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툭죽 재록본 사 초 이야기

[ㅎㅌㅈ/드라로나] 어느 계절 한낮의 이야기

다기울 외전

로널드가 눈을 떴을 때, 실내는 지나치게 환했으며 공기는 후덥지근했다. 아, 진짜. 로널드가 속으로 탄식했다. 또 중간에 잠들었네. 밤까지 버텨야 하는데. 한숨이라도 쉬고 싶었으나 몸에 덕지덕지 들러붙은 통증이 방해했다. 조심히 손을 더듬거려 휴대폰을 찾았다.

손가락 아래에 그의 안부를 묻는 연락이 빼곡하다. 그가 입원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서 사흘째인 현재에 이르러서는 길드의 동료부터 편의점의 점장까지 모르는 이가 없었다. 원래 다들 상냥한 사람이라 이리 걱정해 주는 거겠지만, 많은 다정을 한꺼번에 받는 입장에서는 가슴이 찡해온다. 이따 몰아서 답장하자. 로널드의 손가락이 화면을 밀었다. 뭔가를 찾는 사람처럼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그 자식. 약하게 올라갔던 입꼬리가 푹 떨어졌다. 못마땅한 듯 눈썹 사이가 좁혀졌다. 그놈은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궁금하지도 않나. 로널드가 칭하는 그 인물은 그저께 대화를 끝으로 감감무소식이다. 딱히 연락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안부도 묻지 않은 채 희희낙락 집을 독차지하고 있을 모습을 생각하면 배알이 꼴렸다.

엉망으로 만들기만 해봐라. 로널드는 퇴원했을 때 집 꼬락서니에 따라 어떻게 드라루크를 다져야 할지 벌써부터 계획을 세웠다. 집안일을 드라루크가 거의 도맡고 있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었다. 슬슬 상처가 땅겨 휴대폰을 내려놓고 천장을 응시했다.

지친다. 로널드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목덜미에 땀이 찼다. 입안은 버석하다. 머리카락은 근질거리며 환자복은 영 거추장스러웠다. 환자식은 자극적인 현대인의 입맛과 동떨어져 있다. 침대에 둘러진 커튼 너머로 이야기 소리가 조곤조곤 들려왔다. 가족 방문인가 보다.

로널드는 그의 형 히요시를 생각했다. 그를 위해 세안 도구, 옷 따위를 챙겨와줬지. 만약 흡혈귀가 병문안이 가능했다면 짐가방을 들고 온 건 그 녀석이었을까. 그래야 한다. 형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으니. 형 오늘 저녁에도 와준다 했지…. 안색만큼은 좋아 보이고 싶다. 어떤 말을 해야 형의 걱정이 덜어질까 생각해둬야겠다.

사실 그렇게 골몰하지 않아도 답은 쉽게 나온다. 그는 괜찮은 편이다. 이만하면 잘 지내고 있다. 흘린 땀은 닦으면 되고 건조한 입은 물을 마시면 해결이다. 못 씻어서 찝찝한 건 그러려니 참아내고 밥은 원래부터 셀러리만 빼면 뭐든 잘 먹는 그였다. 병원 직원, 같은 병실 사람까지도 그에게 친절하다. 이따 길드의 동료도 얼굴을 비출 예정이다.

거기에 다음 로널드 전기 마감이 늦춰진 것도 행운이었다. 후쿠마 씨가 사정을 이해해 줘서 다행이다. 로널드는 후쿠마 씨의 입에서 작가의 건강이 우선이라는 말이 나오자 눈물지을 뻔했다. 혹여나 뇌에 전선이라도 꽂아서 의식만으로 집필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했는데, 과한 기우였다. 너무나도 감동받은 로널드는 그 직후 후쿠마 씨의 ‘로널드의 병상 투혼 편’ 추가 집필 권유를 수락했으며, 그가 건네는 기이한 영양제를 순순히 받기까지 했다(나중에 보니 통 안에서 뭔가가 꿈틀거리길래 차마 먹지는 못했다).

그러니 사실대로 말하면 된다. 힘든 건 하나도 없다고. 자신은 아주 좋은 상태라고. 모든 건 순탄히 굴러간다고. 이게 진실임을 아는데 왜 자꾸 힘든 기분이 들까?

누워있기만 한 몸에 또 수면이 몰려왔다. 로널드는 일부러 몸부림을 쳐 고통으로 잠기운을 쫓아냈다. 존 보고 싶다…. 혼미한 의식에 아쉬운 소리가 튀어나올 뻔했다. 얼른 마른침을 삼켜 군소리를 참아냈다. 그러나 이미 마음이 콩밭으로 갔다. 사랑스러운 존의 미소가 그립다. 보드라운 배털과 반질한 등딱지를 만지고 싶다. 갓 구운 따끈한 쿠키를 몰래 집어서 존과 나눠먹고 싶다. 도둑이 다녀간 걸 알면 그 녀석 표정이 볼만할 텐데.

로널드의 머릿속에서 귀여운 존, 존을 들고 있는 보라색 손이 그려졌다. 손으로부터 존을 빼앗아야지. 존을 데리고 편의점으로 달려갈 거다. 살찌는 과자만 골라 담아 계산한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 집에 가면 녀석이 당장 와 로널드와 존이 고른 간식을 보고 한창 잔소리할 거다. 그럼 로널드는 신경 끄라며 녀석을 죽일 거다. 운 좋으면 그 길로 언쟁이 끝나고, 운 나쁘면 놈이 또 신경 긁는 소릴 해대서 불같이 싸워대겠지. 몰입이 뛰어난 편인 로널드는 벌써부터 화려한 욕지거리를 상상했다. 아, 열받는다.

기름진 얼굴을 소매로 문질렀다. 너는 왜 잘 지내냐, 열받게. 누구는 집에서 한참 떨어진 이 외딴곳에 혼자 있는데. 집에는 뭐든 다 있지. 귀여운 존도 있고 믿음직한 눈빔이도 있고. 말동무가 되어주는 금붕어와 죽음의 게임도. 욕조에는 따뜻한 물이 넘실거리며, 냉장고에는 시원한 음료수와 간식이 있지. 내가 아끼는 잠옷을 입고 익숙한 소파에 앉아 자그만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부엌에서 네가 맛있는 밥을 준비하고 있을 텐데. 집에는 그런 게 있는데 그걸 두고 나는 여기 있네. 이러니 안 힘들겠냐.

로널드는 하염없이 천장을 응시했다. 갈 곳 잃은 속내가 머릿속을 떠돌다 가슴에 응어리졌다. 답답한 공기까지 더해 숨쉬기가 은근히 힘들었다.

너는 사 주 내내 잘 지내겠지. 이런 생각은 하나도 안 하면서. 흥이다. 나도 네 생각 안 해. 여기서 엄청 잘 먹고 잘 살 거다.

방금 닦아낸 눈가에 또 습기가 어렸다. 이놈의 땀은 닦아도 닦아도 흐르네. 로널드는 눈꺼풀을 거칠게 닦았다. 시야를 계속해서 어둠에 두었다. 낮은 너무나 밝아서 혼자 있으면 눈에 띄기 마련이다. 자기 자신마저도. 채 가두지 못한 한숨이 입술 사이로 빠져나갔다. 로널드가 스스로를 다독였다. 넌 문제 없어. 필요한 건 다 있잖아. 너는 정말로 괜찮아.

그래도 말이지, 사실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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