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겸

[규겸] 어서오세요 꿈과 희망의 나라에 上

게임판타지물 (2024.03.27)


*

 

  시원하게 퇴사를 갈겼다. 이건 정말 갈겼다고 해야 맞는 말이었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정말 수도 없이 구른 이 회사를 3년 다니면 정말 많이 다닌 거지. 이제껏 쌓인 퇴직금과 모아둔 돈을 최대한 적당히 굴려 다시 이직하면 되는 일이었다. 이석민은 퇴사 후 근 사흘을 그런 말만 되뇌이며 이불을 끌어안고 울었다. 이제 뭐 먹고 사냐. 괜스레 우울해져서 친구들에게 칭얼대면, 그들은 가끔씩 그를 불러내 술을 먹이고는 진정 시킨 뒤 보내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여기까지는 현실이었다. 어느 날 이석민은 자신의 현실을 말 그대로 ‘바꿔 줄’ 기기를 택배로 받았다. 퇴사 선물로 친구가 보낸 것이었는데, 증강 현실 게임기라 하더라. 일상 속의 이미지와 게임 요소를 결부 시켜 더 현장감 있게 가상 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나 뭐라나. 가뜩이나 우울해 하는 친구가 게임을 좋아하니 한 번 해보라고 보낸 것이었다. 늘 고전 게임을 찾아 하느라 이번에도 조이스틱이나 돌릴까 했는데. 마침 신기술을 맛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이석민은 한참 설명서를 읽어 보다가 기기의 전원을 켰다. 

 

  가상세계 전용 게임기의 이름은 월드3. 이미 1과 2가 나오는 동안에도 시작해 본 적이 없었는데, 세상은 자신도 모르는 새 좋아져서 이런 것도 나왔다. 그러고 보니 퇴사하고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광고를 본 적은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분명 신상인데... 신상을 이렇게 턱하니 보내주다니. 나중에 친구에게 한 턱이라도 쏴야 하나, 고민하는데 로딩이 금세 끝난 것인지 앞에 여러 시스템 UI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게 패션아이템인가 싶은 것들을 사람들이 많이 쓰고 다니는 것을 보긴 했었는데. 그게 이 게임의 헤드기어 일 줄은 몰랐다. 그 정도로 일상 생활 속에 스며들어 좀 더 자연스러운 플레이가 가능하도록 만든 것인데. 워낙 게임을 좋아하던 그였기에 반갑긴 했다. 당장 여행이나 다른 휴가를 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으니, 당분간은 이걸로 스트레스를 풀면 좋겠지.

 

  처음 시작한 게임은 일상 판타지 계열의 던전 게임이었다. RPG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어 직업부터 고르는데, 아바타는 특이하게도 자기 자신 그대로 였다. 뭐 증강 현실 씩이나 하니 나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었다. 곧바로 레인저를 선택하면 나무 활을 지급 되었는데, 역시 초보 장비라 그런 지 영 못 미더워 보였다. 잘 할 수 있겠지? 그런 걱정도 잠시. 

 

  그 뒤로 이석민은 잘 해냈다. 집에 머무르며 주변에 떠도는 비선공 몬스터를 잡는 것이 거의 일상이었다. 그러다가 자잘한 퀘스트를 하기 위해서 근처 가맹 편의점에 들리면, 퀘스트 스크롤도 살 수 있었다. 생각보다 이 게임이 많이 유행한다 싶긴 했었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주변에 가맹점들이 늘어날 정도라니 신기할 따름이다. 곧바로 주변에 던전 파티가 떴길래 놀이터로 향했는데, 거기서 어색하게 마주친 직장인 유저와 함께 쭈뼛대며 슬라임킹을 물리쳤다. 또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난 뒤 친구 추가도 하지 않고 그곳을 벗어났다. 그냥 솔플을 할까? 석민은 잠시간 그 생각을 했다. 

 

  *

 

  솔플을 고수하기 시작한 뒤. 어떻게든 애를 써, 어느 새 1차 전직을 넘겨 2차 전직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구성이 잘 되어 있어 레벨만 좀 넘기면 꽤 친절한 설명 UI를 활용해 계속해서 진행해 볼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오픈 기념 이벤트라는데 원하는 사이드킥을 옆에 붙여준다는 것이었다. 설명 UI 대신 NPC 형태로 옆에 붙어 같이 이야기도 하고 호감도도 올릴 수 있다나.

