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가 열두 번을 치고 나면

Step by step⋯ by 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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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람하기에 앞서: 몸이 자의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과 직간접적인 상해에 대한 묘사가 존재합니다.

장소

캐너릿가 저택

성 뭉고 병원의 1인실

나오는 사람들

스테파니 6학년을 마치고 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온 호그와트의 학생

스테판 스테파니의 양아버지

레이첼 스테파니의 양어머니

프랜시스 병문안을 온 호그와트의 학생, 오렐리아에게 무도회 가루라는 음모를 제안한 사람

제 1막

제 1장 캐너릿가 저택

1971년 6월. 캐너릿가 저택의 거실. 느지막한 아침이다. 캐너릿가의 주인인 스테판과 안주인인 레이첼은 잠옷 차림을 한 막내딸 스테파니와 카우치에 앉아 정겨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랑하는 두 딸의 막 시작된 방학으로 부부의 얼굴에는 활기가 돈다.

레이첼 (시계를 보며)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곧 정오가 되겠어. 어서 준비해야지. 오늘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고 했잖니.

스테파니 맞아요. 무슨 옷을 입으면 좋을지 고민이 되네요.

레이첼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예쁘게 입으렴.

스테파니 오늘이 무슨 날인데요?

스테판 잊었구나? 네가 우리 집에 온 지 2년이 되는 날이잖니.

스테파니 아, 정말 그렇네요. 작년에 축하해 주셔서 무척 기뻤는데, 올해도 기억해 주고 계셨군요.

레이첼 새 가족이 생긴 기념일이니 올해도 축하해야지. 너무 늦게 들어오지는 말거라.

스테파니 정말 기대되는걸요? 그럼 준비를 하러 가야겠어요.

스테파니는 가벼운 걸음으로 계단을 향해 퇴장한다. 부부는 딸이 떠나는 모습을 한 번 보고는 대화를 이어간다. 시계가 열두 번을 치며 정오를 알린다. 한참 뒤, 멀리서 들리던 다급한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면, 2층에서 스테파니가 얼굴을 내민다. 노란 원피스와 흰 모자를 차려입은 스테파니는 무척 빠르게 양발로 바닥을 밟아 뛰어오르고 있다. 굴절선을 그리는 몸은 마치 꺾인 듯 보인다. 공중에서 푸른 구두를 신은 두 발끝이 맞부딪힌다.

스테파니 아빠, 엄마⋯!

스테판 이건 ‘브리제’로구나? 그러지 않아도 발레 선생님이 네가 발레 연습을 무척 열심히 한다고 늘 칭찬하신단다.

스테파니 (거칠고 가쁜 호흡으로) 춤이⋯ 춤이 멈추질 않아요.

레이첼 오늘 네 기분이 무척 좋다는 건 알아. 하지만 아가, 굽이 있는 구두를 신고 그렇게 뛰었다가는⋯

스테파니는 레이첼의 걱정에도 멈춰 서지 않고 2층 계단 꼭대기까지 다다른다. 직후 스테파니는 허공으로 몸을 내던지고, 놀란 캐너릿 부부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단단한 계단에 무언가가 크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캐너릿 부부가 계단에서 미끄러지는 딸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스테파니의 두 발이 더욱 빠르게 뜀박질해 발이 붙어있는 몸뚱이는 모난 계단 위를 구른다. 계단 몇 발짝 앞에 내동댕이쳐지고도 날뛰는 딸의 양어깨를 캐너릿 부부는 온 힘을 다해 붙잡는다. 작은 체구의 스테파니는 손쉽게 붙들리지만, 여전히 두 다리는 수면을 향해 발버둥 치는 익수자처럼 거세게 허우적댄다. 스테파니의 발에 비해 큰 푸른 구두는 신기할 정도로 발에서 벗겨지지 않는다. 앓는 소리를 연신 뱉으며 눈을 질끈 감는 스테파니.

제 2장 성 뭉고 병원의 1인실

다음날. 성 뭉고 병원의 1인실. 이제 막 정오가 되었다. 스테파니는 점심을 거절한 직후로, 기진맥진해 침대에 누워있다. 캐너릿 부부는 스테파니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속삭이고, 스테파니는 고개를 젓는다. 프랜시스 머뭇대며 등장. 스테파니는 부모의 손에 붙들려 마지못해 상체를 세우지만, 고개는 창가를 향한 채 방문객을 돌아보지 않는다. 캐너릿 부부는 프랜시스에게 따가운 눈총을 보내며 퇴장한다.

