.

가을 햇볕은 따사롭다. 환한 광채에 빛나는 머리칼도, 예쁘게 웃는 눈동자도, 그 속에 비치는 제 모습도. 바람이 한 차례 훑고 지나가면 습기를 잃어가는 잎들이 하나둘 땅으로 낙하한다. 완연한 가을이요, 또 사랑하는 계절이다. 그는 딱히 목적지는 정해두지 않은 채로 걸었다. 곁에 함께하는 이에게 온 신경을 기울이며.

“겨울도 곧이겠어. 가을이 지나가면 꽤 아쉬울 텐데…”

“겨울도 나쁘진 않아. 우리 예전엔 눈 속에서…….”

말을 끝맺지 못하고 생각에 잠긴다. 옛 겨울 어느 즈음에, 뒤로는 선뜩한 심정에 다음 단어를 고르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때… 

“겨울에?”

되묻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응, 그냥 좋았다고. 도통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왜 이렇게 문득 떠오르는 감정들이 있는지, 이 철렁한 기분은 뭔지. 깊게 캐묻기보단 덮고 넘어가야 한다는 본능은 어째서인지.

10월 말의 가을은 해가 길지 않다. 봐두었던 예쁜 카페에 들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담소를 나누다 보면 노을빛이 옷자락에 물든다. 오른손에 붙든 부드러운 촉감이 기분 좋다. 어쩐지 아주 오랜만인 것도 같은 느낌이면서도. 

불빛 깜빡이듯 시간이 흐른다. 자정이 넘도록 잠이 오지 않아, 그는 테라스로 나가 달빛을 등지고 앉는다. 마주보고 앉은 이의 백발이 은은하게 반짝인다. 시간의 흐름도 잊고 그리 침묵을 보낸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밤이 다 지나갈 동안 그들은 내내 아무 말이 없다. 침묵을 깬 것은 그가 아니다.

"이제 가야 되지?"

그게 무슨 말일까. 실은 알고 있지만. 하루종일 스칼렛을 따라다니던 숨막히는 기분은 스칼렛의 바람에 의해 미뤄지고, 또 치워졌다. 실은 마음이 경고하는 현실이었음에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 꿈에서 길을 잃은 셈치고, 이렇게 영영…

“스칼렛.”

네 눈동자엔 내가 비치지 않지. 거울을 봐도 마찬가지일 거야. 너는 이미 깨달았고, 네 깨달음은 내게도 전해져. 허락될 리 없는 하루를 가졌으니 돌아갈 시간이 다 됐잖아? 악몽을 반기지 말도록 해.

공연히 허상에게 널 바치지도 말고.

스칼렛, 아침이야.

당신의 표정을 볼 수 없다. 속삭이던 목소리는 여느 바람이 그러하듯 공기 중으로 떠내려간다. 다급히 품에 끌어안은 온기가 천천히 사라지는 동안 주변 풍경이 거울 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진다. 손등에는 눈물 방울만이 남아 있다. 울고 있었나. 톡, 토독, 하는 소리가 들리면 깨닫는다. 나도 울고 있구나.

[던전, 만성의 전야가 클리어되었습니다.]

[공략자: 스칼렛 파이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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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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