 

  당연하게도 이석민은 백수로써 성실하게 이벤트 시각에 맞춰서 접속했다. 그러자 사이드킥의 클래스를 고르는 창이 떴고, 캐릭터는 이벤트라 랜덤으로 지급된다고 써 있었다. 들어 보니 0.001%의 확률로 뜨는 SSS급이 희귀하다 던데. 평소에 그리 운이 좋지 못했던 이석민은 아무 생각 없이 전사를 골랐다. 자신이 레인저이니 앞에서 적당히 탱킹과 딜을 할 수 있는 놈이 필요하니까. 얼마 되지 않아 자잘한 업데이트가 끝나면 눈 앞에 광발작 반응에 대한 경고문이 떴다. 얼마나 화려한 이펙트를 쓰기에 이런 경고까지... 기대는 안 했지만 그래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확인을 누르면, 또 줄줄이 긴 동의 계약서가 앞에 떴다. 허나 그런 약관들은 안 읽는 게 국룰. 그대로 패스시키자 곧 눈 앞이 새하얘졌다. 곧 상상치도 못할 정도로 화려한 벼락과 아우라가 온 집안을 휘감았다.

 

  이거 진짜 우리 집 부서지는 거 아냐?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한 이펙트였다. 그 앞에 거대한 남자가 한 쪽 무릎을 꿇고 있다가, 안개가 걷히고 천천히 일어나 석민을 바라 보았다. SSS급 전사 한정 아바타 GET! 메시지가 뜨면 석민의 눈과 입이 확장 되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복권을 샀는데!

 

  마음 속 절규는 마음 속에서만 울렸다.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니까... 이석민은 다소 울상을 한 채 자신의 사이드킥을 쳐다 보았다. 안녕, 석민아. 내 이름을 정해줘. 환하게 내뱉는 목소리도 꽤 괜찮고. 무엇보다 엄청 잘생겼다. 키도 크고. 이석민은 멍하니 그와 눈을 마주치다가 괜스레 귀가 뜨거워 슬쩍 뒤로 물러났다. 이름을 뭐라고 짓지.

 

  옆을 둘러 보다가 사용설명서를 이리저리 살펴 보았다. 대표 이름이 김민규? 이름 짓는 데에 크게 재능이 없다 생각하는 본인이었기에, 그는 단순하게 이름을 결정했다. 김... 민... 규. 새로운 이름이 적히자 자신의 이름이 놀라운 듯 김민규는 석민을 쳐다 보며 한참 말을 하지 않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안녕! 내 이름은 김민규야. 앞으로 잘 부탁해.”

 

  생각보다 자연스러운 음성에 이번엔 또 석민 쪽에서 멀뚱히 쳐다 보다가, 손을 내밀어 잡았다. 감각 센서가 작동하면서 정말 거칠거칠한 손이 느껴졌다. 덩치가 크면 손도 저렇게 크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손을 가져와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해봐야 NPC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괜히 실감 날 정도로 생긴 NPC의 눈치를 살피면, 그가 또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어 보였다.

 

  "짱이네. 이게 SSS급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손을 뻗어 뺨도 도닥여 보고 주변을 한 바퀴 돌아 구경도 하고. NPC 김민규는 그런 그에게 눈을 떼지도 않고 쳐다 보았다.

 

  “너 진짜 잘생겼다.”

  “나 잘생겼어? 고마워.”

 

  큰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슬쩍 부끄러워 하며 뒷목을 벅벅 문지르는 것까지. 식이다. 이건 정말 식이다. 석민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친구에게 고기를 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번엔 장난으로 무슨 성인용품을 선물하려 해서 등짝을 수 없이 쳤었는데. 그래. 차라리 전자 남친을 소개 시켜주려면 이게 낫지.

 

  김민규는 몸도 얼굴도 SSS급이었으나, 능력도 SSS급이었다. SSS급 사이드킥의 사기적인 옵션을 통해 이석민의 클래스는 급성장했다. 대부분의 던전을 혼자 돌 수 있을 정도로 스탯이 좋았던 지라, 생각보다 여러 유저와의 교류는 하지도 못했다. 뭐 또 어색하게 놀이터에서 덩치만 큰 남성 둘이서 어색하게 인사하고 허공에 활 쏘고 있는 것보단 낫지.

 

  기본적으로 자신의 사이드킥은 상냥한 편이었다. AI 구성이 잘 되어 있는 것인지,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면들까지 꼼꼼하게 챙겨주는 통에 무슨 AI 비서를 둔 것만 같았다. 열어둔 찬장 문 조심해야지. 아까 국 끓여 놓고 불 안 껐잖아, 석민아. 다크 슬라임을 상대할 땐 그냥 불 보단 지옥불을 써야 돼. 저 보스는 패턴이 세개나 되니까 잘 기억해야 돼. 너 밥은 안 먹어? 아까 가져온 도시가스 고지서는 저기에 뒀는데.

 

  증강현실이라는 게 참 무섭다. 어떻게 이렇게 상황에 맞춰 대답하는 데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을까. 한 번은 마주 앉아 그를 빤히 쳐다 보았다가, 괜스레 볼을 쥐고 쭉 늘렸다가 놓았다.

