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glyhood

2월의 폭설

어글리후드 데우티나 Non-CP 현대AU

2020.05.02 포스타입 연성 재업


메말랐던 12월, 1월을 지나 갑작스레 눈이 내리기 시작한 2월의 어느 날. 굵은 눈송이가 방울방울 떨어져 바닥에 쌓이기 시작했다. 교실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한 것은 덤. 눈 만난 강아지처럼 뛰쳐나가 한 손 가득 눈덩이를 가지고 오는 아이, 하늘에서 예쁜 쓰레기가 내린다며 소리를 지르는 아이, 무작정 감탄만 뱉으며 교복 안주머니에 몰래 숨겨두었던 핸드폰을 켜 사진을 찍는 아이, 그리고 조용히 하라며 교실을 정돈하는 모범생 두어 명. 티나는 짧은 상담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교무실에 발을 들이기 전까진 분명 하늘이 흐릴 뿐이었는데, 상담을 마치고 복도로 나오니 창밖이 온통 하얬다. 입술 사이에서 짤막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티나는 상담 기록을 적은 공책을 한 팔에 끼고 걸으며 한참 동안 창밖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예비 고등학교 3학년들은 이런 사소한 해프닝에 관심이 잔뜩 쏠려 있었다. 티나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삼삼오오 창문에 붙어 눈을 구경하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담임 선생님이 불러오라고 하셨던 애를 찾아야 했다. 한 손으로 문을 짚고 선 티나가 공책에 적힌 이름을 훑곤 교실을 한 번 둘러보았다.

 

“여기, 데우스? 데우스 에피로네가 누꼬?”

 

교실 안에 티나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순간 교실이 고요해졌다. 그때 그의 물음에 반응한 건 문턱 한 켠에 걸터앉아 낄낄거리던 한 무리였다. 야, 데우스. 너 부른다. 데우스라 불린 아이는 티나 쪽을 흘끔 바라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썹 위 작은 흉터, 짧게 자른 머리, 진한 이목구비 덕에 세 보이는 인상. 몇 칸 풀어진 단추에, 걷은 팔 사이로 보이는 흉터……. 불량 학생도 아니고.

 

“니가 데우스가? 상담 니 차례다. 얼른 가 봐라.”

 

데우스가 티나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어디 가서 키 작단 소린 들어본 적 없던 티나에게도 압도적인 덩치였다. 티나는 그가 문 쪽으로 다가오자 한 걸음 옆으로 피했다.

아가 나보다 키가 크네. 참말로 크다.

멀어지는 데우스의 뒷모습을 보며 조그맣게 중얼거린 티나는 곧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여전히 창밖에서는 눈이 소복소복 쌓여가고 있었다.

 

 

 

 

 

 

 

눈에 큰 관심을 보이기도 잠시, 곧 아이들은 제 자리를 찾아갔다. 아이들은 서너 명씩 뭉쳐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거나, 귀마개를 귀에 꽂고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거북이 마냥 느리게 흐르는 시간이 지루해진 티나는 문제집 위에 풀썩 엎어졌다. 종례는 12시 40분이라고 했는데, 아직도 겨우 12시. 특이하게도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이 되는 겨울방학에 전학을 오는 바람에 서러움을 나눌 친구도 없었다. 책상에 볼을 딱 붙인 채 핸드폰을 꺼내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려다 다시 손을 갈무리한다. 핸드폰은 힘없이 퉁 소리를 내며 책상 위에 엎어졌다. 고개를 돌려 반대로 눕자 아까의 불량 학생 무리가 보였다. 넥타이를 풀어헤치거나 사복을 입은 학생들 다섯에서 여섯. 아마 이 교실 안에서 가장 목소리가 큰 무리일 것이다. 데우스는 그 안에서도 눈에 띄는 편이었다. 백 칠십은 거뜬히 넘는 티나와 비교해서도 큰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흉터 몇 개. 티나는 고개를 천천히 돌리곤 책상에서 머리를 뗐다.

12시 10분. 갑작스레 열린 앞문. 문 사이로 들어온 사람은 담임 선생님이었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학생들은 급하게 제 자리로 가 앉기 시작했다. 티나는 빈 제 옆자리를 흘끔 바라보곤 슬쩍 턱을 괴었다.

 

“다들 앉고. 남은 시간 동안 조용히 공부해라.”

 

이제 떠들지 못하겠다며 투덜거리는 학생 반, 조용히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 반. 3학년 교실은 참 이상했다. 티나 역시 베게로 쓰던 문제집을 펼치려 손을 뻗은 참이었다. 그의 옆자리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렸다.

옆자리엔 아무도 없지 않았나?

