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진]Raum
* 광인님(oltremare____) 스카진 썰 기반
“경찰입니다! 문 여세요!”
막 12시를 넘긴 시간, 히로미츠는 다급한 목소리로 한 주택의 문을 두드렸다. 밤이 깊고도 남은 시간에 이곳을 찾아온 건 이웃의 신고 때문이었다. 전화가 연결되고 나서도 초조함으로 어쩔 줄 몰라 하던 상대는 이웃이 아이를 학대하는 거 같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횡설수설해하며 며칠 전부터 비명과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가 계속됐는데, 10분 전에는 후드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들어갔다는 말도 덧붙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학대라는 말이 나올 때부터 심각한 표정이었던 히로미츠는 숨 들이켜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들린다는 외침에 전화를 끊지도 않고 달려갔다. 그렇게 마주한 집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거도 모자라 모든 창문이 검은색 커튼으로 막혀 있었다. 누구든 섬뜩하게 여길 모습에 주변을 둘러본 동료들이 눈빛을 주고받는 사이 총을 꺼낸 그는 현관을 걷어찼다.
문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어둠 속으로 들어간 그는 한껏 찌푸린 얼굴로 손전등을 꺼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커튼 때문에 한층 더 어둡게 느껴지는 안은 곳곳에 자리한 촛불로 더욱 섬뜩한 인상을 풍겼다. 어떤 짐승의 입안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거기다 불빛 주변에 널브러진 종이에는 까마귀 머리와 기묘한 문양이 어우러진 그림과 문장이라는 것만 짐작할 수 있는 글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는지 어둠에 익숙해지자 램프처럼 보이는 조형물과 금이 간 녹슨 단검, 이마에 기묘한 문양이 새겨진 동물 머리 박제가 눈에 들어왔다. 박제를 보기 무섭게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겨우 삼킨 그는 길게 심호흡한 뒤 몸을 돌렸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이어 떠오른 의문과 거기서 뻗어 나온 상상에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려던 그는 어떤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매서운 눈으로 어둠을 노려보았다. 다행히 소리는 계속 들려왔고, 그걸 좇아 지하실로 내려가는 문을 발견한 그는 동료들을 돌아본 뒤 소리 죽여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지금까지 들렸던 목소리가 한층 더 선명해졌다. 그걸로 수를 헤아리려고 아까보다 더 귀를 기울인 그는 목소리들이 한 번도 끊어지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마른침을 삼킨 뒤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삐걱거리는 소리 없이 지하에 도착하자 다시 마른침을 삼키며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바닥에 그려진 붉은색 문양이었다. 거리가 있어 색 말고는 알 수 있는 게 없는데도 피로 그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이들과 피투성이가 된 채로 한가운데에 꿇어앉은 아이를 차례로 눈에 담은 그는 허공을 항해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울려 퍼지자 목소리들은 잠잠해졌고, 발소리를 내며 내려온 동료들이 그들을 제압하는 사이 총을 내린 히로미츠는 왔을 때처럼 다급한 표정으로 아이에게 다가갔다. 피투성이인 거도 모자라 눈을 감고 있어 좋지 않은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걸 떨쳐내려고 다급한 손길로 살펴보는 동안 아이는 슬며시 눈을 떠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더는 널 해치지 못할 거야.”
한발 늦게 시선을 눈치챈 그는 입꼬리를 겨우 끌어올린 뒤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어주었다. 그때까지 눈만 깜박이던 아이가 가슴에 머리를 기대자 미묘한 표정으로 몇 번 더 쓰다듬어주고는 함께 지하실을 나왔다.
그 이후로는 모든 게 순조로웠지만, 평화롭지는 않았다. 피투성이였던 아이, 쿠로자와 진은 작은 상처와 근소한 영양 부족을 제외하면 믿을 수 없을 만큼 멀쩡했다. 묻어 있던 피도 동물의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그날 체포됐던 친부모가 아이한테 악마가 빙의되었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선을 넘은 시선이 몰려들었다는 거였다. 거기다 같이 체포된 이들이 교회 출신이라는 것까지 퍼졌지만, 예전에 파문되었고, 과거에도 비슷한 사건으로 체포됐었다는 게 알려지면서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시선이 타오르든 타오르지 않든 히로미츠는 시간이 날 때마다 진을 찾아갔다. 가까운 친척 하나 없어 만나는 사람이라곤 자신과 일주일에 두 번 보는 상담사가 다인데도 병원에서 지내는 내내 우는 소리 하나 내지 않는 게 마음에 걸려서였다.
