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착헌

[창호기려] 동거물 2

이세계 착각 헌터

발췌용 by 엉덩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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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만 봤습니다.

수위가 아주 쬠? 있는데 사람에 따라 높다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2

"김기려, 나와서 짜장면 먹어."

얼마 지나지 않아 활짝 열린 문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시체 같은 몰골. 퀭한 눈 밑. 비틀거리는 걸음걸이. 아직 지워지지 않은 목 주변의 잇자국이라던가. 붉게 물든 쇄골이라던가··· 뻔히 보이는 지난밤의 흔적들이 퍽 인상적이었다.

김기려는 오후 1시가 되어서야 겨우 눈을 떴다. 후유증이 심했는지 화장실로 걸어가기는커녕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강창호는 갓 태어난 새끼 기린처럼 바들바들 다리를 떠는 모습이 조금, 아주 조금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직접 물까지 받아와 세수까지 시켜준 게 겨우 1시간 전. 그때와 딱히 달라진 건 없어 보이지만 말이다.

"제 생각에 강창호 씨는 사람이 아닌 게 틀림없습니다. 사람이라면 7살 연하에게 이딴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어요. 가끔 생각하지만, 혹시 도덕성이 결여되어 있으신가요?"

"자꾸 기어오른다? 헛소리가 많은 것 보니 살만해 보이니까 도움은 필요 없겠네. 면 불기 전에 얼른 먹어."

"저는 처음이었다고요."

그래, 처음.

"처음이라고요!"

"알겠으니까 얼굴 좀 보여줘. 처음이래서 상냥하게 대해주고 있잖아."

항의하고 싶었으나 몇 번이고 입이 틀어막혔다. 처음은 강창호의 입이었으나 다음은 그의 손이었고 그다음은...... 다른 어떤 것이었다. 더러워서 말하기도 싫다. 어차피 입 밖으로 단어를 내뱉을 기력조차 남지도 않았는데, 강창호는 자꾸만 입 안에 무언가를 쑤셔 넣곤 했다.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창문과 방문이 전부 굳게 닫힌 방안에는 김기려의 심기를 거슬리게 만드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가령 미소를 걸친 강창호의 얼굴이라던가. 흥분하여 확장된 강창호의 동공이라던가. 분명 신체 강화 능력을 가진 각성자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침대가 끼익끼익, 자꾸만 불길한 소리를 낸다거나.

'짜증 나. 허리도 아프고 목도 아파. 인간들은 왜 이렇게 비효율적인 방법을 쓰는 걸까?'

김기려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얌전히 당하기만 하려니 영 성에 차지 않아서. 그래서 김기려는 반항의 일종으로 강창호의 손을 강하게 깨물었다.

"아야."

하지만 강창호 이 미친새끼는 이것마저도 좋아했다. 할퀴고, 발로 차고, 뜯고, 때리고. 할 수 있는 모든 반항을 해봐도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능력을 썼다가는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 자제했다.- 김기려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반항은 오로지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것뿐이었다. 이것도 마지막에 가서는 강제적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었지만.

강창호는 어제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아아, 그렇지. 네 처음을 가져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김기려는 답하지 않고 짜장면을 비볐다. 짜장면 한입. 단무지도 한입. 군만두는 두입. 끊임없이 입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강창호도 이내 짜장면을 비볐다. 후루룩, 후루룩. 죽은 눈으로 조용히 면발을 입에 욱여넣던 김기려가 문득 입을 열었다.

"짜장면 관련된 괴담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예. 짜장면에 인육을 넣으면 환상의 맛이 난다는 괴담이 있었다던데요."

"그니까 왜 하필 지금."

"옛날에 꽤 유명했던 모양이에요. 얼마나 유명했는지, 실제로 1999년에 이 소재로 신장개업이라는 영화까지 만들었더랍니다. 짜장면 안에서 사람 손가락이 나온다거나, 지하실에서 사람 머리 다섯개가 나온다거나. 저도 그 영화 유X브에서 리뷰로 봤거든요."

"그걸 왜 지금 말하지?"

"짜장면 맛있다고요."

"···"

"···"

"그거 혹시 나 엿먹이려고 한 농담인가?"

"···네, 왜요?"

"·········아니. 마저 먹고 치우자."

"네."

후루룩.

다행이도 짜장면에서 손가락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3

띠로로롱! 띠로로롱! 아침 8시를 알리는 알람이 힘차게 울렸다. 평소와 같았다면 느긋하게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든든한 밥과 가벼운 모닝커피 한 잔, 양치와 샤워 그리고 트레이닝까지. 규칙적이고 따분한 하루를 보냈을 강창호의 일상에 조금 달라진 점이 생겼다. 그건 바로···

더듬··· 더듬더듬········· 응?

'이거 어디 갔어?'

강창호의 일상에서 달라진 점이 사라져버렸다. 분명 옆에서 곤히 자고 있어야 할 노란 대가리가 사라졌단 말이다.

'원래도 잠이 없다는 건 알았지만··· 사흘 내리 안 자길래 지 방에서 끌어내서 겨우 재운 게 새벽 1시인데?'

