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착헌

[창호기려] 동거물

이세계 착각 헌터

발췌용 by 엉덩잉
41
1
0

1부만 봤습니다.

1

강창호와 동거를 시작했다.

"이건 어디에다 둘까요?"

"대충 둬."

"이럴 거면 그냥 창고에서 사시지."

"방금 뭐라고 했어?"

"아무 말 안 했으니까 하던 거 마저 하세요."

따로 집을 구하자니 김기려가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보였다. 몇 년을 지구에서 보내며 인간들 사이에 잘 적응한 외계인이지만, 법적 지식에 관해서는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선우연이 없었다면 이미 지명수배가 되어 쫓기는 신세가 되었을 정도가 아닐까. 그렇기에 김기려는 강창호의 집에 들어가 산다는, 조금 더 쉬운 선택지를 골랐다. 이것만으로도 한 달을 가까이 고통 받아서 손에 들린 서류들을 당장이라도 강창호의 얼굴에 던져버린다는 상상을 자주 하곤 했지만··· 아무튼 결과는 좋게 끝났다. 계약도 좋게 끝났고.

보다시피 이제 짐만 정리하면 되는 상황. 김기려는 화려한 무기들을 잔뜩 소유하고 있는 다른 S급들에 비해 온갖 살림을 합쳐도 박스 두 개가 전부였다. 물론 꾹꾹 눌러 담은 덕도 있었다. 짐들은 대부분이 서에스더가 사준 옷들 뿐이었다. 그 외에도 칫솔, 접시, 컵, 냄비 등의 생필품들과 신성나무 묘목 같은 대마법사님의 위대한 마도구들.

'짐은 적은 게 좋지.'

강창호의 집은 방이 많고 넓어서 대마법사님의 연구실을 따로 마련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거대한 수영장이 있다! -매우 중요하니 별표 세 개.- 조금 들떠버려서 튜브를 종류별로 다섯 개나 사버리기도 했지만··· 어차피 강창호의 돈이었으니 알바는 아니지. 창 너머로 보이는 꽉 찬 청량한 물들이 없었다면 동거 제안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텐데.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큰 오점이 있었다.

"왜 침대가 있는 방이 하나밖에 없죠?"

설마 같이 자기라도 하자는 건 아니겠지?

현재 시각은 5시 58분. 따사로운 햇살이 큰 통창을 향해 들어와 집안을 가득 채웠다. 소파에 나른하게 앉아 패드를 훑어보는 강창호도 그 햇살을 맞으며 보랏빛 머리를 더욱 밝게 빛냈다. 박스를 들고 있는 김기려의 시점으로 말하자면, 마치 한 뮤지컬 배우가 노래를 부를 때가 됐다는 듯 비춰주는 조명 같았달까. 감상과 함께 오는 잠시간의 정적. 강창호는 웃음조차 짓지 않고 김기려를 올려다봤다.

"우리 사귀는 사이야."

그리고 또 정적. 김기려는 끝내 답을 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강창호는 보기 드물게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 저벅저벅저벅저벅. 슥슥··· 슬리퍼 끄는 소리가 고요한 집안에 울려 퍼졌다.

"김기려."

김기려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집안의 어색한 기류 또한 더욱 짙어졌다.

"김기려, 우리 대화 좀 하지. 멈추라니까? 지금 어디가? 우리가 보통의 연인들보다 스킨십을 자주 안 하고 다닌 데다가 만나는 빈도수도 적어서 사귀는걸 까먹었다는 되지도 않는 개소리를 지껄이지는 않겠지? 김기려?"

여전히 김기려의 입은 열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패드를 내려놓고 일어난 강창호에게 팔목이 잡혀 방으로 끌려들어 가기 전까지 침묵을 유지했다.

"납치 2탄도 아니고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우리가 연인 관계라는 걸 알려줄 필요가 있어 보여서 말이야. 짐 정리는 내일 해도 괜찮지?"

달칵.

내일 아침까지 열리지 않을 방문의 굳게 잠겼다. 그렇게 평화로운 둘의 동거가 시작됐다.

"아니 옷 안에 손 넣지 마시라고요!“

아주 평화로웠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BL
추가태그
#동거물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