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의 시작
어글리후드 센제니
2020.09.08 포스타입 연성 백업
모든 것이 끝났을 때, 우리는 우리가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기로 했다. 크리스는 파이시나 카파시 같은 먼 도시로 떠나겠다고 했다. 벤자민은 크리스를 따라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콕과 로비도 다른 도시로 떠나길 선택했다. 우린 각자의 삶을 살아가기로 했다. 연락하고 싶을 때 꼭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간 첫날부터 피콕은 울며 단체 메시지방에 전화를 걸었다.
너희 나 잊으면 안 된다! 우린 언제나 네임드인 거다! 연락도 자주 해라!
그 덕에 네임드 메시지방은 연락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쎄타시에 남기로 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당분간 아지트에서 생활하기로 했다. 멤버들이 모두 떠난 아지트는 허전했지만, 견딜만했다. 나는 원래 혼자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외출한 뒤 돌아왔을 때, 잠이 들기 전. 조용한 순간이 소름 끼치도록 외롭게 다가올 때도 있었지만, 적응하기로 했다.
그리고 센 프라우드는 말도 없이 이곳을 떠났다. 아무런 징조도 없었으며, 남기고 간 것은 더더욱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조용히 사라졌다. 엘사에게 물어보아도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가 원래 살던 집, 자주 가던 장소. 모든 곳을 돌아보았으나 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의 번호로 연락을 해도, 없는 번호라는 안내 메시지만이 귀를 울렸다. 그를 찾으려는 갖은 노력은 모두 좌절되었다. 나는 곧 그를 찾는 일을 포기했다. 다만, 그가 아지트로 돌아올 일을 대비하여 아지트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홀로 아지트에 남아 생활하던 나도 이제 아지트를 떠나기로 했다. 모두가 떠난 과거의 보금자리를 지키는 일이 생각보다 유쾌하지 않은 탓이었다. 여태 고집 같지 않은 고집으로 아지트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나에게도 떠나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나는 괜찮은 집을 하나 구해 살기로 결정했다. 혼자 살기에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네임드 멤버들은 모두 내 소식을 들은 뒤 축하의 말을 전했다. 피콕은 벌써 내 집에 모여 파티를 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아지트를 떠나는 날, 조용히 우리의 공간을 돌아보았다. 네임드 다섯 사람이, 센이, 가끔은 엘사나 줄리아가 울고 웃으며 투쟁했던 장소. 우리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 미련이 남지 않도록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움직이던 발은, 문턱 앞에서 멈추어 선다. 그리곤 다시 방향을 돌려 아지트 안으로 돌아갔다. 그 뒤, 내 방 서랍에 있던 작은 메모지와 펜을 꺼냈다. 대충 글씨를 흘려 짧은 메모를 남겼다. 나는 메모를 들고 잠시 고민하고는, 곧 바깥에 있던 작은 우체통에 그것을 넣었다. 이제 정말 떠날 시간이었다. 나는 다시 걸음을 재촉해 아지트 근처에서 벗어났다. 이제, 새로운 집을 찾아갈 시간이다.
센 프라우드.
다시 돌아왔다면
언제든 연락 줘.
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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