 

  “왜 이렇게 사람 같냐. 요즘 AI 진짜 좋다.”

  “뭐? 나 AI 아닌데?”

 

  아. 제 4의 벽 같은 건가. 석민은 이해한다는 듯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가상 현실이 가상이라는 사실이 가상 인물한텐 이해가 되지도 않겠지. 괜스레 자신이 가상인물이 된 것처럼 이입한 이석민은 그를 불쌍하다는 듯 보았다가 손을 끌어 도닥여 주었다.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 보던 김민규는 풋 웃었다.

 

  “너 자주 그렇게 웃더라? 내가 웃기게 생겼어?”

  “아니. 하는 짓이 귀여워서.”

 

  석민은 얘도 나를 무시하는 건가 싶어 뚱한 얼굴로 쳐다 보다가 손을 휙 던졌다. 하여튼 가끔 얄미운 데가 있었다, 김민규는. 벌이야. 당분간 잠이나 자. 그런 말을 하며 로그아웃을 하면, 말미에 작게 잘자,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

 

  메인 이벤트가 업데이트 되었다. 생각보다 어려운 데다 동의 하에 감각 센서를 켜면 통증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해졌다 들었다. 이걸 켜야 할까. 옵션 창에서 고민하던 이석민은 강하게 자라보자 하는 생각에 모든 센서를 활성화 했다. 4D 영화관 같은 거겠지 싶기도 했었고, 괜한 객기로 도전해 보는 마음도 있었다.

 

  그와 동시에, 메인 이벤트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게임을 할 수 있는 멀티플렉스관이 생겼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어느 새 3차 전직까지 마칠 정도로 이 게임의 큰 팬이 된 이석민은 그 사실을 놓칠 수 없었다. 무슨 사이드킥한테 입히는 코스튬도 준다고 하는데. 가끔 얄밉게 구는 김민규에게 메이드복이라도 입혀 볼 요량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며 간 것이기도 했었다.

 

  왜 가상 인물한테 이렇게 화를 내냐고? 그만큼 이석민은 몰입도가 강하고 공감 능력이 지대하게 방대했다. 가뜩이나 사람 같아서 소름이 돋을 때가 많았는데, 교묘하게 자신을 짜증나게 하는 지점까지 사람 같아서 불만이 다소 쌓인 상태기도 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막 싫을 정도는 아니고. 그저 오랜 시간 지내온 친구처럼 투닥투닥 거릴 뿐. 가끔은... 그가 자신의 얼굴에 가상으로 붙은 나뭇잎을 떼어 줄 때마다, 살짝 두근거리는 정도. 물론 후자는 이석민이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아무리 몰입을 잘 한다 하더라도, NPC에게 반했다는 말을 어디 가서 어떻게 얘기하겠어.

 

  차를 몰고 간 멀티플렉스관은 역시나 사람이 많았다. 모두들 동일한 헤드기어를 낀 채 친한 길드원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초반부터 사기 사이드킥을 얻은 덕분에 솔플이 가능했던 이석민은 어디에도 끼지 못한 채 뻘쭘하게 예약한 룸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길드도 좀 들어 볼걸. 그런 후회를 했지만, 이윽고 예전에 길드를 들어볼까 했을 때 사이드킥의 반응이 차가웠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로는 부족해?' 뭐 그런... 누가 보면 오해할 수 있는 이야기나 내뱉고 말이야. 이석민은 문득 그의 반응이 생생하게 떠올라 귀가 다 빨개졌다. 괜히 간지러운 뒷목을 긁적이다가 메인 퀘스트 시작을 눌렀다.

 

  스토리는 처음으로 도래하는 종말에 맞서, 지옥의 사자들과 싸우고 결국은 이 모든 사태를 일으킨 보스를 퇴치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보면 단순한데 생각보다 세부 스토리가 잘 짜여져 있어 메인 퀘스트와 서브 퀘스트를 하다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었다.

 

  서브 퀘스트에서 조용히 죽어간 소년이 메인 퀘스트에서 자신을 도와주던 사제의 아들이라는 것이 결국 밝혀 지면 이석민은 주저 앉아 울었다. 스탭이 와서 괜찮냐고 물어 볼 정도로 대성통곡을 하다가, 결국 물을 마시고 좀 진정을 했다. 퀘스트를 잠시 멈춘 채 나무 의자에 앉아 있으면 민규가 걱정스레 자신을 쳐다 보고 있었다.

 

  “...괜찮아?”

  “...아니.”

