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스호프] 착한 아이가 꾸는 꿈

나나계 by 휘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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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혼자 잠들어 있으면 가끔 손님이 찾아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조심스런 발걸음, 깨지 않도록 침대 위로 올라와 품에 안기는 몸은 차게 식어 있습니다. 잠귀가 밝아 깨어버렸지만, 깨어난 티를 내면 마음이 좋지 않은지 작은 한숨이 새어나옵니다. 살며시 손을 잡습니다. 체온이 높은 편도 아닌데, 이럴 때의 호프는 저보다 더 차갑네요.

"… 오늘도 나쁜 꿈을 꿨나요?"

"…미안. 깨워버렸지."

"책망하려고 한 게 아니에요."

계속, 계속 같은 꿈을 꾸는 것 같으니까요. 돌아오고 나면 모든 게 해결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얼마나 섬세한지. 그런 생각을 하는 저 역시 이제 인간이기 때문에, 호프와 헤어진다고 상상하면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호프에게 찾아오면서, 당연히 기뻐해 줄 거라고 생각했었고, 실제로도 정말 기뻐했는데 말이죠. 불안한 마음이 꾸는 꿈 따위를 막을 방법이 평범한 인간의 손에 달려있을 리 없어서. 게다가 초반에는 자신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꼬박 밤을 샜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지속되어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쌓이고, 업무를 보는 데 지장이 생기기까지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찾아온 거죠. 알게 된 날부터 계속 같이 자자고 했는데, 늦게까지 일해야 하니까 어차피 똑같다나 뭐라나. 아무래도 꿈을 꾼 직후의 우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거겠죠. 말하지 않아도 눈치채고 있는데….

"괜찮으니까요. 호프를 걱정하는 건 제 일이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등을 쓰다듬으면 이쪽이 할 말이라는 듯 훌쩍이는 소리를 냅니다. 소중한 사람이 한 달이 다 되도록 잠을 설치고 있는데 뭐라도 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뭐라도 해야겠어요.


"며칠 정도 여행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촤라라락. 호프가 손에 들고 있던 서류가 맨 앞장과 맨 뒷장을 빼고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깜짝 놀라 서둘러 주워줍니다. 이곳저곳 흩어진 종이들을 한데 모아 정리를 하고 나서야 호프가 정신을 차립니다.

"…얼추 된 것 같아! 고마워, 커스."

"손에 힘이라도 빠진 건가요? 역시 너무 무리하고 있는 게…."

"아, 아니. 조금 놀라서. 여행이라니? 다시 돌아온지 얼마 안 됐잖아?"

아, 그것 때문이었던 걸까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하긴, 악몽을 꾸는 이유가 자신의 부재 때문이었으니 이만큼 놀라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같이 잠들어도 깨지 않을 정도로 조금 잦아지기만 할 뿐, 나쁜 꿈을 꾸는 건 변하지 않는 것 같았으니까요. 이쪽도 속이 타서 뭐라도 하지 않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호프가 요즘 악몽을 꾸는 것 때문에, 짚이는 게 있어서요."

"으아… 오기 전에는 안 그랬다고, 다시 떨어져 지내자고 하는 거 아니지…? 절대 안되니까!"

"…애초에 그런 극단적인 방법은 생각하지도 않았으니까요. 일단 진정하세요."

오해할 만한 타이밍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호프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기도 하고. 차를 내어주면서 호프를 안심시킵니다. 어차피 그런 방법은 확실하지도 않고, 지금은 일단 해볼 수 있는 걸 해보려는 것 뿐이니까요.

"호프는 '꿈먹이'라는 것을 들어본 적 있나요?"

"'꿈먹이'…? 꿈을 먹는 거야? 상상의 동물 같은 거?"

"비슷한 거예요. 상상의 동물이라기보다는, 요정에 가까운 것이지만."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던 호프도 얘기를 시작하면 진지하게 듣기 시작합니다. 뭐라해도 전직 용이 하는 말이니까요. 관측자로서 많은 것을 보고 경험했던 만큼 세상에 있는 인간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자신보다야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는 베가나 카펠라 쪽이 정통하겠지만, 듣고 경험한 것들에 대한 지식은 어느정도 가지고 있으니까요.

꿈먹이는 말 그대로 꿈을 먹는 요정으로, 사람들의 길몽을 먹고 흉몽을 가져다주는 존재입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용과 요정 같은 신비도 서서히 사라지고, 요정들도 인간에게 깃드는 일 없이 인적 없는 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그 영향을 받는 일은 정말 드문 일이지만요. 

