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황혼녘

여행자와 방랑자

사이퍼즈 릭 톰슨 드림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사람들은 남자를 일컬어 여행자voyager라고 부른다. 그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다. 그리워하는 공간이 있다. 몇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눈 깜짝할 새 오갈 수 있는 능력을 지녔음에도 섣불리 갈 수 없는 곳, 그러나 언젠가 반드시 돌아갈 곳이 있다. 그가 원래 있었던 곳이 있다. 그래서 남자는 여행자라 불린다.

여행이란 일시적인 상태이다. 그 목적이 관광이 되었든 답사가 되었든 혹은 영업이 되었든, 여행은 언제나 귀환을 상정한다.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그래서 남자는 그를 여행자라고 부르는 이들을 굳이 정정해 주지 않는다. 기꺼이 그 자신의 상태를 여행 중으로 규정한다. 그는 돌아갈 것이다. 설령 기약이 없을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갈 것이다. 그러고 싶어 한다.

여행지에서 남자는 한 여자를 만난다. 여자는 시간을 뛰어넘을 줄 안다. 남자가 공간을 접어 달리는 법을 알듯이. 사람들이 그의 존재를 알았다면 여자를 일컬어 시간여행자라고 불렀으리라. 하지만 여자는 그의 능력을 감춘 채 살아왔다. 시간을 넘어 날아오르지 않은 지도 오래되었다. 그래서 여자는 여행자라고 불리지 않는다. 그 자신에게서마저도.

여자는 그 자신을 여행자라기보다는 방랑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여행이란 일시적인 상태이며 귀환을 상정한다. 귀환이란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돌아가려거든 떠나온 곳이, 아니, 돌아갈 곳이 있어야 한다. 여행자가 본디 소속되었던 곳이 그를 기다리고 있어야만 한다. 허나 여자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다. 따라서 그의 삶은 여행이라기보다는 방랑에 가깝다. 여자는 뿌리박힌 데 없이 떠도는 시간 속의 보헤미안이며, 정처 모르는 방랑자vagabond이기도 하다.

여자는 자신이 언제 태어났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 존재의 시작이 어디였는지 역시 기억하지 못한다. 그의 시간은 다른 모두의 시간과는 달리 흐른다. 19세기 파리에서 깨어나 17세기 런던에서 잠들 수 있는 여자가 그려온 생의 궤적은, 연속적인 선이라기보다는 시간축 여기저기에 산개한 짧은 파편들의 모임에 가깝다. 원커든 그 중 가장 따스했던 것을 골라 돌아갈 곳으로 삼을 수 있었으리라.

물론 여자는 그러지 않기를 택했다. 어쩌면 그럴 수 없다는 데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돌아간다면 다시는 떠나올 수 없으리라 생각하는 이상, 여자가 돌아갈 곳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돌아갈 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 앞에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기에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뿐.

그리하여 여행자가 어째서 귀향을 망설이는지를 알게 되었을 때 여자의 방랑은 끝날 수밖에 없다. 돌아갈 수 없는 이유, 두려움이라는 이유마저도 공유하는 그 남자가 황혼을 등지고 웃었을 때, 바로 그 순간에 여자의 삶은 방랑이 아니게 된다.

이제 그에게도 돌아갈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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