자리에 앉은 사람은 데우스였다. 티나는 말없이 자리에 앉는 그를 응시하다 주위를 둘러보곤 빈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티나는 다시 고갤 옆으로 돌려 데우스의 책상을 훑었다. 텅 빈 가방걸이, 그리고 깨끗한 책상. 가방을 안 가지고 온 건가.

 

“데우스?”

 

티나가 속삭이듯 데우스에게 말을 걸었다. 곧 문제집을 꺼내 아무 쪽이나 펼친 후 구석에 무어라 끄적거리기 시작하는 티나.

‘원래 이 자리였어?’

 

문제집이 티나의 손에 의해 오른쪽으로 주욱 밀린다. 의자에 대강 걸터앉은 데우스가 제 앞에 놓인 문제집을 슬쩍 보았다. 곧 끄덕여지는 고개. 티나는 문제집을 다시 제 쪽으로 끌어와 아래에 다시 무언가 적어 데우스에게 보였다.

 

‘니 데우스 에피로네 맞지? 난 티나 제인 워커 ㅋㅋ’

 

이를 적은 티나는 꽤나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그를 빤히 바라보다 픽 웃은 데우스는 문제집을 제 쪽으로 끌고 와 답을 적었다.

 

‘응. 데우스 에피로네.’

‘아까 외워뒀다.’

 

그리 적곤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웃는 모습을 보니 나쁜 애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렇게 쉽게 사람을 판단해도 되나?

그렇지만 가끔 직감이라는 것도 발동하는 법이다. 그냥, 별 이유는 없었다. 감이 그렇게 말해주었다.

 

 

 

 

 

 

 

 

 

 

 

 

대화의 힘이 이런 것이다. 눈 깜짝할 새 40분이 지나가버렸다. 짤막한 종례가 끝나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더니 각자 책상 위에 있던 교과서와 문제집 따위를 책상 서랍과 책가방에 우겨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티나는 잠시 교무실로 와라.”

 

아이들과 함께 책을 챙기던 티나는 고개를 들어 담임 선생님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손을 흔들며 티나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티나는 걸음을 옮겨 교무실로 향했다. 담임 선생님을 따라가는 내내 티나의 시선은 창밖을 향해 있었다.

교무실에 도착한 뒤 담임 선생님이 티나에게 물은 것은 전학에 관한 내용.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잠시의 교무실 방문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돌렸다. 창밖의 눈발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교실 앞에 도착한 티나는 복도 사물함 앞에 쪼그려 앉았다. 가장 아랫줄에서 네 번째. 열쇠를 넣어 두었다고 했던 사물함을 열자 희미한 마찰음이 귀를 울렸다. 그러나 텅 비어 있는 사물함. 교실 안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인기척에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쭈그렸던 몸을 일으켜 소리가 난 쪽의 교실 문고리를 돌리자 덜컹하는 소리가 흐른다. 문이 열리자마자 보인 것은, 아까 보았던 얼굴. 데우스 에피로네.

 

“마! 데우스! 왜 아직 집에 안 갔노.”

“버스 기다리느라. 너는 왜 있냐.”

“내는 전학생이라 뭐…… 필요한 게 많다! 귀찮게스리.”

 

티나가 머리를 긁적이며 교실 안으로 걸음을 들였다. 무표정하게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던 데우스가 고개를 들어 티나를 바라본 것도 그 즈음.

 

“아, 내 이름은 티나다! 티나 제인 워커. 아까 말해줬는데 기억하나?”

 

티나는 제 명찰을 한 손으로 가리켰다. 데우스는 명찰에 적힌 이름을 천천히 읽더니 고갤 끄덕였다.

 

“나는…….”

 “니는 데우스 에피로네! 이제 완전 외웠다. 내 기억력 좋그든.”

 

맞나?

티나는 데우스의 가슴께를 한 번 힐끔 바라보았다. 명찰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빠르게 데우스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데우스는 큭큭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진짜 기억력 좋네?”

“맞지!”

 

여전히 걷은 팔 사이로 커다란 흉터들이 눈에 밟혔다. 얼굴에 있는 상처도 그렇고, 맨날 쌈판만 벌이는 앤가. 하지만 의외로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흉터 정도야 어쩌다 보면 생길 수도 있는 거고. 만만찮게 활동적인 편이었던 티나는 제 팔뚝을 두어 번 주물거렸다. 데우스는 가방을 한 쪽 어깨에 들쳐 메고 교실을 나섰다. 티나도 이미 싸 놓은 가방을 메고 교실을 나설 참이었다. 조용한 복도에 울리는 신발장 문의 마찰음. 데우스는 이미 신발을 신고 있었는지 바로 계단으로 향했다.