"제가 돌아오는 과정에서 데려온 삿된 것이 호프에게 달라붙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물론 인간에 따라서는 몇 년이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불면에 드는 사람이 있기도 한 모양이지만, 한 달이 넘는 긴 기간동안 강도가 변하지 않고 같은 꿈을 꾼다는 건 역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평소라면 이런 짐작을 할 수도 없었을텐데, 제가 먼 길을 돌아 에테르노에 돌아오는 와중에 거쳐왔던 곳이 수없이 많기 때문에. 악몽의 원인은 자신이기도 하고, 호프가 고생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뭐라도 붙잡아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걸 해결하려면 여행을 떠나야 하는 거야? 또…?"

"인간에게 씌인 요정을 다루는 주술은, 아무래도 재료가 필요하니까요. 사람을 보내기도 좀 그런 곳들이고, 제가 가야 할 것 같은데…."

호프의 반응을 보면 혼자 가는 건 역시 안 될 것 같습니다. 호프와 떨어져 존재하지 않고 있던 시간에 관한 기억은 어렴풋하기 때문에 그 불안의 크기는 짐작할 수 없지만, 호프가 성장한 만큼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요. 꿈먹이에게 씌였는지 아닌지도 알 수 있을텐데….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재료의 대부분이 에테르노에 자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같이 가자고 쉽게 권유하기 어려운 건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 성의 일을 돕기 시작한 참이고, 아직 배우고 있어서 호프의 일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가늠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입은 대체로 그런 느낌이죠. 마음만 같아서는 당장 가고 싶은데, 아무래도 그건 무리일 것 같고…. 고개를 살짝 기울여 호프에게 묻습니다.

"…우리, 언제쯤 시간 날 것 같나요?"

"…최대한 빨리 낼게! 그러니까 혼자 갈 생각 안 하는 거다, 알겠지?"

그러면 그만큼 호프의 불면도 계속되는 게 아닌가 싶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무서운 호프의 기백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여행길은 위험하지 않을까요?"

"어차피 성에 있어도 못 쉬는 건 똑같으니까. 얼른 가서 해결하고 오는 게 낫지!"

맞는 말이지만, 역시 마음에 안 들어요. 낙타에서 고꾸라지기라도 하면 어쩌려는 건지. 키도 정신도 훌쩍 커버린 호프지만 제게는 언제나 걱정되는 아이 그대로입니다. 일을 빼기 위해 또 무리했을 것 같잖아요? 억지로 옆에서 재우기는 했지만, 역시 그렇게 푹 재우지는 못한 것 같아서.

꿈먹이의 해소는 요정에 씌인 인간을 둘 이상으로 나누는 것으로 작용합니다. 꿈먹이 수준의 요정은 인간 한 사람 이상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씌인 사람과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그 효과가 줄어든다고 합니다. 하지만 접촉만으로는 미비하고, 아예 요정의 숙주를 두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주술을 사용하는 편이 제일 빠른 편입니다. 악몽을 꾸게 된 건 모모의 정신 탓도 있겠지만, 어두운 곳을 비집어 열어 극대화시키는 못된 요정의 탓도 있겠죠. 이걸로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미스테로의 장서각을 뒤집어 엎어야겠습니다. 쉽게 마법이라도 부릴 수 있는 몸이라면 좋을텐데, 인간의 몸은 그런 게 조금 아쉽습니다.

처음 도착한 곳은 모래 산맥을 굽이굽이 따라가는 산 안의 동굴입니다. 호프를 만나기 전에 잠깐 있었던 곳으로, 찾아보면 용의 비늘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곳입니다. 호프를 기를 때 몰래몰래 상처약에 빻은 비늘 가루를 연고에 섞어 발라주는 용도로 쓴 적 있었습니다만, 그 때 썼던 것의 여분들은 자신이 없는 사이에 집에 도둑이 들어 병이 깨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길이 조금 험하고 들어가는 방법이 번거로울 뿐이지 먼 곳은 아니니까 찾아왔지만, 만성 수면부족인 호프에게는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어, 호프. 이거라도 가루 내어 마시겠어요?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비늘, 그냥 먹어도 되는 거야…? 만병통치약 같은 건가."

정제하지 않아도 회복력을 증진시켜주는 효과가 있으니까요. 이제 인간인 자신에게도 효과가 들겠지만, 지금은 호프 쪽이 훨씬 급합니다. 피로할 것 같은걸요.


여기까지 쓰고 발행해요

동굴 찍고 꽃밭 가서 꽃따서 약 만들어서 같이 악몽 나눠꾸고 푹 잠들어 평화를 찾는 내용이에요

커스호프가 보고싶다... 나중에 또 보고싶으면 마저 써서 재발행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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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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