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예리 서사

보몽님 커미션

니콜라스는 예리엘을 탐탁찮게 보고 있었음. 선전과 안타리우스의 부흥을 위한 도구일 뿐, 예리엘이라는 여성 한명을 놓고 봤을 땐 결코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었음. 신앙심따윈 없고, 갖고 싶은 건 어떻게서든 얻어야하는 탐욕적인 면모와 타인의 희생을 요하는 이기적인 성향까지- 종교에서 요하는 미학이라곤 눈곱만큼도 지키지 않는 예리엘이 달갑지 않게 보인 건 어쩔 수 없었음. (비슷한 이유로 시드니 젤러즈니를 싫어했고) 예리엘도 첫인상은 그 빨간머리 여자와 거의 비슷했음.  

예리엘도 니콜라스를 썩 좋게 본 건 아니었음. 많은 이들이 흘린 피눈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원하는 바를 어떻게서든 이루려는 맹목적이고 잔인한 성미를 가진 건, 저를 비롯한 안타리우스에 속한 모두와 크게 다를바가 없는 주제에, 혼자만 고결한 교리 아래서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처럼 구는 니콜라스가 우스웠음. 

개인이 느끼는 불호와는 별개로 둘은 서로를 '쓸만한 도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상태로 바라보았음. 니콜라스는 예리엘을 선전용으로 적합한 가짜성녀 라고 생각했고, 예리엘은 니콜라스를 곁에 두기에 그럴듯한 들러리로 생각했음. 심판관이라는 직책이나, 반반한 외모, 차분한 언행까지 성녀인 제 옆에 둘만한 인물인 건 맞았고, 그가 자신과 함께 하는 것에 큰 불만은 없었음. 

니콜라스 역시 예리엘을 나쁘게 보고 있는 것과 별개로 그녀의 곁을 지키며 그녀와 동행하는 것엔 긍정적이었음. 제 능력과 더불어 자신의 직책은 신도들에게 두려움만을 자아내고 있었음. 본디 종교를 믿는다 함은 신의 뜻을 이행하는 사도들에게도 경외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했으나, 신도들이 니콜라스에게 느끼는 것은 경외가 아닌 공포와 불안감이었음. 그들에게 존경어린 관심을 받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의미없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건 다른 문제였음. 하지만 예리엘과 함께 동행하게 된 이후로, 그녀가 가진 선량하고 자비로운 이미지가 자신에게도 녹아들어 니콜라스를 막연한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던 시선도 누그러지는 듯 했음. 

미적지근하고 건조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던 어느날, 한 아이가 성전 안으로 뛰어들어와 예리엘의 발밑에 엎드렸음. 거뭇거뭇한 얼룩으로 가득한 누더기와 밑창이 다 닳아 구멍이 난 신발을 신고 나타난 아이는 아픈 동생을 치료해달라는 말을 하며 예리엘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막무가내로 울어댔음. 

니콜라스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음. 저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그녀가 동생을 살려달라며 떼를 쓰는 아이를 어떻게 대할지 내심 궁금했음. 성가신 빨간머리 여자처럼 고칠 수 있다며 허세를 부릴지, 제키엘처럼 안타깝지만 신의 뜻이니 받아들이라는 설교를 할지 확인해보고 싶었음. 

울음소리는 더 커져만 갔고 아이는 예리엘의 치맛자락을 꽉 잡은 채 놔줄 생각을 하지 않았음. 니콜라스가 나설필요도 없이, 성전 관리인들이 달려와 아이를 떨어뜨리려던 그때 , 가벼운 손짓으로 관리인들을 물린 예리엘은 몸을 낮추며 아이의 울음소리가 그칠 때까지 기다려주었음. 한참동안 흐느끼던 아이는 곧 천천히 울음을 그치며 저를 가만히 내려다보는 예리엘과 눈을 마주쳤음. 예리엘은 천천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음.

"유감스럽지만 나는 신의 뜻을 전하는 대리인일 뿐, 네 동생의 병을 직접적으로 치유해주는 기적을 행할수는 없어. 하지만 너와 네 동생을 축복하며 기도해줄수는 있단다."

자신이 원하던 답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아이는 울먹이는 눈동자로 예리엘을 바라보았음. 하지만 예리엘은 흔들림 없이 차분한 미소를 띤 채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음. 아이는 무어라 더 말하고 싶은 눈치였으나, 끝내 그녀의 말을 받아들이고는 눈을 감았음. 예리엘은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은 채 잔잔한 목소리로 안수기도를 해주었음. 기도를 끝마친 그녀는 상냥한 미소를 보이며 꾸벅 인사하는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보였음. 별다른 소득 없이 돌아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녀는 손수건으로 제 손을 닦아내며 성전 관리인들을 불러내고 안타리우스가 운영하는 보육원에 두 아이가 들어갈 수 있도록 해달라 말했음. 