 

“데우스! 니 우산 없나?”

“안 가져왔는데.”

“내 우산 쓰고 가라.”

“너나 써. 난 없어도 돼.”

“눈 맞으면서 가고 싶어서 그런다”

 

반은 사실, 반은 어쩌면 과잉 친절. 데우스는 떨떠름한 눈으로 티나를 바라보았다. 티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제 손에 들려 있던 반투명 우산을 데우스 쪽으로 내밀었다.

 

“써라.”

“지금 눈 엄청 많이 내리거든? 후회하지 말고 네가 쓰고 가라.”

 

돌아온 대답은 완전 철벽. 혀를 한 번 쯧 찬 티나는 조용히 콧노래를 부르며 뒷걸음질 쳐 우산꽂이 앞에 가 섰다.

 

“아, 우산도 필요 없는데……. 여 버리고 가야겠다. 누가 쓰면 더 좋고.”

 

중얼거리듯 말한 티나는 제 우산을 우산꽂이에 텅 소리가 나도록 꽂아둔 뒤 반대쪽 계단을 향해 달렸다. 야, 티나! 티나 제인 워커! 등 뒤에서 당황한 데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난스레 쿡쿡 웃은 티나는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전학 후 첫 등교 날이 생각보단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데우스는 한숨을 푹 쉬며 다시 계단을 올랐다. 플라스틱 우산 꽂이에는 티나가 두고 간 우산이 꽂혀 있었다.

내 우산 쓰고 가라.

호탕한 티나의 목소리가 귀를 스치는 듯했다. 이걸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데우스는 결국 우산을 팔에 걸치고 학교를 나섰다. 눈발은 처음 눈이 오기 시작했을 때보다 더 거세졌다. 반투명 우산을 펼치자 나타난 구석의 작은 오리 캐릭터. 활짝 웃는 오리의 얼굴이 티나를 떠올리게 했다.

난데없이 우산을 주고. 그 애는 잘 가고 있으려나.

버스 시간에 맞추어 딱 왔다. 하루에 네 대만 운행하는 버스. 한적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핸드폰을 꺼냈다. 상단바를 메운 알림은 낯선 프로필 사진. 그리고 익숙한 이름.

티나 제인 워커.

 

[ 데우스! 나 티나다 ]

[ 반톡에서 보고 연락했어 ]

[ 집은 잘 갔나? ]

[ 내일 우산 갖다 줘 ]

 

우산도 없는 주제에 태연하게도 말한다. 도착한 카톡 네 개를 보며 픽 웃은 데우스는 손을 한 번 털곤 핸드폰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 그건 내가 물을 말이지 ]

[ 넌 집에 잘 갔냐? ]

 

카톡을 보내기가 무섭게 1이 사라진다. 답장 속도도 칼 같다.

 

[ 난 잘 갔지! ]

[ 나 눈 맞는 거 좋아한다니까 ]

[ 그리고 나 집 가까워 ]

[ 걱정 안 해도 된다 ]

 

티나는 여전히 속 편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창에 잔뜩 낀 성에를 닦아내자 더욱 거세진 눈발이 보였다. 티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이였다. 초면에 다짜고짜 친한 척 말을 걸던 순간부터 우산을 떠넘긴 것까지. 그는 전학생이라고 했다. 2학년 땐 본 적이 없는 얼굴이니 겨울방학에 전학을 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이 전학 첫 날. 참 붙임성 좋은 애라고 생각했다.

 

[ 우산 고마워 ]

[ 내일 가져다줄게 ]

 

[ 그래 ]

[ 내일 보자! ]

  

마지막 카톡과 함께 귀여운 토끼 이모티콘이 전송되었다.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하는 모양. 데우스는 다시 한 번 큭큭 웃으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우겨넣었다. 버스 엔진이 위잉위잉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다음 정류장은 A 아파트 입구, A 아파트 입구입니다. 삐이, 울리는 기계음과 함께 버스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곧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한다.

 

 

 

 

 

 

 

티나. 넌 눈을 왜 좋아하는데?

하얀 게 이쁘지 않나? 하얀 눈이 잔뜩 쌓이면, 내 마음까지 이래 하얘진다. 현실이 아무리 뭣 같아도 이래 눈이 내리면 세상이 참말로 이뻐 보인다 아이가. 온 세상이…… 그래. 정화. 정화되는 기분이다! 이 나이에 눈 좋아하는 건 좀 웃긴가? 데우스 니는. 눈이 싫나?

아니. 나도 좋아해.

진짜지? 그럼 이것도 받아라! 하하!

야, 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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