프랜시스 스테파니⋯. 들어가도 될까?

스테파니 (조금 쉰 듯한 목소리로) 이미 들어와 놓고 뭘 물어요?

프랜시스 그게⋯ 몸은 조금 괜찮아? 소식 듣고 많이 놀랐어.

스테파니 당신 눈에는 괜찮아 보이는 모양이죠.

프랜시스 그, 그게 아니라⋯. 이런 걸 물어보는 게 아니었나 봐. 내 잘못이야.

스테파니 네. 할 말 끝났으면 이제 좀 갈래요? 혼자 있고 싶어요.

프랜시스 ⋯ 스테파니, 정말로 미안해. 정말 유감이야. 이 말을 하려고 왔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용서하기는 어렵겠지. 알아.

스테파니 미안하다는 말이 무엇을 해결해 주나요. 그저 양심의 짐을 덜고 싶어서 하는 사과를 제가 왜 들어야 하나요. 이 상황에서 당신이 대체 뭘 책임질 수 있죠?

프랜시스 내가 져야하는 책임은 모두 질게.

스테파니 정말요? 그렇다면 당신의 다리도 내 꼴이 나게 하시든가, 당신 다리를 내게 줘요. 아, 아니야⋯ 당신, 마법부에 들어가고 싶다면서요. N.E.W.T.의 모든 과목에서 T를 받아오는 건 어때요? 그럼 공평하겠어요. 난 당신 때문에 꿈을 접었으니까.

프랜시스 스테파니, 그건⋯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달싹대다) ⋯ 오 세상에, 이건 전부 오렐리아 그 애의 탓이야. 무도회 가루를 준 건 나지만, 정말로 쓰지만 않았어도.

스테파니 아 그래요.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인지 잘 모르겠군요. 그건 저희 부모님한테나 얘기하시고, 이제는 제발 좀 나가주세요.

프랜시스 잠깐, 스테파니. 오렐리아에게 그런 제안을 한 건 내 잘못이야. 인정해. 하지만 뭔가 이상해. 이 일은 정말 오렐리아의 탓이야.

스테파니 당신이 살겠다고 언니를 팔겠다 이거로군요? 정말 대단한 우정이네요. 겨우 이깟 우정에 내가⋯. 더 듣고 싶지 않아요.

프랜시스 원래 무도회 가루는 이렇게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단 말이야. 나도 친구들에게 장난을 치려고 몇 번 써봤지만 한 번도 이런 적은 없었어.

스테파니 ‘인내심과 자비’는 여기까지라서요. 당신을 당장 여기서 내쫓고 싶거든요⋯. 아직 제 두 팔은 멀쩡하고, 마침 손 닿는 거리에 던지기 적절한 물건이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프랜시스 ⋯ 미안해, 스테파니. 그렇지만 이 말은 해야겠어. 오렐리아가 가루에 무언가 술수를 쓴 게 분명해. 정말이야. 오렐리아의 지팡이를 조사해 보면 무언가 나올지도 몰라.

스테파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프랜시스 원래 무도회 가루는 그냥 춤을 추는 게 전부야. 그렇게 날뛸 정도는 아니란 말이야⋯. ⋯ 이만 나갈게. 푹 쉬어.

스테파니 (프랜시스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충혈된 눈에 상냥한 미소가 어린다. 화가 명백히 누그러진 부드러운 목소리로 손짓한다.) 잠깐, 프랜시스⋯. 그러지 말고 잠시 앉아요. 여기까지 오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벌써 갈 필요 있나요.

프랜시스 (조금은 얼떨떨하고, 조금은 안도하는 표정으로 의자에 앉는다.)

스테파니 제가 너무 냉정했죠? 그래도 조금만 이해해 주세요. 이 상황이 가장 절망스러운 사람은 바로 저라는 걸 잘 아실 테니까요. 하지만 당신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당신도 많이 놀랐다는 걸 알겠어요. 당신은 그저 간단한 장난을 하자고 했을 뿐인데, 오렐리아가 그런 못된 마음을 품을지 누가 알았겠어요.

프랜시스 아, 스테파니⋯

스테파니 그냥 애니라고 불러요. ⋯ 그래서, 그 일에 대해 더 자세히 얘기해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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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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