 

  김민규는 멀뚱히 그를 쳐다 보다가 자리를 옮겼다. 곧 흉갑을 벗어내더니 석민을 끌어 안아주었다. 신기하게도 볼에 와닿는 튜닉의 천 재질과 그의 체온까지 다 느껴졌다. 이렇게 사람한테 안겨 본 적이 언제더라. 괜히 또 울음이 나와서 눈물이 그렁그렁. 자신의 상태를 살피려 얼굴을 쥐어 올리면 눈이 마주쳤다. 그가 소리내어 웃으며 석민을 고쳐 안고 도닥여주었다.

 

  “누가 보면 나 때문에 세상 다 망한 줄 알겠다.”

  “그러게.”

  “AI 아니랄까봐 진짜 겉핥기식 공감.”

  “AI 아니라니까.”

 

  그래. 가상 현실 게임의 법칙을 내가 디스해서 미안하다. 제대로 이입해 주면 되잖아. 이석민은 투덜거리다가 어느 정도 힘이 나면 일어섰다. 마저 진행해야 하는 던전들을 클리어 하고, 전리품들을 하나하나 정리한 뒤 로그아웃을 했다. 얻은 게 많았다. 다음주에 또 와야지. 축축한 코를 휴지로 문지르며 그 다음주 예약도 해놓고 집으로 돌아갔다.

 

  *

 

  예약까지 남은 시간은 꽤 있었기에. 그동안은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여러 서브 퀘스트들을 진행했다. 그러다가, 석민은 문득 요즘 김민규의 모양새가 요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저 고블린을 해치우는 그의 뒤를 빤히 쳐다 보자, 그 눈길을 알아차린 민규가 석민을 쳐다 보았다.

 

  “너 요즘 왜 이렇게 날 싸고 돌아?”

  “싸고 돌다니.”

  “계속 앞에 집중 안 하고 나한테 어그로 끌린 애들한테 가잖아.”

 

  이 게임에 호감도 시스템도 있었던가? 생각해 보니 있었던 것도 같았다. 분명 처음에 들었던 것 같은데, 워낙 스탯이 좋다 보니 신경도 못 쓰고 사냥만 했었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석민은 자신이 물었던 질문에 민규가 대답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까먹었다. 바로 UI를 불러내 그의 스테이터스를 보는데, 호감도 란이 보이지 않았다. SSS급은 그런 것도 없나? 분명 있댔는데.

 

  “뭐 찾아?”

  “아 너 호감도.”

  “...뭐?”

 

  여기저기 뒤적이다가 문득 옆을 봤는데, 감자같은 얼굴이 어느 새 새빨간 토마토가 되어 있었다. 엥. 석민은 그에게 다가가 손을 올렸다. 유독 열이 오른 것을 보고 석민은 요리도구에 저주가 걸렸나 찾아 보기 바빴다. 음식도 상하지 않았는데. 주변 환경이 멀쩡한 것을 체크하곤 다시 민규에게 다가왔다.

 

  “너 어디 아파?”

  “...아니. 그, 좀 덥네... 근데 호감도는 왜?”

  “호감도 올려야지! 완전 잊고 있었거든.”

 

  후에 이어진 말에는 잠시 삐진 듯한 얼굴. 석민은 멀뚱히 얘가 미쳤나, 하는 얼굴로 쳐다 보다가 그에게 제 인벤토리의 아무거나 내밀었다. 보통 호감도를 올릴 땐 아이템을 주잖아. 나중에 감자를 내밀 땐, 결국 그가 감자를 저 멀리 던짐으로써 상황이 끝났다. 또 그걸로 투닥투닥. 한참 싸우다가 민규가 큼 목을 가다듬었다.

 

  “내가 가이드인데. 호감도를 어떻게 올리는 지는 나한테 물어봐야지.”

  “... 아니 호감도를 올리는 당사자한테 물어본다고 알려줘?”

  “힌트 정도는 주잖아.”

 

  그것도 맞는 말이긴 했다. 이석민은 멀뚱히 그를 올려다 보았다. 김민규는 잠시 시간을 끌며 시선을 이리저리 굴렸다. 또 저 감자가 토마토가 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석민은 질질 끄는 시간들에 미간이 좁혀지기 시작했다. 뭐, 또 뭐... 자잘하게 짜증을 내자 곧장 그의 고개가 내려왔다.

 

  쪽.

 

  뺨에 입술이 와 닿았다. 이석민은 멍하니 감각센서에 의해 선명하게 제 볼에 닿은 부드러운 촉감을 인지했다. 아니. 인지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내가 AI였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부하가 걸린 로봇처럼 끼긱대다가 곧바로 로그아웃을 했다.

 

  “아, 미친놈아!!!”

 

  석민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손으로 가리곤 방바닥에 쓰러졌다. 귀가 불에 탄 듯 뜨거웠다. 이 씨발, 이제 AI 한테 반했다고 누구한테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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