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두 잔
어쩌다 이도 저도 아닌 싸구려 위스키로 태어나다
“...규칙이 있는데, 규칙에 맞게 태어나야 해. 그런 규칙이 왜 있는지 묻기 시작하면 나는 끔찍한 기분이 들어. 그런데 그 기분이 어떤 것인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어. 좋은 것과 싫은 것 사이에 선을 그어 두는데 마음이 가끔은 선 이쪽에도 저쪽에도 보이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어버려…”
뒷골목의 한 바에는 사람이 둘 뿐이었다. 한 명은 분홍색 머리칼의 여성이었고, 한 명은 회색 머리칼의 키 큰 남성이었다. 둘 다 위스키 잔이 앞에 놓여있었는데, 남자는 말을 하고 여자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내가 세상 사람들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도 날 알 수 없겠지. 그 자체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해.”
여자는 위스키 잔을 빙글 돌렸다. 남자의 잔 안에는 얼음이 없었고 여자의 잔 안에는 동그란 얼음이 하나 들어있었다. 위스키 안의 얼음은 서서히 녹아가고 있었고, 여자는 그것에 개의치 않는 듯 무심히 허공을 응시했다.
“하지만 당연한 규칙을 만든 쪽은 세상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건 언제나 나 일 수 밖에 없어. 그래서 난 항상 잘못하는 쪽이었지. 그건 억울하고 불공평해. 그치만 세상 사람들은 그것들을 알지도 못할거야... 마음에도 정답이 있으니까.”
“정답이 있다라. 그래, 50%의 옥수수가 들어간 술은 테네시 위스키가 되지 못하는 것 처럼. 개인적으로는 테네시 위스키가 싫다만.”
남자는 여자의 의뭉스러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것은 무대로 치면 독백이었다. 그리고 여자의 말은 독백에 대한 해설이었다. 둘 사이는 간혹 이렇게 작용했다. 독백과 해설. 그것은 일종의 미묘한 관계라서, 독백은 해설이 없이 무대에 던져지면 그저 주저리로 끝나고는 했다. 해설은 그러나 독백 없이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다.
“이 지구가, 거기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정답을 빚어냈으니까. 정답에서 벗어나면... 괴물이 되지. 사람은 괴물을 고치려고 해. 그들 자신을 위해서, 괴물들을 위해서, 모두를 위해서. 치유되지 못한 사람들은... ... 치유된 사람은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비웃거나 부끄러워해. 왜 그러지 못했냐고만 해. 그렇게 병들고 아픈 나 자체는 영원히 세상에 동떨어진 채로만 남게 되는거야…”
여자는 얼음이 녹아 묽어진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셨다. 여자에겐 너무나 밍밍했다. 그러나 남자의 위스키는 조금 비워져있었기에, 여자는 속도를 맞추기 위해 그냥 잔을 내려놓았다. 녹아들어 밍밍해진다고 해도, 속도를 맞춰야 할 것 같았다.
“억울해. 불공평해. 난 고쳐지지 않은 채로 살아남을거야!”
그 말에 여자는 자신의 잔을 보았다. 그리고 상대의 잔도 보았다. 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두 잔의 위스키에 모두 불을 붙였다. 여자의 것에는 붙지 않았고, 남자의 것에는 붙었다.
“그렇게 두면 결국 잔이 깨지고 말거야. 불이 붙어 잔을 깨트리는 위스키는 마실 수 없어. 그러나 말이다, 결국에는 물이 들어가지 않으니 불이 붙은 거겠지.”
남자는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자는 곧 불을 껐다. 그리고 말을 이어나갔다.
“마셔. 아까보다는 덜 독할지도 모르니까.”
지리멸렬한 비유였지만, 그것은 남자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남자는 잔을 완전히 비웠고, 여자도 따라 잔을 비웠다. 그렇게 밤은 흐려져갔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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