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풀리는 하루

채이진

언제나 by 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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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이진의 발걸음이 무겁다. 늘 당당하게 정면을 바라보던 시선은 어둡게 가라앉아 밑을 향한다. 이진의 입에선 길고 작은 한숨이 새어나온다. 붉게 물든 길이 보인다. 이진의 기분은 바닥으로 떨어져 처박힌다. ...노을 탓이야, 이건. 애써 핑계거리를 붙인다. 그렇다고 내 탓은 아니잖아? 울컥 올라오는 감정에 속으로나마 치졸한 분풀이.

아침부터 늦잠에 허겁지겁 출근. 간신히 지각은 면했다지만 이후로 실수 연발. 덕분에 선배에게 깨져도 된통 깨졌다. 잘하던 애가 왜 그러는거야. 선배의 말이 푹 꽂혔다. ...그러게요. 왜 이럴까요. 이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속으로 답을 내뱉었다.

실수. 이진의 일은 실수로 치부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보다 중요하고 책임감이 따르는 일에서도 이럴 것인가. 아차, 실수했네. 이진은 그렇게 넘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래서도 안 된다 생각했다. 결국은 내 탓인가? 가라앉은 기분에 휩싸여 몇 번이고 머리를 굴려봐도 결론은 이진 본인의 탓. 하아. 한숨만 늘어간다.

이진이 억지로 발을 옮겨 집안으로 들어오면 반쯤 열어두고 나간 커텐 탓에 실내가 붉게 물들어있다. 가방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려두고 소파에 앉아 양 무릎을 끌어안는다. 이리도 울적하긴 참 오랜만이지. 어둡고 멍한 눈으로 이진은 한참을 그리 앉아있는다.

어느덧 해가 지고 밖이 껌껌해지자, 이진의 집은 어둠에 먹힌다. 대충 손을 더듬어 휴대폰을 집어들고 잠금화면을 켜면 하얀 불빛이 이진의 얼굴을 비춘다. 초록색의 전화 버튼, 연락처. 아래로 주욱 내리면서 저장된 이름을 훑는다. 쓸쓸하고 외롭게도 마음 편히 전화할 사람 하나 없구나. 이것도 내 탓인가. 전부 내 잘못인 것 같아. 무릎에 고개를 파묻었다가 다시 들고, 이진은 통화 연결 버튼을 누른다.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대면 일정하게 들리는 연결음.

... ... ...-달칵.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여보세요, 라는 익숙한 목소리. 익숙하고도 익숙한 그 목소리가 어쩐지 고되었던 오늘 하루만큼은 너무도 그리웠기에, 이진의 입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얼마 간의 침묵을 유지한 끝에야 이진은 겨우 한 마디를 뱉는다.

" ...보고 싶어. "

오늘 하루가 힘들었기에 부리는 어리광이야, 이건. 나는... 네가 이 어리광을 받아주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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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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