잘 있었어, 진? 뭘 그렇게 보는 거야? 오늘도 찾아간 히로미츠는 다정한 목소리로 창문 앞의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이렇게 말을 걸어도 답은 열에 서너 번 정도였지만, 말로 하지 않을 뿐 반응은 매번 있었다. 이번에도 대답 대신 창밖을 가리키자 옆으로 다가간 그는 따라 밖을 바라보았다. 언제 온 건지 까마귀 여섯 마리가 나무에서 그들을 보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그 집에서 봤던 그림이 떠올라 움찔한 그는 아닌 척 입을 열었다.
“와, 까마귀가 정말 많네! 진은 까마귀 좋아해?”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전해주거든요.”
고개를 끄덕인 아이가 그렇게 덧붙이자 고개를 숙인 그는 웃음기 어린 얼굴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이는 아이구나, 라는 생각 뒤로 저런 얘기를 할 만큼 외롭다는 거겠지, 라는 생각이 따라와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까마귀 떼한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진은 느리게 눈을 깜박였고, 그에 맞춰 울음소리를 낸 그들은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생각보다 큰 날갯짓 소리에 손을 멈춘 그는 아이와 창밖을 번갈아 본 뒤 어색하게 웃었다.
“음, 쟤들은 이제 집에 아니, 어, 아, 밥 먹으러 갈 시간인가 봐. 내일 또 올지도 모르니까, 너무 아쉬워하지는…….”
“괜찮아요. 내일은 더 많이 오거든요.”
“그래? 아까도 많았는데, 얼마나 오려나~”
생각과 달리 평온한 모습에 웃음기 어린 얼굴로 맞장구쳐주던 그는 간호사가 들어오자 손을 흔들어준 뒤 병실을 나왔다. 오늘도 까마귀 보고 있었니? 전에는 한 마리도 없었는데, 요즘 많이 오네. 그것도 잠시, 간호사가 꺼낸 말에 아까처럼 움찔하더니 생각에 잠긴 얼굴로 복도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날을 기점으로 히로미츠는 진을 만나러 갈 때마다 까마귀가 있던 나무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우연일 거라는 기대와 달리 올 때마다 조금씩 늘어나던 까마귀는 2주쯤 되자 병원 밖을 날아다녔다. 볼 때마다 병원에 있던 녀석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그 녀석이라는 건 저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그래도 계속 찾아가던 와중 평소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그는 창문 앞에 선 아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는 걸 발견했다. 처음으로 본 미소였다. 그걸 보고 있자 몸 어딘가에 쌓여 있던 꺼림칙함이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이어 멋쩍음이 그 자리를 채워 헛기침한 그는 전처럼 미소 띤 얼굴로 다가갔다.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네?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었어?”
“아까 형사님이 누구 쫓아가다가 넘어진 얘기 하고 있었어요. 얼마 못 가고 넘어진 게 엄청 웃겼대요.”
말을 걸자 입꼬리가 올라간 채로 돌아본 진은 한층 더 밝게 웃으며 답했다. 그 모습을 상상했는지 키득거리기까지 했지만, 히로미츠는 웃지 못했다. 정말로 방금 있었던 일이었으니까. 지금까지 병원을 나온 적이 없는 아이가 얘기하지도 않은 두 시간 전의 일을 알 수는 없었다. 거기 있던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는 이상.
거기까지 생각한 히로미츠는 돌아가려는 눈동자를 억지로 굴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주변의 모든 나뭇가지에 자리 잡은 까마귀 떼가 저를 보고 있었다. 우연으로 볼 수 없는 시선들에 지금까지보다 더한 섬뜩함이 몸을 덮쳤다. 왜 그러세요, 형사님? 그 차가움에 잠겨 있던 그는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넋 나간 얼굴로 눈앞의 아이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웃고 있는 아이의 눈에는 뭐가 잘못됐냐는 기색이 어려 있었다. 섬뜩함 그 자체라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친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
“어, 그게, 아! 오늘은 오후에도 일이 있는데, 너한테 얘기하는 걸 잊었더라고. 그래서 그, 다시 가봐야 할 거 같은데…….”
“괜찮아요. 내일 또 올 거잖아요.”
“...그, 그래, 그럴게. 그럼, 내일 보자.”
다시금 서늘함이 느껴졌지만, 필사적으로 웃어 보인 그는 병실을 빠져나온 뒤 빠른 걸음으로, 달음박질로 도망쳤다. 이어 병원도 빠져나오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수십 개의 시선이 느껴져 돌아가려는 고개를 억지로 돌린 그는 양 주먹을 쥔 채 발을 옮겼다. 그때까지 눈을 떼지 않은 진은 그가 더는 보이지 않자 까마귀 떼를 보며 눈을 깜박였다. 그 눈짓에 까마귀 떼는 전처럼 날아올랐고, 자리를 떠나지 않은 아이는 제 머리를 느리게 쓸어내리며 웃었다. 여느 아이와 다를 것 없는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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