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 설정

(3)테미스와 르셰

판데모니움 레이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는데 내 말이 맞지 않냐면서 처음 만난 그날처럼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는 목소리가 들렸다.

테미스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다시 만난 르셰는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다. 이곳의 테미스는 진짜 본인이 아닌 혼의 기억에서 만들어낸 존재, 하지만 주박이 걸려있는 상태라 행동에 제약받아서 너와 싸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르셰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고 그저 무기력하게 서있을 뿐이었다.

무얼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

테미스와 싸우고 싶지 않아….

불안해 보이는 르셰에게 테미스는 자신은 진짜가 아닌 기억의 그림자에 불과한 존재일 뿐이라고 웃어주며 마음 쓸 필요 없다고 말해주는데 하지만 아무리 진짜가 아니라고 몇 번이고 말해도 눈앞에 보이는데 목소리도 들리는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 있을까. 테미스가 힘든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랐는데 어째서 이렇게 돼버린 걸까.

사실 르셰는 그저 친구로서 테미스를 걱정하는 마음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지켜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다. 르셰는 자신의 세계를 지켜낸다는 당연한 일을 한 것이지만, 엘피스에서 고대인들이 살아있었음을 보고 느끼며 그들의 삶을 없애버렸다는 것과 동시에 1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본 엘리디부스의 소망도 이룰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테미스가 자신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줄수록 그가 미래에 겪을 고통과 고독이 떠올랐고 죄책감과 강박은 커져 갔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직후 흑막이 불러낸 생물과 싸우게 되었고 평소답지 못하게 전혀 전투에 집중하지 못했다.

싸움을 지켜본 테미스는 르셰를 보며 너의 전투는 언제나 흥미롭다며 말해주는데, 르셰의 곁으로 오는 에리크토니우스와 라하브레아를 보고 그녀를 지켜봐 줄 사람들도 있으니, 자신이 없더라도 이 사건도 해결로 이끌어나갈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고,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오는지 애써 웃어주며 르셰에게 너와의 전투를 기다리고 있겠다고 하며 문의 너머로 사라졌다.

르셰에게 에리크토니오스는 자신을 도와준 것처럼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하고, 라하브레아는 테미스의 힘을 떨어뜨리면 정신주박이 풀릴 수도 있다고 말해줘서 두려운 마음에 힘을 얻고 테미스와 싸우러 갈 용기를 냈다.

흑막은 테미스를 자신에게 필요한 쪽으로 이용하려고 했다. 판데모니움에서 르셰의 전투를 보고 마음속에 생겨난 자신도 자유롭게 싸워보고 싶다는 감정을 증폭 시켜 싸우게 했고 테미스는 억눌려왔던 감정이 풀리면서 자유로운 기분과, 증폭된 감정으로 인해 르셰를 더 알고 싶어했던 욕망도 커졌다. 네가 싸울때 마다 느낀 감정이 알고 싶었다고 너와 싸우는 건 설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망설임 없이 공격하는데 르셰의 슬픈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그녀의 이런 모습을 알고 싶어 했던가….

내가 바라던 건 이게 전부인가?

의문이 생기자 정말 원했던 것과 지금 느끼는 감정 사이에 혼란이 와서 온 힘을 다해서 싸울 수가 없었다. 싸움이 끝난 후에 테미스에게 걸린 주박이 풀리고 그가 진정으로 바라던 것들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저 다시 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너에 대해 더 알고 싶었었는데.

그러나 이제는 필요 없는 존재라는 듯 자신의 모습이 사라지려고 했다.


르셰는 테미스에게 달려갔다 지쳐 주저앉아버린 테미스는 지금까지 맞섰던 존재들보다도 가장 두려웠다. 겨우 조금 달려왔을 뿐인데도 계속 숨이 차서 그에게 뭘 해줘야 할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테미스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언제나 그가 자신을 위해 마음 써 주었던 것이 떠올랐다.

“사라지면 안 돼요”

이번에는 르셰가 테미스에게 자신의 에테르를 주었다.

테미스는 르셰를 걱정하게 했다는 미안한 마음에 그런 슬픈 표정 짓지 말라고 하며 르셰를 보았을때, 그녀가 아젬의 환생인 것을 깨달았다. 눈을 감고 따뜻한 르셰의 힘을 전해 받으며 아젬과 나눴던 대화들을 떠올렸다.

개인의 감정을 존중하는 것... 아젬이 말한 것의 의미는.. 내가 바라는 것은.. 소망은….

사라질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조금 더 이 세계에 머물 수 있게 되자 역시 그녀와 더 함께 있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우리 함께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 너는 아마 또 빛나고 있겠지. 나는 네 곁에서 그런 너를 지켜보고 싶다. 어쩌면 우리에게 이런 결말도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어차피 자신은 진짜가 아닌 기억의 그림자에다가 결국 사라질 존재, 자신의 소망을 접어두고 조정자로서 이 이야기를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이 퀘스트의 이름은 그림자의 소망;.. 미쳤?...파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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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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