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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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씨의 고향은 강원도 산골이다. 요새는 어떠한 음식의 유명으로 죄다 음식점으로 되어버렸으나 그가 자랄 때만 해도 작은 산들 고불고불하게 들어가야 나오던 산골 마을이었다. 그 산들에 묻힌 모양이 둥지 속 알 같아서 얼마나 아늑한 모양이던가를 생각하던 10살의 정 씨는 제 생일이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생일도 딱 좋은 때에 태어나 봉우리를 툭툭 트고 있는 꽃들과 함께 화사한 햇빛 아래서 생일을 축하 받던 부잣집 친구의 모습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 애의 아버지가 오늘은 좋은 날이니 닭을 잡자던가, 자전거를 타고 검은 교복을 입은 그 애의 큰오빠가 막내 공주 케이크 사 왔다 하는 것을 어린 날의 정 씨는 조금 멀어진 채 마음은 덜컥이고 눈시울이 뜨거워 지는 것을 느끼며 그날을 보내었다.

오월 즘 되면 농가는 한참 바쁠 때이다. 밭일도 급하거니와 논에 모도 내야 한다. 어린이들이라고 마냥 노는 것은 아니다. 부모 일을 돕는 것 뿐이 아니라 나중에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하듯 기념일이 많아 어린이날 무엇을 받을 지 생각을 하거나 카네이션 접기를 연습하였다.

그렇다면 정 씨의 생일은 5월 8일,- 어버이날에 진통이 길어 태어나자마자 구박부터 받고 태어난 그에게 생일은 아무것도 아닌 날이었다.

어릴 적에는 산을 오르고 오를 체력이 있었고 서울에 돈을 벌라고 반 강제적으로 상경을 하자 구로공단에서 재봉틀과 피물집 고름, 꼴에 교복을 강제했던 야간학교- 그때 자취를 하던 쪽방은 56동 파출소 근처에 있었는데 그 동네도 언덕 위라 올라가는 길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고 때에는 꽃이 피는 것도 몰랐기에 제 생일도 몰랐다.

그렇게 생일 축하 한 번 받아본 적이 없었고 종교에서도 금하던 것이 파티였다. 그렇다면 아직도 생일 축하하는 그에게 일테면 먼 외국 문화와도 같아서 정 알지 못하겠는 것이었다.

서울 집의 5월은 훅훅 쪄서 벌써 태양 밑으로 나가기 싫다 옆집 사람이 칭얼거리고 또 그걸 다그치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언젠가부터 정 씨도 아침에 일어나면 핸드폰 알림을 보는 버릇이 생기었다. 문자 주르륵 온 것에 무슨 일이라도 휘말리었나 잠이 확 깨어 눈을 크게 뜨니 생일이란다. 

정 씨는 생일을 축하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무 것도 아닌 그저 그런 날이고 스스로 몇 번 챙긴 날에는 오히려 쓸쓸함 맘 더해지었다. 무엇보다 출근을 해야 한다. 누군가의 생일이라고 사람이 더 오는 날은 있어도 덜 오는 날을 없다. 어버이날에 백화점이 붐빌 제 청소부들은 쉴 시간도 없다. 영원에게도 자신의 생일이라고 차마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베이커리도 백화점과 사정이 크게 다를 거 같지가 않았다.

가장 아끼는 신발을 신고 싶었으나 더러워지는 것이 싫어 더러워진 낡은 신발을 신었다. 현관문 앞에 생일 축하해요 라고 영원이 붙여놓은 포스트잇을 보았다. 분명 생일 축하의 의미도 모르고 일단 축하해주는 것이다. 정 씨는 부분이 안쓰러웠고 좋았다. 그 포스트잇을 떼어 주머니에 넣었다. 미소가 지어졌다.

"생일 축하하는 왜 하는 거예요?"

"…생일이니깐."

드라마를 보던 영원이 물었던 기억이 있다. 영원은 생일이라는 것이 특별한 것도 기념하는 것도 이해하지를 못하였다. 아무리 농으로 말을 하고 웃기게 말을 해도 설명이 잘 되지가 않았었고 결국에는 실패였다. 정 씨는 생일 축하하는 그 즐거움을-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행사를 잘 몰랐다. 달콤한 케이크 입에 한 조각 넣은 적 없어서 그렇기에 동경했다. 자신도 어릴 적의 그 친구처럼 사랑받는 집안에서 태어나고 매년 생일을 축하받았다면 설명을 잘 했을까 생각을 하며 막힌 변기를 뚫었다.

생일을 왜 축하하는가, 그건 정 씨도 몰랐다. 모두가 생일을 축하하기에 생일을 축하하고 싶어졌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생일파티는 일테면 사이비에서 했던 것과 비슷한 무의미한 의식한 의식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태어난 날을 축하한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의 인생은 언제나 가시밭길 맨 발로 걷는 것처럼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그런 삶이 시작된 날을 축하하느니 사후에 기일을 축하하는 것이 나으리라.

그런데 그 말을 영원에게도 할 수 있을까?

그의 인생은 정 씨보다도 더욱 고통이었고 현재에도 후유증을 남겨두었다. 그런 삶을 버텨준 것이 고마웠다. 기뻤다. 안 죽고 살아남아 준 것으로도 충분하다. 정 씨에게는 영원의 존재 뿐으로도 하루를 더 사는 힘을 주었다. 혹 모르나 자신도 영원에게 그런 존재일까.

고무장갑을 벗고 하늘색 청소부 복장을 벗었다. 오늘 같은 날 배달도 밀려 있을 테니 미리 치킨 배달을 집에 시켜놓았다. 집에 가는 길, 영원과 길목에서 마주쳤다. 영원의 손에는 정 씨가 저번에 취향에 맞는다고 했던 밀크 크레이프 케이크가 들려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이제야 알 거 같았다. 말할 수 있었다.

"영원아, 생일은 있지-. 아이에게, 사람에게 그동안 힘들었어도 지금까지 버텨줘서 고맙다고, 기쁘다고 해주는 거야. 잘 견뎌 살아온 것을 축하한다고,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하는 것이 생일 파티야."

그는 이제는 완벽히 깨달은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평소와 같이 영혼과 몸이 분리 된 듯한 멍한 표정이 아닌 정말로 기쁜, 지금껏 보여준 적 없는 정말 예쁘게,

"생일 축하해요."

방긋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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