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가리와 한
긴 노래가 이어졌다. 무지개를 불러오기 위한 제의였다. 가리는 긴 천을 들어 허공에 펼쳤다가 거두기를 반복하며 노래를 불렀다. 무지개를 불러오기 위한.
실은 그들이 부르는 것은 비님이었다. 가뭄을 없애줄. 갈증을 사그라뜨릴. 그러나 비님은 폭풍을 불러오고 검은 물로 땅에 자리한 대부분을 쓸어갈 두려운 존재라, 주민들은 무시무시한 괴물로 변할 수 있는 비님보다 무지개를 불렀다. 오소서, 오소서, 흩뿌릴 비님 후에 오실 분이시여. 찬란한 태양과 함께 오실 분이시여. 알곡을 여물고 흐린 강물을 씻어주실 무지개여 오소서. 일곱 빛 색을 두르고 하늘하늘, 하늘하늘, 오시어 우리 위에 머물다 가소서. 무해한, 흔적 없는, 아름다운 존재를 그들은 사랑했다. 자연의 수두룩한 것이 송곳니를 드러내고 인간을 물어뜯으려 하는 와중 무지개는 고요하고 영롱하게 떠 있는 비물질적인 존재였으므로, 그들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리의 제의를 거드는 한이 하늘을 힐끔거렸다.
“영 올 것 같지 않은데.”
“오실 것 같지 않은데, 란다.”
묘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한은 입을 다물었다. 제의 중 가리는 말투도 태도도 성격도 바뀐다. 정말 신이 오시는지, 보이지 않는 다른 영혼이 깃드는지 눈은 이채를 띄고 목소리는 색이 달랐으며 어조는 묘하게 웃전 같았다. 한은 조금 헛기침을 해 목을 틔웠다.
“정말 오시겠습니까? 하늘이 맑습니다.”
“무지개님이 오시려면 해가 필요하지.”
“허나……”
우리가 원하는 것은 비님이지 않아? 라는 말을 한은 삼켰다. 이 자리에서 일단 청하는 것은 무지개였고, 가리에게 깃든 뭔가는 무지개를 원하는 진짜 목적을 구분할지 않을지, 한은 알 수 없었다. 혀뿌리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키고 한이 다시 입을 열기 전에, 가리는 구름처럼 한가롭고 풀잎처럼 하늘거리는 발걸음으로 뛰어나갔다. 오소서, 오소서, 어서 오소서. 일곱 빛깔로 이 땅을 적셔 줄 빛이시여, 구원이시여.
그날 오후 쯤 내리기 시작한 비는 하룻밤 내도록 이어졌다. 다음날 아침 무지개를 본 한이 중얼거렸다.
“무지개님이 오셨네.”
“비님도 아니고 무지개님?”
“네가 존대 붙이라며. 기억 안 나?”
“내가 언제?”
정말 무언가가 들어가 있었나, 하고 한은 가리를 보았다가 이리 와라, 해서 머리카락에 얽힌 구슬 장식을 풀기 시작했다. 얌전히 앞에 앉아 머리를 맡기는 가리의 뒤통수는 동그랬다. 옥과 진주에 얽힌 검은 머리칼을 당기지 않도록 조심스레 풀어가며 한은 생각했다. 제의를 주관하는 이가 혼인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는데, 음, 처음 해 보려 하면 몇 개의 산을 넘어야 할까. 아마 무지개를 찾는 만큼 힘들지 않을까.
하지만 비를 수차례 부르면 무지개도 수차례 생겨날테고, 그 중 하나는 넘을 수 있지 않을까?
오소서, 오소서, 어서 오소서. 복이 날아가고 운이 붙지 않는다 하여 아무도 맡지 않는 보조를 자청해 맡았던, 그래서 다들 이해하지 못했던, 가리조차 어이 없어 하던 행보를 택했던 한은 “다 됐어?”하고 돌아보는 가리에게 “거의 다 됐어.”라고 말하곤, 머리카락을 아주 조금, 가만히 만졌다가 손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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