아이들은 결국 안타리우스에 충성하는 광신도가 되거나, 강화인간 실험체가 될 운명이겠지만 사람답지 못하게 사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 판단한 모양이었음. 제 능력 밖의 일을 행하겠다며 허세를 부리거나, 신의 뜻이라는 이유로 감내하라는 설교를 늘어놓는 것과 달리 그녀는 현실적으로 판단하며 종교인이 보여줄 수 있는 자비와 더불어 자신의 직책으로 할 수 있는 선에서 해결책을 내놓는 게 꽤나 인상적이었음. 

"의외군요. 더러운 손으로 어딜 손대는 거냐며 아이를 매몰차게 내쫓을 줄 알았습니다."

"어머, 날 너무 나쁘게 보는 거 아닌가요 니키?"

니콜라스의 퉁명스러운 발언에 예리엘은 여유롭게 웃으며 가볍게 대꾸했음. 니키. 이제는 너무 낯설게 느껴지는 애칭에 니콜라스는 미간을 구겼으나 불만을 토로하진 않았음. 그날 이후, 니콜라스는 예리엘을 종교인으로서 그나마 나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형편없던 첫인상보다는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음.

자신을 향해 날이 서 있던 그의 태도가 서서히 누그러지자, 예리엘 역시 니콜라스를 좀 더 호의적으로 대했음. 일 때문에 형식적으로 예의를 차릴 때보다는 더 부드럽고 차분하게 그를 대했음. 두 사람의 관계가 드라마틱하게 가까워진 건 아니지만, 확실히 다른 안타리우스 간부들을 대하는 것보단 더 나은 태도를 보였음.

니키, 닉. 아무렇지도 않게 저를 부르는 애칭이 묘하게 거북하긴 했으나, 그만두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음. 그녀가 부르는 애칭에 불편함을 느끼는 건 어린시절의 기억 때문이니까 예리엘에게 뭐라할 문제는 아니라 판단했음. 

니콜라스는 제 품에 있던 묵주를 만지작대며 그녀를 바라보았음. 어렸던 그 시절보단 제 능력을 충분히 조절할 수 있게 됐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녀 역시 제 능력에 영향을 받을 게 분명했음. 두 사람이 함께한지 적잖은 시간이 흘렀지만 예리엘은 별다른 문제가 없어보였음. 한결 같이 욕심을 부리고 이기적으로 굴고, 또 다정하고 상냥한 모습을 보였음. 제가 곁에 있든, 없든 한결같은 그녀의 태도가 기이하게 느껴질 지경이었음. 

성전에 길게 늘어진 목제로 만든 장의자에 가만히 앉아 기도를 올리는 예리엘을 지켜보던 니콜라스는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음. 기도를 끝마치고 살며시 눈을 뜨는 그녀를 응시하던 니콜라스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음.

"당신은 겁이 없습니까?"

"니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근본적으로 두려움이라는 걸 느끼지 않냔 소립니다. 저와 동행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결국 제 능력의 영향을 받을텐데,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아보여서 묻는 겁니다."

"아, 그거요."

예리엘은 니콜라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겠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음. 가만히 고민하는 듯한 기색을 보이던 그녀는 곧 덤덤한 목소리로 답했음.

"눈을 뜬 현실이 악몽과 크게 다를바가 없어서 무뎌졌을 뿐이에요. 살아 숨쉬는 것 자체가 공포였던 시절이 있었고, 그런 한 때를 보내고 나니까 무섭다는 감정이 어떤 건지 기억나지 않아요."

추상적인 대답이었지만 니콜라스는 딱히 캐묻지 않기로 했음. 자신이 쉬이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티내지 않는 것처럼 그녀 역시 타인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것쯤은 있을 거라 생각했음. 문득, 공포에 젖어든 그녀의 표정은 어떨지 궁금해졌음. 살아 숨쉬는 자체가 공포였던 그시절의 예리엘은 대체 어떤 얼굴로 살았을지, 제 어머니와 같은 표정이었을지 궁금했음. 니콜라스는 제 능력을 쓰는 대신, 자연스럽게 제 몸에 머리를 기대는 그녀에게 어깨를 빌려주었음. 

균형을 잃어 일그러진 천칭 속에서, 그녀만큼은 자신과 같은 곳에 서있길 바랐음. 끝내 저와 함께 할 수 없었던 어머니를 대신할 사람을 찾던 건 아니었지만 그리운 애칭을 불러주는 이가, 저와 반대되는 곳에 서있지 않길 바랐음.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들어, 니콜라스는 나직이 코웃음을 쳤음.

"왜 그렇게 웃나요, 니키?"

"아무것도 아닙니다. 옛생각이 나서요."

니콜라스는 제 속을 숨긴 채 제 어깨에 묵직히 닿아있는 그녀의 머리에 제 머리를 기대고는 잠시 눈을 감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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