강창호는 거칠거칠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몸을 일으켰다. 누구 덕분에 잠도 깼고 기분도 망쳤겠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펴보니 멀지 않은 곳에서 무시할 수 없는 빛이 보였다.

첨벙.

불안한 물소리와 함께.

'하아···'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바짝 들어 올렸다. 목덜미를 주무르며 가만히 감정을 진정시켰다. 강창호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김기려와 함께 맞춘 슬리퍼를 신고서 불량한 자세로 천천히 방 밖을 나갔다. 물론 서랍에 쌓여있는 선글라스를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저벅.

첨벙.

저벅저벅.

첨벙첨벙.

박자라도 맞추듯 강창호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물소리가 튀어 올랐다. 음악적 감각이 아주 뛰어나다는 생각과 함께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심기가 거슬릴 때 나오는 강창호의 안 좋은 버릇이었다.

"···"

도넛 튜브, 위에 누울 수 있는 홍학, 유니콘, 피자 등등··· 심지어 오리발은 김기려가 직접 신고 있기까지 했다. 하필 물과 연이 깊은 이 망할 각성자님은 감사하게도 전날 더러웠던 수영장 물을 맑고 깔끔하게 만들어주셨다.

"······아침부터 이게 뭐 하는 짓일까?"

강창호가 왔다는 건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지만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던 김기려가 물속에서 튀어나왔다.

"모닝 수영 모르시나요?"

"내가 지금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지금 아침 8시야."

"강창호 씨가 게으른 한국의 30대 백수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다시 한번 머리를 쓸어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기려가 동거를 시작하니 더욱 기어오르는 게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어디서부터 버릇을 잡아야 하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게다가 김기려는 분명 서에스더가 내다 버렸을 맛조아 나들이 치킨 티셔츠를 입고 도넛 튜브 위에 손을 올린 채 오리발을 휘적이고 있었다. 강창호도 썩 좋아하지 않는 옷이었다. 저걸 어디서 자꾸 구해오는 건지, 머릿속에는 언제 한 번 옷장을 전부 갈아엎어야겠다는 수고스러운 계획까지 세웠다.

강창호는 지금 이 상황 자체가 자신의 심기를 거슬리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거대한 작전 같았다. 물론 악의는 없었을··· 없었나? 아무튼.

김기려는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강창호를 올려다보고 있었지만 볼 위에 약간의 홍조가 올라온 것을 보니 끝내주게 즐기긴 한 것 같았다. 매번 무심해 보였던 제 애인이 드물게 좋아하는 티를 내고 있으니 강창호 자신도 기뻐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잠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김기려에게 일반적인 성애적 감정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 뭐, 저번처럼 욕실에서 얼굴까지 담그고 있다가 발견되는 것보다야 이게 낫겠지."

슬리퍼를 벗어던지고 김기려에게 다가갔다. 주변에 튄 물들이 강창호의 발을 적셨다. 김기려에게 물들기라도 했는지, 일어나자마자 차가운 물에 닿는 감각이 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김헌터께서는 전생에 해파리기라도 했나 봐."

금방이라도 나가기 싫다며 발버둥을 칠 것 같았던 김기려가 그 한마디에 몸을 굳혔다. 강창호는 눈썹을 들썩이며 그런 행동을 의아하게 바라봤으나 그와 별개로 틈을 놓치지 않았다. 거대한 손을 뻗어 김기려의 목을 잡고 그대로 무 뽑듯이 들어 올렸다.

촤악! ···뚝뚝.

강창호와 김기려의 밑으로 물이 뚝뚝 떨어졌다. 강창호의 손에 들려 허공에 덜렁거리는 김기려는 추욱 늘어져서, 꼭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익숙하게 허리를 잡고 어깨에 둘러메서 몸을 돌렸다.

"놀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일단 밥 좀 먹고 하자고."

답은 없었다. 여전히 추욱 늘어진 것이 이번에는 방금 막 널어놓은 빨래같이 보였다. 웬일로 가만히 있나, 하고 생각할 무렵 김기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요."

"또 뭔데?"

"강창호 씨는 제가 정말 해파리일 거라는 의심을 하신 건 아니죠?"

"이번에도 짜장면 같은 농담인가?"

"진담입니다."

"참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네··· 그런 의심을 했을 리가. 김기려 너는 사람이잖아."

김기려가 드드득, 어색하게 고개를 돌리며 강창호를 바라봤다. 천천히 올라가는 입꼬리와 새까만 삼백안을 담은 눈꼬리가 휘어지고, 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이 이마를 타고 주르륵 내려오며 기괴한 웃음을 자아냈다.

"역시 그렇죠?"

강창호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걷는 것도 잊은 채 생각을 멈춘 것 같은 눈으로 멍하니 그 얼굴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김기려가 표정을 풀고 2분이나 지난 후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김기려. 난 정말 좋은 것만 보고 살고 싶으니까 그렇게 웃지 마."

강창호는 그날 저녁 악몽을 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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